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살면서, 그저 감사하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악악거리고 억울한 것만 생각해봐야, 답도 안 나오고, 남은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큰 애 방학 때 교실 리모델링 한다고 꼼짝 없이 애 보느라 죽는 줄 알았다. 이제 겨우 개학인가 했더니, 개학 첫 주에는 코로나 때문에 돌봄 교실 못 한다고.. 망했스요.

허망한 마음에 산책 나갔는데, 내일부터 긴급 돌봄 받아준다고. 당분간 급식은 없어서 도시락 싸보내라고 학교에서 문자 왔다.

오 예! 살았스!

감사할 일은 이런 게 감사할 일이다. 내가 아무 노력도 안 했는데, 누군가의 노력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그저 감사하며 살아갈 뿐이다.

오늘도 또 한 번의 큰 감사를 한다. 성질 내고 심통 낼려면 하루에도 백 개씩 그런 일이 있다. 설령 그런 일이 없더라도 지나간 날들을 곰곰히 되씹으며, "그 새끼, 그 때 아작을 냈어야", 이러면서 사는 게 속은 편하다. 근데, 좀 그렇다.

그냥 감사하면서 살아간다.

돈 조금만 더 넉넉하게 있었으면, 이런 생각이 가끔 든다. 그래도 세 끼 걱정하지 않고, 먹고 싶은 거 아무 때나 먹고 살면 그거로 충분하다.

얼마 전에 집에 손님이 왔는데, 컴퓨터 모니터로나 쓰는 구닥다리 작은 TV를 아직도 보냐고..

얼래, 저 옆에 있는 스피커 세트 합치면 5백만 원 넘는데?

순간 아차. 내 인성이 아직도 이 모양이다. 아 네, 하고 웃으면 될 일을.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감사하고, 오늘도 반성한다.

매일 해야 할 일은, 이 두 가지 말고는 약간의 운동 그리고 몇 번의 큰 웃음. 우울증을 멀리 하기에는 이 방법 만한 게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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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오후에 회의 한 군데 가기로 약속한 게 있는데, 큰 애가 아직도 방학 중이다. 엉겁결에 대답을 했는데, 방학 중인 걸 생각을 못했다. 아내는 바쁘다. 

오늘 오후에는 내일 가기 어렵다고 전화를 해줘야 하는데, 입이 잘 안 떨어진다. 

몇 년 전부터, 약속을 하기가 싫어졌다. 해봐야 잘 지키지도 못한다. 코로나 이후로 특히 더 그렇게 되었다. 자꾸 몇 달 후 약속을 하자고 하는데, 하나마나다. 나도 내 일정을 모르는 게, 나 아니면 아내가 시간을 내야 하는데, 아내도 먹고 사느라고 코가 석자다. 

돈을 아내보다 내가 더 잘 벌 것 같으니까 아내가 일을 그만두고 내가 움직이는 게 맞다고 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는데.. 내 인생은 2016년, 애들 보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진작에 결정을 했다. 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더 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냥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 조금 하고, 내 주변의 몇 사람들 도와주면서 남은 인생, 잔잔하게 살아갈 뿐이다. 

코로나만이 문제가 아니라, 내 주변의 에디터들 중에서 지금 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올해 대부분 그만두거나 자리를 옮기거나. 책들이 다 붕 떠 있다. 모르겠다.. 예전 같으면 뭔가 행정행위 같은 걸 하면서 제 자리를 찾으려고 노력을 했겠지만, 요즘은 나도 모르겠다, 그냥 방치한다. 지금 내가 부지런하게 움직인다고 해결될 종류의 일은 아니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에서 취업에 따른 차별에 대한 자문을 좀 해달라고 한다. 회사별 임금 차이에 관한 문제인데.. 골 아픈 얘기다. 방향은 그 방향이 맞는데, 임금 격차를 너무나 자신이 생산성과 결부시켜서 생각하는 문화적 풍토가 강해서, 임금에 대한 조정이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 머리 한 쪽이 지끈지끈하다. 

별로 소득이 생기는 일은 아닌데, 결정적인 힌트를 달라고 하는 자문 요청이 너무 많다. 누가 물어보면 아는 만큼 성심성의껏 답 해주는 게 예전부터 몸에 배어서 그런지, 하여간 전화 오부지게 많이 온다. 그리고 한 번 전화하면 잘 안 끊는다. 이제 와서 뭘 어쩌겠냐. 이렇게 살다 죽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고 만다. 

그냥 남은 인생, 화 내지 않고, 양아치처럼 살지 않아서 최소한의 우아함을 지키면 좋겠다는 정도의 생각. 

그래도 돌아보면 내 삶에 대해서 늘 감사하게 된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하루 세 끼 먹고 사는데 특별히 고통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산 인생이다. 굳이 힘든 걸 얘기하자면, 이 코로나 주말에 갑자기 세탁기가 망가져서, 새로 주문한 세탁기는 한참 걸려서나 온다고 하고.. 코인 세탁방에 온 식구가 출동해야 하는, 그런 쪼잔한 일들이 생겨났다는. 

2020년 여름, 코로나 2단계 거리두기가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그냥 버티는 시간이지만, 이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강요된 단절’로 인하여 기가 막힌 생각의 전환이 생겨날 수도 있다. 좋게 생각하면, 창조의 시간.. 그런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할 뿐이다. 기술경제학에 spill-over effect라는 용어가 있다. 누군가 잘 해서, 나도 좀 얻어먹고, 그걸 그렇게 표현한다. 이제 나의 맹활약 대신, 누군가의 맹활약을 기다리는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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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인리는 전북 교육청에서 고등학생 강연을 하고 싶다고.. 한참 고민을 하다가, 간다고 했다. 이래저래 강연할 처지가 아니기는 한데, 그 즈음부터는 10대들을 위한 독서책 쓸 시점이라, 이래저래 겸사겸사.

당인리 책은 그냥그냥 그런데, 웹툰은 몇 주 전에 출판사 통해서 계약이 마무리되었다. 영화 판권하고 드라마 판권 묶어서 영상 판권으로의 계약도 마무리되었다고 며칠 전에 들었다. 시원섭섭하다. 몇 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던 생각이 문득.. 제주도에 특히 많이 갔었다. 이젠 진짜, 제주도 안 가고 싶다. 남들 평생 가는 것보다 훨씬 많이, 이미 너무 많이 갔다.

나는 남들 앞에 나서는 게, 싫기도 하지만, 고통스러운 성격이다. 그냥 조용히 츄리닝 입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관찰하고 목격하는 것을 좋아한다. 왔다갔는지 말았는지, 전혀 티 안 나는 그런 스타일의 삶이 훨씬 좋다.

새로 시작하는 방송에서 같이 하자는 아주 진지한 얘기를 들었는데, "재밌겠어요"라고 선뜻 답을 하지 못 하는 상황이 갑갑하기는 한데.. 힘든 건 힘든 거다.

근혜 때는 이것저것 되는 대로 방송도 많이 했다. 워낙 꽉 막혀있는 때라서, 뭐라도 좀 열고, 얘기를 해야 한다는 요청이 많았다.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니고. 야당 시절이야 의무감으로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저것 내용 정리하고, 얘기 만들고, 그런 거 몇 번 더 하다 보면 나의 50대도 끝나갈 거다. 그러면 한 세상 가는 거 아닌가 싶다.

더 유명해질 것도 없고, 더 많은 영광도 더 필요 없다. 지금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 보다 충분히 영광스럽다.

노회찬 죽고, 더 해서 박원순도 죽었다. 띨띨이들..

죽고 나면 그만일 것을, 뭘 그렇게들 힘들게 살았나 싶다.

매운 인생 책 준비하면서, 나의 50대에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대로 살아간다. 목에 힘주지 않고, 남들 도울 것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고..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벤츠를 타야겠어, 이런 미친 짓만 하지 않으면 특별히 힘들 거나 고통스러울 것이 없을 인생이다.

등대 같은 삶을 살다가 어느 날 더 이상 불을 켤 수 없을 때, 그냥 조용히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정두언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소주 한 잔 하자고 해놓고, 끝내 소주 한 잔 마시지 못했다. 그도 죽었다.

아 그러고보니.. 원희룡 제주도지사 되기 전, 한참 헤매던 시절에 같이 감자탕에 소주 한 잔 하자고 해놓고, 시간이 또 그냥 지나가버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전형적으로 남들 왕따 놓는 스타일의 삶을 살았다. 다 귀찮아, 그냥 혼자 있을래.

사랑방, 뭐 그런 단어와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된 것 같다. 조용히 혼자 있을 때가 제일 좋다. 그래서 유학 시절에 참 좋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가난하기는 했지만, 혼자 있을 수밖에 없던 시간.

주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고 나니..

그래도 자꾸 내 삶을 돌아보게 되고, 내가 못 돌아본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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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경제학, 초고 막 끝났다. 하이고..

이걸 누가 보겠다고 이 고생이냐 싶지만, 그래도 쓸 때에는 그런 생각들은 잠시 접고. 나도 머나먼 여행을 떠난다는 가벼운 마음을 가져야 책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는다. 웃기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인상 쓰게 만들고 싶지는 않은.

앞으로 고칠 생각하면 또 뒷골이 빡빡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초고 마무리..

몇 달 있다가 고칠 생각이다. 출간은 코로나 피해서 내년에나 하게 된. (사람들 코로나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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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새서 컴 새 출발하고, 프로그램들 새로 깔았다. 세상 좋아졌다. 컴 나가면 주섬주섬 플로피 디스크에 도스부터 다시 출발하던 시절 생각해보면..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쭉쭉쭉, 금방 된다.

컴 살까 했는데, 꽤 된 컴이지만 상태 좋은 것 같아서 1년 더 쓸 생각이다.

둘째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지금처럼 애들 등하교 신경 쓰면서 살 거니까, 2년 반 정도 남은 것 같다.

아마 그때쯤이면 50권도 어느 정도 대충은 끝이 보일 것 같다.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 좀 더 한국 사회의 최전선의 끝에까지 가보기 위한 몸부림일 뿐.

세상이 좋아져야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들 보이려고 하는 일도 아니고, 영광을 보려고 하는 일도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돈도 큰 의미가 없어진 것 같다. 세 끼 먹고 사는 데 불편함이 없으면 그걸로 족하다.

몇 년간은 더 애들 살살 보면서 쥐 죽은 듯이 살까 한다. 돈도 아껴 쓰고.

당인리 쓰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한동안 신세진 사람들 밥도 좀 사고, 고맙다는 얘기돋 하면서, 평소보다 많은 사람을 만났다.

글 쓰다 보면 관련된 사람들 만나서 이것저것 배우고 들을 일이 많다. 그렇게 시간을 내고 나면 친구도 만나기가 힘들다. 옛날 친구도 진짜 오래 못 봤다.

그래도 최근에 사람들 너무 많이 만났다. 좀 어색하다.

노회찬 떠나고 나서, 진짜 느껴지는 게 좀 많았다. 나중에 상가 집 문턱에서 만나지 말고, 좀 더 자주 신경 쓰고 보는 게 낫겟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와, 피곤하다.

남자들 특히 엘리트 남자들의 세계가 그렇다. 힘 과시하고, 서로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처절한데.. 그래그래, 니 말이 다 맞다. 하이고, 피곤하다.

다시 좀 처박혀서, 밀린 글들이나 좀 해결해야겠다..

내일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농업 경제학 마무리하고 싶다.

컴이 꼬박 나의 24시간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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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인리는 소규모 독서 모임 위주로 몇 번 가벼운 자리 정도 할 생각이다. 원진녹색병원 노조랑 이동학이 하는 독서 모임 그리고 청주의 독서모임에 가기로 했다. 너무 멀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차 한 잔 마시는 느낌으로 할 수 있는 거, 부탁이 오는대로 몇 번은 더 할 생각이다.

엄청나게 무거운 마음으로 정색하게 얘기하는 거, 사실 내 취향은 아니다. 무거운 얘기도 가볍게, 무서운 얘기도 명랑하게, 그렇게 더 밝게밝게 그런 톤으로.

30대 초중반에 한국의 생태주의자들, 어지간하게 한 번씩 만나고 그랬는데..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엄청 진지하고, 사람들 구박 겁나게 하는데, 도저히 내 취향 아니다.

그때 많이 참고한 게 내가 만났던 파리의 트로츠키주의자들. 마이너 중의 마이너들이고, 똘아이 중에서도 개똘아이 취급 받던 20대 트로주의자들.

근데, 이게 우연인지.. 남자든 여자든, 겁나 잘 생겼다. 철학과 대학원 수업에 잠시 들어갔는데, 동구가 붕괴하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느냐.. 한참 열변을 토하다가 울었던, 아직 소녀티가 나던 학생이, 이사도라 덩컨 느낌이었다. 괜히 나도 같이 울어야 할 것 같은.

몰리고 몰리다 보니까 힘들어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늘 웃으려고 하고, 좌우당간.. 그 인간들 분위기가 아주 멋졌다.

그즈음에 이재영과 노회찬과 주로 놀면서, 나도 분위기 확 바꾸어서. 그래 놀자, 그리고 웃자. 그때부터 명랑이 모토가 되었다.

그 뒤로는 되도록이면 웃으려고 하고, 남들한테 어지간해서는 이래라 저래라, 그런 얘기도 안 하려고 한다.

신비주의 같은 것을 권유해준 사람도 있었는데, 신비주의는 뭔 개뿔.. 내 삶에 신비라고는 없다. 내가 재밌게 본 신비는 신비 아파트 외에는.

폼 잡아봐야 다 헛거다.

당인리는 점점 더 가볍고, 작은 모임 위주로 갈까 한다. 무서운 얘기, 무섭게 하는 게, 그거 별 재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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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경제학의 마지막 장은 원래는 에필로그로 하려고 했던 것을 키워서 별도의 장으로 만들게 되었다. 8장이다.

은유만 하고 직접 표현하지 않았던 중학생들의 짝사랑에 관한 얘기가 책 마무리하기 전에 어느 정도는 전모를 드러내는.

8장은 전체적인 통일성에 맞춰서.. 앞의 인트로와 4개의 편지로 구성된다. 이제 텃밭이 끝나고 헤어진 아이들이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기 직전에 보내는 짧은 편지들이다. 원래 농업 경제학 책을 통해서 10대들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들이 이 짧은 편지에 응축된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 정말 싫어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약간은 이랬으면 좋겠다는 부탁.

짧은 편지라서 내일이면 아마 다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아주 짧은 농업 경제학에 대한 에필로그.

스콧 니어링 책에서 처음 봤던 구절이 생각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농업 경제학도 아주 사연이 많은 책이 되었다. 초창기 때부터 많은 것을 같이 상의해왔던 에디터가 출판사를 그만두었다.

이래저래 코로나 정국을 맞아, 내년으로 출간 시기가 늦어진. 워낙에도 농업에는 아무도 관심 없는데, 독자를 찾아 나서는 것도 할 수 없으면 정말로 아무 방법이 없다.

코로나 국면에서는 좀 강한 책들을 앞으로 당기고, 약한 것들을 뒤로 미루는 수밖에.

사실 농업 경제학은 출간이 뒤로 갔으니까 좀 꾀를 부리면서 마무리를 뒤로 미루어도 되기는 하는데, 몇 달 지나서 다시 들여다보면 다 까먹을 것 같아서. 겨우 모아놓은 감정을 다시 만들기도 어렵고.

어차피 초고 끝나도 겹치는 거 빼고, 빼먹은 거 채워넣고 이리저리 모양내기 하다보면 아직도 고칠 게 많기는 하다. 그래도 하는 김에 일단 마무리부터.

책 쓰는 걸 직업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안 팔릴 책은 안 쓰게 되다. 쓰기 힘든 책도 안 쓰게 된다.

농업 경제학은 안 팔릴 책이다. 그렇다고 준비하거나 쓰는 과정이 즐겁냐.. 그렇지도 않다. 농업의 현실을 보는 것도 고통스럽고, 지금 한국의 10대들 손에 들린 게임기와 핸펀을 보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외면하고 살면 딱 좋은 주제인데, 그래도 하는 건.. 내가 학자라서 그렇다. 정치인도 이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다. 어차피 농민 표는 지역별로 대충 결정되어 있다. 스윙 보터도 아니다. 그래서 뭔가 잘 정리하면 공약이 되거나, 사회적으로 크게 논의하는.. 그런 것도 아니다. 그래서 아무도 안 한다.

한 가지 좋은 점은 있다. 시간은 잘 간다. 지난 가을부터 올 여름까지, 후다닥 시간이 지나갔다. 내가 들인 시간과 돈은 절대로 책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알고도 하는 것이다.

50대 초반, 아직도 나에게서 정열이 다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그걸 확인하는 게 거의 유일한 위안인지도 모른다.

며칠 동안 농업 경제학 뒷부분 마무리 방식을 결정하기 위해서 긴장도를 최고조로 올렸다. 그 와중에 이것저것 부탁 연락오는 거, 어지간한 건 다 힘들다고 했다. 지금 내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짜증 안 내는 게 할 수 있는 최대한.

허공에 정성을 태운다.

안 그러면 내가 세상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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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경제학의 에필로그는 그냥 스케치하듯이 짧게 끝내지는 않고, 별도의 장으로 독립시키기로 했다. 내용은 어차피 정해져 있는데, 이걸 좀 더 정색을 하고 얘기를 할지, 아니면 책 닫으면서 부드럽게 할지, 수위만 가지고 고민을 하는 건데..

기왕에 얘기를 하는 거, 정공법으로 가기로 했다. 결국 이 얘기의 마지막 갈등은 특목고 준비를 한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중학교 3학년 올라가면서 농업 계열 고등학교로 진학하기로 망므을 먹으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 에피소드를 처리하는 일이 마지막 고민거리다. 뭐, 부모들의 반대라는 현실에 가로막혀 결국은 그냥 살던 대로 살게 된다.

이 얘기들을 에필로그가 아니라 별도의 장으로 다루기로 했다. 제목은 일단 "10대, 열정, 애정 그리고 게임기", 그렇게 정했다. 이번 주에는 마무리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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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경제학은 10대 네 명에게 보내는 편지 글 형식이다. 중학교 2학년과 봄부터 겨울까지, 텃밭을 같이 하면서 보내는 편지다. 오늘 본문에 해당하는 마지막 편지글을 썼다. 물론 가상의 상황이기는 하지만, 쓰면서도 마음이 짠하다. 모든 이별은 다 짠하다. 

그 뒤의 상황을 짧게 개인들에게 한 통씩 마무리 편지를 쓰는 에필로그 형식으로 할지, 아니면 정말 짧게 후일담을 후루룩 지나가면서 스케치하는 형식으로 할지, 아직 마음을 못 정했다. 양쪽이 다 장단점이 있다. 

처음 관련된 파일 만든 날짜를 보니까 작년 11월이다. 중간에 다른 일들이 있어서 좀 끊기면서 하기는 했는데, 이것도 6개월이 넘어 걸렸다. 애들 보면서 하니까 확실히 예전보다 최종 마무리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린다. 어쩔 수 없다. 

안 팔리는 책을 뭐하러 쓰느냐고 하는 선배들이 있다. 안 팔릴 거 알아도 최선을 다 해서 하는 일들이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그냥 돈 벌면서 살려고 하면 아주 쉽게쉽게 가는 방법들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나중에 후회될 것 같다. 

한국에서 농업 경제학 가지고 만 부 가면, 정말 신이다. 냉정하게는 2천 부 넘기 어렵다. 그걸 뭐하러 해? 그래도 죽어라고 우겨넣고, 털어넣고, 정말 뼈골을 갈아넣는다 싶게.. 

학생운동 시절부터 치면, 이래저래 한국에서 시민운동이나 민중운동 했던 또래 중에서는 친구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강기갑 한참 활동하던 시절에는 그와 농업 얘기를 많이 했었다. 단병호와 도법 스님을 만나게 해드렸는데, 단병호가 스님은 무섭다고.. 

한살림의 윤형근과 단짝으로 지내던 시절도 있었는데, 한동안 연락을 못했다. 농업 경제학 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느라고 다시 만나게 된. 

어쨌든 민주주의 운동이든, 시민단체 운동이든, 하여간 수많은 활동가 중에서.. 농업 얘기 하는 사람을 최근에 거의 본 적이 없다. 정말로 없다. 신정훈과 나중에 춘천 시장 된 이재수가 마지막으로 농업 정책 조율하던 파트너들이었는데.. 그들도 지금은 농업에 별로 신경 쓰지는 않는 것 같다. 다들 포기하고 떠나거나, 아니면 좀 더 재밌는 일들을 찾아 나선. 

농활 없어진지 오래인 것 같다. 다들 농활들은 했던 것 같은데.. 

다 떠난 농활에 혼자 남아있는 느낌이다. 그것도 중학교 학생들과.. 어쨌든 내년까지는 나는 10대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생각이다. 

에필로그 형식은 며칠 더 생각해보려고 한다. 사실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 쎄게 할 것인가, 수위 조절을 아직 다 못해서 그렇다. 뭐,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해야 한다. 네 명 중에 한 명은 농업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기로 했는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그 후폭풍에 대한 가늠이 아직 잘 안되어서.. 

자기 자식이 농사 짓겠다고 하면 좋아할 집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될까? 게임중독과 농업 중 선택하라면? 사실 잘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6개월 넘게 고민을 했는데,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다. 일반적으로는 민감할 수록 나은데, 그 민감이 도를 넘으면 과도한 거부반응이 나오게 된다. 그 중간을 선택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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