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한다. 물론 매 시대는 바뀐다. 그리고 그렇게 바뀐 시대마다 생각도 바뀌고, 해석도 바뀐다.


<홍사익 중장의 처형>이라는 책을 선물받았다. 도조 히데키에 대한 공부를 좀 하고 싶다고 했더니, 이거부터 보라고.


홍사익을 내가 알까? 알긴, 개뿔을 아나.


도조 히데키와 같이 처형당한 일본의 a급 전범 4명 중의 한 명이다. 그리고 조선인이다. 그 정도가 아니라, 영친왕과 함께 일본으로 유학 보낸 청년 중의 한 명.


중장까지 올라갔고, 거기에 처형까지.


아우라가 보통 아니다.


1986년 일본 문예춘추에서 발간된 책인데, 이제 번역되어서 나왔다. 직접 산 건 아니라 선물이기는 한데, 어쨌든 내 손에 이 책이 들어온 것도 기적적인 일이다.


그래서 볼 책 리스트에. 주말에 일부라도 펼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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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책]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 황선도


 


저번 책도 아직 못 읽었는데, 또 새 책을 집으려니까 좀 그렇다. 그래도 마침 아내가 다 읽은 책이 있어서.


 


생태학 관련 책은 가능하면 많이 보고, 또 소개도 많이 하려고 한다. 몇 년 전에 숲 생태학에 관한 책을 아주 재밌게 읽었다. 책에도 소개를 했다. 책이 많이 팔리지 않았으니까, 소개를 했더라도 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한테 좀 곤란한 일이 생겨났다. 공무원 대상 강연을 몇 번 했는데, 아 글쎄내가 소개한 책의 저자가 4대강 찬성 쪽으로 배 바꿔 탔다는 거다. 이런 난감. 이해는 가지만, 하여간 뭐 그런 책을 소개하느냐고 꽤 여러 번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몰랐어요


 


국내 저자 중에는 그렇게 배 바꿔 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아주 친했던 양반 중에도, 벌써 넘어간. 그래도 가능하면, 우리나라 책을 좀 많이 보고, 나도 교양 수준의 바닥을 면하려고 하는.


 


황선도 박사의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는 우리나라 물고기 생태에 관한 짧은 글들을 모은 것이다. 비슷한 책들을 몇 년 전에 쭉 살펴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이 책을 봇 봤다.


 


<자산어보>라는 소설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국내 어류 얘기는 자산어보 스타일이 많다. 그러다보니까 정보만 있고 얘기가 없어서, 읽고 나면 머리에 잘 안 남는다.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이 얘기는 어류 생태학 중에서는 좀 유명한 얘기다. 생선 귀 어딘가에 나이테 비슷한 게 있어서, 모든 물고기는 원칙적으로 나이를 알 수 있다. 그 얘기에 물고기 얘기들을 얹어서 만든 책으로 알고 있다.


 


30대 시절의 일이다. 고래 연구를 좀 했었다. 그 시절에 대학원생 한 명의 논문 지도를 고래 생태학 가지고 했었다. 한동안 울산에서 고래 토론회 할 때 단골로 불려간 적도 있었다. 혼획에 관한 연구도 좀 했었는데, 워낙 우리나라에 고래 관련된 자료가 없어서 논문을 쓰거나, 글로 남기지는 못했다.


 


여유가 되면 국내에서 나온 생태학 관련된 책들을 소개하는 걸 좀 하고 싶다. 아울러 나도 고래에 대한 걸 좀 더 써보고 싶기도 하고,


 


정색을 하고 다시 연구를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물고기 관련된 글이라도 좀 읽어두려고.


 


(한겨레에서 발굴한 저자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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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태어나기 전에는 책 읽고 나서, 짧게라도 메모를 읽는 게 습관이고 또 큰 재미였다.


책상 옆에 몇 줄로 산을 이루고 쌓여 있는 책들 보면, 진짜 한숨부터 난다. 읽기는 읽어야 하는데, 도통 짬이 안난다. 그러다 보니 잠깐 읽은 책도, 뭔가 메모를 하기가 너무 어렵다.


이러다가 그냥 한세상 가겠다는 두려움이 잠시...


그리하여, '볼 책' 리스트라도 그 때 그 때 적어놓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김주원 교수의 <훈민정음 - 사진과 기록으로 읽는 훈민정음의 역사>가 그 리스트 1번이 되었다.


(읽고, 짧게라도 메모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훈민정음이야 다 아는 얘기 - 가 아니라, 사실 정설이 아직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실록에 훈민정음 창제 앞에, 진짜로 아무 기록이 없다. 어느날 갑자기, 두둥...


김주원의 '훈민정음 - 사진과 기록으로 읽는 훈민정음의 역사'에 당시 실록본이, 겨우겨우 중간에 다시 만든 건데, 당시 상황이 여의치 않아 활자도 엉망이고,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얘기가 있다는 걸 소개 받았다. 그럼 봐야지, 뭐.


안 그래도 언어학자가 쓴 훈민정음에 관한 글을 좀 보려고 했었다.


(한국은 언어학자가 개 똥구녕 소리하는 사람으로나 알고 있다, 끌끌.)


이유는 이렇고...


추가적으로, 요즘 정인지라는 아주 골때리는 캐릭터에 팍 꽂혀서, 여유 되는 대로 정인지에 관한 걸 좀 모아서 보는 중이다.


세종 시절의 신하들 중, 이름은 고약해가 끝내주지만, 진짜로는 정인지가 이게 아주 미스테리의 연구 대상인 인간이다. 알듯 모를듯, 서양사에서도 이 정도의 울트라 정신영웅의 슈퍼갑 캐릭터는 본 적이 없다.


일단 내 연구가설은,


기본적으로는 정인지와 이완용이 같은 종류이며 같은 캐릭터의 인간 아닐까 싶은.


(그래도 영 같은 캐릭터라고만 하기는 어려운게, 고종이 이완용을 대하는 태도에 비하면 세종이 정인지를 대하는 태도는 약간 떫더름한 구석이 있는.)


실록에 있는 기록만으로는, 정인지가 아주 끝내주는 발언을 한다.


세종 죽고 5일째인가,


세종은 니도 알고 내도 알고, 한 게 별로 없으니까, 지금이라도 세종이라는 휘호는 거두라.. 바로 갑질 들어간다. 그 대신에, 책은 좀 냈으니까, 지금이라도 정직하게 '문종'이라고 하자.


그 말을 듣던 세종의 아들 문종이, 야, 그래도 북방 개척하면서 전쟁도 좀 괜찮게 했으니까, 그냥 세종으로 가자...


(요게 실록에는 더 자세한 기록이 없다. 하여간 정인지계 신하들은, 에이, 세종은 아니다, 문종은 에이, 세종 맞다 요랬다.)


그냥 추측하면, 아마도 문종 죽고 나서, 정인지께서, "엣다, 문종", 이리하지 않았을까 싶은.


게다가 정인지는 잘 먹고 잘 살. 어느 정도? 장안 최대급 부자.


(요기에 좀 남사스러운 전설급 사연들이 약간 더...)


그리하여, 일단 김주원의 <훈민정음 - 사진과 기록으로 읽는 훈민정음의 역사>부터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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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진짜 간만에 아이들 데리고 교보문고 놀러갔다.


여섯 살 큰 애는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을 사줬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여러 번 빌려다 본 건데, 워낙 좋아해서 결국 그냥 사기로 했다.


4살, 여섯 살, 두 애들 전부 다 좋아한다. 겁나 좋아한다.


시인 중에 제일 친한 사람은 역시 지리산의 이원규 시인을 것 같다. 학부 때 회계학인가 전공을 해서, 돈 얘기도 같이 많이 한다. 재밌다.


그렇지만 시로서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사람은 최승호와 최영미일 것 같다. 최영미는 공부 다 끝나갈 때쯤 시를 읽게 되었고, 학부 시절에 영향 많이 받은 것은 최승호의 시다.


진짜로 좋아했다. 대설주의보 같은 시들이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인생관과 삶도...


마지막 본 게 아마 10년쯤 전, 광화문 어느 호프집이었을 것 같다. 새만금 관련 공판이 한참이던 때... 그는 환경운동연합의 대표였다.


이제 아이들의 최승호의 동시를 읽는다. 나도 같이 읽는다.


대설주의보 시인의 요즘 얼굴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아, 나도 같이 웃게 된다.


한국 어린이들이 읽을만한 동시로는, 단연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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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1.

내가 본 사례이다.

 

첫 출발은 사소하다고 하면 사소하다고 할지도 모르는 성추행 건이었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것은, 그것이 정규직 관리자와 비정규직 여성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은 여성의 어머니가 개입해서, 비정규직 여성이 그냥 퇴사하는 걸로 끝났다.

 

이럴 수 있느냐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이런 일이 최근에 엄청 늘었다. 그리고 이 특정한 개인에게,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멀쩡한 정부기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더 신경을 쓰게 된 것은, 이런 일이 앞으로 더 빈번하게 벌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파고 또 파고 들었다.

 

그랬더니, 기가 막힌 일을 더 알게 되었다.

 

행정직원에게 룸쌀롱 접대를 하거나, 하다못해 선물권이라도 준 사람들의 연봉 인상률이 높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평균 혹은 평균 이하.

 

뭐야 이거.

 

2.

그래서 더 살펴보았다.

 

지난 몇 년, 가관이다.

 

기관의 신규임용도 좀 살펴보았다.

 

우와

 

많은 경우 미리 다 미리 정해놓고, 절차만 열었던.

 

정부기관들 얘기이다.

 

도대체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해?

 

3.

그래서 더 상급 기관에 대해서도 좀 알아보았다.

 

내가 요즘 야당에 있어서, 힘은 없어도 기관 관행에 대해서 좀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다.

 

우와

 

, 진짜, 뭐 이런 게 다 있나

 

4.

임금이 결정되는 과정, 경제학에서는 정말로 simple하다.

 

몇 줄로 정리된다.

 

2015년 한국, 근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제도학파 경제학에서 이런 걸 꽤 본 적이 있는데, 그런 걸로도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로.

 

4.

룸쌀롱 얘기까지 다 쓰기는 어렵지만, 하여간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연봉에 관한 얘기들을 한 번 정리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제도적인 시각에서 연봉을 보면, 좀 다른 얘기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좀 더 치사한 얘기들을 더하면, 삶이 너무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경제학에서 보통은 '임금론'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진짜로 공정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최근 한국의 흐름들을 더해서

 

그런 책을 생각한지 좀 된다.

 

이래저래 헤매다가, 이런 얘기들을 모아서 좀 써보려고 한다.

 

고액연봉에서 최저임금까지

 

--- 혹시라도 본인의 연봉 사연에 대해서 댓글 달아주시면 최대한 성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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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의 마술 라디오

 

 

1.

아기가 태어난 다음에, 정말로 책 한 권 제대로 읽기가 어려워졌다. 늙은 아빠가 아기를 어떻게 볼지도 잘 모르겠고, 너무너무 힘 좋은 아들한테 휘들리다 보면 정말이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녹초가 된다.

 

게다가 요 한 두해 사이에, 정말로 책을 읽기 어려울 정도로 노안이 심해졌다. 책을 거의 보지를 못했다.

 

전공과 관련된 책들, 내가 하는 일과 관련된 책들은 그 와중에라도 정말로 억지로 억지로 읽었는데, 그냥 읽은 책은 거의 없었다.

 

그 동안에 그림책, 동화책은 엄청나게 읽었다. , 딱히 읽을려고 한 게 아니라 아기가 책을 수북히 들고 와서 읽어내라고 순 땡깡이니.

 

어쨌든 아기가 태어난 이후, 아기를 옆에 보면서 읽은, 전공과 관련되지 않은 첫 번째 책이 바로 정혜윤의 마술 라디오였다.

 

막 책 작업을 하나 끝내고, 며칠 여행을 다녀오고 싶었지만, 둘 째 아이를 기다리며 만삭인 아내와 한참 깽판 모드로 들어간 아직 두 돌 안 된 아들 사이에서 여행갈 틈바구니는 생기지가 않았다. 그래서 여행 대신에 쇼파 근처에 있던 책 중에서 되는 대로 손에 잡히는 걸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그게 딱 이 책이었다.

 

(사실은 아직 출간되지 않은, 파일 상태의 책과 함께 동시에 읽었다. 이제 막 저자로 데뷔하려고 하는 어떤 선배의 책과 같이 읽으니, 너무 비교가 되는큰 일이다. 추천사를 써줘야 하는데…)

 

2.

정혜윤의 책은 이전에도 몇 권을 읽었다.

 

정혜윤과 나는, 독서가 정반대인 스타일일 지도 모른다. 내가 읽은 책은 그가 읽은 게 거의 없고, 그가 열심히 소개하는 책은, 이번에는 내가 읽은 게 별로 없다. 아주 고전이거나 유명한 소설이 아니면, 어쩌면 그렇게 서로 겹치지 않은 독서를 하는지.

 

어쨌든 그가 소개하는 수많은 책 속에 있는 그 기막힌 구절들을 보면서도, 언제 이런 책까지 다 읽어, 워매, 나는 못 읽겠네, 그랬다.

 

어쩌면 그렇게 책을 많이 읽었든지, 그리고 어지간해서는 잘 보지 않을 예를 들면 중남미의 한 구석에 있는 소설가라든가, 별로 유명하지 않은 유렵의 작가라든가, 그런 걸 어쩌면 그렇게 살갑게 잘 소개해주는지, 그냥 놀랄 따름이었다.

 

내가 읽는 전화번호부 만한 책들은, 우리나라에서 몇 명 봤을까 말까한, 그런 캐캐묵은 고전들이거나, 특정한 분야 한 구석에 처박힌 책들이다. 힘들어도 참고 읽지만 굳이 소개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반면에 그가 읽은 책들은, 뭐 이 정도는 읽어줘야 하는 거 아니겠어, 그런 예를 들면 문학 상식과 같은 것들인데, 나는 들어본 적도 없는 작가들의 얘기들이다.

 

, 원래 내가 좀 무식하지

 

그런 마음으로, 진짜 책 소개해주는 여인의 글을 보듯이, 그렇게 봈다.

 

정혜윤에게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읽으면 좋겠지만 그렇게까지 다 읽을 여유가 안 되어서.

 

3.

이번 책, 정혜윤의 마술 라디오는 그 이전의 책들과는 전혀 다르다. 이번에도 수없이 많은 책들이 구속구속 글귀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얘기의 핵심은 그가 만난 사람들의 얘기들이다.

 

처음에는 아기 무릎에 앉혀놓고 설렁설렁 읽으려고 했다. 본인이 본문보다 더 길 것이라고 한 프롤로그는, 그야말로 아기 보다 잠시 틈을 내서 보는 아기 아빠들이 볼 글이었다. 전혀 긴장하지 않고, 나처럼 기능적으로 일단 읽어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끄는 것과는 좀 다른.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의 특징은, 정말로 책이 재미없어지기 이전까지는 어지간해서는 앞부터 뒤까지 다 읽는다는

 

본문이 시작할 때까지도, 나는 내가 어떠한 종류의 책을 읽고 있는지 잘 몰랐다. 라디오 얘기를 하고, 기억 얘기를 하고 그러는데, 그거야 라디오 PD니까 당연한 얘기고, 내가 읽지 않은 책의 귀절들을 자꾸 들어보라고 하는 것도 이전 책과 같고. 아마 내가 참을 성 있는 독서가가 아니고, 또 어지간하면 일단 읽기 시작한 것은 기계적으로 다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50페이지가 넘는 프롤로그 그 어디에서인가, 사실 난 바쁜 사람이야, 이러고 책을 덮었을 것 같다.

 

50페이지를 조금 넘어서, 본문이 시작되면 책은 돌변한다.

 

이건 책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내가 만난 사람들에 관한 얘기라니까 말이다.

 

이 책은 14개의 에피소드에 관한 책이다. 장서가이거나 독서가가 아니라면, 정혜윤의 프롤로그는 과감히 생략하고 첫 번째 에피소드부터 바록 시작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인 독서일지도 모르겠다.

 

눈물 끝을 몇 뻔 뽑고나서, 차분하게 다시 프롤로그를 읽어도 좋을 테니 말이다.

 

4.

정혜윤이 던져준 에피소드는, 한 마디로 대박이다. 본 얘기로 들어간 다음에 몇 페이지 안되어서 나도 울기 시작했다.

 

이 책 최고의 문장은,

 

그건 내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몇 개의 에피소드를 읽고 만약 눈물이 안 나거나 최소한 찡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자신이 살아온 삶을 한 번쯤 곰곰이 반추하는 게 좋을 듯 싶다. 하여간 첫 번째 에피소드는, 적어도 한 번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눈물 없이 그냥 넘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찡하다. 그리고 그런 얘기들이 연타발로 나온다.

 

그 뒤쪽의 얘기는, 이제 아주 무겁다. 너무 허망하게 첫 사랑을 날려버린 사나이의 얘기에서는 이제 분노가 일기 시작한다.

 

사랑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사랑에 대해서 회상하는 것, 나는 솔직히 구역질을 느꼈다. 아마 작가인 정혜윤도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소중한 것이 소중한 것을 모르는 사람, 그러면서도 태연덧하게, 괜찮아 나는 느낀 게 있고, 배운 게 있으니

 

5.

정혜윤이 우리에게 던져준 14개의 에피소드들은, 하여간 사람이라면 동질감을 느끼거나 반발심을 느끼거나, 외경감을 느끼거나, 어쨌든 감정의 움직임을 만들어낼 만한 사례들이다.

 

그런 걸 안 느꼈다면?

 

문창극이냐?

 

이걸 다 읽고 난 느낌은, 앞으로 정혜윤은 뭘 가지고 글을 쓸 것이냐, 이렇게 자기 뒤에 있는 평생의 감정들을 다 털어내고 난 뒤에. 그런 느낌이 잠시.

 

허겁지겁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사실 좀 후회했다.

 

이런 책은 화장실에서 하루에 몇 페이지씩 읽어내려가는 게 맞는데, 손에 잡힌 김에 읽는다고, 죽어라고 읽어내려간 나의 허겁지겁이 재밌는 책 한 권을 허망하게 소비해버린 것이 아닐까 싶은.

 

책을 접고 나서, 나는 이만한 14개의 에피소드가 있을까? 이 정도의 얘기라면, 나는 한 개에서 두 개 정도를 알고 있지, 그 이상의 얘기를 알고 있지는 못하다.

 

직접 만나 본 사람들에 관한 기막힌 이야기, 사실 우리 같은 사람이 살면서 그런 걸 몇 번이나 만나겠나.

 

6.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의 괴리.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라디오에서 음악 틀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여전히 그런 소망이 있는데, 이제 내 삶은 그런 곳에서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런 어린 시절의 아련한 기억들을 정혜윤의 책과 함께 다시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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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감상문

 

<정글만리>는 간만에 나온 대하소설이다. 우연인지 김탁환의 <뱅크>도 세 권으로 되어 있었는데, 정글만리도 세 권이었다. , 별 형식적 의미는 없겠지만, 이런 대하소설들을 그냥 내리 읽기에는 나도 이젠 체력이 벅찬다. 1권을 화장실에 놓고 2주에 걸쳐서 앞부분만 깔짝거리다가 어제 붙잡고 읽기 시작했다. 밤새고 소설책 읽는 게, 이제는 아고고

 

중국 경제에 대해서 몇 년 전에 몰아서 공부를 한 적이 있기는 했는데, 여전히 좀 모호한 구석이 있다. 중국이라고 해봐야, 북경 몇 번 갔다온 것 밖에 없으니, 그저 일반적으로 아는 것에 비해서 내가 좀 더 안다고 하기도 그렇다.

 

소설 <정글만리>, 뭐라고 할까, 큰 굴곡 없이 평온하면서도 여성적이라고 해야할까? 물론 내용은 조정래 선생 소설들이 그렇듯이 약간의 마초 감성과 과도하다 싶은 민족주의 서정 같은 게 도배되어 있지만, 그거야 이 양반 늘 그러던 거고. 그렇지만 어딘지 모르게 여성적이고, 잔잔하다.

 

계획부도가 한 번 나오고, 야반도주가 한 번 나오지만, 일상적인 드라마의 클라이막스와는 거리가 멀다. 두 사건 모두 실제 상황이 벌어지는 순간에 바로 앵글을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지나고 난 다음에 남은 사람들이 수습하는 것 위주로 되어 있다. 계획부도 사건은 크다고 하면 큰 사건이기는 한데, 뒷부분에 몰려서 기능적으로만 나오고, 사건의 크기만큼 폭발시키지는 않았다.

 

이 폭발이 작다고 보면 클라이막스의 기술적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하게 되겠지만, 어차피 이 장면은 클라이막스가 되기는 어려운 것. 의외로 잔잔하게 상황을 풀어나가면서, 남자들이 13579로 상황을 짜 맞추고 그곳을 향해서 끝없이 몰아나가는, 그 감정 쥐어짜기와는 좀 다르다.

 

김탁환의 <뱅크>는 조선 최초의 중앙은행이 발권기능을 하려는 마지막 순간의 복수극에 3권 전체의 클라이막스가 걸려 있다. 이준익의 영화들도 그렇게 한 점을 향해서 부단하게 몰고 나간다.

 

<정글만리>는 그런 점에서는 좀 독특하다. 나는 그걸 여성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다른 감성을 느낄 수도 있을 듯 싶다. 종합상사 부장이 나오지만, 통상적인 드라마의 주인공과는 역할과 비중이 다르다. 천 위에 몇 개의 수를 놓을 때의 공정과 비슷하다. 연결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게 반드시 하나의 사건으로 엮일 필요가 없는, 그래서 개별적이며 별도의 인물과 사건이 던져진다.

 

까틀리에의 이사 한 명이 외국인 중에서는 유일하게 자신의 시선을 가진 등장인물로 등장하고, 나머지는 한국 사람 아니면 중국 사람.

 

그들이 부산하게 펼치는 오감도 위에 일종의 메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모택동과 등소평의 얘기가 송곳처럼 치고 들어온다.

 

솔직히 나는 과도한 민족주의라는 시각 때문에 아주 편하게 소설을 읽지는 못했다. 시각에는 여러 가지가 있기는 한데, 조정래 선생의 민족주의 시각이 워낙 강하다 보니까 나머지 얘기들에 미처 눈이 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도한 민족주의는 과도한 국가주의 만큼 사안을 불편하게 만들어준다. 물론 그렇다고 <정글만리>가 그냥 그렇고 그런 중국비하 혹은 사회주의 바보들,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기왕 이렇게 객관성을 담보로 경제 얘기에 들어갈 거면, 좀 더 편하게 민족주의 얘기는 약간 내려놓고 썼으면 어땠을까, 약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중국 경제, 물론 미스터리다. 크루그만 같이 평소에는 개도국에 자성한 얘기를 많이 하던 발전주의 경제학자마저도 중국 위안화의 강성에 대해서는, 웃기지 마라, 막 소리를 질러대는 그런 특이한 소재.

 

극우파 학자이기는 한데, 기 소르망의 <중국이라는 거짓말>을 재밌게 읽은 적이 있다.

 

그 어느 편이든,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한다. 좀 차분하게 중국에 대해서 생각해 본 책이 너무 없었다.

 

어쨌든 간만에 대하소설, 나름 긴장하면서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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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 독서감상문

 

어떤 책은 머리로 읽고, 어떤 책은 가슴으로 읽는다.

 

그러나 어떤 책은 머리가 거부하고, 어떤 책은 가슴이 거부한다.

 

요즘 싫은 데도 참고 읽는 책이 너무 많았다. 아기 옆에 놓고 책을 읽으려고 하면 아기가 달려와서 책 날개를 뺏어가고, 표지를 쥐어 뜯는다. 그래서 아기의 감시를 피해서 책 읽는 게 아주 큰 일이다. 책 읽는 것도 일종의 직업인지라, 나는 머리가 거부하고, 가슴이 거부하는 책도 읽는다. 참고 읽는다. 프랑스에서 우파들과 경쟁하던 게 습관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우파들은 돈과 네트워크 그리고 프레임을 쥐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움직일 골목을 모두 대부분 - 막아놓고 있고, 내가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기습 공격을 하거나, 심통을 부린다. 내가 한국에서 우파보다 잘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책을 많이, 그것도 아주 많이 읽는 것 외에는 없다. 그래서 머리가 거부하거나 가슴이 거부하는 것도, 읽어야 한다고 하면 참고 읽는다.

 

그러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 와중에 집어든 책이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이다. 이 책은 가슴으로 읽고, 눈으로 감상하는 책이다.

 

사진들을 보면서 설래이는 마음이 생기고, 가끔 가슴을 후비는 듯한 짠한 마음이 든다.

 

사진이 위주로 된 일종의 포토 에세이라서, 사진을 따라가면서 읽으면 마음은 자연스럽게 동화가 된다.

 

이 책을 보면서, “이건 좀 아니다 싶다”, 그렇게 가슴이 거부하는 느낌이 든다면, 정신치료를 위한 상담이 필요하지 않을까? 인간이면 가질 수 있는 보편적 정서인 측은지심과 미적 공감능력을 끌어내는 책이다.

 

여기에서 작가가 무슨 카메라를 썼을까, 무슨 렌즈를 썼을까, 이런 게 자꾸 궁금하다면, 자신이 기계에 너무 매몰되었던 것이 아닌가, 그렇게 의심해도 좋을 듯 싶다.

 

작가가 우리에게 알려준 팁은 한 가지낮은 자세로, 그리고 더 낮은 자세로. , 이게 길고양이들의 시선이구나, 그렇게.

 

, 그렇게 책을 두 번 읽고 나니, 조금 더 주제를 가지고 얘기들을 재구성했으면 어떨까, 길고양이라는 대상 말고 조금 더 세밀화된 모티브가 있었으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여기까지

 

그렇게 사진과 얘기를 구성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다. 그리고 사진과 글을 감상했으면,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어지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여기다 참견질을 하려고 하는 것은, 잠시 발동하려던 내 가슴을 시기한 머리의 질투일 뿐이다.

 

우리 모두 가슴으로 세상을 느끼고 보던 시절이 있지 않았나? 고경원의 고양이 얘기와 함께, 잠시 머리를 눕혀놓고 가슴이 움직이도록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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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생의 지식감상문

 

1

아기 키우기 시작하고는 정말로 거의 책을 못 읽었다. 내 인생에 이렇게 길게 책을 못 읽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 1살 미만의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은 여러 권 읽었다. 아기 읽어주느라고.

 

하여간 그 와중에 유일하게 읽은 책이 화장실에서 보는 책이었다. 어차피 화장실에서는 계속 책을 보니까.

 

민음사에 나온 한 평생의 지식이라는 책은, 아마도 내가 읽은 책, 아니 한글 책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붙잡고 읽은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처음에는 뭐, 그렇게 깊게 선택해서 본 책은 아니었다. 아무 거나 식탁 위에 잡히는 대로.

 

2.

아주 솔직하게. 100% 그런 건 아니지만, 저자들에게 글의 품질은 원고료와 어느 정도는 비례한다. 그냥 보람으로 알고 좋은 글을 달라, 뭐 보람은 가지만 여러 가지로 여건이 잘 되지가 않는다. 그러나 작지 않은 돈을 조금 더 신경을 쓰기 시작하고, 아주 많은 돈을 주면, 인지상정, 당연히 더 신경을 쓰게 된다.

 

한 평생의 지식은 내 글도 들어가 있는데, 생각보다 작지 않은 원고료를 받았다. 물론 나도 아직 외부에 쓴 적이 없는 내용을 상당 부분 집어넣었다. 나중에 농업경제학 같은 데 쓸려고 꼬불쳐놓고 있는 내용을 동원. 사람이란 그런 존재가 아니던가?

 

나꼽살 할 때는 돈과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건 제한된 기간에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그런 특별한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고.

 

이 얘기를 먼저 하는 건, 우연치 않게 잡았던 책 치고는 정말 많은 걸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돈이 생각보다 많은 걸 설명해준다.

 

3.

여럿이 나누어서 쓰는 글은, 꼭 내용이 부실한 것은 아닌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책 판매상으로 아주 불리하다. 책이라기 보다는 왠지 자료집 같이 느껴지고, 그러다 보니 어디에선가 PDF 같은 걸로 그냥 받을 수 있다고 느껴지고.

 

그런 걸 돈 주고 사려니, 당연 마음 속에 아까운 생각이 드는 거 아니겠는가?

 

한 평생의 지식은 그런 느낌을 준다. 게다가 또 하나 치명적 약점이 있다

 

민음사 박맹호 회장의 팔순을 기념하며 기획된 책원로 교수의 은퇴기념 논문집 혹은 고희 기념 제자들 논문 모음집, 이런 걸 돈 돈 주고 사는 사람도 있나? 듣기만 해도, 별로 안 보고 싶어지는 느낌이 드는 책.

 

한 평생의 지식은 정말로 사람들 손에 집히기 어려운 두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야말로 가지가지 한다, 그렇게 말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런 내용을 담은 서문을 보면 이 책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절대로 안들 것 같고, 조금 민감한 사람이라면 읽기도 싫어질 것이다.

 

솔직히 나도

 

서문 읽자마자, 좀 자세히 상황을 알아보고 글을 썼어야 한다는, 아뿔싸그런 생각마저 들었었다.

 

얼굴도 본 적 없고, 누군지도 잘 모르는 박맹규라는 사람의 팔순을 기념해서 내가 글을 썼다니, 이 뭔 꼴이고. 원고 청탁 과정에서 그런 얘기는 나는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알았다면 미칬나, 그러고 안 썼을 것 같다.

 

4.

그러나

 

한 평생의 지식은 무엇인가 삶의 변화를 생각하거나, 뭔가 고민이 많거나, 아니면 자신을 한 번쯤 돌아봐야 하는 사람이라면.,

 

자연과학의 한 극단에 있는 얘기에서 철학의 한 극단에 이르는 얘기까지, 아 요즘은 사람들이 이런 걸 고민하는구나, 그런 걸 살펴보는 용도로는 딱이다.

 

보통은 엄청 무거운 톤으로 글을 썼을 법한 사람들도, 할 수 있는 한 어깨에 힘을 뺀 상태로 status of art, 나름대로 이 정도는 우리가 좀 알아줘야 하지 않겠나, 그런 걸 알려준다.

 

부담스럽지 않다. 그리고 자기가 이미 아는 얘기를 한다 싶으면, 그냥 다음 글로 넘어가면 된다. 옴니버스식 구성이 주는, 씹다 버린 껌 같은 가벼움 같은 미덕은 가지고 있다.

 

간만에 책값보다 10배 이상의 값어치는 한다고 생각하는 책을 만났다.

 

이번 겨울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그야말로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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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할 일이 없거나, 너무 집중한 상태의 긴장감을 풀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정혜윤의 책은 딱 안성맞춤이다. 뭐가 쌓아올렸는데, 이게 좀 아니다 싶은 거,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여기까지 했는데, 이미 한 게 아깝지 않아?

 

내가 살아온 경험으로는, 이미 한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거나,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할 때그 길은 아닌 거다. 잘못 온 길이다. 만약 그 길이 맞다면, 이미 한 게 아깝다는 생각 따위는 들지 않을 거고, 그런 얘기를 누군가 하지도 않을 거다.

 

나는 그래서 선녀와 나무꾼얘기를 좋아한다. 아이를 아무리 많이 낳았어도, 싫은 넘과 어떻게 살아. 단 하루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그런 사람과는 헤어져야 한다.

 

그러나 비비적, 비비적, 뭔가 좀 아까운데, 새로운 걸 하기는 무서운데

 

요런 생각이 들 때, 정혜윤의 책이 딱이다. 생각을 이리저리 뒤집어, 휘집어 놓아서, 이미 이만큼 했는데, 그런 생각에 대한 무장해제를 시키는 장점이 있다.

 

특히나 나름대로 책을 좀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 혹은 책은 많이 읽지는 않았어도 나름 장서가라고 생각하는 사람, 요런 사람들에게는 정혜윤이 딱 약이다.

 

물론 내 경우도 그렇다.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읽기에 따라서 독서 혹은 책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것이리도 하고, 신념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이건 정말로 맞는 거야

 

요렇게 자신이 신념에 차 있을 때, 정혜윤의 책을 심심풀이로 읽어보면, 뭔가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정혜윤을 읽는다. 이미 읽은 책도 있고, 아직 읽지 않은 책도 있지만, 그 책에 대한 책, 그 속에서 자신의 얘기를 조곤조곤하는 것은, 정혜윤이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잘 하는 것 같다.

 

가끔 책 읽고 나면 딱 재수없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다.

 

정혜윤은 딱 그 정 반대이다.

 

재수없다고 생각한 나 자신을 스스로 재수없게 느끼는, 기기묘묘하게 투영시키는 거울과 같은 글쓰기 스타일이다.

 

, 그리고 <삶을 바꾸는 책 읽기>에서는, 정헤윤의 감성이 한 차원 업글 되어있다.

 

정혜윤의 책을 읽으면서 울었던 적은 없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두 번 울었다.

 

중앙극장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벌어진 기가 막힌 사연의 이야기

 

이건 마치 책 안에 단편영화가 하나 들어가 있는 것과 같은데, 정혜윤 책을 읽으면서는 아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한 품격 높은 감성 터치.

 

울 얘기는 아니지만, 가슴 한 구석에 묻어두고 있던 사랑에 대한 얘기나, 아련한 기억 혹은 앞으로 올 것에 대한 기대, 이런 감정선 한 구석을 제대로 건드린다.

 

마침 오늘 오후, 아내와 산부인과에 갔다 오면서, 혹시 내가 아내보다 먼저 죽으면 내가 남겨진 아내를 위해서 준비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얘기들을 꽤 길게 했었다.

 

그런 짧은 기억이 결합되면서, 나는 아내를 더 많이 사랑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리고 펑펑 울었다.

 

몇 페이지 더 앞으로 나아가면, 희망버스에서 김진숙 지도의 목소리를 들었던 장면이, 정말로 감성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듯한 리얼한 감정을 느끼면서, 또 눈물이 흘러 나왔다.

 

동굴 깊은 곳의 목소리에 대한 묘사와 스머프라는 단어만으로, 그 장면을 그렇게 그려내는 방법이 있구나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 내 경우에도 삶을 조금은 바꿀 것 같다.

 

사랑합시다,

 

요런 류의 글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게, 도대체 얼마만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확실히 정혜윤, 업글.

 

책이라는 게, 꼭 필요해서 읽는 것만도 아니고, 오락을 위해서 읽는 것만도 아니고, 뭔가 더 알기 위해서 읽는 것만도 아니다.

 

그냥 읽는다정혜윤의 경우가 그렇다. 나는 그의 책을 그냥 읽는다.

 

그러나 읽고 나면, 뭔가 나에게도 분명히 변화가 생긴다.

 

그녀와 동시대를 살고, 때가 되면 새로운 정혜윤의 책이 나와있고, 그래서 습관처럼 읽고, 습관처럼 다시 감동하는.

 

사는 것을 맛지게 해주는 이 시대의 동료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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