'책에 대한 단상'에 해당되는 글 315건

  1. 2022.01.21 태권도장 하수도 공사
  2. 2022.01.19 눈 보면서 문득..
  3. 2022.01.06 점심 먹기 전
  4. 2022.01.05 반찬 배달
  5. 2022.01.04 2초 간의 행복
  6. 2022.01.03 2022년 1월 3일 2
  7. 2022.01.02 2022년 1월 1일
  8. 2021.12.31 2021년 12월 31일
  9. 2021.12.30 어머니가 집에 오신 날 1
  10. 2021.12.21 에세이집에 대한 생각 정리 1

오전에 태권도장 간 둘째한테 태권도장 문 닫혔다고 전화가 왔다. 알아보니까 여자 화장실 하수도가 고장나서 급하게 공사를 하게 된. 

급하게 뛰어나가서 애들 데리고 들어왔다. 방학하면서 두 애들이 따로 움직일 일이 많아서, 결국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에게도 전화기 사줬다. 그새 LG는 핸드폰 안 만들어서 없고, 인터넷 연결 안 되는 공부폰이라는 게 새로 나왔다고 한다. 

애들은 코로나 이후로 언제 확진자가 나와서 학교나 학원이 비상상황이 될지 모른다. 아직은 혼자서 집에 오기가 좀 어려워서, 결국 비상 대기를 하게 되는. 

어제 오후에 급한 일이 생겨서 어머님에게 가는 걸 하루 미루었다. 그 여파로 아내가 병원 예약된 걸 다시 연기하게 된. 별 하는 일도 없는데, 스케쥴이 칼 같이 연동되어 있어서. 

아버지는 일반 병동에서 암 병동으로 어제 옮기셨다. 방사능 치료 받은 게 효과가 그래도 좀 있어서 이제 전화기 들고 전화도 하신다. 그건 좋은데.. 전화하시면 끊지를 않으신다. 심심해서 그러신 건데, 병실의 tv가 기본만 있어서 스포츠도 안 나오고, 바둑 방송도 안 나온다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보면 구동매가 “나으리, 제가 동경 유학 갔다온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희성이 술자리 내내 동경 유학만 하니까 나온 대사다. 며칠째 아버지 전화 계속 받다 보니까 내가 병원 생활하는 것 같은. 

요 며칠 영화 <엘리자베스>와 <골든 에이지>를 이어서 몇 번 봤다. 바르보사가 연기한 윌싱엄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보통 그렇게 음침하게 정보와 공작을 다루는 사람들이 인상적인 경우가 별로 없는데, 엘리자베스에서는 거기가 또 키 포인트다. 저렇게 영국이 결국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군.. 책을 좀 봐야 하는데, 일단은 영화로라도. 재미가 제일이다. 

영국 간 게, 후아.. imf 한 가운데인 98년이 마지막이었으니까, 21세기에는 간 적이 없다. 학회 첫 데뷔를 영국에서 했었는데, 진짜 안 갔었다는 생각이 문득. 그런 생각하다 보니까 전태일의 여동생 전순옥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같이. 권순옥이 다음 주에 이사오기로 한 학교 사택에서 그 전주에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나중에 전순옥과 일할 때, 그 시절 얘기를 잠시. 이소선 여사는 예전에 노회찬 후원회장할 때 같이 했던 적이 잠시. 

제국의 성립, 제국의 혼돈, 움베르트 에코가 이런 것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코난 도일 연구도 에코가 했던 작업들을 추적하면서 만나게 된. 그 시절에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걸 좀 자세히 보면 좋았을 걸,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제 누가 물어봐서 전화로 프랑수아 케네에 대해서 한참 얘기해주었었다. 박사과정에서 경제학사를 계속 전공했더라면 내 삶이 어떻게 되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잠시. 언젠가 나이 먹으면 경제학사로 돌아오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렇게 살지는 못한 것 같다. 

아마도 평생, 내 주변에는 힘든 사람들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게 곤란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나에게 연락을 많이 했었다. 늘 누군가의 크고 작은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 평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문득. 나중에 고맙다고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냥 그렇게 살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지금은 당장, 어머니와 아버지가 날 힘들게 한다.. 결국 하루 미룬 어머니 동사무소 가서 서류 처리하는 일과 집에 들를 생각을 하니까, 꾀가 난다. 주차할 데가 없어서 결국 차 두고 가야 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마음이 들지 않고, 저기를 또 가네, 그런 생각이 먼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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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어머니 사시는 동네 동사무소에 긴급 돌봄 서류 신청하러 간다. 아버지 입원해계시는 병원에는 일반 병동에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내일 옮긴다는데, 거기는 막내 동생이 간다.
일주일에 이틀에서 삼 일 정도 부모님한테 쓰고, 남는 시간은 또 애들 방학이라 상당수 들어간다. 나도 정기적으로 병원 다니느라 또 며칠 쓴다.
원래도 뉴스 죽어라고 보는 편은 아닌데, 정신 없이 며칠 지내다 보면 뭔 뉴스가 나왔는지 아예 모르고 가는 경우도 점점 흔해진다. 일상이 도 닦는 것 같다.
처칠 얘기 너무 재밌게 봤었는데, 엘리자베스 1세 즈음한 얘기들이 요즘 너무 재밌다. 좀 쌓아놓고 읽고 싶은데, 아직 뭘 읽어야 할지 고르지도 못했다. 그래도 좀 보려고 한다. 읽지는 않고, 나가기만 하면 나중에는 속살까지 파먹게 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순간이 문득..
책이 영광스러운 순간은 분명히 지난 것 같지만.. 나는 영광을 추구한 적도 없고, 명예를 추구한 적도 없다. 그냥 하루하루 내가 보기에 나 스스로가 창피하지 않게 살아왔을 뿐이다. 그리고 덩달아 주변 사람들 좀 웃게 만들면 더는 바랄 게 없고.
시민이라는 단어가 많은 한국인들 가슴에는 와닿는 게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시민이라고 생각하고 삶을 시작한 1세대가 내 또래 아닌가 싶은 생각이 문득. 시민으로서의 삶, 그런 나를 좀 더 생각해보려고 한다.
세상을 따라가다 보면 길을 잃는다. 아무도 세상이 어디로 갈지, 정확하게 먼저 아는 일은 없다. 그냥 내가 가는 길을 가면서, 세상을 지켜본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이 아닐까 싶다.
눈이 온다.
다음 일은 다음 고민, 일단 펑펑 내리는 눈을 잠시 즐기고.
50살 중반,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잊혀지지 않는 가슴 아픈 일도 몇 번은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내가 눈을 감을 때,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살았다, 이렇게 한 마디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내리는 눈을 보면서 잠시 들었다.
누군가 날 미워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미워하지 않는 것은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이 감사하고..
오늘도 감사하면서 하루를 살려고 한다.
(오후에 ytn 라디오 생방이 있어서 잠시 마음을 추스리려다보니, 눈 보면서 억지로라도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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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애들 방학식이다. 오전에 일찍 학교에 가서 애들 데리고 왔다. 점심은 그냥 족발 시켜먹기로 했다. 나도 귀찮다. 그래도 어머니 점심은 따로 준비해야 한다. 그거야 하면 되고. 

코로나 때문에 방학은 두 달간이다. 죽었다. 아내가 아껴두었던 육아휴직을 한 달 쓰기로 했다. 그래도 방학은 길다. 

내일은 어머니 검진일이다. 안 간다고 버티시는데, 어떻게 모시고 갈지, 머리가 빡빡하다. 이것저것 검사도 세 시간은 걸린다는데, 내시경 같이 복잡한 것은 뺐어도 차마 엄두가 안 난다. 어머니는 비협조의 극치다. 문진표가 안 왔다. 겨우겨우 안내 통화가 되어서 온라인으로는 없냐고 물어봤더니, 몇 년 전에는 있었는데 하도 사고가 많이 나서 이제 온라인은 없다고 한다. 택배 아직 도착 안 했으면 예약 뒤로 미루어주겠다고 하는데, 순간 경기.. 내일도 애들끼리 집에 있어야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일 처리 안 되면 다음 주에는 더 힘들다. 네, 그냥 하지요. 

내 바로 밑의 동생도 역시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화도 안 받는다. 오전에 전화 걸어보니까, 받기는 받았다. 부탁할 일이 좀 있기는 했는데, 하나마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어려울 때니까 세 끼 잘 챙겨먹으라고만 말했다. 형으로 사는 게 가끔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오늘 저녁에는 다큐영화 시사회에 가기로 했다. 영화사 진진에서 하는 행사다. 여러번 못 가고 미안해서, 이번에는 간다고 했다. 과연 갈 수나 있을런지. 

나한테 의지하는 사람들이 몇 명인가 잠깐 세볼까 하다가, 잠깐 세다가 말았다. 식구들이 줄줄줄, 여기에 아주 작은 규모의 출판사 몇 개, 그리고 기획을 하는 사람들. 

몇 년간 같이 일하던 사람들 중에서 한 명이 떠나갔고, 몇 명이 더 늘었다. 주변 사람들이 줄지는 않고, 오히려 약간 늘었다. 아프고 싶어도 아플 수도 없는 상황이다. 속으로는 골골 하는데, 몇 년간 열 한 번 오른 적이 없고, 감기 한 번 걸린 적이 없다. 팬데믹 국면에서 내가 감기 걸리면, 우리 집은 완전 정지다. 

어디선가 자문위원으로 위촉장 준다고 텔레그램으로 이력서 양식 채워서 보내달란다. 순간 컴퓨터 부술 뻔했다. 바빠주겠는데.. 

바쁘긴 바쁜데, 뭘 하느라고 바쁜지도 잘 모르겠다. 다다음 주에 중요한 인터뷰를 하나 할 생각인데, 아, 이 양반이 전화를 안 받는다. 돌아삐리. 

멜론에서 앙드레아 보셀리 노래를 하나 추천해준다. 꾹, 응, 들어. <슬기로운 감빵 생활>에서 주인공 테마곡으로 나왔던, 감옥 가는데 하루 종일 굿바이하면서 나왔던 노래. 기왕 듣는 김에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나왔던 <마리아>도 같이. 몇 년 전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한 달 내내 들었던 때가 기억이 났다. 

아주 예전, 은퇴하면 노르망디 바닷가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아무도 성거시지 않은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은퇴 준비 중인데, 노르망디에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때는 별 거 없이 살다가 조용히 사라진다는 생각이었는데, 나한테 매달린 사람들이 아직은 너무 많다. 

나는 바다가 그렇게 좋았다. 수많은 바닷가에 갔었는데, 아직도 기억 속에서는 노르망디의 바다가 제일 좋다. 아마 거기서 노년을 보내기는 어려울 것 같고, 심지어 한 번 놀러갈 일도 없을 것 같다. 파리에는 가끔 가지만, 짧게 출장을 가면서 노르망디까지 갔다 오기는 쉽지 않다. 

불어로 부르는 앙드레아 보셀리의 라라의 테마를 듣다 보니, 문득 노르망디 생각이. 참, '라라의 테마'가 <닥터 지바고>에 나왔던 노래라는 생각이 문득. 윤석열이 재밌게 본 영화가 닥터 지바고였다는.. 그는 뭘 보고 이걸 인생 영화라고 했을까? 내 기억에는 영원히 살아남는 악인에 관한 영화였다. 그는 누구를 악인이라고 생각할까? 

점심 먹기 전, 그래도 족발 오는 거 기다리면서 약간의 휴식을 가졌다. 음악도 듣고, 커피도 마시고.

2022.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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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아무 것도 안 하고 계속 잠만 주무시지만, 때 되면 식사는 조금씩 하신다. 병원에서는 이제 밥 먹어도 될 것 같다고 했는데, 그건 아직은 좀 무리인 것 같고. 

집에 가신다고 몇 번 하셔서, 혼자서 밥 하실 수 있고, 시장 볼 수 있기 전에는 집에 못 가신다고 했다. 하루 종일 누워계시는 건 똑같지만, 그래도 식사는 좀 하신다.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검진 예약은 했는데, 병원 모시고 가는 게 또 난제다. 자신 없다. 

아무 것도 안 드신다고는 하지만, 조미김을 드렸더니 그건 좀 드신다.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시는 반찬은 쇠고기 장조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며칠 전에 반찬 가게 가서 사왔는데, 그건 잘 드셨다. 메추리알과 쇠고기 장조림. 벌써 다 드셨다. 

우리 집에서 밑반찬은 주로 아내가 한다. 아내도 회사 일이 정신이 없어서 몇 달 전부터는 나물 같은 거는 내가 애들 데리고 옆동네 시장에 가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사오고는 했다. 그냥 날 잡고 해도 되기는 하지만, 나도 나물 한다고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냥 사온다. 

쇠고기 장조림 하나 사러 시장에 가기도 그렇고, 또 어머니만 두고 그렇게 괜히 집을 비우기도 좀 그렇고. 배달 앱에서 전에는 없었는데, 새로 찾아보니까 반찬 가게가 하나 생겼다. 시장보다는 좀 비싼 것 같은데, 지금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라서 처음으로 반찬 배달 해봤다. 금방 온다. 몇 년 전에 어머님에게 반찬 정기 배달을 신청했던 적이 있었는데, 너무 짜고, 입에 안 맞아서 다 버린다고 욕만 잔뜩 먹었던 적이 있다. 

오전에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강의하고 돌아오는데 여의도성모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지금 아버지 계신 병원은 좀 멀고, 좀 무리가 되더라도 가까운 데로 모실 계획이 있기는 했다. 아버지 신분증 들고 한 달쯤 전에 가서 의사 면담하고 입원 대기하던 중이었다. 결국에는 좀 어렵게 되었다고, 병원 옮기는 것은 당분간 포기했다. 

어머니가 아프시기 전에는 그래도 아버지에게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는 걸로 막내 동생하고 계획을 했었는데, 어머니도 같이 누워 계신 상황에서 두 군데 다 왔다갔다 하는 건 이래저래 무리다.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막냇동생이 아버지 계신 병원에 전화해봤는데, 이제 존댓말을 하신단다. 존댓말, 반말 섞어서 하신지는 사실 좀 된다. 아버지 기억은 뇌에 종양이 너무 커져서, 두 달 전부터는 왔다갔다, 좀 그랬다. 

지금에 와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나, 증상이 같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어머님이 아직은 거동을 하실 수가 있어서 조금 사정이 낫기는 한데, 그냥 누워만 계시는 것은 같다. 운동도 좀 하실 수 있게 해드리고 이것저것 더 챙겨드려야 하는데, 지금 같아서는 제 때 식사 챙겨드리는 것도 버겁다. 

어머니가 유일하게 드시는 간식은 감말랭이 작게 자른 거. 어제 저녁 때 큰 애가 감을 막 집어먹었더니 어머니가 “얘, 감 얼마 안 남았다”고 그러셨다고 한다. 그거 냉장고에 더 있다. 나랑 큰 애가 워낙 감을 좋아해서 떨어지지 않게 넉넉하게 사다 놓는다. 손자가 감 집어 먹는 게 아깝다고 생각하시니, 웃음이 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거라도 드시니까 다행이다. 

주말에 어떻게 될지 몰라서, 환자들이 먹는 유동식 몇 박스를 주문했는데, 오늘 왔다. 먹어보니까 딱 두유맛이다. 점심 때 식사하시고 드시라고 하나 뜯어드렸는데, 처음에는 안 먹는다고 하셨다. 두유랑 맛이 똑같다고 했는데, 잠시 커피 타다고 돌아보니 그새 하나 드셨다. 맛이 보통 두유보다 훨씬 달달하고, 고소한 맛이라서 배지밀 맛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동식 오래 먹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지만, 지금은 비상 상황이니까. 

친한 선배한테 안부 인사차 전화했는데, 그새 청와대 있다가 나왔다고 한다. 얼굴 보고 식사 한 번 하자고 하는데, “형, 내가 커피 약속을 할 처지가 안 돼”, 그러고 말았다. 커피 한 잔 마시는 일도 엄청 큰 대형 사업이 되었다. 집에서 잠시 나가려면 사전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엄청 많다. 

나도 몇 주 후에 병원 가야 하는 날인데, 이건 한 달 미루기로 했다. 나도 여기저기, 아이고 삭신이야, 병원 다닌지 꽤 된다. 정기적으로 피검사도 하고, 1년에 몇 번 스캔도 하고 MRI도 찍고 그런다. 나이를 처먹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 병실에서 몇 주 버티고 나니까 머리의 두피에 온통 크고 작은 염증이 났다. 병원에 가보니까, 이건 완치가 되지 않는 병이라고 한다. 그냥 나이 먹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라고. 원인을 잘 모르기 때문에 완치가 없단다. 그냥 관리하면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약이랑 연고랑 그런 거 잔뜩 받아왔다. 3달 후에 다시 보잔다. 의사가 그랬다. 평소 같으면 한약방 하는 얘기 같은 거라서 잘 안 하는데, 자기가 요즘 딱 그런 얘기하고 있다고.. 그러면서 자기 동생이 서른도 안 되었는데, 같은 증상이라서 자기가 약 주고 있단다. 

이제 나도 50대 중반이다. 여기저기, 아이고 삭신이야, 그러면서 살아간다. 10살인 큰 애는 어깨가 뻐근하다고 해서, 며칠째 어깨 마시지랑 머리 지압을 해주는 중이다. 훨씬 나아졌단다. 자기 전에 마사지 해달라고 오는데, 그때마다 “아빠가 좋아”, 그런다. 귀엽다. 중학교 때 심심해서 마사지책이랑 지압책 잔뜩 읽고 주변 사람들 대상으로 연습하면서 살았던 게, 이렇게 써먹을 일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사람들이 전화해서 힘들지 않느냐고 위로를 한다. 사실 나는 요즘 힘든 건 거의 없다. 힘든 건 부모님들이 힘들지, 나는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재밌는 시기를 보내는 중이다. 아내가 하는 일이 아주 잘 되고 있고, 여름과 가을에 병원에 입원했던 둘째도 지금은 입원과는 좀 거리가 먼 삶을 사는 중이다. 부쩍 소년티가 나기 시작하는 큰애와는 일주일에 몇 번씩 인생에 대해서 논하고, 삶에 대해서 대화한다. 큰애는 자기 딴에는 경제학자와 화가 두 개를 놓고 자기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중이다. 나는 어느 쪽이라도 다 좋고, 그거 아니라도 상관 없다고 했다. 이제 곧 초등학교 4학년, 이제 어른이 느낌 보다는 소년의 느낌에 점점 더 가까워졌다. 물론 하는 짓이나 생각은 아직 영락 없는 어린이지만, 느낌은 많이 변했다. 산타가 뻥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그래도 초등학교 1학년 동생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적당히 둘러대는 것 정도는 협조해 준다. 

어느덧 나는 내 또래의 친구들과는 좀 다른 문화의 삶을 살게 되었다. 뭔 상관이냐. 아직은 어머니, 아버지, 다 살아 계시다. 내 삶에 이런 순간이 그렇게 길게 남지는 않았을 것지만, 그래도 부모님의 아직 다 계신 이 시간들을 슬프게만 지내고 싶지는 않다. 

2022.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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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애들 보는 시간이랑 겹쳐서 수영장 가기가 아주 어렵다. 그나마 코로나 거리두기로 9시에 문을 닫게 되어서 아주 급하다. 사실 거의 못 간다. 어제 갔었는데, 오늘은 이래저래 할 일도 밀렸고, 안 갈까 했다. 요번 주에는 영화 시사회 가기로 한 것도 있고, 다음 주에는 저녁 시간에 일정이 몇 개 있다. 그 다음 주에는 지방 출장도 있다. 사실 갈 수 있는 날이 별로 없다. 일주일에 두 번이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하는 건데, 그것도 쉽지 않다. 

오늘도 습관처럼 그냥 쉴까 하다가 계속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억지로 갔다. 수영장은 집에서 꽤 멀다. 문정동 살던 시절에는 걸어가는 거리에 구청에서 만들어준 수영장이 있었는데, 이 동네는 그 정도 조건은 아니다. 

수영 끝나자마자 운전해서 청운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는데, 땀이 났다. 영하 3도인데, 더워서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아니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순간 매우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초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지난 달 두 달 전 쓰러지셨다. 어머니는 지난 주부터 아무 것도 드시지 않고 계셔서 급하게 일단 집으로 모셔왔다. 갑갑한 상황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하루 종일 인상만 쓰고 그렇게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람이란 참 단순하다. 수영하고 바로 나오는데, 땀이 막 흘렀다. 별로 하지도 않았는데, 몇 달만에 하는 거라서 풀어진 근육들이 놀랐다. 연초에 이것저것 검사를 했는데, 대부분 다 안 좋은데, 근육량만 좋게 나왔던 게 기억이 났다. 몇 달 수영장 다니다가 다시 검사를 했는데, 30대 이후로는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모든 수치들이 다 정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코로나 이후로 2년 동안 신경 써서 걷기를 많이 했는데, 내 경우에는 관절만 안 좋아지고, 별로 특별히 건강상 지표로는 변한 게 없었다. 몇 달 수영을 하고 먹는 걸 아주 약간 줄였는데, 10킬로 가까이 체중이 줄었다. 수영을 해서 나아진 건지, 살이 좀 빠지니까 나아진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어쨌든 대학 졸업할 때 체중이랑 비슷하게 되었다. 조금만 더 해서 유학 시절 체중으로 돌아가는 창대한 계획을 세웠었는데, 아버지 쓰러지신 이후로 모든 것은 일단 스톱. 그리고 죽어라고 먹기만 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 

내일 오전에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할 발표 준비도 오후에 끝냈고, 교육방송의 자료들도 검토 다 해서 보내줬다. 아주 잠깐이지만, 해야 할 일도 없고, 모든 것을 잠시 잊어도 좋은 순간이 왔다. 아주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2초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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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우리 엄마가 딱 그래. 나이 많은 엄마들은 다 아무 것도 안 한다고 그래. 우리 엄마가 내 환자였으면 확!”

결국 간호사 하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 하는 후배 엄마도 치매가 있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아무 데도 안 간다고 하신단다. 

금요일부터 우리 집에 와 계신 어머니는 죽 조금 드는 듯 하시고, 계속 방에서 잠만 주무신다. 아버지가 병실에서 저러고 계신 걸 한 달 동안 봤던 게 지난 달의 일이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더니, 진짜 그런 건가? 

마지막 건강검진 받으신 게 언제인지 물어봤는데, 아무 대답도 없고 눈만 감으신다. 돌아삐리. 금요일날 간 동네 병원에서는 장염 증상이 조금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다음 날부터는 죽 대신 밥 드셔도 될 것 같다고 했다. 그건 물리적인 증상이고. 

오전에 병원에 모시고 가서 다시 링겔 주사도 맞고, 큰 병원 가기 위한 소견서도 받을 생각이었는데, 아무 데도 안 간다고 그냥 버티신다. 

“그만둬, 그만둬.”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의 대부분은 이 애기랑 같다. 싫다, 안 한다, 그리고 오늘 하나 추가된 것은 “집에 가겠다.” 

“어머니가 혼자서 식사도 준비하시고, 시장도 보셔야 하잖아요. 지금 그러실 수가 없잖아요.” 

오전 내내 고민을 하다가 간호사 하는 후배랑 상의를 해서, 약식 검진받는 것, 요양 등급판정 받는 것. 다 어머니가 펄펄 뛰실 일인데, 큰 병이 있는지 없는 건지, 알아야 치료를 한다, 집에 도와줄 사람을 보내더라도 등급이 있어야 정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설명은 드렸다. 

“우리나라 모든 엄마들이 다 똑같이 하는 레파토리야, 오빠.”

후배 얘기 듣고 잠시 웃었다. 치매 시작되면 병원에 가는 거, 누군가의 도움 받는 거, 협조적인 엄마는 아무도 없다는 거다. 우리의 노년은 이렇게 되고, 죽음은 이렇게 시작이 된다. 아마 우리 집에 오시지 않으셨으면 어머니는 그렇게 곡기를 끊고, 내가 사정을 알았을 것은 며칠 후일텐데, 그때는 시간을 잠시 세워놓을 수도 없을 것 같은 후회를 했을 것 같다. 

어머니는 싫다고 하셔도 어떻게든 병원에 예약해서 진단도 받고, 등급도 받는 일을 이번 주에 처리하려고 한다. 다음 주에는 나도 바쁘고, 그 다음 주에는 더 바쁘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이번 주가 마지막이다. 내일 모래 인하대에 강연이 있는데, 나도 처음 해보는 경제생활에 대한 강의다. 준비도 좀 해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아니다. 

막내 동생은 아버지 쓰러지신 다음에 두 달 동안을 매달려서 진이 다 빠진 데다가, 어머니 병원으로 모시려고 하다가 벌써 한바탕 해서, 이 일에는 끼지 않으려고 한다. 이해도 되는 이리다. 아내는 회사 일이 겁나게 바쁜 시즌이다. 아내에게 매달린 사람이 여럿이다. 

우리는 다 그렇게 산다. 달력을 보니까 나도 병원 예약해 놓은 게 며칠 뒤다. 이것도 한두 달 연기헤야 하는데, 오늘은 전화를 너무 많이 걸어서, 그 전화 할 힘도 없다. 이건 내일 처리하기로. 

오늘 저녁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수영장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몇 달 수영장 다녔더니 간을 비롯해서 많은 수치들이 다 정상 범위 안으로 들어갔다. 2년 동안 걷는 걸 해봤는데, 내 경우에는 몇 킬로를 걷든, 걷는 건 거의 수치에는 반영이 안 되고, 몸의 변화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정서상 그런 건지, 체질상 그런 건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수영은 직빵이다. 몇 주만 해도 많은 수치들이 급격히 움직이고, 몇 달 하면 거의 다 제 자리에 가 있는다. 아내는 내가 워낙 몸에 열이 많아서, 그럴 것 같다고 한다. 하여간 이유는 모르지만, 인생의 위기 때마다 수영을 하면서 힘든 것들을 참고 넘어간 기억이 있다. 

몇 달 꾸준히 했었는데, 팬데믹 높아지면서 수영장이 다시 문을 닫았고, 다시 수영장 가려고 할 때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그렇게 후딱 몇 달이 갔다. 오늘 저녁에는 꼭 수영장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실 것 같아.”

간호사 하는 후배에게 그런 얘기를 했더니, 그런 경우도 많이 봤다고 한다. 사람이 생명이 몸에 붙어 있는 것은 불안한 균형 같은 것 같다. 병원에 가면 어떤 경우라도 쉽게 죽도록 방치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매끼 드시거나 말거나 식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이것저것 드실 수 있는 것을 들이미는 것 외에는 없다. 하루 종일 누워서 잠만 주무시는데, 금방 근육량이 떨어지고, 거동이 어려워지고, 그렇게 생명이 붙어있는 작은 줄들이 점점 더 가늘어진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일이다. 

아버지는 지금 있는 병원에서 조금 더 집 가까운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서 병실을 기다리며 대기를 걸어놓은 상태다. 어머니와 아버지, 양 쪽을 모두 다 케어하기는 어렵다. 아버지 병원은 옮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지금 나를 도울 수 있는 건,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어쨌든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야옹구, 고양이 한 마리다. 

어머니가 나에게 한 마지막 명령조의 언어는 “저 고양이 가져다 버려랴”였다. 어머니는 고양이와 집 안에서 같이 사는 걸 이해하시지 못 한다. 내가 초등학교 때 방에서 고양이를 잠시 길렀던 적이 있었다. 겨울이라서 가능했다. 봄이 되고 고양이는 다시 현관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물론 나는 고양이를 나가게 할 생각도 없고, 그럴 마음도 먹어본 적이 없다. (고양이가 방문 열라고 난리다 ㅠㅠ.)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라면,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계시고, 어머니도 언제 병원으로 가게 되실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내 통장이 그래도 비교적 여유로운 때라는 점이다. 살다 보면 돈이 꽤 많았을 때도 있고, 달랑달랑 할 때도 있다. 지금은 비교적 넉넉한 때인데, 별 이유가 아니라 코로나 때문에 그렇다. 인세 등 들어오는 돈은 평균적으로 비슷한데, 팬데믹 이후로 나가는 돈이 확 줄어서 통장이 조금 넉넉하다. 사람들 만나서 밥 사고 그런 게 확 없어지니까, 나가는 돈이 아예 없다. 아마 지금 같은 상황에서 통장도 달랑달랑 했으면 훨씬 더 시껍했을 것 같다. 다행히 그런 상황은 아니다. 

미국의 대법관이었던 루이 긴즈버그의 초창기 사건 중에서 아이를 기르게 된 아빠가 국가에게 양육수당을 지급해달라고 신청한 건이 있다. 엄마는 되는데, 아빠는 안 된다는 게 소송의 핵심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아빠들도 전업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게 제도 정비가 되었다. 

나같이 아버지든 어머니든 돌보게 되는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 첫 번째 장벽들이 있을 것 같다. 전에는 왕진 같은 게 있었던 모양인데, 팬데믹 이후로 보건소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정지되었다. 그렇다고 사회복지사한테 대뜸 전화 걸어서 상의할 수 있는 상황인 것도 아니고. 

시청이나 구청에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원스탑 서비스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긴급 돌봄’ 정도의 이름으로, “아무 것도 안 할 거야”, 그렇게 얘기하기 시작하는 어머니들이 공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는 것들을 최소한 상담이라도 해줄 수 있는 곳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의사, 간호사, 시청에서 일하는 사람, 구청에서 일하는 사람, 경찰, 정말 전화 너무 많이 걸었다. 평소 자주 보지도 못하다가 급할 때만 연락하는 귀찮은 선배처럼 보일까 봐 정말 전화하기 싫었지만, 방법이 없다. 염치 불구하고 내 사정이 이런데, 어떻게 해야 되니, 그렇게 물어보는 수밖에. 누구나 간호사 후배가 있고, 의사 친구가 있지는 않다. 이런 것들을 모아서 한 번에 알려주거나 상의하는 그런 창구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 보면 ‘키다리 아저씨’ 사연이 나온다. 병원비를 처리할 수 없는 딱한 사연의 문제들을 다루다가, 뒤쪽에서는 병원 사이의 협진 문제 같은 걸로 처리 범위를 조금 더 넓힌다. 그런 걸 조금 더 공적 버전으로 만드는 것과 비슷한 얘기다. 

생의 후반기에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사연을 만난 것 같다. 병원들 홈페이지에 가보면 예약하려면 회원가입하란다. 좋아, 회원 가입, 딱 이렇게 맘 먹고 시작하면 밑에 조그만 글씨로 “당사자 예갸만 가능합니다”, 요렇게 적혀 있다. 어머니, 여기 대학병원 회원 가입하시구요, 여기 여기 클릭하시면 예약 가능합니다, 예약 좀 해주세요! 요게 가능하면, 그냥 “어머니 병원 가시지요, 이러고 바로 모시고 가지! 

“난 그냥 여기 있으련다”, 많은 것들을 본인 의사에 반하게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냥 검사 받는 것도 싫다고 하시는데, 정말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몇 달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가 똑같이 “그냥 내버려둬”라는 얘기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렇다고 정말로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으면 그게 딱 청개구리 얘기인 거고. 너무 많은 행정 절차가 본인이 일단 오고, 본인이 뭔가 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일상적인 때에는 아무 상관도 없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그렇게 자기가 가서 자기가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진다. 

아이고, 애들 올 시간이다. 잠시의 휴식도 이걸로 끝이다. 애들 학교에서 오면 “배고파요, 아빠”, 이게 제일 처음 하는 얘기다. 케익 조금 남은 게 있다. 오후 간식은 그런 대로 버틸 만하다. 오늘은 간만에 애들하고 빵을 구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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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었다. 아무 속도 모르는 열 살 큰 애는 어머니가 잠깐 마루 쇼파에 나오시자 넙죽 절을 했다. 그냥 웃었다. 원래 우리 집은 신정을 쇠기는 했다. 너무 많이 주는 것도 좀 그래서 내가 지갑에서 2만 원을 꺼내서 세뱃돈으로 주었다. 

어머니는 억지로 죽을 조금 드시기는 했는데, 표정은 영 안 좋으시다. 한 해가 이렇게 시작한다. 

오전에는 글은 쓰지 않고, 전체적으로 구조를 잡는 일을 했다. 원래 연말에 끝내려고 했던 일인데, 어머니 모셔오고, 뭐 그러다 보니까 해가 넘어갔다. 난 뭐 한다고 티 내는 일은 딱 질색이다. 하는 듯 안 하는 듯, 그렇게 하는 게 좋다. 

작업실을 구할까,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는데, 굳이 뭐 그런 게 필요할까 싶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무슨 조각 작업 같은 것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책상만 있으면 된다. 아이들이 조금씩 크면서 작업실 생각을 전혀 안 한 것은 아니지만,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럴 돈도 없고. 고양이가 주로 쓰던 서재에 아내가 안 쓰는 책상 갖다 놓고, 그냥 거기서 이것저것 한다. 지난 여름에는 몇십 년째 굴러다니는 앰프와 스피커들을 갖다 놓아서 요즘은 훨씬 낫다. 

구두쇠처럼 돈을 전혀 안 쓰는 삶을 사는 건 아니지만, 차에 쓰는 돈이 그렇게 아까웠다. 프라이드 웨건을 오래 탔었고, 지금은 아내 명의로 되어 있는 모닝을 탄다. 어차피 소모품인 차에 돈을 쓰는 게 예전부터 그렇게 아까웠다. 책이나 CD 혹은 DVD 같은 데에는 아낌 없이 돈을 썼다. 작업실도 차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데나 엉덩이 붙일 수 있으면 그만이지, 따로 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잘 안 했다. 

가끔은 나도 카페에 노트북 가지고 가서 글을 쓰던 적이 있었고, 책 마무리한다고 정말로 모텔에 가서 며칠 자판만 두드리다가 온 적도 있었다. 카페 가서 글을 쓴 책들이 대부분 망했다. 쫄딱 망했다. 폼 잡다가 망했다고 곱게 생각하기로 했다. 

얼마 전부터 에드가 알랜 포우의 소설이 당기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많이 봤었는데, 그런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얘기들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어셔가의 몰락>이 특히 기억이 많이 났다. 문 한 번 열고 들어가면 볼 수 있는 내면의 모습들, 그런 생각을 요즘 종종 한다. 

어제는 처칠에 관한 영화인 <다키스트 아워>를 봤다. 예전에 건성건성 봐서, 마음 먹고 집중해서 본 건데, 겁나게 재밌었다. 비슷한 시기를 다룬 조지 6세의 <킹스 스피치>를 아주 재밌게 봤었다. 일종의 친위 쿠데타에 관한 영화인데, 총이나 건달들은 하나도 나오지 않고도 처칠이 자신의 권력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과정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영화 다 보고 났더니, 개리 올드만이 나온다. 어, 개리 올드만은 누구였어? 아내가 한심하게 바라본다. 그 연기 잘 한다고 한 그 처칠 아니야? 이런! 

한 시간에 한 번씩 어머니를 보는데, 대부분 주무시고, 잠시 우리 식사 때 아내가 억지로 죽이라도 조금 드시게 한다. 힘겹다. 점점 어머니도 아버지랑 하는 얘기가 같아진다. 뇌 종양이 커진 아버지는 “그냥 내버려둬”, 이런 얘기만 계속 하셨다. 어머니도 “그냥 둬”, 그런 얘기가 하는 대화의 거의 대부분이다. 후기 프로이드가 반복과 죽음의 본능에 대해서 얘기한 게 기억이 난다. 

오후에는 큰 애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돼지갈비를 사왔다. 친구들이 괴롭힐 때 때리지 않고 참으면 맛있는 거 사준다고 약속을 했었다. 며칠 전에는 잘 참다가 결국 때렸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 남자 애들의 세계는 거칠다. 이번에는 참았다고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한다. 어머니가 계셔서 식당에 갈 형편은 아니고, 백화점 가서 돼지갈비랑 순대랑, 그렇게 먹고 싶다고 하는 거 사들고 왔다. 

그래도 1월 1일인데, 이렇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건 좀 그래서, 방의 스피커 배치를 좀 바꾸었다. 그래봐야 위에 있던 거 밑으로 내리고 그런 거지만, 요번에는 벽 한 구석에서 놀고 있던 스피커 스탠드를 다시 투입했다. 그래봐야 그게 그거지만, 그래도 뭐라고 하면 기분이 또 잠시 새로워진다. 

아내가 어머니가 집에 와 계셔서 좋은 점이 뭐가 있냐고 물어봤다. 

“내일은 화곡동에 안 가도 되잖아.”

식사를 안 하고 계시니까 요 며칠 매일 본가에 갔다. 두 번 간 날도 있다. 어머니가 집에 계시면, 당장 어디 뛰어가야 할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은 편한 일이다. 그래도 마음도 편한 건 아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사실지, 계획한 대로 병원을 한 번 더 옮겨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 있는 게 나은지, 아직 마음의 결정을 못 내렸다. 어머니는 노년을 어떻게 보내셔야 하는지, 이것도 마음이 복잡하다.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조금 더 편하게 기술적인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르지만,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뭐든 더 복잡해진다. 

1월 1일, 매년 오는 1월 1일이다. 다를 게 별로 없지만, 올해는 조금 다르다. 내년 1월 1일에 아버지는 아마 세상에 계시지 않을 것 같다. 병원에서는 3~4달 얘기를 했는데, 그새 벌써 한 달이 넘어갔다. 그것도 젊은 사람까지 계산한 평균치라고 의사가 말해주었다. 어머니는 내년 1월 1일에도 살아계실까? 그럴 확률이 높기는 한데, 그거야말로 하기 나름이다. 

평소 같으면 식구들이 다 모여서 어딘가 식당에 가서 밥 먹고, 아버지가 계산하고 그랬을 날이다. 올해는 조금은 색다른 신년을 맞는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수아드 마씨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알제리의 존 바에즈로 불리는 가수인데, 알제리 여성 인권에 대한 노래로 아주 유명했다. 이름만 대충 알았지, 실제로 앨범을 듣는 건 나도 처음이다. “Pour qui”라는 노래의 가사들이 가슴에 박힌다. 누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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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억지로 집에 모시고 온 다음 날의 아침은 바빴다. 아내와 동네 병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수액 주사를 위해 예진을 하는 걸로 시작하였다. 병원에서는 장염, 위염, 1주일채 약을 지어주었다. 

기왕 병원에 간 김에 나는 미루고 미루었던 3차 접종을 했다. 몇 주째, 정말 병원에 갈 시간이 없었다. 아버지 병실에 있거나, 아버지 병원을 알아보거나, 그리고는 어머니한테 가거나. 살짝 살짝 시간이 나면 나도 먹고 살기 위한 일을 하고. 

점심 때에는 출판사에 가서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에디터가 내민 출판사를 옮기기 위한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복잡한 일들이 겹쳐서, 아니 나도 나이를 먹어서 출판사를 좀 간소하게 하는 일들을 하는 중이다. 매번 에디터가 바뀌고, 또 새롭게 익숙해지는 일이 이제는 버겁다. 

집에 돌아오면서 같이 일하던 화가에게 새로운 작업에 대해서 설명하는 전화를 하라 하다가 잠시 주저했다. 그 사이 결혼해서 아이 엄마가 되었는데, 그래도 차라도 한 잔 하면서 설명할 일이지, 전화로 얘기하는 건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는 미루고 미루어두었던 동화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좀 정신이 없더라도 같이 일할 화가와는 차 한 잔은 하면서 얘기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이 되기 전에 큰 애랑 시장 반찬가게에 나물 같은 반찬들 사러 갔는데, 어머니도 같이 가셨다. 잡채랑 전 같은 것을 샀고, 어머니는 쑥으로 만든 부침개를 집어 드셨다. 드실 수도 없기는 한데, 그냥 손이 가는 것 같은. 하나하나가 사실 거의 마지막 같은 일이다. 다행히 며칠 내로 몸이 회복되실 수도 있고, 아니면 이게 같이 반찬가게에 들린 마지막 일일 수도 있을 것 같고, 어렸을 때 화곡 시장에 늘 어머니를 따라다녔고, 무거운 짐 하나를 내가 들었었다. 그 시절 동태 머리 자르고 토막 내는 것을 정말로 유심히 지켜봤었다. 

거짓말 같은 사연이지만, 그 아줌마가 그 시장에서 동태 팔면서 애들 공부를 다 시켰다. 나중에 현대에 입사하게 되었을 때, 입사 절차로 보증인 몇 명이 필요했다. 어머니가 부탁해서,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던 그 생선가게 아줌마가 입사 서류에 보증인이 되어주셨다. 그 시절만 해도 회사에 들어갈 때 보증인 구하는 게 또 큰 일이었다. 
저녁 때에는 큰 애가 갑자기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해서 칼국수면 사다가 짜장면 해먹었다. 칼국수면을 찬물에 적당히 헹구면 수타 짜장면과 가장 비슷한 맛이 된다. 졸지에 연말 저녁은 짜장면 만찬이 되었다. 

어머니는 속이 안 좋아서 결국 죽은 드시지 못했다. 나중에 감말랭이 조금하고 두유를 드셨다. 아직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걷고 계시다. 

내 삶이 내 생각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은 게 몇 년 된다. 애들 보고, 아버지 병수발 하다가, 요즘은 어머니까지. 그래도 아내가 요즘은 일하는 게 좀 자리를 잡아서, 보람이 아주 없지는 않다. 

어머니는 어제 잠을 좀 설쳤다고 8시에 잠자리에 누우셨다. 그 사이 나는 청소기를 한 번 돌렸고, 박스 쓰레기 등 쓰레기를 한 번 내놨다. 집안 일을 그렇게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오전에 작업하던 걸 다시 열어봤더니, 넘버링 8까지 가야 하는 제목 잡기에 4까지 해놓고 내려놓은 게 보인다. 하이고.. 이걸 마무리하는 게 원래 오늘 내가 할 일이었는데, 반만 하고 내년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어머니는 노년이 되면서 점점 더 고집이 강해지셨다. 모시기가 쉽지는 않다. 예전처럼 나도 고집을 불리지는 않고, 그냥 하시고 싶으신 대로 한다. 그렇지만 그냥 두라는 말은 그냥 듣기가 좀 그렇다. 김수영이 시 <공자의 생활난>에서 “그것이 작전과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라고 한 적이 있다. 삶이 그렇다. 나와 관련된 일은 그렇게 작전처럼 해도 어느 정도는 되지만, 식구와 관련된 일은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그냥 흐르는 대로 놔둘 뿐이다. 

어머니는 1주일 동안 우리 집에 오시기로 하셨는데, 사실 얼마나 계실지는 잘 모른다. 우리 집에도 아픔이 있고, 쉽게 처리하기 어려운 일들도 좀 있다. 그래서 많은 것들을 내가 생각하는 최적의 상태에 맞출 수가 없다. 

주변의 몇 사람이 나에게 효자라고 문자를 보냈는데, 그렇지는 않다. 그렇게 효자로 산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 그냥 어쩔 수 없으니까 해야 하는 최소한을 할 뿐이다. 그 최소한도 버겁다. 

다음 주 일정을 보니까 새로 준비해야 하는 특강이 두 개가 있고, 영화 시사회에 간다고 한 것도 있다. 돌아삐리.

바람 피우는 친구 얘기를 얼핏 들었다. 대단하네. 나는 그냥 나 먹고 살고, 애들 먹는 것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꽉 차고, 엄마, 아버지,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온 신경이 쓰는데. 얼마나 건강 관리를 잘 하고, 시간 관리를 잘 하기에 바람 필 여력이 있나 싶다. 

나에게 남은 마지막 여력을 가지고 나는 윈스턴 처칠에 관한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틀었다. 예전에 보기는 했는데, 건성건성 봐서 뭔 얘기인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이게 이 해가 가기 전에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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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병원으로 가신 후, 어머니의 삶은 아주 어려워졌다. 특히 어머니가 치매 진단 받으신 이후로 두 분이 대체적으로 같이 지내셨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는데, 아버지가 없이 어머니가 외출하기는 아주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어머니가 식사를 며칠째 못하고 계시다는 사실은 어저께 알았다. 바로 죽을 사들고 집에 갔다. 저녁 때 통화를 했는데, 안 드셨다. 

병원에 가는 것도 싫다고 하시고, 아무 데도 안 간다고 하시는 데, 방법이 없다. 이런저런 제도를 좀 살펴봤는데, 쓸 수 있는 제도가 별로 없다. 보건소에서 하던 왕진 프로그램 같은 게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일단 스톱 상태다. 예전에는 주변에 친한 사회복지사들이 좀 있었는데, 몇 년 문걸어잠그고 살았더니, 그것도 잘 모르겠다. 게다가 어머니는 누군가 집에 오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신다. 예전 치매로 누워계시던 시절에도 공공 프로그램의 도움을 좀 받으려고 했었는데, 결국 필요 없다고 오지 말라고 하신. 

아내랑 집에 두 번을 가서 결국 집으로 모시고 오는데 성공했다. 시껍했다. 기술적으로는 일단 119 도움을 받아서 병원에 가는 게 맞는데, 집에서 꼼짝도 안 하시겠다고 그냥 누워만 계시는데.. 

그냥 내가 생각한 것은,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는 건 안 된다는.. 어제 어머니 얼굴색 보면, 그렇게 아무 것도 안 드시고는 며칠 못 버티실 것 같다는. 

하여간 겨우겨우 모시고 오면서 한시름 놓았다. “일단 1주일만”, 그렇게 단서를 달아서 겨우겨우. 

아버지 병수발을 막냇동생하고 나하고 둘이 나누어서 했었는데, 한 달 가량 되니까 그야말로 두 집이 다 난가가 되다시피. 아버지한테 매달려 있으니까 어머니까지 손이 갈 형편이 안 된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모셔오는 건 성공을 했고, 저녁에는 아내가 끓인 잣죽 한 그릇 드셨다. 내일은 동네 병원에라도 가서 긴급 치료를 좀 받고, 위염 좀 가라 앉으면 끓인 밥으로 넘어가볼까 싶은. 

생이라는 것이 육신에 얼마나 간당간당 붙어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시 눈 돌리면 떠나갈 수 있는 불안한 균형이 바로 삶이 아니겠나 싶다. 

다섯 살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뻔한 적이 있었다. 그때 외할머니가 나 학교 들어가는 것은 꼭 보고 싶다고 그러셨던 게 기억 난다. 그 다음에는 나 대학 가는 것까지는 보고 싶다고 하셨다. 나중에 내가 학위 받고 현대 다니던 시절에 돌아가셨다. 그때 조모의 경우는 휴가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시절에 외할머니가 왜 나 초등학교 들어가는 것은 보고 싶으시다고 말했는지,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살아야 할 이유를 끝없이 찾지 못하면 삶은 의미가 사라져버린다. 

며칠은 어머니가 집에 계실 거다. 시껍한 순간을 또 한 번 넘겼다. 

내가 다섯 살 때 이사간 집에서 부모님은 아직도 사신다. 초인종이니 이런 건 이미 다 망가졌고, 막냇동생이 가지고 있는 비상용 열쇠를 복사할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열쇠집 불러서 대문 자물쇠부터 새로 만들려고 했었다. 막내 동생이 열쇠집 몇 군데를 돌아서 20세기에 만들어진 진귀한 열쇠를 결국 복사해왔다. 걔도 사소한 일로 땀 뻘뻘 흘린. 

아버지 집에 열쇠 주러 잠깐 온 동생은 방송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걔도 두 달 전부터 고생이 말이 아니다. 원래는 안식년인데,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있다가 요즘 엄청 고생하는 중인. 

어머니는 손자들 노는 거 보고, 잠시 즐거우셨고, 죽 한 그릇을 다 드셨다. 밥 먹고 사는 게 이렇게 큰 일인가, 잠시 그런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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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세이는 가벼운 미셀러니와 좀 더 무거운 에세이로 나뉜다는 게 고전적 구분이다. 나는 이렇게 좀 더 무거운 에세이를 써보고 싶었다. 몽테뉴의 <수상록>, 이 해골 복잡하게 만드는 이 책이 원래 제목이 에세이다. essais라는 말의 원래 의미는 시도다. 해보지 않은 글의 시도를 한다는 의미 정도인데, 기존의 글의 형식으로는 담아낼 수 없던 것을 담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의미다. 

처음 냈던 에세이는 <1인분 인생>이다. 40대를 지나면서 40대를 소재로 쓴 글들인데, 그게 어느 정도 반응이 있었다. 그래서 에세이라는 것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쓴 좌파 에세이까지, 에세이는 몇 번 썼는데, 그 중에는 괜찮게 간 것도 있고, 헤맨 것도 있다. <아날로그 사랑법>은 포토 에세이였는데, 결국 에디터가 회사를 그만두게 될 정도로, 별 거 없이 헤맸다. 그렇지만 내 인생은 많이 바뀌었다. 고양이들과 지내던 시절의 얘기를 정리한 건데, 내 삶에는 큰 영향을 남겼다. 그 책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졌던 감성들이 변했고, 결국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지금도 그 책을 보고 인생이 좀 변했다고 소위 독자 팬레터 같은 게 가장 많이 왔던 책이다. 

에세이는 1년에 한 권씩 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워낙 글을 많이 쓴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공개하는 글도 있고, 전혀 공개하지 않고 그야말로 비망록 같이 나에게만 남는 글도 있다. 어차피 많이 쓴다. 그래서 좀 주제를 정해서 그렇게 글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매년 내는 건 무리다.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살지는 않는다. 

2.
누군가의 삶을 보면서 그 사람의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가장 최근의 기억으로는 <바퀴 달린 집>의 성동일이다. 시즌 2까지는 몇 번을 봤고, 시즌 3는 아직 초반밖에 보지 않았다. 게스트들이 오면 보통의 경우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캠핑카에 있고 나이 어린 순으로 바깥에 나가서 텐트를 칠 것 같은데, 성동일의 경우는 반대였다. 그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성동일의 삶과 요즘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불어보니까, 성동일하고 아주 친한 사람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주 장기 계획으로.. 지금 당장 만날 건 아닌 것 같고. 성동일이 만약 에세이집을 내면 아마 나는 1착으로 보게 될 것 같기는 하다. 예전에는 그가 되게 보수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좀 그랬다. 

나이를 처먹고 나니까, 보수니 진보니, 그렇게 걸치고 있는 옷들은 이제 잘 보이지 않게 된다. 일종의 언어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영어를 쓰든, 일어를 쓰든 혹은 또 다른 말을 하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 더 중요하지. 

나는 20대 후반, 30대 초반, 정말로 질풍노도 같은 삶을 살았다. 30대 중반이 되어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몇 개의 사건이 더 있었지만, 그야말로 그 또한 지나가리라… 

최근 두 번에 걸쳐서 삶을 아주 단촐하게 만들었다. 2016년에 아이들 보기로 하면서 대부분의 사회 생활과 방송 같은 것들을 정리했다. 2019년에 내 주변도 아주 단촐해졌다. 2019년에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기도 했거니와, 인생일대의 위기이자, 대전환점 같은 것이 되었다. 그 뒤로는 작업을 위해서 인터뷰를 하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하다 못해 출판사 가서 에디터 만나는 일도 거의 안 하게 되었다.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 아니면 이제 거의 만나지 않는다. 그것도 어지간하면 피한다. 극한의 미니멀리즘과 비슷하다. 

집에 오거나 집 근처에서 만나는 거의 식구급으로 친한 사람들 몇 명이 있다. 그들이 힘들 때나, 내가 힘들 때나, 술이나 같이 마시면서 그 시간을 지내고 버텼던 사람들이다. 

가끔 외국에 갔었는데, 팬데믹 이후로 그것도 좀 어렵게 되었다. 내 삶이라는 것은 정말 기본적인 루틴의 연속이다. 큰 사건이라고 해봐야, 20년 가까이 한 쪽 구석에서 먼지만 뒤집어 쓰고 죽어가던 앰프나 스피커를 지난 여름에 수리하고 손질해서 살려낸 일, 뭐 그 정도다. 애들이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을 제외하면 내 주변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질풍노도의 시기는 내 인생에서는 지나갔다. 약간의 변화가 있다면, 해금에 관한 책을 쓰기로 한 것, 그래서 코로나가 좀 편해지면 연주자들을 만나볼 계획이 생겼다는 것, 그런 정도다. 원래도 해금에 관한 책은 지영희 평전처럼 애초의 계획에 있었다. 여러 사건이 생겨서 그 책은 쓰기가 어렵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젊은 연주자들의 얘기로 다시 한 번 시도해볼까, 그런 정도의 변화다. 

음악하는 사람들을 안 보게 된 건 10년 좀 넘는 것 같다. <문화로 먹고 살기> 준비하던 시절에는 붕가붕가 레코드 사장 등 그 시절의 연주회나 뮤지컬 기획자들을 좀 만났었다. 그때만 해도 뮤지컬 정말 초창기였다. 드라마 피디들도 꽤 만났다. 그때만 해도 내가 힘이 넘쳤다. 

3.
지금의 내 삶은 아주 편안한 삶은 아니지만, 변화가 적은 삶인 것은 맞는 것 같다. 한 해에 새로 만나는 사람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고, 특별히 생겨나는 일은 거의 없다. 새로운 변화라고 해봐야 예전에 해놓은 일들이 이제 뭔가 성과가 되어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에 내린 결정 중에 가장 큰 거를 꼽자면, 진짜 별 거 아니다. 내년 대선에는 심상정에게 투표하기로 했다. 별 이유는 없다. 오랫동안 그야말로 우정으로 지냈던 심상정의 마지막 대선에서 그에게 표 하나 주는 게 별 사건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게 거의 기억할만한 유일한 사건일 정도로, 내 주변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물론 애들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와서 하루 종일 애들을 봐야 한다거나, 그런 일들이 나에게는 큰 일이지만, 그건 누구나 겪는 거고. 

경제인류학자인 마샬 살린스가 <석기 시대 경제학>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want not, lack not이라는 얘기를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적이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삶은 그런 살린스의 얘기에 조금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뭐 크게 바라는 게 없으니까, 크게 결핍한 것도 없다. 내가 사는 사회가 조금은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직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크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도 역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조물닥 조물닥, 여전히 뭔가 작게 새로운 시도를 하기는 한다. 그래봐야 대부분 찻잔 속의 태풍이다. 내가 만든 것들은 찻잔 밖으로 벗어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래도 “이건 태풍의 눈이야, 그래서 조용한 거야”, 그런 마음으로 또 매일 뭔가를 조물닥 조물닥. 

그런 마음으로 매번 에세이집 준비를 한다. 잘 산 인생인지는 모르겠지만, 남들과 좀 다르게 산 것 같기는 하다. 차관 안 한다고 돌아서면서, 좀 많이 다르게 된 것 같기는 하다. 그 결정으로 인생 어려워진 사람들이 좀 있다. 늘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그걸로도 사실 안 된다. 그 중에 한 사람은 벌써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그냥 마음 속의 무게로 담아 놓고 세상을 살아간다. 

나도 많은 결정을 내리고, 많은 사물에 대해서 좋음과 싫음, 그런 감정을 갖게 된다. 그런 걸 되도록이면 유쾌하고 경쾌하게 하려고 하고, 조금은 더 중층적이며 다면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내리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는 많은 가치가 있다. 그리고 나도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가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런 과정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나도 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과정은 의미가 없고, 결과만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과정이 의미가 있는 대표적인 것이 삶이다. 우리 모두는 죽는다. 결과는 같다. 뭘 많이 남겨놓고 죽든, 아무 것도 없이 간소하게 죽든, 죽는 것은 같다. 결과만 보면 삶은 다 똑같이 결국은 태어나고 죽고, 딱 두 장면만 남는다. 삶은 과정이다. 죽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 삶이다. 결국 결과가 중요하다는 것은, 삶의 진실과는 아주 거리가 먼 판단 아니겠나 싶다. 삶 자체가 과정이다. 과정의 의미가 없으면 삶은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 

4.
좌파 에세이는 이제 마무리를 했고, 다음 번 에세이의 주제는 죽음으로 정했다. 최근 자살과 우울증, 이런 얘기를 많이 다루었다. <어느 중산층의 죽음>, 이 정도로 가제를 정했다. 원래는 책에 관한 에세이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 책이 워낙 인기도 없고, 나는 더더욱 인기가 없어서.. 죽음에 대한 얘기가 그 자리를 대신 채웠다. 책 얘기는 몇 년 더 있다가 하기로 했다. 소나기는 피해가라고 했다고. 별 수가 없다. 

삶에 대해서 조금은 밝고, 그렇지만 너무 가볍지 않은 시선으로 이것저것 살펴보는 일들을 조금씩 한다. 그렇게 해서 좋아진 게 있다면? 내 삶은 확실히 편안해졌고, 더 밝아졌다. 풍요로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풍성하기는 하다. 냉장고에 먹을 게 꽉 차 있기는 하다. 그래도 버리는 것 없이, 아이들이 죽어라고 먹어댄다. 삶이 한 순간이 이렇게 지나간다. 

그냥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또 너무 힘들지 않게 살아가려고 하는 정도인에, 생각할 게 의외로 많다. 태어나고 어른이 될 때까지는 정말 판단 없이 그냥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내 생각이 생겨난 뒤로는 이것저것 내 판단을 내리려고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 습관이 만들어놓은 것, 관습이 만들어놓은 것, 내가 판단하지 않은 채 따라왔던 것들이 이제 점점 더 불편해진다. 이상한 짓을 하더라도 이유는 좀 알고 하고 싶다는 작은 생각에, 이것저것 결국 따져보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결국 변명을 하게 된다. 

어쩌면 나는 변명해야 하는 게 그렇게 싫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죽는 것보다도 그게 더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뭔가 판단을 하거나 결정을 할 때 많은 시간을 들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나 선생님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을 살고 싶었다. 지금은 내 삶인가? 아직도 잘 모른다. 그래도 내가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삶에는 조금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다른 사람은 뭔가 한다는 게 큰 결정이고 삶을 바꾸게 되는데, 나는 뭔가 하지 않는 게 큰 결정인 인생이 되어버렸다. 생활인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생활인에 더 가까워졌다. 

이제 나에게 큰 얘기는 없다. 그래도 작은 얘기들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좌파로 남은 인생을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도 큰 얘기가 아니다. 하거나 말거나, 그런 얘기다. 그렇지만 그게 같이 나눌 의미가 없는 얘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좌파가 의미 없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주변의 것들을 조금씩 생각하고, 하나씩 판단을 늘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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