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모르지../새로운 생각은 찰나에 지나가지만'에 해당되는 글 29건

  1. 2017.06.04 뉴라이트에 대한 단상 5
  2. 2017.06.04 7년 - 그들이 없는 언론 - 춘래불사춘 2
  3. 2017.05.29 차라리 초한지를...
  4. 2017.05.28 문재인 경제에 대한 첫 단상 7
  5. 2017.05.23 건강을 생각할 나이... 2
  6. 2017.05.19 책쓰기와 보람 3
  7. 2017.05.17 행복을 향해 질주!
  8. 2017.05.17 안수찬 기자 사건을 생각
  9. 2017.03.16 사회적 경제 책의 결론은... 3
  10. 2017.03.14 박근혜는 돼지 나와라 2

언제나 마찬가지다. 힘 세다고 힘 과시하는 사람은 무섭지 않다. 무섭게 내리는 비는, 잠시 피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바닥부터 변화를 만들고, 새롭게 구상하는 집단, 그게 진짜 무서운 것이다. 70년대 재야, 80년대 학생운동, 90년대 시민단체 그리고 2000년대 뉴라이트, 무서웠다. 힘은 별 거 없었지만, 새로운 생각들과 구상이 그 속에서 맹아처럼 싹트고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국 사회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은, 권력에서 힘이 완성되지 않는 사회라서 그렇다. 절치부심하고 뉴라이트 만들면서 집권한 세력이 10년만에 만든 세상은, 너무 허당이었다. 같은 질문이 지금의 집권 세력에게도 던져질 것 같다. 5년 후, 10년 후, 그 미래를 위해서 지금 생각을 해야 한다. 한국은 70년대 이후, 대체로 그러했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예외는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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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그들이 없는 언론 - 춘래불사춘

 

1.

좋은 다큐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는 비교적 쉬울 것 같다. 그렇지만 재밌는 다큐란 무엇일까? 여기에 답하기는 정말 어렵다. 지난 주에 프랑스에서 만든 발레 공연에 관한 다큐를 보았다. 엄청나게 멋진 연습 장면이 가득하기는 한데, 재미가 없어서 참고 보기가 어려웠다. 4팀의 공연준비를 병렬형으로 보여주는데, 100% 긴장하고 있지 않으면 스토리 이해 자체가 힘든 구조다. 좋은 다큐를 본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재밌는 다큐를 보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내가 아는 몇 명의 발레 전공자들의 삶이 비춰 보이는 재미가 아니었으면 끝까지 참고 보기 어려웠다.

 

YTN MBC의 해직기자들 얘기를 담은 다큐 <7 - 그들이 없는 언론>은 좋은 다큐와 재밌는 다큐라는 질문을 동시에 하게 만든다.

 

2.

7년의 개봉 스크린수는 105, 누적관객수는 16,999명이다. 일반적으로 다큐는 극장 개봉을 했느냐 안 했느냐, 그리고 관객수 만 명을 넘겼느냐 안 넘겼느냐, 그런 기준으로 분류한다. 물론 가끔 이런 기준에 전혀 맞지 않게 상업적으로 성공한 다큐가 등장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사회적 흐름과 갑자기 생겨난 열풍, 이런 외부적 변수가 너무 커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고려하기는 쉽지 않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인사이드잡> 5,000명 약간 넘겼다. 그리고 해방 이후 언론에서 가장 많은 영화평을 받은 작품이라는 <경계도시2>가 만 명이 약간 안 된다. 이 정도가 어느 정도 성공한 다큐로 분류된다.

 

<7- 그들이 없는 언론>, 극장용 다큐를 기준으로 치면 성공한 기준은 넘긴 영화다. 애게, 만 칠천명? 만 명을 목표로 가는 게 한국의 다큐이기도 하고, 사회과학 서적이기도 하다. 새로운 얘기, 새로운 변화를 전통적 방식으로 기획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소박하지만 대개의 경우 '넘사벽'으로 작동하는 것이 만 명의 벽이다. 만 명을 넘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경제 다큐를 비롯한 많은 다큐들이 당장 출발할 것이다. 지금보다 최소한 10배는 많은 다큐와 책들이 준비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두텁다. 만 명은 커녕, 극장에 제대로 걸리기도 어렵다는 현실성 앞에서 수많은 기획들이 출발도 해보기 전에 좌초한다. 소박하게 하면 되지 않느냐? 소박에 소박, 그 극한에 간 최소한의 수치가 만 명이다.

 

3.

<7 - 그들이 없는 언론>을 보기 위해서 나는 2,500원을 지불하였다. 그것도 고만고만한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주말 저녁을 보내기 위해서 고심고심하다가 결국 선택한 것이다. 나도 그렇다. 선뜻 극장에 가지 못했고, 소장용 최신 영화를 거침없이 사면서도 2,500원을 내기 위해서 엄청나게 망설였다.

 

별 생각, 별 기대 없이 보았다. 그리고 6년만인지, 7년만인지, 영화에 대한 감상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재밌게 보는 영화는 많고, 감동하는 영화도 적지 않지만,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영화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몸을 움직이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다. 글을 써보고 싶다, 딱 고만큼.

 

4.

7년에는 아는 사람들,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종종 나온다. 이름만 들었지 잘 모르는 기자들도 있었다. 해직 기간에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지는 대목이 정서적으로는 클라이맥스 부분이라고 느껴졌다. 그 정도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 같다.

 

최승호 CP는 개인적으로 엄청 존경하는 사람이다. 다른 일로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나도 몸이 무거워서 꿈쩍도 못한다. 이런저런 사연들이 중첩되면서, 영화는 초반을 지나면 급격하게 감정을 에스컬레이팅 시키면서 밀고 나간다.

 

가장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연은 YTN 사장 사연이다. MB 특보로 사장 임명되자마자 거침없이 기자들을 짤랐이 아니고, 그래도 그 사람은 나름 최선을 다했고, 대화도 좀 되는 사람이었다고 노종면이 회상하는 장면두둥,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MB 특보가 밀린 자리에 올라간 내부 승진자, 사단은 그 단계에서 벌어진다.

 

학습효과인지, 처음부터 내부 승진자를 꺼내든 MBC의 김재철 사장, 가장 희극적 캐릭터이며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유일한 간부 캐릭이다. 일제 때 조선인 순사가 어땠을까, 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5.

다큐를 다 보고 나서 내 삶에도 몇 장이 스쳐 지나갔다.

 

kbs 파업 때 출연자로서는 아마 내가 거의 유일하게 단상에 올라가서 마이크를 잡았던 것 같다. 이제 다시는 kbs에 나오지 못할 거라는 것은 알았다. 2년 전인가, 신년 특집 생방에서 마지막 순간에 나오지 말라고 해서, 그러세요, 뭐 그런 적이 잠시 있었다. 전혀 못 나간 것 까지는 아니고

 

ytn 파업 때는 따로 부탁이 없었는데, mbc 파업 때에는 이준익 감독도 나갔고, 나도 나갔다. 짧은 인터뷰 컷 말고는, mbc는 그 후에 나간 적이 없는 것 같다.

 

방송국에서 파업할 때, 지지발언을 해달라거나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온다. 나는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연락해준 것을 고맙게 생각했다.

 

', 그래도 내가 삶을 막 살지는 않았구나…'

 

만약 방송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 대가가 가혹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그 시절, kbs 뉴스에 나간 적이 있었다. 이래저래, cp는 러시아로 갔나, 하여간 그 때 관여한 사람들이 결국에는 제작 현장과는 좀 먼 곳으로 발령이 났다고 몇 년 후에 얼핏 건네 들었다. 그런 비슷한 일이 몇 번 있고 나서는, 나도 무서워서 방송국에 못 갔다. 잠깐 나가서 별로 중요한 얘기도 아닌 거 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피 볼 이유가 있나 싶었다. 4대강 얘기를 대놓고 하면, 정말로 '피의 보복'이 오던 시절이다.

 

방송국 기자들만 7년 동안 당한 것은 아니다.

 

출연진들은 그래도 좀 낫다. 방송 만들어서 납품 하는 제작사들의 형편은 더 어마무시하다. 그리고 그런 제작사와 일하는 작가와 피디 등 제작진들, 겁나는 보복들을 받았다. 그렇다고 섭섭한 걸 얘기하면, 자기만이 아니라 동료들이 모두 어마무시한 피해를 받기 때문에 그냥 냉가슴들을 알았다.  

 

문화계에는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방송국은 좁은 사회다. 블랙리스트, 그런 건 필요 없다. 그냥 약간의 사장 등 경영진의 호불호, 그걸로 충분하다.

 

그래서 다큐 7년은 그냥 해직당한 몇몇 기자들의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다. 야만의 시대, 바로 그 야만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가듯 묘사되었을 뿐이다.

 

6.

춘래불사춘, 다큐 7년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이다. 봄이 왔어도 봄이 온 것 같지 않은

 

어쩌면 영원히 봄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언론이 제대로 서는! 꿈인데, 어쩌면 한국에서 그런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명은 결국 복직을 하기는 하겠지만, 그런다고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이치가, 고생한 사람과 빛을 보는 사람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해직기자를 비롯한 방송 장악의 역사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겨레 기자들과 경향신문 기자들과 최근에 통화하거나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많이 외로워하고, 새로운 것을 펼치고 싶은 마음이 꺾인 것 같았다. 그들도 정권 교체를 오랫동안 목마르게 기다렸던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 행복과 영광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영화 <인사이더>는 많은 여운을 남긴 영화였다. 방송 고발과 지루한 소송전이 끝나고, 결국 '식스티 미닛'의 수완 좋은 기자 알 파치노와 담배 회사 내에서도 양심을 지킨 과학자 러셀 크로우는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했던 일을 결국 내려놓게 된다. 싸움이 끝나서 이기면 원래대로? 세상의 이치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큰 싸움이 끝나고 나면, 결국에는 상처가 남게 된다.

 

봄이 왔어도 어떤 사람에게는 봄이 오지 않는다. 언론이 그렇고 방송이 그럴 것 같다. 춘래불사춘, 다큐 <7 . 그들이 없는 언론>을 보고 나서 이 단어 하나가 마음 속 깊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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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삼국지를 내 방식으로 써보는 게 오래된 로망이었다. 사실 요즘 별 할 일도 없다. 당장 몇 달은 약속한 일 하느라 잠시 정신 없을 거지만, 그거 지나고 나면 판판히, 남는 게 시간이라...

아내가 반대한다. 예전에도 삼국지 한 번 써볼려고 했는데, 그 때는 이준익 감독이 반대했다. 중국식 시각이 아니라 한국식 시각을 담아보라는데, 뭐... 불가능한 주문이다. 그나마 이민족의 시각을 적극 담으려고 했던 게 장정일 삼국지였다. 그래서 장정일 삼국지가 나름 개성 만빵 삼국지가 되기는 했다.

아내는, 정서적으로 내가 삼국지 보다는 초한지를 훨씬 좋아하니까, 삼국지 쓸 거면 차라리 초한지를...

한신도 겁나 좋아하고, 번쾌 얘기 나올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실제로 그렇기는 하다. 삼국지에서 내가 유일하게 눈물 흘리는 장면은 강유가 죽을 때... 그 때만 눈물이 나온다.

그렇지만 번쾌는 상상만 해도...

한국에서 아무도 관심없을 초한지부터 먼저 쓰라는 아내의 말을 내 식으로 해석해 보면...

돈 번다는 핑계로 육아 도망갈 개수작 부리지 말고, 당분간 얌전히 처박혀서 아이나 볼 것. 끙. (난 그런 의도는 아니라, 이 긴긴 세월을 뭐하고 지낼 것인가, 그런 건설적인 고민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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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전두환 시절의 경제 지표는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패턴을 보여준다.

토건율은 내려가고, 물가인상률도 내려가고, 그 상태에서 경제성장률도 높고, 종합주가지수 상승률도 환상적이다. 이런 모습은 딱 한 번 나왔다. 그 이후에는 토건율이 기이하게 높아질 때마다 대형 경제위기들이 닥쳤다.

지표로 보면, mb 때가 최악일까 싶었는데, 박근혜가 이걸 뛰어넘었다. 근혜 시절은 해방 직후 혹은 한국전에 버금갈 정도로 지표들이 어글리...

문재인 시절, 경제 지표들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길게 보면 1년, 짧게 보면 6개월은 일단은 좋을 것 같다. 그 뒤에는? 그야말로 경제로 보는 성적표다.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로는 장기 호황은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장기 호황 국면으로 가면 전두환 7년 동안 봤던 아름다운 패턴이 나올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3년 후쯤에는 다시 심각한 경제 위기가 올 가능성도...

아직은 너무 많은 것이 열려져 있는 시기다. 한국 경제에서 전두환 때 봤던 그 아름다운 경제 패턴을 한 번 더 보고 싶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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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두 번은 수영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이게 쉽지가 않다. 한 번은 하겠는데, 두 번은... 그래도 요 번 주에는 꼭 두 번을 하려고 한다.

지난 몇 년간, 몸을 너무 막 굴렸다. 여기저기 아프고, 쑤시고. 아침에는 죽어라고 푹 자는 걸로 겨우겨우 버텼는데, 애들 어린이집 아침에 보내면서 아침에도 못 잔다. 이제는 언제 크게 아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진짜, 몸을 너무 막 굴렸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지난 1년 동안 진짜로 괜찮은 자리나 일이 제안이 많이 왔었다. 왜 꼭 그런 일들은 몰려다니는지 모르겠다. 다 해보고 싶었던 일인데, 할 수가 없다고 물리면서, 속이 좀 쓰리기도 했었다.

그 중에 가장 아쉬운 게 하나 있다. 각색으로 부탁이 왔었는데, 결국에는 기획과 각색 그리고 연출까지 포함해서 통으로 받아가 달라고 했다. 30억, 비싸면 40억 밑으로 떨어트릴 수 있는 작품이었다. 원작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그 원작을 재밌게 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애 돌보는 것도 힘들고, 무엇보다도 건강이 너무 안 좋아서 연출을 맡을 자신이 없었다. 하기로 했으면 전체를 통으로 맡아줘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애도 애지만 일단인 내 건강이 자신이 없었다. 그냥, 하던 작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30대 후반에 건강이 크게 안 좋아서 쓰러진 적이 한 번 있고, 요즘 건강이 안 좋다. 잠깐씩 무리하는 정도는 하는데, 예전처럼 몇 달 동안 며칠씩 밤새고, 그런 일은 이제 못한다. 나도 이제 50이다.

1년간은 아무 생각 안하고, 수영장에나 다시면서 기초 체력을 회복하는 기간으로 삼기로 했다. 지금 건강으로는, 무슨 일을 하든, 제 명에 못산다. 연출을 하게 될 기회는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올 것 같다. 그런데 작년처럼, 건강상의 이유로 못하는 건 좀 인생을 바보처럼 사는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는 안될 것 같다.

출간 일정은 올해까지만 잡혀 있다. 물론 다 못 쓸지도 모른다. 그러면 내년 초로 넘기고. 내년에는 출간 계획이 없다. 없으면 없는대로 비워두고 갈 생각이다. 내년에 책 쓸 여유가 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 계약된 것만으로 큰 영화 두 편의 기획을 맡고 있다. 두 번째 것은 아직 연출도 확정을 못하고 있다. 이거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것만 해도 아기들 아빠가 하기에는 벅찬 일이다. 사이드로 붙었던 몇 작품도 처리를 해야 하고, 가끔은 새로 의뢰가 들어오기도 한다. 내 능력을 넘어서는 일들이다.

하여간 내년 여름까지는...

수영장 열심히 다녀서 체력을 회복하는 게 제일 크고 중요한 일이다. 나머지는 지금 일정 잡힌 것을 제 때에 마무리하는 정도로...

1년간 체력단력 기간으로 삼겠다고 했더니, 아내가 제일 좋아한다. 제발 그렇게 좀 해달라고 한다...

살다보면, 다음을 위해서 크게 쉬어가야 할 때도 있다. 지금이 딱 그렇다. 몇 년간 정말로 너무 몸을 막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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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쓰기와 보람

 

몇 년 동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요즘은 그래도 아이들이 덜 아프고, 내 삶에도 약간의 루틴이 생겼다. 몇 년째 밀리고 밀려온 책들을 요즘 정리하는 중이다. 언제가 하기는 해야 하는 일이라서, 별 일 없는 요즘 약간 무리해서 하는 중이다.

 

사회적 경제와 관련된 책이 나가면서 나도 이것저것 잔상이 많아졌다. 내가 하는 공부는 처음부터 비주류 중의 비주류, 비인기 종목들이었다. 누군가는 해야 하기는 하는데,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런 것들을 공부하는 걸 좋아했다. 비인기이거나 너무 일찍, 그래서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그런 주제들을 다루었다. 당연히 책도 인기가 없는 종류이다.

 

미세먼지를 다루었던 <아픈 아이들의 세대>로 데뷔를 했다. 요즘은 인기 종목이 되었지만, 내가 그 주제 다루던 시절만 해도, 그런 게 있는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허걱허걱, 겨우 1쇄 다 털고 절판되었다. 복간하자는 얘기가 있기는 했는데, 그 때는 내가 정신이 없어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비주류의 비주류, 마이너의 마이너, 그게 학문적으로 내 위치다. 생태학, 농업, 사회적 경제, 이런 걸 20대 때부터 봤다. 좌파 내에서도 노동과 관련된 주제, 재벌과 관련된 주제, 이런 건 그 시절에도 인기 종목이었다. 내가 성격이 좀 더럽다. 남들이 다 하려고 하는 것, 그런 건 갑자기 하기가 싫어진다. 남들 다 하는데, 뭐하러 나까지 해? 그런 생각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인기 있는 분야는 어깨싸움도 많이 해야 하고, 줄도 잘 서야 한다. 어깨싸움도 싫고, 줄 서는 건 더더욱 싫었다.

 

얼마 전 정세균 국회의장이 갑자기 연락을 해서, 난데없이 차를 한 잔 마시게 되었다.

 

"너네는 설에 왜 세배 안 와?"

 

그게 첫마디였다. 정세균과 친한 사람들은 세배 가나보다. 내가 이끌던 전문가 집단은 정세균계로 분류가 되었었나보다. 한 때는 친문으로 분류되다가, 한 때는 친 김종인, 또 한 때는 반 김종인, 그렇게들 분류를 하다가 나중에는 정세균계로 분류를 했다고 한단다. 알 게 뭐냐. 나는 누구한테도 줄 선 적 없고, 앞으로도 아무에게도 줄 설 생각 없다. 늙은 아빠가 아이들 줄 맞춰서 밥 먹이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그래도 설날 세배 얘기 들으면서 아주 오래 전 강사시절 생각이 났다. 시간강사들, 우리들끼라는 주니어 박사 혹은 주니어라고 부른다. 설날이 되면 아주 괴롭다. 주류에 해당하는 선생들 중 한 명을 골라서 세배를 가야 한다. 물론 간다고 뭐가 생기는 건 아닌데, 안 가면 아주 괴로워진다.

 

누구한테 줄을 서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그냥 설 전날 술 때려 마시고 푹 자버렸다. 내가 아버지한테도 세배 안 하던 시절인데, 세배는 누구한테! 공무원 시절에도 세배를 가는 걸 봤다. 역시 안 갔다. 그리하여 결국 이 날 이 때까지, 아무한테도 세배를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주제도 비주류, 살아가는 패턴도 비주류, 난 늘 혼자 있는 게 좋았고, 혼자 노는 게 좋았다. 어깨싸움도 싫고, 패거리도 싫고. 학자가 된 이후로, 그렇게 혼자 지냈다. 그러나 보니, 내가 다루는 주제가 자연스럽게 비주류의 비주류, 절대로 팔리지 않을 주제의 책이 되었다.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그래도 이렇게 잘 다루기 어렵고, 해봐야 티도 안 나고 인기도 없을 책을 발간시키고 나면, 보람이 느껴진다. 이 번 책이 특히 그렇다.

 

앞으로 나올 책들도, 별로 다루지 않고, 방치된 분야의 책들이다.

 

이제 슬슬 마무리 작업으로 들어가는 <국가의 사기> 역시, 별로 인기 주제는 아니다. 금융사기와 다단계 사기 얘기로 시작하지만, 주된 내용은 경제에 관한 행정 분야이다. 경제 행정, 역시 인기 없다. 경제 공무원은 누구나 되고 싶어하지만, 이걸 어떻게 견제하고, 어떻게 폭주를 막을 것인가, 그런 건 비인기 종목이 된다.

 

작년 7월부터 준비하기 시작한 소설책이 한 권 있다. 이건 에너지와 전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빠르면 8, 늦으면 9월에 나올 것 같다.

 

아이들 낳고 난 이후로 나는 긴축생활 중이다. 버는 돈은 유동적인데, 나가는 돈은 고정적이다. 줄이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소설책 준비하면서 이번에는 히로시마에 취재 여행을 갔다 올 생각이다. 히로시마 공과대학에서 찾아볼 게 좀 있다.

 

소설책 준비하면서 모아둔 자료들이 좀 있고, 조금 더 모을 생각이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다루지 않은 주제이고, 세계적으로도 드문 주제이다. 물론 외국에서 많이 다루지 않은 건, 한국에만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서 그런 것이고. 자료들 모으다가, 충분히 의미 있는 자료가 걸리면 에너지 책으로 발간할 생각도 있다. 그만큼 좋은 자료가 모일지 아닐지, 아직은 모른다. 잘 모아지면 출간할 생각은 있다.

 

내가 다루는 주제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생소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원하는 것과는 반대의 결론 그리고 시각 자체가 반대인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싫어할 주제들이다. 그런 얘기 안 하고 싶어하는데, 그래도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 이런 고민도 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 그런 마음으로  책을 준비한다.

 

그렇게 몇 년 준비한 책들이 실제 발간되면, 진짜로 보람이 느껴진다. 물론 내가 준비한 모든 책이 다 발간되는 건 아니다. 결론이 영 없다, 그러면 막판이라도 포기한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그것도 못한다. 농업경제학이 그렇다. 박근혜 시절에, 농정은 개판 정도가 아니라 진짜 반대편으로 갔다. 그런 걸 한 번 털어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이게 주요 현장이 대부분 지방이라서, 이거 할려면 차부터 사야 하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새만금과 관련된 다큐나 책을 하나 준비해볼 생각이 있는데, 이것도 엄두 안 나기는 마찬가지다. KBS MBC에서 다루면 그만인데, 영 난색이다. KBS에 토스하고 털려고 했는데, 토스가 잘 안 된다. 대선 전에는 보수 정권이라 힘들다고, 대선 끝나고 나니 청와대에서 싫어할 거라고 눈치보고. 이런 

 

나는 살아가는 게 편한 사람이다. 예전에는 힘들었지만, 요즘은 특별히 어려울 것도 없고, 아이들도 제일 힘들 때는 한 고비 지나서, 진짜로 한시름 놓았다.

 

TV나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일들, 신문에서도 맘 먹고 다루기 힘든 긴 호흡의 얘기들, 이런 것을 다룰 때 책이 매체로서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 몇 년 준비해야 하는 일, TV에서는 50분 이내로 다루고 그만이다. 실제로 TV 다큐가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분석하는 것은 아니고, 많은 경우 누군가가 기초 연구를 해놓고 어느 정도 정리를 해놓으면 그걸 가지고 따라가게 된다. 장기 기획, TV 다큐는 못한다. 게다가 정권 눈치도 많이 봐야 하고. 당당하게? 노무현 때에도 그렇게는 못했고, 신정권에서도 포괄적 자유는 있더라도 구체적 자유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신문은?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 집요하게 몇 년간 들여다봐야 하는 일, 신문도 그런 일은 못한다.

 

정부 연구소? 장난치나? 언제 정부가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진지하게, 그것도 긴 시간을 가지고 연구하게 해주는 것 봤나? 연구원들 월급이 지나치게 인센티브 위주로 구성되어서 소신을 가지면, 배고프거나 쫓겨나거나. 장기 승진 누락되면 버티기가 힘들다.

 

매체로서 책만이 갖는 장점과 힘이 있다. 그리고 그 한 구석에서 나도 힘을 보태고 있다고 생각하면, 보람이 느껴진다. 보람이 밥 먹여주나? 보람은 삶의 의미를 준다. 내가 왜 사는가, 그런 문제로 머리를 쥐어뜯지 않을 수 있게 해준다. 어느 교육부 국장이 민중은 개돼지라고 했다. 나는 공무원이 그런 소리를 술 자리에서라도 하지 않을 나라를 꿈꾼다. 그래서 내 삶이 보람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의 주류 상품, 학계에서의 메이저, 공직에서의 간부들, 그런 데에서 다루지 않는 주제를 나는 다룬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내 삶의 작은 보람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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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제주도로 1박 2일 출장, 우리는 애들 다 데리고 출동. 큰 애가 기침감기가 남아 있었고, 물갈이 하느라 둘째날 설사. 나는 애만 봤는데, 애들하고 틈틈히 바닷가 가서, 바다는 정말 원없이 봤다.

제주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인생 별 거 없다. 주어진 시간 열심히 살고, 내가 남들에게 뭘 해줄 수 있나 더 생각하고, 잠시라도 짬이 나면 행복을 향해 질주!


(쓰다보니, 요 문장이 너무 맘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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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찬 기자 사건으로 한겨레 신문사가 직접 사과문을 걸었다. 이제, 사건은 진짜 사건이 되었다.

1.
안수찬 사건이라고 해서 직접 찾아봤다. 좀 과한 글을 쓴 것은 사실이다. 엄밀히 말하면, 안 써도 되는 글을 쓴 것처럼 보인다. 공인이 되면, 효과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게 된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그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정말로 사회적 효과가 발생하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좀 격하게 써도 된다. 그것도 글의 테크닉 중의 하나다. 그러나 그런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면, 최대한 부드럽게 쓰는 게 낫다.

몇 년 전, 안수찬 기자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 종종 만났다. 의욕과 패기가 넘쳤고, 뭔고 하고 싶어 '미치고 싶은 상태'였다.

요즘은 기자나 편집국에서 직접 아는 사람들에게 메일이나 문자로 취재동향을 알려주는 게 흔한 일이 되어다. 자신의 기자로서의 일상을 일일이 써서 보내준 건, 안수찬 기자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깊이 인상에 남았다. 어떤 의미로든, 안타까운 일이다.

2.
신정부 이후, 진보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을 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나는 한겨레에 글을 오래 썼고, 그 시절에도 한겨레에 글을 쓰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겨레 내부에 엄청 친한 기자가 있어서 내부 사정을 잘 알고, 그러지는 않았다.

하여간 그 시절, 시민단체 내부에서는 신문으로서의 한겨레의 운영에 대해서 불만이 좀 있었다. 그 시절의 한겨레 운영진을 '부국강병파'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민감한 사건이 꽤 있었다.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논쟁들, 새만금을 보는 시선, 굴직굴직한 논쟁들이 있었다. 아마 이라크 파병 이후로 부국강병파라는 말이 나왔던 것 같다. 국가는 부유하고, 군사는 강하고... 당시 청와대가 아니라 한겨레의 기본 논조를 그렇게 비판하던 시절이 생각이 난다.

당시 내가 쓰던 글을 한겨레에서 교정교열이나 문단의 순서배치 말고는 크게 손 댄 적은 없다. 딱 한 번, 내부의 의견을 반영해서 고쳐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황우석 사태와 관련된 글이었다. 별로 고치고 싶지 않았지만, 죽어라고 고집한다고 해서 민주평화가 오는 것도 아니니... 그러시라, 그랬다. 물론, 내색은 안 했지만, 나는 완전 열받았었다. 혼자 그러고 말았다.

정권과 비판, 이건 언론이 가진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편, 남의 편, 이건 선거 때의 일이고, 정권이 형성되면 잘 한 건 잘했다, 못한 건 못했다, 이상한 건 이상하다,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덜 이상해진다.

3.
신정부가 들어섰다. 이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당연히, 잘 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고, 잘못된 일도 있을 것이다. 잘 하는 거야, 잘 했다고 하면 되니까 쉬운 거고. 못하는 것도 다루기가 쉽다. 이렇게 하면 잘 하쟎아, 이런 방식으로 서로 너무 곤란하지 않은 정도에서 절충안을 만들 수가 있다. A안, B안, 그도 아니면 C안, 이런 글이 사실 제일 쓰기 쉽다.

그렇다면 잘못한 일은?

하거나 말거나, 기술적으로 중간 대안이 없는 일은 다루기가 아주 어렵다. 이라크 파병, 가거나 말거나. 이미 진행된 상태의 황우석 사건, 덮거나 열거나.

덮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많은 경우 거대한 충격파를 감내해야 한다. 정권에 대해서 "아니다"라고 말하는 일은, 어느 쪽 정권이라도 부담되는 일이다. 정권은 목숨을 걸고 자신의 무오류를 증명하려고 한다. 그 거대한 충격파에 맞서는 일은, 어지간한 결심으로는 쉽지 않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벌어진다. 우리 편이냐 아니냐, 그건 선거 전에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국가의 일 혹은 정책의 일에는 기술적인 측면이 붙는다. 이 얘기를 할 거냐 말 거냐, 그걸 선택해야 한다.

안수찬 사건은, 그래서 충격파이기는 하다. 아쉬운 것은, 안수찬이 하지 않아도 되는 글을 너무 열심히 썼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한동안 허니문 기간이 지나고,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고 기술적 논쟁이 시작된 이후에 안수찬의 글이 나왔다면, 좀 다른 맥락으로 읽혔을 수도 있다. 글이 날 것인 게 문제? 어차피 sns에는 날 것이 올라간다. 심각하고도 의도적인 허위에 기반한 글이 아니라면, 정제된 글을 사람들이 거기에서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안수찬 사건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한겨레 경영진이 시민단체 사람들에게 '부국강병파'라고 불리던 그 시절이 생각나서이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라고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당선 이후, 언론이 하는 주요 기능은 용비어천가는 아니다. 기술적 분석을 하고, 기술적 지적을 하는 것이다. 대안이 없으면? 그러면 하지 말라고, 목을 내놓고 그 얘기를 하는 거다. 그래야 발전한다. 그리고 그렇게 용기를 내야 세상이 좋아진다.

선거 한 번으로 정책이 조화롭게 만들어지는 것, 그런 건 아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95022.html?_fr=m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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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 책의 마지막 절은 '신들의 경제' 정도의 제목을 달고 종교 얘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종교 얘기에 얽히는 게 귀찮기도 하고, 또 몇 년된 정보들을 다시 최근형으로 업데이트 할려면 에고고...

그래도 마음을 먹은 것은, 내가 왜 책을 쓰느냐는 근본적인 질문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내가 책을 쓸까? 모른다. 올해까지는 쓸 것 같고, 내년은 나도 모른다. 수 년에 걸쳐 이것저것, 출판사와 계약된 책들은 올해 다 끝난다. 내년에는 출간 계획이 없다. 2005년부터 시작해서 출간 계획이 없는 해는 내년이 처음이다. 갑자기 마음이 엄청나게 바뀌지 않으면 내년 출간계획을 따로 잡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쓸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다.

모르는 게 흠은 아니다. 모든 일을 다 알 수도 없고, 모든 것을 다 예상할 수도 없다. 모르는 게 흠은 아니지만, 모르는 데도 아는 척하는 것은 흠이다. 다음 정권은 어떻게 될까? 모른다. 잘 하기를 바라지만 잘 할지 못할지, 모른다. 어떻게 될지 미리 예상하고 설정할 수는 없다. 급격한 변동이 올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 그러니 미리 예상을 하고, 출간 일정을 세울 수는 없다.

입문서나 청소년용 책, 그런 가벼운 책에 대한 요구를 많이 받는다. 사회과학 방법론에 대해서 딱 한 번 입문서를 쓴 적이 있다. 정말 예외적인 경우다.

처음 책 쓰기 시작하면서, 입문서를 쓰거나 좀 더 대중적으로 편안한 책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책 쓰는 일을 내려놓겠다고 나하고 했던 약속이 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책 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방가르드라는 말을 참 좋아했다. 물론 그렇게 아방가르드처럼 살지도 않았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경제라는 주제를 다루는 내 입장은, 가장 첨예한 전선, 바로 그 대치점 맨 앞에 서 있을 거 아니라면 안 다룬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렇게 치열한 전장 한 가운데 어딘가에 서 있지 않을 거라면, 굳이 경제학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 필요도 없고, 그걸 또 어렵게 많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책으로 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만큼은 지금도 변한 것은 없다.

삶은 지난 10년 동안 많이 변했다. 한 때 시민운동의 상근활동가였고, 연대 조직의 사무국장도 했다. 현장 한 가운데에서 살았고, 늘 내 몸은 전국의 현장 어딘가에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더는 현장에 서 있기가 어려워졌다.

맨 앞에 있는 치열한 얘기들 혹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논의되지 않짐나 궁극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주제들을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별 재미는 없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내가 책을 쓰고, 시간을 들일 이유는 없다.

종교와 경제, 전격적으로 한 권으로 다루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다. 나는 늘 치열한 현장에 서 있었다, 그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사회적 경제의 마지막 절은 종교 얘기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앞으로도 이럴 생각이다. 치열한 얘기 아니면 굳이 내가 할 필요는 없다. 언제부터인가, 책 한 권 낼 때 연구조사 등 내가 쓰는 돈이 더 많아졌다. 내 책은, 준비하는데 돈 많이 들어가는 책이다. 그만큼 치열한 얘기니까, 내 돈을 써가면서 연구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거라면, 논쟁을 피하거나 숨어가면서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간만에, 내가 왜 책을 쓰는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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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 어린이집에서 요즘 "박근혜는 퇴진하라", 요게 놀이로 꽤 인기를 끈다. 거짓말 할머니(=최순실) , 대통령 할머니, 이런 용어로 어떤 일이 돌아가고 있는 중인지, 기본적인 설명은 해주었다. 요 '거짓말 할머니'라는 용어도 어린이집에서 유행이다.

둘째가 워낙 호흡기가 안 좋아서, 촛불집회에 한 번도 데리고 가지 못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어쨌든 6살짜리 반에서 "박근혜는 퇴진하라", 그런 놀이가 한참인다. 큰 애는 이 말 뜻을 못 알아들었다.

"박근혜는 돼지 나와라, 박근혜는 돼지 나와라."

집에서 이러고 있다. 촛불집회 구경 못시켜준 아빠 잘못이다, 돼지 그만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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