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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2.11.20 다음 에세이집 키워드는, 돌봄 7
  3. 2012.11.18 고양이별이여, 영원하라! 9
  4. 2012.11.09 돌봄에 대한 가벼운 생각 6
  5. 2012.11.04 앞으로 5년 후 2
  6. 2012.11.04 이오덕 선생을 생각함 3
  7. 2012.11.03 20대 보수? 5
  8. 2012.11.02 가을, 그림 엽서 같은 1
  9. 2012.11.01 새끼 고양이들의 시대 4
  10. 2012.10.29 은퇴준비 거의 끝 6

 

 

돌봄의 시대

 

많은 고양이들이 한꺼번에 떠나고, 이제 세 마리가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있고, 나에게는 나의 삶이 있다. 그러나 하루에 잠시 시간을 내서 그들을 돌보는 것은, 이제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녀석들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내가 무슨 대단한 결심을 한 건 아니다. 그리고 사료와 물 정도 챙겨주고, 가끔 특식 준다고 해서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4, 그러나 나에게 생겨난 변화가 작지 않다.

 

제일 큰 건, 짧은 시간이지만 매일매일 행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명박 시대, 참 어려운 시대였다. 우리는 그가 참 미웠고, 매일매일 그의 친구들을 미워했다. 그리고 돌아서면, 나 자신이 그렇게 무기력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무기력한 나 자신을 또한 미워했다. 열 마리 조금 넘는, 내 손을 거쳐간 녀석들과 즐거움과 귀여움 그리고 헤어짐의 아픔을 같이 나누면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그 틈 속에 작은 행복의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그 시간을 지내서 다시 돌아보니, 누가 누굴 돌본 것인지, 정말로 모르겠다. 그냥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로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만약 고양이들과 지낸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더 많은 분노와, 분노급에도 못 들어가는 짜증 같은 것을 내면서, 늘 서러워하거나 안타까워 하면서 명박 시대 5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나도 사람인지라, 분노와 무기력증이 생겨나는 것을 어떻게 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늘 용기를 내면서, 앞으로 앞으로, 그렇게 기계적인 행동으로만 자신을 위로할 수도 없다. 뭔가 하고 있으면,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니까 분노를 잠시 잊을 수는 있지만, 그게 허탈하다는 생각마저도 지울 수는 없다. 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자는 말이 있다. 그 말 그대로, 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 미처 버리게 된다. 명박 시대, 감정에 충실해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시기였다.

 

그렇다고 옆으로, 한 발만 더 돌아나가면 이제는 일탈의 삐딱선을 타게 된다. 미치는 방법도 가지가지, 그 소리 안 들을 방법이 없다. 돌봄은 그 사이 어디엔가 있다. 세상에서 아주 눈을 돌리는 일탈의 길도 아니고, 그렇다고 충실이라는 이름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모두 증오로 돌려버리는 것도 아닌, 그 양 극단 사이에 돌봄이 있다. 이게 누구에게나 유효한 해법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에게는 그랬다.

 

왜 고양이를 돌보냐는 사람도 있고, 왜 고양이만 돌보냐는 사람도 있다. 첫 번째 질문은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고, 두 번째 질문은 고양이라도 돌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IMF 이후, 우리는 부자되세요라고 서로에게 인사하는 시대를 지났다. 내가 힘들어 죽겠어, 내가 가난해서 죽겠어, 내가 외로워서 죽겠어, 하여간 죽겠다고 얘기하는 게 미덕인 시대였다. 이 시기에는 경쟁하고, 누군가를 죽이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온 사회가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것은 삶의 한 부분이고, 인생의 한 파편일 뿐이다. 그 기간 동안 의도적으로 우리가 회피했거나 망각한 삶의 미덕, 그것이 돌봄이라는 개념 안에 들어가 있는 것 아닌가?

 

무엇인가를 돌본다는 것, 그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 중의 하나이다. 누군가 아프면 같이 아프고, 누군가 배고프면 자신의 마음도 아픈 것, 그런 걸 우리는 귀찮은 것 정도가 아니라, 현대인이라면 절대로 가져서는 안되는 악덕 혹은 시대에 뒤떨어진, 팬시하지 못한 것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마당 고양이 식구들이 아주 단촐해졌다. 녀석들과 나는,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를 다시 시작한다.)

 

두 마리의 영화사 고양이들과 봄부터 같이 지냈는데, 한 마리는 벌써 죽었고, 남은 한 마리는 혼자서 1주일간 사투를 벌였다. 병원에 입원을 했지만, 스스로 이겨내는 것 외에는 별 방법이 없었다. 녀석은 살아 돌아왔고, 이제는 며칠 동안 놀지 못했던 것이 억울하다는 듯이 난장을 펼치고 있다.

 

논쟁이라는 것이 있다. 사회적 논쟁도 있고, 집에서도 논쟁을 한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 혹은 어떤 길로 가야 하는가, 누구나 크든 작든 그런 논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옳고 그른 것, 그건 삶의 한 단편일 뿐이다. 누구나 먹어야 하고, 누구나 옷을 입어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다. 포유류는 원래 그렇다. 알에서 깨어나서, 나오자마자 스스로 걸어가고 먹이를 찾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어른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아니 많은 남자들은 많은 것을 자신에 대한 유불리와 소유의 개념으로 사유하기 시작한다. 자연스러운 것 같지만, 그것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무엇인가를 돌보아서는 안되고, 일상은 전쟁과 같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 역시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사람은 본시 그런 존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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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이름은 생협, 몸은 고양이별에, 마음은 내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다음 에세이집 키워드는, 돌봄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가 몇 권의 책을 냈는지 까먹게 되었다. 좋게 얘기하면 초월하게 된 거고, 나쁘게 얘기하면 교만해진 거다. 그리고 재수 없게 얘기하면, 앞으로 하고 싶은 얘기에 더 집중하느라고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지 않는 거고. 그 어느 편이든, 진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진짜로 잘 모르겠다.

 

<1인분 인생>은 여러 가지로 나에게 의미 있는 책이다. 문학이라는 분류로는 처음 낸 책이기도 하지만, 늘 고통스럽게 생각하던 책 만드는 과정이 즐거웠던 책이기도 하고. 이 책에서 출판사에서 번 돈이 봉도사가 감옥에 가자마자 낸 포토 에세이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간직하는 보람이기도 하고 (그 책, 참 우라지게도 안 팔렸다...) 무엇보다, 이 책은 만드는 과정이 즐거웠다. 이선지라는, 크고 작은 결정을 내가 내릴 때마다 늘 상의하는 동료가 이 과정에서 생겨난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대학 시절, 카프카를 같이 읽던 여성 동지가 이 책의 기획자로, 이거 좀 내자고 해서, 어린 시절의 친구와 같이 작업할 수 있었던 것도 즐거운 일이었고.

 

어쨌든 <1인분 인생>은 대략적으로 2년 정도 작업을 한 건데, 마흔을 모티브로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한 게, 마흔 넷이 되어서야 출간하게 된. 하여간 급하게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냥 쥐고 있다가 오래 된 친구의 권유로 내게 된 책이었다.

 

<1인분 인생> 다음 책은, 여전히 그 시절의 에디터인 이선지씨와 같이 고민을 한다. 어지간해서는 난 에디터를 바꾸지 않고, 출판사도 잘 바꾸지 않는다. 태생이 게을러서 그렇다. 그냥 하던 사람하고 계속 작업하는 게 편하다. 즐거움이든 아픔이든, 같이 나누는 그런 오래된 관계를 더 좋아한다. 문제가 있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을 거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게, 속 편하다.

 

어쨌든 <1인분 인생>에서의 키워드는 40대였는데, 나는 그 주제로 글을 쓰는 게, 편안하고 즐거웠다. 그 이후, 후속 작업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었는데, 결정된 것은 다음 번 작업은 포토 에세이 형식으로 한다는 거 그리고 더 편안한 얘기를 해보겠다는 정도였다.

 

맨 처음 잡았던 주제는 명박 시대였다. 누구에게나, 어떤 이유로나, 명박 시대는 치열한 고민이다. 내가 알기로는, 보수들에게도 이 시대는 고민스러웠던 걸로 알고 있다. 그들도 사람이다. 저 꼬라지를 봐라, 겉으로는 쉴드 치는 사람들도, 편안하게 우리끼리 얘기할 수 있는 자리에서는 고통을 토로한다.

 

명박 시대 들어오자마자, 대운하는 아니다, 니가 좀 막아봐라, 그렇게 말한 사람들이 꼭 진보라고 불리는 사람들인 것만은 아니었다. 평소에는 보수 중의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 명박에게 자랑스럽게 투표한 사람들도, 저건 좀 아니다 싶다, 니가 어떻게든 막아봐라,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 새만금 개발에 대해서도, 이건 좀 아니라고 나를 격려해준 사람들이 꼭 평소에 좌파나 생태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만은 아니다. 누가 딱 봐도 보수 중의 보수인 그런 사람들도, 새만금 얘기는 니 얘기가 맞다, 절대 굴복하지 마라, 내가 도와줄 수는 없어도

 

나중에 알게 된 일이다. 내가 칼럼으로 처음 데뷔한 것은 서울신문을 통해서였는데, 그 때 나를 추천해준 사람이 조선일보 기자였다는 사실을세상 참 복잡하고 교묘하게 얽혀있다. 삶이란, 원래 그런 건가 보다.

 

어쨌든 <1인분 인생> 다음 책은 포토 에세이로 하기로 마음을 먹은 데에는 좀 사연이 있다. 경제 대장정 시리즈의 8, 핵발전에 관한 문제가 지금 권수로 비어 있다. 그리고 <문화로 먹고 살기>, 9권이 먼저 나갔다. 8권을 포토 에세이로 할 생각이 있는데, 그 중간에 넘어가는 단계로 좀 더 쉬운 주제로 포토 에세이를 한 번그런 생각이었다.

 

문제는, 이걸 문제라고 표현하는 것은 좀 그렇기는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게 되었기에해외든, 국내든, 여행을 늘 다니던 삶에서, 아이를 준비하고 태어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가기는 어딜 가집과 영화사, 그리고 가끔 국회, 그렇게만 움직이는 삶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고양이들과 꽃 그리고 아주 약간의 일상적인 사진 외에는 찍어놓은 게 없다.

 

하여간 이건 제약 조건이고

 

명박 시대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는데, 아내의 임신 기간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리고 급박한 출산과 이제 100일이 되는 아기와의 삶, 그 속에서 차마 명박 시대를 카메라로 표현해보겠다고 뛰어다닐만한 용기도 또 그럴 의욕도 나에게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무엇인가를 증오하며 그 속에서 창작욕을 불태운다는 게, 새로운 생명의 탄생 앞에서는 정말로 어색해 보였다. 그래서 그 길은 포기했다.

 

올 봄에 태어난 두 마리 고양이들에게, 각각 강북과 생협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또 다른 키워드를 그 고양이들 속에서 발견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두 번째 에세이집의 가제목은 강북과 생협이었다. 생명을 보는 경이로움과 안타까움, 그게 내가 생각한 강북이라는 가치와 생협이라는 가치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녀석들에게, 나는 당시 내 머리를 차지하고 있던 가장 중요한 가치들을 부여했었다.

 

이번 첫 추위, 그날 영도까지 가는 추위도 추위였지만, 비바람이 몰아치던 그 밤에, 마당 고양이들이 많이 죽었다. 그리고 진짜로 내가 애지중지하던, 생협이 그 밤에 죽었다.

 

고양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앞뜰, 뒷뜰, 여기저기 구석진 곳을 찾아서 고양이 사체를 치우는 게 내가 하는 일이다. 그래도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몇 달간 썩어가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양이별로 가는 마지막 길이라도, 내 손으로 치워주고 싶었다.

 

생협의 사체는 며칠 후, 마루 바로 바깥에 있는, 녀석이 늘 숨어있기를 좋아하는 회양목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녀석은 늘 내가 TV를 보던 마루 바로 바깥에서 정말로 자는 듯이 쓰러져 누워있었다. 고양이 사체를 치우는 것에는 이제는 좀 익숙해질 만하기도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집게로는 집을 수 없는 회양목 깊은 곳에 있어서, 결국 두 손으로 안아내면서, 정말 그렇게 눈물이 많이 났다. 너무너무 예쁜 녀석이었다. 한 번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못했고, 마음껏 안아주지도 못했다. 그렇게 한 번쯤 만져보고 싶었던 녀석을, 죽은 다음에야 안타깝게 만져볼 수 있었다. 아, 삶이란! 왜 우리는 마음껏 사랑하지 못했던가!

 

생전의 그 털 그대로, 그렇게 곱게 누워있는 녀석을 안아 들고, 구청 직원을 기다리면서, 집에 있는 제일 좋은 종이 봉투를 몇 개 겹쳐서 그 안에 넣어주었다.

 

올 봄에 녀석과 한 배에서 같이 태어났다가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누운 녀석의 형제들도 내 손으로 받아주었었다. 그 때는 그렇게 눈물이 많이 나지는 않았었다. 솔직히, 그냥 안되었다, 넋이라도 좋은 곳으로 가면 좋겠다, 그렇게 무덤덤했다.

 

그러나 내 책의 모티브로 생각했던 생협, 그러니 내가 얼마나 더 정을 주었겠는가. 잠든 듯이 누워있는 녀석의 뻣뻣한 몸을 들어내면서, 문득 털이 참 곱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을 내가 그렇게 모시는 동안에, 정말로 녀석을 애지중지 돌보던 엄마 고양이가 담벼락 위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어머니 생각이 났다. 동생들이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어머니는 전부 다섯 명을 낳으셨다. 내 바로 밑에, 아주 어려서 죽은 여동생이 있다. 워낙 내 어린 시절이라, 기억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밑에 남동생이 하나 더 있다. 걔는 기억에 난다.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삼형제로만 알고 있지만, 내가 알기로는 어머님은 다섯 명을 낳으셨다.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그 생각이 났다.

 

이래저래 생각해보면, 지난 4년 동안 내가 돌본 고양이들이 열 마리가 넘는다. 맨 처음 우리 집 마당에 자리를 잡았던 삼색 모녀 고양이, 거기에서부터 아직까지 마냥 자기 집이라고 우기면서 오는, 우리 집 아기 고양이들의 아빠가 된 검둥이, 그런 녀석들과 내가 지낸 지난 4년간의 삶, 그것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돌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녀석들을 돌본 건지, 녀석들이 나를 돌본 건지, 그걸 잘 모르겠다.

 

사람들과의 티격태격하는 관계, 언제나 내가 질게 뻔한 새만금이나 FTA 같은 싸움 속에서, 내가 즐거움을 잃지 않고, “, 빨리 집에 가봐야 합니다, 얘들 굶고 있을 거라서”, 이렇게 내가 아프면 안되고, 쓰러지면 안 된다고 격려하던 건 오히려 내가 돌보는 고양이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가 누구를 돌보는 것이냐, 이게 요즘 내가 하는 고민의 가장 큰 주제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익관계인지, 협력관계인지, 잘 따져보면 말하기 나름이다. 이건 좀 복잡하다. 그러나 고양이를 돌보면서, 이게 이익관계가 아닌 건, 너무너무 뻔하지 않은가? 걸핏하면 집 나가고, 툭하면 죽고, 그런 어설픈 녀석들과 지낸 4, 돈과 이익으로 삶이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을 진짜로 내가 배운 것 같다.

 

내가 생협이라고 불렀던 고양이, 너무너무 예뻤었다. 녀석의 사체를 커다란 종이봉투에 담으면서

 

몸은 고양이별로 가고, 마음은 내 마음에 담고.

 

그 생각을 하면서, 정말로 많이 울었다.

 

마지막 길을 보내는 건, 귀찮은 일이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게 싫다고 돌보지 않는 것, 그건 좀 아닌 듯 싶다. 우리의 삶은, 좋든 싫든,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어른이 되는 길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예전에는 대가족이었고, 형제들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기본적인 사회화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집안 내에서 형제들끼리, 어느 정도는 한다. 그게 전통적 삶이다.

 

그러나 지금은, 혼자 많아야 두 명이 큰다. 집안에서 형제, 자매들끼리, 그렇게 하는 사회화를 우리는 생략하고 넘어간다. 돌봄? 부모가 날 돌보는 거, 그게 당연해지는 사회이다. 학교? 지금 학교에서 그런 걸 가르쳐주지 않는 건 뻔하게 다 알고 있는 거 아닌가? 강남과 목동 엄마들이 신봉하는 사교육, 거기에는 예쁨받고 돌봄받는 귀공자, 귀공녀들 양산처 아닌가?

 

우리의 교육에서는, 좋든 싫든, 죽여라, 그래야 산다, 대학입시를 향해서 단 하나만을 가르친다. 대학교육? 뻔하지 않는가. 지금 우리는 태어나서 취직할 때까지, 남을 죽이라고만 가르친다. 그리고 그게 장땡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게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것은,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다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돌봄은 올드한 개념이다. 영어로 캐어’, 그야말로 니미 뿡이다.

 

작년, 올해, 사회적 트렌드의 키워드는 힐링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건 명박 시대가 만든,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사기성 농후한 개념이다. 사람을 수동태로 만들고, 누군가 날 좀 치유해줘, 그러나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뭔가 좀 나아진 것 같지만, 돌아서면 허무하거나 사기 당한 생각이 드는 개념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멘토 열풍에서 힐링 열풍까지, 명박 시대를 지내느라고 우리가 너무 힘들어서, 잠시 그런 데 기대고 있었던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곰곰 생각해보면, 내가 생협을 돌보고 있었던 것인지, 생협이 나를 돌보고 있었던 것인지, 난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생협의 사체를 발견하고, 그걸 정리하면서, 돌본다는 것은 누가 누구를 돌보고,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또한 삶이다. 생협은 6월에 태어나 11월에 눈을 감을 때까지, 다섯 달 동안 짧은 삶을 살았다. 그리고 나는 그 다섯 달 동안, 그의 삶 전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걸로, 하나의 우주가 완성된 것이다. 영생도 아니고, 건강도 아니고, 번영도 아니다. 삶은, 그냥 삶이다.

 

그런 생각을 곰곰이 하면서, 다음 에세이집의 키워드는 돌봄으로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무슨 돌봄 전문가인 것도 아니고, 스웨덴식의 돌봄 노동과 성의 고착화 같은 인류학 논문을 쓸 만큼 준비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각 잡고, 이게 돌봄이고, 이건 그릇된 돌봄이고, 그런 얘기를 할 마음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지난 4년 동안, 열 마리 넘는 길냥이들에게 매일 같이 밥을 주게 된 과정, 그 속에서 생겨난 인간적인 즐거움과 갈등 혹은 가끔 있는 아픔, 그런 얘기들을 이젠 좀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마당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눈 앞에서 죽었을 때, 마당에 있던 개나리 나무 아래에 묻어주었던 게 생각이 난다.

 

문득 생각해보니, 대한민국이라고 불리는 나라가 더 이상 교육과정에서 가르치지 않는 게, 우리는 뭔가를 돌보고 또 뭔가가 자신을 돌보는 그런 관계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리는 죽이라고만 가르친다. 시험을 잘 봐서 남을 죽이고, 입사 면접에 잘 대답해서 남을 죽이고, 그렇게 남을 죽여야만 니가 사는 것이다, 그렇게만 가르친다.

 

이게 나라냐? , 양아치들의 공화국 아닌가?

 

수경스님이 새만금 갯벌에서 삼보일배를 떠나면서 유마경 얘기하신 게, 오랫동안 마음을 적셨다.

 

네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

 

우리는 유마힐이 했던 그 얘기 속에서, 앞의 문장 반은 빼어먹고, ‘내가 아프다만 줄구장창 반복하고 있던 것 아닌가? 네가 아픈 건 안 보이고, 내가 아프다고만 말하고 있는 이 기이한 상황

 

내가 늘 있던 마루 앞에서 얼어 죽은 생협의 사체 앞에서, “참 추웠겠구나, 미안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사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대에 나를 투사라고 생각하면서 삶을 시작했다. 이제는 그만 싸워야지, 하면서도 평생을 싸우면서 살았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싸우는 게, 결국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고, 뭇 생명을 위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았다. 과연 그럴까? 겨우 다섯 달, 나와 같이 지냈던, 아직 어른이 채 되지 못한 고양이의 사체를 손에 안고, 참 생각 많이 했다.

 

싸우는 게 다가 아니고, 힐링이 다가 아니다. 우리 편 만만세, 이건 더더욱 아니다. 삶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명박 씹새, 그것 또한 과정의 일부일 뿐, 깨달음은 아니다.

 

우리는 너무 날이 선 채로 살아간다. 그리고 정말로 날을 세울 것을 잊은 채, 증오 위에 삶을 세우려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양이를 열심히 돌본다, 그것 역시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한다, 그것도 소박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무엇인가를 돌본다는 것, 그것은 소유하지 않으려는 사랑이 아닌가, 그 정도가 내가 내린 임시 결론이다. 내가 길거리에 떠도는 고양이 몇 마리에게 밥을 준다고 해서, 그들이 내 소유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속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런 질문들을 다시 해보게 된다.

 

과연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고 있는가? 어차피 우리는, 영원히 사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은, 생협이나 우리나,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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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삼촌, 굽은 나무가 선산지킨다고 하더니, 정말로 강하다...)

 

하룻밤 사이에 고양이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고양이별로 떠나갔다.

 

아직 11월 중순밖에 안되었는데, 때이른 한파가 찾아왔다. 이번에 태어난 아기들, 아직 이름도 못 붙여주었는데, 한꺼번에 떠났다. 봄에 태어난 네 마리 중, 두 마리가 살아남았는데, 목둘레를 감은 흰털로 인기를 독차지하던 생협도 이번 추위를 못 이겼다.

 

영화사 고양이 둘은, 아마도 인근 아파트촌에서 도둑고양이 퇴치한다고 놓은 쥐약을 먹은 것 같다. 천만이는 그날 바로 고양이별로 갔다. 대박이는 며칠을 죽어라고 버티더니, 병원에 입원하면서 사투하다가 천만다행으로 살아 돌아왔다.

 

고양이들과의 삶은 늘 이렇게 이별을 눈 앞에 둔 안타까운 사랑과 같다.

 

 

(한꺼번에 자식을 넷이나 잃은 엄마 고양이, 표정이 애잔하다.)

 

몇 달 동안 정들면서 살아왔던 생협은 늘 그 녀석이 놀던 화단 한 구석에서 발견되었다. 혹시라도 영역 다툼 때문에 밀려난 거 아닌가, 그렇게 마음을 돌리려고 했는데, 결국 추위에 얼어죽은 시신으로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일인 듯 싶지만, 늘 자신들이 먹고 놀던 그 어디에선가 고양이들의 사체를 발견하고 처리할 때마다, 경건해진다. 태어난지 한 달도 안 되는 아기 고양이들은, 정말로 자는 듯이 누워 있었다.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그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 같이 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해마다 몇 마리의 고양이를 새로 만나고, 또 몇 마리의 고양이를 이렇게 내 손으로 떠나 보낸다.  

 

펫 로스라는 말이 있다. 반려동물들과 헤어짐은 그 자체로 심한 정신적 충격이기에 그런 말이 생긴 것이다. 물론 매번 떠나 보낼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그냥 삶이라는 것은 그런 것 아니냐나는 그렇게 좀 신경을 무디게 하려고 한다. 물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말로 마음이 무뎌지지는 않는다.

 

처음에 죽은 고양이 사체를 만질 때에는, 참 당혹스러웠다. 요즘은, 그래도 그 마지막 모습이라도 눈 속에 담아두려고 한다.

 

몸은 고양이별로 떠나고, 마음은 내 마음 속에 담아두려고 한다. 내 마음은 넓다. 내 마음 속에서라도 그 혼이 배불리 먹고, 신나게 뛰어놀 수 있으면 한다.

 

졸지에 자식 넷을 추위에 떠나 보낸 엄마 고양이의 모습이 애잔하다. 얼마나 끔찍하게 애지중지하던 녀석들인데, 그 마음이야 오죽하겠나.

 

간만에 살아남은 녀석들이 모여서, 어쨌든 사는 놈들은 또 살아야 하니까, 겨울을 준비하면서 몸에 살을 붙이기 시작한다.

 

지금 있는 아이들의 아빠인 검둥이가 간만에 집에 와서 개집 옆에 누워있는 걸 봤다. 녀석도 자식들이 고양이별로 떠난 걸 아나 보다. 어지간해서는 잘 보이지 않더니, 집에 왔다. 검둥이의 애인이면서, 바보 삼촌이 연애를 걸려고 했던 걸로 알고 있는 삼색 고양이 한 마리도 간만에 집에 와서 밥을 먹고 갔다. 살아남은 녀석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고양이별이여 영원하라!

 

그런 얘기가 하고 싶어졌다.

 

 

 

 

 

(내가 찍은 생협의 마지막 사진... 정말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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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태어난 삼색 고양이와 봄에 태어난 강북걸 사이의 스킨쉽. 진정으로 다정함이 뭔지를 배우게 된다.)

 

가을이 막 깊어가기 시작할 때, 새로운 고양이들이 태어났다. 늘 그렇듯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앞에 놓고는 삶에 대해서 잠시라도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사의 조철현 대표는 요즘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있다. 아주 오랜만에, 영화사에서 간략하게 니체 이전과 니체 이후에 대한 철학사 강의를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삶에 대해서 대단한 통찰력이나 이해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삶에 대해서 너무 가벼워서도 안되고, 너무 무거워서도 안 된다는 정도의 생각을 한다. 고양이들의 삶은 짧다. 그리고 야생 고양이들의 사이클은 더더욱 짧다. 내가 돌보고 있는 동안에도 맨 처음 마당에 자리잡았던 모녀 고양이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번 봄, 바보 삼촌의 아빠였던, 내가 아빠 고양이라고 부르던 녀석이 사라졌다. 봄에 태어났던 삼색이와 누렁이, 두 마리도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떠나갔다.

 

무엇인가를 돌본다는 것은, 참 익숙해지지 않는 헤어짐과 익숙해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지도 모른다.

 

 

(이번에 태어난 세 마리 아기 고양이들, 얘들 데리고 이사갈 생각하면 머리가 욱신욱신하다. 잽싸기는, 엄청나게 잽싸르고, 눈치도 엄청 빠르다.) 

 

요즘 돌본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졌다. 지금 이래저래 내가 돌보는 고양이들이 열 마리가 되었다. 집안에 야옹구, 마당 고양이 7마리, 여기에 영화사에 있는 고양이 두 마리. 다들 나름대로 신경을 써고 돌보고 있지만, 내년 봄에도 계속 볼 수 있는 고양이가 몇 마리인지, 나도 잘 모른다. 이사가면서 혹시라도 못 따라오는 고양이가 있을 수도 있고, 이사간 집에 적응하지 못하는 고양이가 있을 수도 있고. 게다가 영화사 사무실에 있는 고양이들은 겨울이 되면서 더 이상 사무실에 있기가 어려워져서, 입양 보낼 데를 사무실에서 수소문하는 중이다. 그냥 그런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약간씩 애잔하게 남아있다.

 

아주 간단한 얘기이지만, 돌보는 사람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 과연 누가 누구를 돌보는 것인가, 누가 누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인가, 그런 본질적인 질문이 가끔 든다. 고양이들과 이렇게 지내면서 나도 많이 바뀌었다. 여전히 게으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규칙적으로 무슨 일을 해야만 한다. 내가 없으면 굶거나 아주 힘들어지는 존재가 있다는 게, 날 힘들 게 하는 게 아니라 나한테 변화를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금씩 해보기 시작한다.

 

머리로 아는 것과 살면서 배우는 것 아니면 조금씩 느끼는 것, 그 사이에 간극이 많다.

 

어디에서 나왔던 얘기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듣기는 아내한테 들은 얘기가 있다. 전문가 집단 중 수명이 가장 긴 집단이 정원사들이라는 것. 정원사가 죽으면 그가 돌보던 정원도 황폐해지고, 귀하게 대접받던 식물들도 그냥 시름시름, 죽어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정원사들은 그게 의식적이든 혹은 무의식적이든, 어쨌든 기를 쓰고 오래 살게 된다는 것.

 

나는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키워주셨고, 그래서 내 유년기 기억의 대부분은 외할머니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는 않으셨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학교 들어가는 거는 보고 눈을 감아야 한다고 맨날 얘기하셨다. 그리고 나중에는 대학교에 들어가는 거는 봐야겠다고 말씀하셨다. 결국은 박사학위를 받고 취직하는 것까지는 보셨고, 결혼하는 것은 못 보셨다. 현대 다니던 시절,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셨다. 당시만 해도 조모상의 경우는 휴가가 안되어서, 장지에는 못 갔다.

 

돌봄과 사랑은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은 다른 듯싶다. 사랑은 집착과 한 끝발 차이다. 스토커와 짝사랑을 구분하기는 참 어렵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아동학대, 지금 사교육으로 자녀들을 내모는 부모들이 기본적으로는 다 아동학대 아닌가? 그러나 사랑과 구분하기는 어렵다. 돌봄은 집착으로 바뀌지는 않고, 스토커로 바뀌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소유하지 않는 사랑, 그것을 돌봄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을 해본다.

 

과연 누가 누구를 돌보는 것인가, 마당의 고양이들과 몇 년째 같이 살면서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고양이는 올해 두 번째 새끼를 낳았다. 봄부터 이미 건강이 썩 좋지는 않은 상태다. 이번에는 고등어를 구워서 주는데, 눈치 없는 바보 삼촌이 어김없이 나타나서 후다닥녀석의 별명이 그래서 바보 삼촌이 되었다. 봄 출산 때에는 엄마 고양이가 바이러스 감염까지 있어서 기침을 심하게 했다. 사람 천식 있는 것처럼 콜록콜록상당히 비싼 약을 사다가 캔에 타서 먹이는데, 녀석은 이 약 탄 캔까지 그냥 처묵처묵.

 

, 눈치 좀 봐라.

 

사랑이라는 게 뭘까, 이걸 이해하는 건 참 어렵다. 그러나 돌봄이라는 게 뭘까, 그건 그렇게 무겁거나 치명적인 속성이 없어서 더 편하다. 조금씩 서로를 돌보는 것, 이것은 다다익선이다.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않으면, 특별한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가지지 않은 채로, 약간씩 서로 숨 쉴 공간을 만드는 것.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혹은 문화적으로나, 약간의 숨 쉴 공간이 지금 우리에게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시방, 너무 날 선 삶들을 살고 있다.

 

(햐, 녀석도 몸단장한다. 아직 성별도 제대로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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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5년 후

 

같은 상황에서 1년 후, 5년 후, 10년 후 그리고 30년 후를 나누어서 생각해보는 것은 학자로 살면서 몸에 밴 습관이다. 물론 생각한다고 해서 맞춘다는 보장은 없다. 당연한 거 아니겠나? 그야말로 ceteris paribus, 다른 상황이 동일하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게 생각해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물론 우리의 삶은 대개 한치 앞도 모르는 상태에서 움직인다. 그러니 길게 앞으로 올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올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다. 다만 귀찮을 뿐이지.

 

일요일 오후, 창 밖으로 바보 삼촌이 마당에 내려 앉은 산비둘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한참 보았다. 저들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무현 5, 명박 5년을 거치면서 한국에서 삶의 안정성이라는 것이 많이 떨어졌다. 직업의 안정성이 농경사회에서 벗어나며 자본주의가 잠시 찾은 타협책이었는데, 그게 지금 무너지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5년 후에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몇 퍼센트나 될까? 혹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썩 만족스러워서 5년 후에도 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될까?

 

파리에 살던 시절, 식당에서 서빙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스믹이라고 부르는, 최저생계비 약간 넘는 돈을 받았는데, 사실 당시 프랑스의 상황이라면 다 때려치우고 식당에서만 일해도 한국에서 어벙벙한 직업을 갖는 것보다는 나은 조건이었다. 당시 식당에서 일하던 젊은 사람들이 그 분야에서 평생을 보내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을 보고 신기했던 적이 있었다. 불어로 레스토랑 업계를 restauration이라고 부른다. 이걸 하나의 분야로 생각하고, 그 안에서 전문직이 되기 위해서 교육 계획 같은 걸 세우는 걸 보면서, 정말로 놀랐었다. 이건 우리식 사농공상 감성으로 간단하게 이해할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garcon de café, 커피 종업원에 관한 비유를 든 적이 있다. 누구를 위하여 커피 종업원은 커피를 나르는가? 정말로 그 커피 종업원들이 쟁반에 커피를 받쳐든 채 달리기 시합을 하는 걸 보면서 신기했던 적이 있다. 루디크 혹은 루덴스라고 부르는 유희에 관한 얘기를 할 때 종종 인용되는 샤르트르의 구절이다. 커피 종업원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교를 부리면서 커피를 나르는 것이 아닌가, 그런 질문이다.

 

영화 <디어 헌터>에 보면 미국의 철강 노동자들이 중고 세단이지만 어쨌든 세단을 타고 엽총을 들고 사슴 사냥을 하면서 휴가를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풍요의 자본주의라고 지칭되던 그런 시절의 문화적 특징들이다. 이런 것들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독특한 일상성인데, 그 안을 지탱하는 것은 안정성이라는 조건일 것이다. 슘페터가 아주 오래 전에 했던 창조적 파괴라는 단어를 자본주의가 전면적으로 다시 내세우면서 혁신을 맨 앞에 얹은 것은 9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 이후로 안정성을 강조한 나라들이 있고, 안정성을 깨는 게 발전이라고 생각한 나라들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북구의 소규모 경제를 운용하는 나라들이 국가와 시민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안정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갔고, 한국과 일본의 지도자들은 안정성을 깨는 게 발전이라고 여겼다. 우리의 경우는 조금 더 심각했다. 안정성을 극단적으로 깨고, 그게 국가가 좋아지는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정계와 관계의 윗자리를 차지했다.

 

당연히 한국에서는 삶의 안정성이라는 것이 바닥으로까지 추락하게 된 것 아닌가? 돈이 많으면 행복할 거라고? 고위직 중에서도 자살로 마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로 이건희 일가나 정몽구 일가쯤 되는 사람들 빼고는 한국에서는 지금 그 누구도 안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다른 사람들이 괴로우면 자신이 기분 좋아지는, 그 지독한 상대 비교의 논리가 아니라면, 지금 어느 누구의 삶도 안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명박처럼 어쨌든 하는 일마다 하늘이 돕고, 땅이 돕고 그리고 쥐가 돕고 그렇게 승승장구하는 사람의 아들의 삶 역시 안정적이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물론 거스를 수 없는 변화도 없다. 카메라에 쓰는 필름 메이커들이 회생하기는 어렵고, 거기에 따른 각종 장비와 기술들도 일부 하이엔드나 복고 취향이 아니라면 과거처럼 전성기 영광을 다시 보기는 어렵다. 그런 큰 변화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한국의 마지막 LP 공장이 문을 닫는 걸 본 게 몇 년 전인데, 올해 다시 LP 공장이 문을 열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죽어라고 다시 LP로 음악을 듣는 시대가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개인의 삶의 안정성을 그야말로 밀크 쉐이크처럼 돌려버리거나 스무디 만들듯이 헤집어놓는다고 해서 그 사회가 발전한다는 논리는 좀 이상하다. 사회의 속도가 빠른 것과 개인 삶의 안정성이 지켜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다.

 

개개인에게 안정된 삶을 보장한다는 것은 물리적이고 경제적인 부의 축적과는 좀 다른 얘기이다. 그건 흔히 말하는 성장과 분배의 문제와도 다르다. 성장이 무조건 높다고 해서 안정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인민재판 방식으로 늘 재분배를 하고 있다고 해서 안정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닐 성 싶다.

 

5년 후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질문의 진짜 의미는 5년 후가 어떻게 될지 그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5년 후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했던 현 상황을 돌아본다는 것이다. 우리의 5년 후, 그 때도 역시 대선 기간일 것이다. 그 때에 우리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그런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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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을 생각함

 

처음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나도 많은 사람들을 참고했다. 요즘은 경북이라고 하면, 어쩐지 마초들이고, 어쩐지 새누리당 지지자들이고, 민주주의와 반대되는 상식을 가진 사람들로 비춰지는 경향이 있는 듯 싶다. 그 한 가운데 청송이라는 곳이 있다. 작년, 올해는 안 갔지만, 지난 수 년 동안 해마다 몇 번씩 갔던 도시가 청송이다.

 

청송, 영화 <홀리데이>의 바로 그 청송 감호소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신정아가 농업에 대한 지원금 명목으로 대출받은 청송 농협이 이곳에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오덕 선생이 태어나신 곳으로 기억된다.

 

책을 내면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는다. 이오덕 선생의 출판기념회라는 재수없는 행사에 대한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당신 보시기에 흡족하게 산다는 보장은 전혀 없지만, 어쨌든 최대한 그렇지 않도록 노력은 한다.

 

교육에 대해서 계속해서 고민하고, 어린이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냥 신나게 내 삶의 무궁한 영광만을 위해서 살지 않는 데에는 이오덕 선생의 영향이 크다. 그렇다고 내가 이오덕 선생 책을 그 후에도 늘 옆구리에 끼면서 펼쳐 보는 것은 아니다. 안 읽은 책도 많고, 이제는 어디 가 있는지 찾기도 어려운 책들도 많다. 어쨌든 그런 양반들이 우리 선대에 있었다는 거, 그게 참 좋았다.

 

권정생 선생의 삶은 감히 따라하거나 흉내내겠다고 생각을 먹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삶이다. 인생은 소풍, 아니 인생은 쇼핑, 우린 그렇게 산다. 이오덕 선생의 삶은, 어쩌면 비슷하게 흉내내본다고 하면 아주 다르지는 않게 살 수 있는 삶이다. 물론 그 이유 때문에 이오덕 선생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어쨌든 명박네 애들이 최고라고 얘기하는, 지네들끼리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했던 그 삶의 정반대편에 이오덕 선생의 삶이 있다. 소박하고, 은근하고, 그러면서도 우리가 모두 이렇게 하면 참 세상이 좋아지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삶. 당신은 꾸밈이 없는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고 하셨다. 나 같이 글 잘 못 쓰는 사람에게는 이게 참, 큰 위안이 되었다.

 

그냥 하고 싶은 얘기, 부담 없이 편하게 풀어놓으면 된다나도 남들에게는 그렇게 가르친다. 다 당신 덕분이다.

 

<울면서 하는 숙제>, 이런 게 참 좋은 작품이다.

 

운동회에 관한 얘기를 한 번 해보자. 그 시절, 이 양반들은 운동회에서 꼴찌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100미터 달리기를 손잡고 하자는 얘기들을 했다. 예전에 그거 볼 때, 좀 지나친 이상주의자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달리기라고 하면, 숨이 턱에 받치듯이 뛰고, 승부가 칼 같이 갈리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솔직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소박한 그 마음만 받자, 뭐 요런 식으로 간단하게 생각했었다.

 

이런 된장최근에 일본 방송을 하나 봤다. 안경 쓰고, 어지간히 시니컬한 인텔리처럼 보이는 어떤 패널이, 요즘 일본 운동회에서 손잡고 달리기를 하는 바람에 일본 아이들이 패기가 사라지고,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아주 생지랄을 하고 있는 걸 봤다.

 

아니, 일본에서는 손잡고 달리기, 그걸 한단 말이야? 리얼리? 순간 이오덕 선생이나 권정생 선생이 늘 하던 손잡고 달리기 얘기가 생각났고, 도대체 우리는 뭐 하는 사람들인가, 그런 생각이 뒤통수를 팍 치고 지나갔다. 명박네 애들은 일제고사 쫙 보고, 그게 과학적 평가라고 엄청 생지랄들 했다. 당근, 많은 부모들도 시험 보게 해달라고 사정 사정. 우리가 그 지랄하고 있는 동안에, 일본에서는 운동회에서 이오덕 선생 같은 양반들이 정말로 아방가라드처럼 한 얘기를 정말로 구현하고 있단 말이야? 오 마이 갓!

 

오 신이시여, 저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나이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 교육의 최고 개판은, 대치동 교육도 아니고 목동 교육이다. 꽤 많은 학원원장이나 사교육 종사자들과도 이 문제를 가지고 논의를 해봤는데, 이유와 근거는 조금씩 달라도 결국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것은 사실이다.

 

목동, 이건 교육도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아니 교육을 위해서라면, 일단 목통을 탈출하라!

 

목동 교육은 대치동 비슷한 것 같은데, 그건 보이는 양상만 그렇고 내면적으로는 더 개판이다. 실제로 대치동에는, 사실 그 동네 사람 자녀들은 별로 없다. 이미 다 미국으로 보내셔서, 이러 거나 저러 거나, 오리지날 대치동 주민들은 사실은 사교육이든 공교육이든, 한국 교육과는 무관한 사람들이고. 아주 희한하지만, 그 묘절함이 대치동 교육을 완전 개판 5분전에서 구원해준 힘이 되었다.

 

이오덕 선생의 정신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최악의 교육은 목동 그것도 초등교육이다. 처음에 목동 초등학교 1학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축구 클럽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한 건데, 이게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정말로 지옥의 야차들을 만들어내는 바로 그 교육인 거라. 간단하게 말하면,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방식으로 왕따 놓는 걸 교육 시키고 있더라, 이 얘기이다.

 

통계를 내보고 싶었는데, 어지간히 돈 들이지 않으면 나오기 어려운 통계라서 일단 접어놓고 있지만, 구조적이고 근본적으로 왕따 지수가 가장 높이 나올 곳이, 목동 아닐까, 그런 작업 가설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때의 축구 클럽이 나중에도 계속 가고, 부모들이 만들어주고 싶은 건, 뭐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네트워크와 친분 관계라는 건데. 나중에 학교에 오거나 혹시 숫자가 맞지 않아서 축구 클럽에 못 들어간 아이는 구조적 왕따에 시달리게 되어있다. 내가 아는 고위 공직자 몇 사람은 결국 목동에서의 이 지독한 왕따를 견디다 못해, 엄마까지 딸려서 미국 유학 가거나, 온 가족이 지방 근무로 간 사례들이 좀 있다. 그 때는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몰랐는데, 목동이라는 곳이 독특한 교육 시스템을 들여다 보니

 

, 그럼 그 왕따 놓으면서 한 명씩 따돌리고 제끼는 게 삶의 지혜라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칼 같이 습득한 그 어린이들의 삶이 부모들의 바람처럼 행복하겠는가? 그리고 그들이 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겠는가?

 

그게 그렇게 간단한 거면, 일본이 왜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손잡고 뛰는 달리기를 하겠는가? 그 사람들은 자본주의 아니고, 그 사람들은 바보라서? 이오덕 선생 같은 분은 왜 수 십년 전에 그런 주장을 하였겠는가? 이상주의자이고 빨갱이라서? 그게 아니라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지금 우리의 교육은 수 십만명 아니 수백만명의 예비 이명박을 만드는 교육 같은 것 아닌가?

 

목동 엄마들한테 조언을 한다면, 혹시 축구 클럽 같은 데 자기 아들이 다니고 있으면, 일단 그것부터 끊으시길. 자식의 미래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사교육은 좀 천천히 끊어도 되고, 독서 교육은 적당한 때에 자연스럽게 시작해도 된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왕따 놓는 것이 삶이고 자연스럽다고 느끼게 하는 것, 그건 정말로 자식들을 구조적이고 근본적으로 망치는 길이다.

 

내가 이해한 이오덕 선생의 가르침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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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보수?

 

나는 전또깡 이래로 민주정의당의 후신들에 투표를 해본 적이 없다. 아주 솔직하게, 조선일보 기자들을 만날 때도 편치 않다. 그래도 책 막 나왔을 때, 이럴 때 상황 봐서 만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 주변에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 집안에서, 부모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친척들 중, 새누리당에 투표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아주 어렵다. 서울 보수, 그런 사람들이 온통이다. 결국은 대학 시절, 집을 나가고 나서야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

 

그렇지만 새누리당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히 차별하거나 그렇게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나는 정치적인 선택을 이유로, 많은 차별을 당했고, 오랫동안 소수자처럼 살았다. 그건 내 선택이다. 회색인처럼 살고, 회색지대를 선언하면서, 적당히 중도라고 그러면서 살아도 상관은 없다. 그렇지만 어차피 한 번 사는 삶, 내 얼굴을 감추면서 하고 싶은 얘기나 표현을 감추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냥 가난과 차별 같은 것을 감수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감수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내가 무엇인가 선택하거나 채점하는 자리에 왔을 때, 정치적인 선택을 이유로 누군가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짓을 하면, 나도 마찬가지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게 이기는 것도 아니다.

 

공기업 사장이나 감사 같은 것을 선출하는 인사위원회에 가끔 들어가게 되는 일이 생긴다. 50살 넘은 아저씨들의 세계에서는 민주당 지지자들도 별로 찾아보기 어렵다. 겉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그냥 양쪽에 다 다리를 걸고 있는, 기가 막힌 로비의 대가, 그런 것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앞으로도 나는, 정치적인 선택을 이유로 누군가를 부당하게 대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공개적으로 좌파 선언을 한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 좌파는, 어쨌든공개적인 자리에서 스스로 불리는 이름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서 불리는 이름이다. 하여간 이건 나의 선택이고, 그로 인한 불이익은 그냥 감수하고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불이익을 선택하면서 살아가면 좋은 점이 몇 가지가 있다. 삶이 소박해진다. 지금도 그냥 츄리닝 입고 다니고, 아주 특별한 경우 아니면 청바지도 비싸서 못 산다. 구질구질해 보이기는 하지만, 삶이 구질구질한 것보다는 낫다. 내가 하는 유일한 호사는, 안주는 그래도 새우깡 보다는 좋은 거 먹자

 

술 마실 때 새우깡 혹은 새우깡 수준의 안주를 먹으면 너무 우울해진다. 소주에 새우깡 먹던 그 스무살로 돌아간 거 같아서 급 우울해진다. 그래서 그것보다는 좀 좋은 안주를 마시려고 한다.

 

그리고 정말 좋은 것은, 요행수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직접 한 일도 뺏기는 판인데, 내가 하지 않은 일로 인해서 뭔가 좋은 일이 생기는 일, 그런 건 내 삶에 절대 없다. 10개를 하면 결국 하나나 두 개만 성과로 남게 된다. 요행수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실망하거나 속상할 일도 별로 없다. 아주 잘 해야 본전, 그렇지 않으면 대박 망하는 것이 현실에서 한국의 좌파들이 살아가는 삶이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성격이었는지, 꿈을 가져본 적도 없고, 희망을 크게 키워본 적도 없다.

 

그냥 세 끼 밥이나 입에 들어오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이렇게 살면 정말 좋은 게, 속상할 일이 별로 없다. 물론 살다 보면 명박네 삽질 하는 거 보면서 속상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세끼 밥만 입에 들어오면 된다고 생각하면, 크게 속상해할 일이 생기지는 않는다. 일종의 강요당한 소박 같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또 다른 것들, 예를 들면 아름다움이나 낭만 혹은 구구절절한 사랑, 이런 것들에 눈을 뜨게 된다.

 

아주 어렸을 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봤었다. 6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난다.

 

신이 한 쪽 창문을 닫을 때, 다른 쪽 창문을 열어준다.”

 

지내 보니까, 정말로 그렇다. 교수 지원하고 총장 면접 볼 때마다 번번이 떨어지던 시절에는 정말 술 처먹고 우울하게 지내고 그랬다. 생각해보니까, 그건 그냥 내가 감수해야 할 삶인 듯 싶다. 그래서 그냥 감수하고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나서 우울증이 사라졌다.

 

물론 그래도 대인기피증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 무슨 상관이 있으랴. 같이 작업하는 소수의 동료들을 아주 자주 만나면, 그 삶도 부담스럽지는 않다. 게다가 무대 앞에 나서는 화려한 순간을 일부러 피하니까, 혼자 있는 시간이 아주 많이 생겨서 더 좋다. 아이와 부인, 고양이들과 몇 명의 동료들, 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도 아주 재밌다.

 

이런 내 삶을 전제로, 박근혜에게 기꺼이 투표하는 정도가 아니라 박근혜를 통해서만이 자신의 삶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20대 보수에 대해서 요즘 조금씩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20대들을 좋든 싫든, 많이 만난다. 좋아서도 만나고 어쩔 수 없이도 만난다. ‘88만원 세대이후로, 20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고, 싫든 좋든 만나게 되는 게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어려운 게,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을 이해하는 게, 아무리 머리 속에서 논리적으로 따져본다고 해서 이해가 될 수 있겠는가? 경제학과 수업이나 경제학과 특강 혹은 상대 특강 같은 건 잘 안 하려고 한다. 평생을 경제학자로 살아왔는데, 경제학과 수업을 안 하다니!

 

경제학과에 가면 20대 보수를 아주 많이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냥 자신이 뭔가 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키기 위해서 보수가 된 게 아니라, 정말로 좌파들을 너무너무 싫어하고, 체질적으로 증오한다고 믿고 있는 그런 20대 대학생들을 아주 많이 만날 수 있다.

 

나한테 왜 FTA에 대해서 그렇게 이해하느냐고, 나의 후배라고 하면서 덤비는 친구들, 그런 사람들이 경제학과에 가면 아주 많다. 대학원 전공이 국제경제학이었다. 그래서 국제통상학부나 그런 곳의 학생들을 만나게 되는 일이 종종 생기는데, 그들 중 상당수는 적극적으로 박근혜를 지지한다. 영화 지망생 중에서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그들을 차별하려고 하지 않고, 그들에게 나의 정치적 선택을 강요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개인의 문제에서, 모든 사람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하거나 연민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삶은 삶, 그 모든 것들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경제학도들이, 대학에 들어가거나 그 이전부터 지독할 정도로 보수주의적이라는 사실은, 가끔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가 박사가 될 때까지 혹은 학위를 마치고 시간강사가 될 때까지, 일부 좀 너무하다 싶은 몇 명의 선생을 제외하고는 저것도 쟤의 선택이고, 시험 점수로만 평가하겠다고 많은 선생들이 대해주었다. 재벌계열사나 정부에 있을 때에도, 나의 상관이나 상사들 중 좀 너무하다 싶은 몇 명을 제외하고는, 그냥 업무 성과로만 평가하겠다고, 내가 속 편하게 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었다.

 

그게 내가 20대 보수를 대하는 자세이다. 그 개별적 이유를 정형화시키기에는, 그들도 많은 이유가 있다. 출신 지역에 따른 편향이 있고, 부모와의 특수 관계에 대한 개별적 성향이 있고, 문화적이든 정치적이든, 그들이 이미 내린 과거의 선택이 있다. 조사에 따라 다르지만 작을 때는 20대의 17% 많을 때는 30% 정도가 박근혜에게 투표하겠다고 대답한다. 비록 나는 박근혜가 만들어내는 세상을 도저히 참을 수는 없지만, 그를 지도자로 선택한 사람들의 개별적 선택도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도덕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경제의 밑바닥에는 윤리하는 것이 존재하고, 그 윤리가 없다면 경제는 금방 개판 5분 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도덕적 우월감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경계한다. 내가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박근혜 지지자에 비해서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큰 일 난다. 그건 논리적인 일이다. DJ 시절, DJ를 지지한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는, 그야말로 호남 향우회 스타일의 인간들을 보면서, 그건 좀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노무현 열성 지지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생각을 했었다. 노무현 지지는 개별적 선택이지만, 그것이 그 선택을 내린 사람의 우월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것이 도덕적 우월성일 때, 그것은 금방 증오와 폭력적 사유와 연결된다. 동일한 논리로, 그 시절 그 사람들에 대해서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그래도 박근혜, 그것 역시 좀 아닌 듯싶다.

 

20대 보수, 쉽지 않은 주제이다. 만약 재벌 3세라서 자신이 보수적이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영 미친 넘 한 넘 있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실존적인 삶에서 보수의 길을 선택한 20, 그건 여러 가지로 같이 생각해볼 문제이고, 주제이다. 공교롭게도 20대 내에서는 박근혜 지지자가 소수이다. 물론 그 소수는 지배적 위치에 있는 소수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영 가난하고, 앞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데도 박근혜 지지자라면?

 

어쩌면 왕따에 대한 기원론적 질문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남을 왕따 놓는 건지, 왕따가 된 건지. 철학적 질문에 대해서는 답이 잘 없다. 한국에서 박근혜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된 20, 그 질문 역시 철학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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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그림 엽서 같은

 

모든 일에는 시간이라는 게 있다. 그리고 장소라는 질문이 있다. 언제 어디서 벌어진 일인가라는 질문, 나는 그 질문을 엄청나게 중요하게 생각한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것이 제국주의적 미덕이라면, 식민지로 살아가는 나라에서는 그 시간과 공간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 식민지의 속성을 탈피하는 첫 번째 돌파구일지도 모른다.

 

보편적인 것이 나쁘냐,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런 보편주의 만큼 식민지를 통치하는 제국을 편하게 하는 장치가 또 있겠느냐? 네가 조선의 식민주의 백성이라도, 당신만 잘 하면 다 되는 거다, 그게 왜정 시대에 조선인 제자를 정말로 사랑한 선생이 해줄 수 있는 얘기가 그것 밖에는 뭐가 있겠는가?

 

물론 너만 잘 하면 된다는 얘기는, 어디서나 쉽게 하는, 도망가기 쉬운 인스턴트식 해법이다. 그러나 이게 식민지가 가지고 있는 절망과 부딪히면 더욱 크게 증폭되는 것 아니겠는가? 식민지 시대에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냥 맞춰 사는 것과 아주 어렵지만 독립을 위해서 뭔가 하는 것, 그런 해법 정도 밖에 더 있겠나? 그 어느 쪽이라도 제 정신이라면 좌절하게 된다. 창씨 개명을 조선인들이 하자고 한 것을 총독부에서 받아들여준 거라는 얘기가 무얼 의미하겠는가?

 

나는 시대를 뛰어넘는 뭔가를 하라는, 일종의 순수예술의 좌우명처럼 우리의 선배들이 걸어놓고 있던 그 예술관이 그렇게 싫었다. 언제 어디서, 최소한 그런 구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얘기들은 자칫하면 제국의 통치술에 말려들게 되는 그런 거라는 의심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무엇을 그리고 왜, 그것은 그 다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너만 잘 하면 된다, 그것은 언제나 옳은 말이다. 작은 상황이든 큰 상황이든, 적절한 화각으로 청자를 조절할 수만 있다면 언제나 옳은 말이다. 그러나 우리 같이 식민지적 상황을 종결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또한 위험한 얘기이기도 하다. 모든 말에는 겉말과 속말이 있고, 모든 단어에도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가 있게 마련이다.

 

가을이 한참 깊어가고 있는 요즘, 그림 엽서로 써도 좋을 만큼 예쁜 고양이 사진들을 몇 장 찍었다. 가을볕이 참 좋은 조건이다. 적당히 노랗고 그러면서도 적당히 암물한 기묘함이 묘한 긴장감을 준다. 날씨가 조금씩 추워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고양이들도 서로 붙어 있으면서 기분 좋은 실루엣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 고양이들과 지금 보내고 있는 시간은 명박 시대의 어두움과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이라는 면에서만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다른 때 보았어도 에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바로 2012, 명박 시대의 마지막 해의 가을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해방의 욕구, 그런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던 순간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과로에 의한 피로감으로, 그야말로 대선이 오는 그 날이면 나도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악으로 버티던 시간의 기억이기도 하다. 작은 휴식과 위안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휴식이고 어디부터가 일탈인가, 그런 질문을 가끔은 해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순수를 외쳤던 그 모든 것들은 제국 통치술의 값싼 뻰치에 불과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거대한 예술을 원했지만, 문방구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싸구려 그림 엽서 같은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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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고양이들의 시대

 

 

 

엄마 고양이가 얼마 전에 새끼를 또 낳았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무언가 태어났다는 게 그저 즐거울 뿐이다. 얼마나 살아남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일단 세 마리가 있다. 노랑이, 반노랑 그리고 삼색. 녀석들이 얼마나 까탈스러운지 나도 아직 제대로 얼굴도 못 봤다. 인기척만 나오면 후다닥 도망가는데, 그렇다고 억지로 따라가고 싶지는 않고.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엄마랑 물을 먹고 있는 순간을 보았다.

 

영원히 붙잡고 싶은 순간, 그건 녀석들에게도 그럴지도 모르고, 나한테도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모범적으로 살아온 사람도 아니고, 남한테도 내 삶이 모범이라고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니, 누군가가 나같이 한다고 하면, 절대로 큰 일 난다고 그렇게 말하는 편이다.

 

내 삶은 고통이 많고, 외로움이 많은 삶이다. 남들이 내리지 않는 선택을 할 때마다 가혹한 대가가 뒤따른다. 나는 매번 그냥 감내하겠다고 하면서 살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마저 편한 것은 아니다. 세 끼 밥이 입에 들어간다고 해서, 고통스러웠던 순간까지도 잊혀지는 건 아니다.

 

엄마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같이 앉아서 물을 마시는 걸 보면서, 그런 고통에 대해서 회상하거나 기억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고양이들에게 주는 물통에는 벌레들이 늘 빠져 죽어있다. 마침 오늘 플라스틱 물통을 깨끗하게 씻고 새로 물을 주었는데, 엄마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바로 물을 마시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행복을 잡으려고 하면, 그게 잡아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흘려 보내고, 순간을 흘려 보내고, 기억도 흘려 보내고. 집착, 그건 사랑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10대 자녀들 교육에 목을 매면서 사교육으로, 특목고로, 그리고 그것이 행복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에게 저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건 사랑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고양이와 사람은 다르지 않은가?

 

큰 눈으로 보면, 잠시 머물러 있다 가는 생명이라는 점에서 다를 것 아무 것도 없다. 인간이나 고양이나 다 포유류, 열심히 젖을 만들어 새끼를 키우는 그런 같은 분류에 속하는 동물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내가 이들을 다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늘 지켜줄 수 없다. 그들에게는 그들 사이의 법칙이 있고,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내가 먹이를 구해준다고 해서, 내 고양이가 아니다. 자식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자신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행복은 언제나 순간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우리가 만질 수 있는 아름다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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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준비 거의 끝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에는 경제사상사로 시작을 했다. 아마 공산권이 붕괴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자본론에 대한 연구를 하고, 경제사상사와 경제철학 사이에서 책을 읽고, 또 책을 쓰는 그런 삶을 살았을 것 같다. 그렇지만 경제사상사나 경제학설사는 대학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 그럴 기회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내가 강단에 서서 경제학설사를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은 외국의 대학 밖에 없었다. 외국에 그렇게 가서, 그냥 그렇게 다른 나라를 위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학위 받은 순간부터 치면 올해가 17년째인데, 그 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은 대부분 어떤 식으로든 해본 것 같은데, 학설사 강의는 동국대에서 한 학기 짜리로 딱 한 번 해본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공대에서 강의를 했다. 겸임교수는 두 번을 했는데, 두 번 다 공대에서. 그냥 공대에 눌러앉아서 살아도 되기는 했는데, 내 머리 위로 윤진식이 오는 바람에.

 

하여간 이제 내려놓으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학설사 수업을 제대로 못해본 것, 경제철학이라는 수업을 개설해보지 못한 것, 그 정도이다. 한국사회경제학회에 더 이상 후배가 들어오지는 않는다. 아마 이런 걸 진지하게 공부했던 사람은 내 대에서 끝나지 않을까, 그런 얘기들을 좀 한다.

 

때로는 정부를 통해서, 때로는 시민단체를 통해서 내가 원하는 세상을 구현해보려고 참 무던히도 애썼던 것 같다. 한미 fta와 함께 현업 학자로서의 삶을 내려놓는 것,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럴 수 있어서 내 삶은 보람 있던 것 같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거로는 꽤 오랫동안 버틴 것 같은데, 어차피 이 정도가 한계치가 아닐까 싶다. 시뮬레이션 모델링 작업 같은 거를 더 해보고 싶었지만, 이제는 내 눈이 그런 수치 작업과 모델링 작업을 허락하지 않는다. , 누구나 나이는 먹는 거니까.

 

이제 대선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캠프에 들어갈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들어갔다. 나는 안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아마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최대치가 아니었나 싶은. 그렇게 내려놓으려고 한다. 정부에 오래 있었고, 또 그 후에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자문을 하거나 정부 운용하는 데 계속해서 참여할 기회들이 있었다. 그런 것도 이제는 내려놓으려고 한다.

 

내년에는 별 계획은 없다. 일단 겨울에는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던 동화책을 쓰려고 한다. 에니메이션 기획에 대한 제안들이 가끔 오는데, 아직 딱 이거다 싶은 내 얘기가 있는 건 아니다.

 

올해 준비한 영화는 캐스팅 중이다. 끝없는 기다림

 

아마 앞으로 강의를 하게 될 일이 있더라도 경제학과에서 경제학에 대한 걸 하지는 않을 것 같고, 지금까지 내가 분석하는 영화들에 관한, 그런 분석 방법론 같은 거,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올해까지는 책들을 다 정리하려고 했었는데, 경제 대장정 시리즈가 아직도 끝이 안 났다. 시리즈는 마저 할지, 아니면 덮을지, 그건 좀 놀다가 천천히 생각해보면 될 일이고.

 

그냥 시민의 한 사람으로 혹은 영화 기획자나 동화작가, 그렇게 살살 살면서 해보고 싶었던 것, 그런 거 하면서 살아갈 생각이다. 의미와 의무로 사는 것, 오래 살았다. 난 그렇게 사회적 인간도 아니고, 남들 앞에 서는 게 행복한 스타일도 아니다.

 

무엇보다 나는 대인기피증이 깊다. 여전히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 만날 때 결국 술을 마시게 되는데, 그렇게까지 사회를 위해서 영원히 사는 건 아닌 듯 싶고.

 

어쨌든 처음으로 내년도 계획을 세워보는 중인데, 경제학자로서 해야 하는 일이 리스트에는 없다.

 

나름 홀가분하다.

 

그러고 나니, 경제학설사 같은 거 제대로 강의를 못해본 게 약간 아쉬움으로 남기는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고.

 

내일은 아기 낳고 처음으로 아내와 잠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모유수유 중이라서 멀리는 못 가고, 강화도나. 살면서 진짜로 중요한 일은 따로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대선 이후에 나꼽살 종료하는 게 아쉽기는 하다. 누군가 그걸 계속 이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그 방송이 은근 품이 많이 들어간다. 출연자 4명에, 작가와 매니저 그렇게 여섯 명이 지난 1년간을 죽도로 뛴 건데, 한 회분 방송 기획이 보통 2~3주 걸린다. 공중파 같으면 3~4팀이 붙어서 돌아갈 상황인데, 그걸 그냥 몸으로 때우면서 온 거라서. 설날, 추석, 그럴 때도 안 쉬었다.

 

얼마 전에 안철수 쪽에 나꼽살 초청 메시지를 보냈다. 아직 여의치 않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가 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가 아닌가, 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안철수 쪽에서 답이 오면, 문재인 쪽에도 연락을 하고, 혹시 분위기가 좋으면 둘이서 토론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고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우리의 맨 파워로는 이 이상은 무리다. 지금도 이미 무리한 거고.

 

돌아보면, 삶이라는 것은 늘 아쉬움의 연속 아니겠는가? 아쉬움을 남기고 뭔가를 정리하면서,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경제학 아니라도 세상에 보람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내가 활동하던 시기는, 한국에서 경제 이데올로기가 극한으로 올라가던 시기였다. 명박과 함께, 그 한 시대도 끝나가는 듯싶다. 돈만을 숭상하면서 모두가 달려가던 한 시기, 그건 진짜 재미없던 시기였다. 그 지랄 끝이 바로 명박의 시대 아니었겠는가? 근혜 시대가 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렇게 지난 1년을 보낸 것 같다. 그러나 삶을 언제까지 이렇게 비상 상태로 만들어놓고 살 수는 없다. 우리들의 비상 상황은 이번 대선으로 끝나야 한다. 경제학자가 마이크 쥐고, 이건 아니다, 저건 아니다, 그런 상황이 정상적인 건 아니다.

 

대선 쌈박하게 이기고, 내년부터는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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