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모르지..'에 해당되는 글 675건

  1. 2021.02.26 어느 금요일의 메모 1
  2. 2021.02.24 어떤 인생..
  3. 2021.02.08 내가 얼마나 살까? 6
  4. 2021.02.06 미친 놈들의 재밌는 시대.. 2
  5. 2021.02.02 가덕도 신공항, 줌 토론회..
  6. 2021.02.01 긴장감 없는 삶..
  7. 2021.01.27 일상성에 관한 짧은 메모..
  8. 2021.01.16 무대 위, 조명이 켜지면..
  9. 2021.01.14 다시 토건 논쟁으로? 1
  10. 2020.12.31 살살 살기.. 5



1.
오늘은 둘째가 어린이집 마지막 등원한 날이다. 3.1절 연휴가 끼어 있고, 화요일부터는 초등학생이다. 그리고 2016년부터 시작된 나의 어린이집 등원도 마지막 날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나 혼자 감개가 무량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3월이 되면 어린이집과 초등학교, 그렇게 두 군데로 행가레를 치면서 다닐 일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이집에 다시 올 일도 없다. 

정말로 아무도 신경 안 쓰지만, 오후가 되면서 이 날을 기념하고 싶어졌다. 아이들하고 슈퍼에 한우 사러 갔다. 작년 봄에 아이들 몫으로 재난지원금 나왔을 때, 재래시장에 가서 한우를 사다 먹고는 처음이다. 그래도 막상 집으려니까 손 떨려서, 결국 육우로 한 단계 낮추었다. 

어제는 생일이었다. 원래도 생일은 아무 것도 안 하고, 신경도 안 쓴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어린 시절에 나를 키워주셨는데, 마음 속에서는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난다. 할머니는 대보름에 낀 날이 생일이라서 평생 굶지는 않겠다고 좋아하셨던 기억이 어렴풋이. 생일 잔치 같은 건 따로 안 하지만, 언제가 생일인지는 알고는 지나갔는데, 둘째 폐렴으로 입원한 이후로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지나갔다. 고기 산다고 슈퍼 갔다가 대보름 나물 있는 거 보고, 참 어제가 생일이었지.. 그나마 올해는 지난 다음이라도 알고는 넘어가게 되었다. 작년까지는 그런 것도 다 까먹고 지냈다. 

2.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감정에 아무 동요도 없다면 거짓말인데, 그런다고 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글 하나 쓰는 걸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하기로 했다.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를, 그것도 나처럼 지속적으로 하면 모든 것을 열어놓고 개활지를 걸어가는 것과 같다. 넓은 길을 두고 좁은 길로, 안전한 길을 두고 위험한 길로 굳이 걸어가는 것인데, 그냥 천성이 그런가 보다 한다. 

일제 치하에서 태어났으면 독립군이 되었을 자신은 없지만, 아마도 적극적 친일파가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만주로 달려가서 뭔가 열심히 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 것 같은 자신은 없고. 그저 적극적 친일은 하지 않았음, 이 정도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다. 

잠시 내 인생을 돌아보니, 여전히 나는 까칠하다. 그냥 입 다물면 되는데, 그러면 속이 너무 부대낀다. 피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난 B형이다. 

3.
시대는 어느덧 토건의 시기로 다시 돌아간다. 4대강 이후로 몇 년 잠잠했다. MB 서울시장 할 때 뉴타운 시작으로 한바탕 난리가 났었고, MB 대통령 되고 4대강으로 클라이막스에 돌입했다 .그리고 몇 년 잠잠했는데, 서울은 모두가 다 ‘디벨로퍼’라고, 그야말로 디벨로포 전성시대에 들어갔다. 각 지역은 공항과 함께, 온갖 토건시대 청사진이 다시 내걸린다.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과는 몇 년간 정말 자주 보면서 지냈고, 지난 몇 년간은 좀 뜸했다. 나도 애들 보느라, 어디 돌아다닐 형편이 아니었고, 오늘은 김종철 선생의 미간 잔뜩 찌뿌리면서 코 아래만 웃는 그 웃음이 그리워졌다. 그 양반 계셨으면 뭐라고 한 마디 하셨을 것 같은데. 그 양반 안 계시니, 이제 지나가는 말이라도 뭐라도 한 마디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거 보면 그 양반이 좀 꼰대틱하기는 했어도, 강단만큼은 정말 조선 최고였던 것 같다. 문득 그리움에 쌓인다. 원로의 시대는 이제 정말 끝나가나 보다. 

4.
불금이다. 술이라도 때려 먹고 싶은데, 해야 할 일이 너무 밀렸다. 내가 잘 처리를 못해서 그런 것도 있고, 시대를 잘 못 만나서 그런 것도 있고, 이것저것 얘기치 않게 엉켜서 그런 것도 있고. 하여간 불금이라고 술 처 먹을 형편이 아니다. 

살다 보면 인생에 올라가는 길이 있고, 내려가는 길이 있고, 짧은 1년 사이에도 그런 흐름들이 있는 것 같다. 시방 나는 내려가는 길에, 최근에는 꼭두박질 하는 사이클이다. 확 미끄러져 코 박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속 상해도 속으로 삭이고, 힘들어도 혼자 술 처먹고 털어버리는 편이다. 

그래도 세상은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하루를 산다. 좋아지지 않으면, 술이라도 처 먹고 나 혼자 기쁘면 그만이다. 프로이드의 ‘문명의 비판’ 책 앞머리에 ‘소마’로는 행복해지지 않는다, 그런 얘기를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고기 굽기 전에 한 자 쓴다는 게 너무 길어졌다. 오늘 사온 고기 구우러 가야 한다. 

'남들은 모르지.. > 미친 놈들의 재밌는 시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마른 문장들..  (0) 2021.03.08
질곡 한 가운데에서..  (4) 2021.03.03
어떤 인생..  (0) 2021.02.24
내가 얼마나 살까?  (6) 2021.02.08
미친 놈들의 재밌는 시대..  (2) 2021.02.06
Posted by retired
,

어떤 대기업에서 강연 요청이 왔는데, 학기 중이라서 어렵다고 했다.

40대에는 좀 묻어가는 일들도 있었는데, 나이를 처먹고 나니까 묻어가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모든 일들이 다 무겁고, 대가리 뽀개지게 만든다.

예전 같으면 화도 좀 내고, 막 뭐라고 할 일도.. 대부분 그냥 참는다. 니나 내나, 그러고 막 싸우기도 했는데. 역시 나이를 처먹으니까, 늙어서 쟤도 이제 승질 막 부린다, 그런 소리 들을 것 같다.

차라리 내가 며칠 귀찮고 말지.

팬데믹 국면을 보내면서 나는 깨침에 조금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살아서 도를 볼 수만 있다면.. 그리고 깊게 심호흡 한 번 하고, 휴우, 내 팔자야, 이러고 만다.

그래도 좋은 일도 좀 생기기는 한다. 동네 수영장이 다시 열었다. 시간은 예전보다 빡빡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아자, 올 여름까지는 배 다시 집어넣고. 2년 전 여름부터 겨울까지 열심히 수영해서 그럭저럭 회복기로 들어갔다가, 팬데믹 이후 완전 망!

가덕도 신공항 문제로 부산 토론회에서 발제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정말 이 문제는 아무도 다루지 않고, 그래서 뒤로 여러 발 빼고 물러서 있던 나에게까지 부탁이.

친구들은 그거 하지 말라고 했다. 해야 어차피 질 거고, 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 미운 털이나 박히고, 나중에 니가 뭐라고 할 때.. 그때 고초를 겪을 거다.

구구절절히 다 옳은 말씀이기는 한데, 그렇게 이것 피하고 저것 피하면 내가 뭐하러 경제학을 공부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럴 때면 성질 진짜 까칠하다. 나이 처먹으면 적당히 좀 찌그러지고, 눈치 보는 맛이 있어야지.

이 결혼 난 반댈세!

이렇게 꼬장부리는 할배 느낌 들었다.

부산에서 공항을 짓든 말든, 순환 도로를 몇 개를 더 만들든 말든, 그게 내 삶과 무슨 상관이랴. 그냥 찌그러져서 자빠져 있으면 스트레스도 없고, 크롬 번역기 돌려가면서 일본 국토교통성 홈페이지에서 수치를 눈 빠져라고 지켜볼 일도 없고, 그걸 엑셀에 다시 기록할 일도 없고.

이게 다 성격 까칠한 게 천성이라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대에 기재부 과장들하고 일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우와.. 청와대 한두 번씩 갔다오더니 하다못해 청장이라도 다 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냥 얌전하게 그런 사람들한테 찰싹 붙어있었으면 나도 좀 더 순탄하게 살았을 것 같은데.

돌아보면 순탄하게 살 기회가 꽤 있었던 것 같다. 그냥 몇 번만 남들 하듯이 머리 숙이고, "사장님, 나이스샷!", 이렇게 살았더라면.

그래도 입에 세 끼 밥 들어가는 데 크게 어렵지 않았다는 정도가 거의 유일한 위안 아닌가 싶다. 그저 책 쓰면서 살 수 있게 해주신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

가적도 신공항 문제는 아마도 내 인생 후반부의 결정적 전환점으로 남을 것 같다. 까칠한 인성 아직도 그대로, 이건 아니지!

그저 남은 내 인생에서 바라는 게 있다면, 누군가에게 머리 숙이지 않고, 내 삶에 대해서 부탁하는 일이 없도록.

(처음 했던 언론 인터뷰가 중앙일보였는데, 97년이었다. 진짜 수십 년만에 뭐라고 했었나, 찾아본 ㅠㅠ. 헛소리했다.)

news.joins.com/article/3439073

 

탄소세 도입 오히려 유리한 조치 - 현대환경연구원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줄이기 위해 석유.석탄.가스등 화석에너지 사용량에 따라 세금을 물리는 탄소세 도입이 일반의 예상과 달리 오히려 우리나라에 유리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우리나

news.joins.com

 

'남들은 모르지.. > 미친 놈들의 재밌는 시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마른 문장들..  (0) 2021.03.08
질곡 한 가운데에서..  (4) 2021.03.03
어느 금요일의 메모  (1) 2021.02.26
내가 얼마나 살까?  (6) 2021.02.08
미친 놈들의 재밌는 시대..  (2) 2021.02.06
Posted by retired
,

점심 때 혼자 밥 먹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70살까지 살면 잘 산 편일 것 같다. 20세에 교통사고로 죽을 뻔 했다. 지금까지도 잘 살았고, 70까지만 살아도 감지덕지다. 

그렇게 잠시 생각을 해보고 나니까, 이제 남은 시간은 얼핏 15년 정도 되는 것 같다. 10년 정도는 더 움직일 것 같고, 그 뒤의 5년은 아무래도 다 내려놓고 조용히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20대 때 나의 생각했던 나의 말년은 노르망디 바닷가에서 바다를 보면서 혼자 조용히 쉬다가 마지막날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바다가 그렇게 좋았다. 평생 좋았다. 지금 같아서는 노르망디 간다고 따로 돈을 모을 처지도 아니고, 혹시라도 그런 돈 있으면 애들이 다 먹어치울 것 같다. 어마무시하게 먹어댄다. 하여간 말년은 잘 모르겠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이래저래 10년이라.. 30대만 해도 끝이 어딘 줄 모르고 그냥 태평양처럼 넓은 동화지에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이제 여백이 얼마 안 남았다. 

계산은 쉽다. 2년간, 최소 둘째 초등학교 2학년 마칠 때까지는 움직이는 건 최소한이다. 외국에 1년 갔다 올 생각은 있는데, 이건 잘 모르겠다. 아내 일정도 봐야 하고, 애들 사는 것도 봐야 하고. 

이러저리 빼고 나면 10년이래봐야 정말 얼마 안 남는다. 말이 좋아 10년이지, 60만 되도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확 줄어들 것이다. 나는 그렇게 건강한 편도 아니고,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점점 더 그렇게 될 것이다. 

남은 시간에 뭘 할까, 좀 생각을 해봤다. 펼쳐 놓은 일들 정리하는 거야, 그냥 하면 되는 거고. 그렇게 하기로 한 일 하다가 시간이 다 되었다. 그렇게 내려놓는 건 좀 재미 없을 것 같고. 너무 욕시 부리지 않고 적당하게 살다가, 때 되면 내려놓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 

그래도 한국이 좀 더 재밌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다. 재밌는 것이 동기가 되고, 너무 질서 정연하지 않게 좀 미친 놈들도 여기저기서 튀어나와서, 뭐 이런 게 다 있어, 그렇게 뭔가 들쑤시는 사람들이 이상한 일이 아닌 그런 사회가 되면 좋겠다. 

자우림의 <일탈>이 발표된 것이 공교롭게도 97년 11월이다. 딱 IMF 경제위기 터졌던 해다. 그 시절에 일탈을 노래 부르면서 미친 놈들의 시대가 펼쳐질 뻔했던 것 같은데, 경제 위기와 함께 그 흐름이 죽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이라면, 그 시절일 것 같다. 

나에게 남은 욕심이나 그런 게 뭐가 있겠나. 문화적으로 미친 놈들이 좀 더 많이 튀어나오고, 그들이 굶어죽지 않을 수 있는 조건에 대해서 얘기하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것도 힘에 벅차다. 되는 대로 하다가 때 되면 하늘이 부르는 순서대로 가는 거 아닌가 싶다. 

'남들은 모르지.. > 미친 놈들의 재밌는 시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마른 문장들..  (0) 2021.03.08
질곡 한 가운데에서..  (4) 2021.03.03
어느 금요일의 메모  (1) 2021.02.26
어떤 인생..  (0) 2021.02.24
미친 놈들의 재밌는 시대..  (2) 2021.02.06
Posted by retired
,

김윤아를 좋아하고, 자우림 노래 몇 개는 종종 듣는데, 자우림 앨범을 전체적으로 들은 적은 없었다. 할 일도 없어서 요즘 자우림 앨범을 듣다 보니까, 내가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환과 반성 같은 게 생기고..

'일탈' 가사를 곰곰이 생각해 본 것은 처음인데, 공교롭게도 이게 발표된 시점이 1997년 11월, IMF 경제위기오 딱 겹친다. 다시는 나오지 않을 가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90년대 중반에 생겨났던 이 흐름은 한국을 바꿀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을 했었는데, 그 흐름은 imf와 함께 끝났다. 다양성과 일탈, 그 대신에 한국은 더욱 더 유니폼, 획일적이고 덜 반항적인 방식으로 흘러갔다.

미친 놈들의 시대는 다시 오지 않았다. 그런 길 기다리던 나도 이제 50대 중반이다.

내가 뭘 바라고, 뭘 소망했는지, 그런 생각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나는 질서 정연한 바보 짓만 하는 사회를 원했던 것은 아니다.

지금 한국은 너무 재미 없다.

'남들은 모르지.. > 미친 놈들의 재밌는 시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마른 문장들..  (0) 2021.03.08
질곡 한 가운데에서..  (4) 2021.03.03
어느 금요일의 메모  (1) 2021.02.26
어떤 인생..  (0) 2021.02.24
내가 얼마나 살까?  (6) 2021.02.08
Posted by retired
,

가덕도 신공항 토론회를 줌으로 두 시간 좀 넘게 했다. 줌으로 한 건데, 그것도 토론회라고 힘이 들었다. 애들 간식 챙겨주고 나서 바로 잠 들었다.

원래 대로라면 지금쯤 부산에서 저녁 먹고 있거나, 부랴부랴 서울로 돌아오고 있었을 일정인데, 줌으로 하니까 그런 부담은 없어서 좋다.

자주 벌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여야 입장이 같고, 거기에 맞서는 매우 소수파가 되는 경우가 있다. 토건 사업에서 그런 경우가 많다.

제주도 일에 꽤 많이 관여하게 되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 시절 부산과 제주, 이렇게 주로 관찰하던 지역 경제의 모델들이 있었다.

아라중학교에서 처음 친환경 급식 도입하던 시절이 기억에 크게 남는다.

그러다 건강이 크게 안 좋아지면서 돌아다녀야만 할 수 있던 일들을 정리를 좀 했다. 지역 경제 연구하던 것도 그렇게 좀 정리.

그 시절에 마지막으로 들여다보던 게 강정마을 사건이었다. 비교적 초기였는데,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이 보던 게 광주 패트리어트 부대 문제도 보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마지막으로 부탁받았던 일이 크루즈항에 대한 경제성 평가에 대한 의견. 원래 크루즈에 대해서 관심도 많았고, 서울 시장이던 오세훈이 한강에 크루즈 띄우겠다는 뻘소리하면서 크루즈 논쟁도 한 적이 있었다.

크루즈항에 대한 의견 보내고, 공식적으로 제주도에서 뭔가 하지는 않았다. 제주 도청에서 자리를 마련해줄테니까 대안 경제 모델 연구 같은 것을 해달라고 하기는 했는데.. 건강상 그렇게 하기가 어렵고.

그 시절에는 우리나라에서 GRDP 같은 거 들여다보면서 지역 경제 모델 같은 거 연구하다가, 좀 여유가 생기면 아프리카 경제학으로 넘어가려고 했었다. 30대 후반부터 건강이 아주 안 좋아지면서, 어지간한 일들은 다 접고.. 아프리카 경제학에 대한,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꿈을 접으면서 지역 경제에 대한 연구도 같이 접었다.

MB 집권한 다음에는 도대체 뭘 하고 사는지 아무 정신 없이 시간이 하다닥 흘러갔다. 그리고는 근혜였다. 공교롭게도 그렇게 5년+5년이 나의 40대와 겹쳤다. 그렇게 40대는 아무 것도 한 게 없이, 그냥그냥 흘러갔다.

그냥 황당한 일들을 막기 위해서 맨몸으로 버틴 것 외에는 40대의 기억이 거의 없다. 대선 거의 마지막 순간에 후보이던 문재인에게 몇 번 고맙다는 메일 답변을 받은 적이 있었다. 마지막 보고서를 보내면서, 이게 사실상 정말 인간적으로 맘 편하게 보는 건 마지막일 것이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50이 된 다음에는 아무 목표와 방향도 정하지 않고, 하지 않을 것만 정하고 아이들 보면서 지냈다. 공직에 가지 않기로 했고, 방송을 하지 않기로 했고. 그런 소소한 것들의 리스트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가덕도 문제로 지역 현안 맨 앞에 서 보니까, 살아온 삶들이 잠시 주마등처럼 흘러지나갔다. 2003년부터니까 30대 초반부터 이런 지역 현안과 주민들 싸움의 맨 앞에 서기 시작하면서, 거의 그냥 사람들 도와주기만 하면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결혼할 때에는 뭐 먹고 살거냐고, 아내 쪽 집에서도 좀 반대가 심했다. 밥이야 먹고 살지 않겠냐고, 나도 좀 뻔뻔한 대답을..

지내보니까 밥이야 먹고 살았다. 비싼 음식 중에서 꼭 먹고 싶은 게 별로 없다. 곱창전골을 좋아하지만, 이제는 하는 데가 별로 없다. 메기 매운탕이 최고의 음식으로 치지만, 동네에 자주 가던 데는 벌써 다 망했다. 이 정도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비싼 음식들 축에도 못 끼는 음식들이다. 한우 구워먹는 것도 그닥이고, 하다못해 남들 다 좋아한다는 삼겹살도 식당에서 먹는 건 별로다.

생각이 이리저리 길어진 것은, 30대 초반에도 남들 다 피하는 주제에 혼자 맨 앞에 서는 일들이 많았는데.. 이 나이가 되어서도 그런 주제가 있다는 게, 약간 신기하기도 하고, 약간 서럽기도 하고.

내 뒤로 경제학 박사들이 얼마나 많이 나왔겠냐. 돈 안 되는 거 피하고, 위험한 거 피하고, 귀찮은 거 피하고.. 이리저리 다 피하다 보니까, 결국 애들 보다 말고 내가 줌 카메라 앞에 앉게 되는 거 아니겠나 싶다.

예전에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먹고 사는 게 다가 아니고, 높은 자리에 가는 게 다가 아니다. 인생은 눈 감을 때 웃고 죽는 놈이 이기는 거다.

내가 살아서 깨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죽을 때 웃고 죽고 싶다. 소망이 있다면, 그거 하나가 내 소망일 것 같다. 손에 쥔 거, 성취했다고 하는 거, 남들 이긴 거, 그런 게 죽음 앞에서 웃을 수 있게 해주겠나?

언젠가 죽을 때 기억에 남을 한 장면 같은 하루를 산 것 같다. 부산 시장 보궐 선거 앞두고, 민주당은 진작에 특별법 만든다고 했고, 김종인이 한일 해저터널 들고 나왔을 때.. 나는 부산의 시민단체와 코로나 한 가운데에서 줌으로 토론회 발제했다.

토론회 말미에 유튜브로 올라온 질문 대답하다 말고, 하교하는 아이들 초인종이 울렸다. 저, 점시만요, 뒤에 분 좀 먼저 하시면.. 결국 문 열어주고 왔다. 원래는 그 전에 끝날 예정이라서 아무 생각 없이 있었는데, 딱 내 대답 차례에서 초인종 제대로 울렸던.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힌.

'남들은 모르지.. > 소소한 패러독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긴장감 없는 삶..  (0) 2021.02.01
일상성에 관한 짧은 메모..  (0) 2021.01.27
무대 위, 조명이 켜지면..  (0) 2021.01.16
다시 토건 논쟁으로?  (1) 2021.01.14
살살 살기..  (5) 2020.12.31
Posted by retired
,

어떻게 하다보니 가스공사 사보에 글을 써주게 되었다. 쓰고 났더니, 이것저것 칼럼들이 연달아 밀려서 헉. 

돌아서고 나니까 이제 씨네 21 원고 달란다. 오늘 저녁에 잠시 한가한 틈이 미리 쓸까 했는데.. 그래도 언제까지 쓸지는 모르지만, 작전도 좀 짜고, 전체적으로 스토리 보드를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일단 정지. 

영화 잡지이기는 한데, 영화 얘기 보다는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주로 하는 면이라고 한다. 세상 돌아가는 거.. 글쎄다. 다른 건 잘 모르겠고, 사람들이 너무 분노에 가득 차서 살아간다는 건 좀 알겠다. 내가 세상이라고 기억하는 게, 그래봐야 전두환 때 부터이기는 한데, 언제 분노 가득한 세상이 아닌 적이 있었나 싶다. 이놈 죽여라, 저놈 죽여라, 그렇게 살아온 게 불행했던 근현대사 역사 아닌가 싶기도 하고. 요즘 딱히 더 사람들이 분노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나? 경제는 너무 수치로 많은 것들을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수치로 잡히지 않는 것에 대해서 뭔가 얘기하려고 하면 어쩐지 좀 뻘쭘해지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뭔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다들 뭔가 결정하고 그러는 것 같은데.. 나는 그냥 혼자 조용히 지낸다. 가끔 사람들하고 차 마시는 것도 코로나 이후로 카페가 닫혀서 한동안 차도 안 마셨다. 결정이라고 해봐야, 몇 년에 한 번 큰 결정을 하고.. 나머지는 그냥 살아가면서 일상적으로 내리게 되는 소소한 결정들. 책을 낼지 말지, 좀 천천히 낼지, 빨리 낼지, 그 정도. 사실 다른 사람들이 결단하고, 뭔가 결정하는 것에 비하면 이런 건 결정 축에도 안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까, 진짜로 살아가는 게 더 등대 같아졌다. 다들 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갔다가, 좀 있으면 다시 우르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갔다가. 나는 계속 이 자리에 있었구만. 

이제는 열정, 정열, 그딴 것과도 상관 없이 내 주변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할 수 있으려면 내가 뭘 좀 더 하면 되나, 그 정도 생각만 하는. 기능적인 삶을 살아간다. 엄청난 에너지를 동원해서 뭔가 점프를 하고, 도약을 하고, 그딴 건 이제 내 인생에는 없다. 살살, 아주 살살 조금씩 속도 조절하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시간 남으면 애들 맛 있는 거나 좀 해주고. 

그나마도 힘들고 고단해서, 더 내려 놓을 궁리만 한다. 어깨 위에 이것저것 잔뜩 올리고 살아가는 사람들 보면, 그 정성이 부럽기는 하다. 재는 아직도 저럴 힘이 남아있구만. 

생각해보면, 나도 참 긴장감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같다. 아주 가끔 초 읽기 같은 순간에 잠시 긴장도가 좀 높아졌다가, 내일은 뭐하고 시간을 보내나, 이내 다시 그런 긴장감 없는 삶으로 돌아간다. 시간은 잘 간다. 

'남들은 모르지.. > 소소한 패러독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덕도 신공항, 줌 토론회..  (0) 2021.02.02
일상성에 관한 짧은 메모..  (0) 2021.01.27
무대 위, 조명이 켜지면..  (0) 2021.01.16
다시 토건 논쟁으로?  (1) 2021.01.14
살살 살기..  (5) 2020.12.31
Posted by retired
,

애들 키우다 보면 좋은 점이, 우울하거나 청승 떨 시간이 극도로 줄어들게 된다는 점이다. 안 그래도 마스크 쓰고 어린이집 가고 태권도장 가서 힘든 애들하고 있다보니, 뭐라도 좀 맛있는 것도 해주고, 애들 얘기도 들어주고, 조금이라도 웃을거리를 찾게 된다.

사람이라는 게 묘하다. 한 몇십 분 애들하고 같이 웃다보면, 무슨 생각하고 있었는지, 감정과 함께 기억도 같이 사라진다. 그러면 또 책상에 앉아서, 내가 어디까지 썼더라, 그렇게 된다. 그러면 이것저것 골 아픈 얘기들, 벌써 다 까먹었다.

일상성이라는 생각을 요즘은 부쩍 많이 하게 된다. 하루에 몇 시간은 꼼짝 없이 애들하고 시간을 보내고, 시장도 보고, 이것저것 사오고, 또 간식도 적당히 챙기고. 그냥 그게 사는 일상이다. 애들은 크면 이런 시간 기억 못 할 거다. 그리고 심지어 내 기억에서도 흐릿해질 것이다. 애들 기저귀 갈던 시절이 벌써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래도 많이 편해졌다는 감정만이 얼핏 몸에 새겨져 있다.

명랑을 모토로 산 게 한 15년 정도 되는 것 같다. 명랑하게 살려고 했더니 삶이 편해진 것인지, 삶이 편해져서 명랑하게 된 건지, 그 앞뒤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여간 동시에 벌어진 일이다.

예전에 읽은 "잠깐, 애덤 스미스씩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국부론의 그 아담 스미스도 누군가의 노동에 의해서 일상적인 삶을 꾸려갔다는 걸 모티브로 쓴 일종의 젠더 경제학 책이다.

시대마다 일상성은 바뀐다. 우리 시대의 일상성은 예전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어쨌든.. 그냥 하루에 몇 시간씩 애들하고 복닥거리고 있다보면, 슬퍼할 시간도 짧고, 그 기억을 유지하기도 힘들다. 야구 볼 시간도 줄고.

결혼하고 나서는 술 마셔도 보통은 9시에 들어오는 게 아내랑 한 약속이라서, 9시에 식당 문이 닫아도 사실 나는 큰 변화는 잘 모르겠다. 너무 평범하게 살아가는데, 그 평범함이 코로나 국면에서는 오히려 버티는 데 좀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남들은 모르지.. > 소소한 패러독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덕도 신공항, 줌 토론회..  (0) 2021.02.02
긴장감 없는 삶..  (0) 2021.02.01
무대 위, 조명이 켜지면..  (0) 2021.01.16
다시 토건 논쟁으로?  (1) 2021.01.14
살살 살기..  (5) 2020.12.31
Posted by retired
,

대학로의 소극장 같은 곳에 자주 다니던 시절이 내 삶에도 있었다. 김광석 콘서트도 두 번이나 갔던 것 같다.

중간에 하일라이트 조명이 무대 위를 비치는 순간이 있다. 강렬한 빛 사이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먼지들이 보인다. 원래 무대 특히 연극 문대에는 먼지가 많다.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강력한 조명과 먼지가 만나면.. 뭔가 삶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고, 강렬한 페이소스가 느껴지고는 했다. LP 스크래치 소리 듣는 기분이다. 틱, 틱, 틱, 틱..

그게 무대를 보는 기분이라고 지금도 기억한다. 여기에 대해서 가장 멋진 얘기는 송승환이 얼마 전에 한 것 같다.

"회를 통조림에 넣어 팔 수 있나요?"

생각보다 연극 공연이나 그런 무대를 자주 가보지는 못 한다. 아이들 태어나면서, 카봇 뮤지컬 보러 다니는 신세.

내 인생이 왜 이런지는 모르겠는데, 거의 일평생, 무대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득실득실하다. 여전히 그렇다. 그리고 조명에 비춘 무대 위의 먼지를 보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

한 때 내 주변에 화가들이 득실거리던 시절도 있었다. 아이고, 술만 마시면 그렇게들 싸워대던..

10년도 더 된 일인데, 국전 심사위원이라는 엄청나다는 원로 그림 전시회에 갔다가..

참, 우리가 친일파들을 원로로 모시는 사회에 살고 있지, 그림 보면서 아, 진짜 아니다 싶은 느낌이. 그 이후로 큰 전시회는 잘 안 갔다.

한 때 신정아가 큐레이터로 있던 작은 미술관도 자주 갔었다. 신인들 작품 보면서.. 마음이 아팠던 시절이. 한참 '88만원 세대' 구상하던 시절.

소더비에 관한 보고서 읽으면서, 왜 내가 소더비 같은 미술시장 분석을 문화경제학 하면서 그렇게 하기 싫어했나, 그런 생각이 문득. 미국 여행할 수 있게 되면 뉴욕과 필라델피아 갈 계획이 있다. 미국 열리면 소더비도 한 번 가보기로..

작년 11월까지, 코로나 와중에도 경매 시장에 나오는 미술품 수익률이 6.7%였다고 한다. 우와.. 다른 유가증권은 마이너스로 기어다녔는데.

그 중에 가장 특징적인 것이 공룡 화석 경매, 그중에서도 티라노사우르스 렉스.. 우표수집 보다 백 배 낫다는데.

그리고보니 파리에서 현대미술관 갔던 게 벌써 10년 도 넘는 일이다.. 외국에서 박물관은 많이 갔었는데, 미술관 간 기억이 가물가물.

내 인생의 마지막은 조명에서 먼지 날리는 소극장 무대에서 소더비까지, 아마 그런 거 들여다보면서 마무리하게 되지 않으라 싶은 생각이 문득.

'남들은 모르지.. > 소소한 패러독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긴장감 없는 삶..  (0) 2021.02.01
일상성에 관한 짧은 메모..  (0) 2021.01.27
다시 토건 논쟁으로?  (1) 2021.01.14
살살 살기..  (5) 2020.12.31
야구가 끝났다..  (1) 2020.11.24
Posted by retired
,

mb 시장 시절, 토건 경제의 문제를 지적할 때, 나만 그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닌 듯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그 시절이 나의 전성기 아니었나 싶다.

이제는 애들 보면서 슬슬 더 많은 것을 내려놓으려고 하는 시점. 내 생애 이런 토건 러쉬를 다시 볼까 싶었는데, mb 시장 시절, 서울 25개구에 모두 뉴타운 하고, 강남북 균형 특구도 하겠다는.. 그 이상의 광풍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근혜 시절, 창조 경제 얘기하면서 이게 되니, 안 되느니 그러고 논쟁하던 시절은 지금에 비하면 럭셔리 논쟁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잠깐 주변을 돌아보니, 토건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은 이제 나 말고는 없는 것 같다. 이 얘기를 다시 꺼낼지 말지, 나도 고민 중이다..

나도 이제 30대 후반, 40대 초반, 청와대 홍보수석이랑 붙어도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하는 그런 펄펄 날던 시절은 끝났다. 도시공학 교과서부터 꺼내들고 하나씩 짚어보던 시절만큼, 그런 힘은 없다. 이제는 노안도 심해졌고, 시절처럼 그렇게 밤 새기도 어렵다.

현대건설이 내 첫 직장이었다. 현대를 떠난다고 했을 때, 현대에서 마지막으로 제안한 것이 현대건설 기획실이었다. 해보고 싶었던 일이기는 한데, 너무 깊게 발을 담그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고.

적당히 디벨로퍼 행세하고, 여기도 하나, 저기도 하나, 그런 걸 할 줄 몰라서 안 한 것이 아니다. 일본이 걸어갔던 우울하던 시절의 그 길 그대로 한국 경제가 안 걸어갔으면 하는 생각에, 춥고 배고픈 광야에서 혼자 외치는 사나이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이제 나도 50대 중반, 그 짓을 또 해야 하나.. 엄두가 안 난다.

'남들은 모르지.. > 소소한 패러독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상성에 관한 짧은 메모..  (0) 2021.01.27
무대 위, 조명이 켜지면..  (0) 2021.01.16
살살 살기..  (5) 2020.12.31
야구가 끝났다..  (1) 2020.11.24
글 쓰기 전에, 쉼호흡..  (1) 2020.11.24
Posted by retired
,

한 해가 갑니다. SARS-CoV-2, 흔히 사스2라고 부르는 코로나 계열의 바이러스와 함께 많은 것이 예상과 달리 지나간 한 해입니다. 경제사만이 아니라 인류사에도 한 페이지 정도 기록에 남을 것 같습니다. 

저는 “살살 살기”를 내년 소망으로 정했습니다. 어차피 잘 안 될 건데, 마음이라도 편히 갖자는 생각도 있고요. 그리고 힘들다고 더 열심히, 그러면 그럴수록 무리하게 되고, 점점 더 안 좋아질 것 같습니다. 

올해는 계획에 없게 살살 살았고, 내년에는 계획적으로 살살 살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큰 이파리들을 가진 큰 나무가 되기에는 이제 저는 글렀고. 그래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잠시 위안을 가지고 갈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살려고 합니다. 올 한 해, 참 많은 사람들이 집 근처에 왔었습니다. 차 한 잔 마시는 것이 거의 유일한 고정적인 사회 생활이었는데, 코로나 2.5 단계로 넘어가면서 그것도 겨울이 되면서 정지했습니다. 좀 더 살살 살면서,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좀 돌아보고, 약간씩 살펴줄 수 있는 사람들 살펴보면서 그렇게 살아갈까 합니다. 

아내의 친척 어르신 중 한 분이 어제 코로나로 돌아가셨습니다. 내외가 곧 떠날 준비 중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산 사람들은 살아야겠기에, 상갓집에서 아무도 오지 말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한 평생을 경제학자로 살았는데, 사람들 마음을 돌아보는 일에 대해서 너무 무감하게 살았다는 생각을 요즘 했습니다. 옳은 것과 그른 것 사이에, 비겁한 것도 있고, 겁먹는 것도 있고, 치사한 것도 있습니다. 그런 게 다 모여서 삶이 됩니다. 

나는 늘 옳은 것만 했느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적당히 타협하기도 했고, 숨 죽여서 살기도 했고, 못 본 척 하기도 했습니다. 실수한 것도 많습니다. 맨날 정의를 얘기하는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똑똑히 잘 보고 살았습니다. 팀플레이라는 이름으로 자기들끼리 왕국을 만들면서 호의호식하는 보수 인사들의 사적인 삶도 똑똑히 보면서 살았습니다. 

그냥,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조금씩 관심을 가지면서, 새로운 한 해는 그저 살살 살기, 그런 걸 해보려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들에게 욕망과 함께 공포라는 두 가지 자극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버티면서 살아가야 하고, 그 속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여전히 명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살 살다보면 저도 조금은 더 명랑해질 날이 오겠지요. 

모두에게, 살살 살 수 있는 기회를 기원합니다. 

'남들은 모르지.. > 소소한 패러독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대 위, 조명이 켜지면..  (0) 2021.01.16
다시 토건 논쟁으로?  (1) 2021.01.14
야구가 끝났다..  (1) 2020.11.24
글 쓰기 전에, 쉼호흡..  (1) 2020.11.24
수레 앞에 선 사마귀..  (0) 2020.11.21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