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진짜 속 편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은근히 쫑코 놓는 소리, 예를 들면 "야인으로 지내는 사람이", 요런 얘기 들어도 히히 웃고 만다. "좋지요, 진짜 편해요"... 예전 같았으면 속으로 부글부글 했을 소리들이지만, 요즘은 신경 한 개도 안 간다.

"당신 아니면 이거 못한다", 이렇게 택도 없는 주문을 하는 사람이 있어도, "조선에 인재 많습니다, 잘 난 사람도 많고, 유능한 사람도 많고.." 편안하게 눙깐다. 어서 원고료도 제대로 안 주면서 일을 떠넘길려고 개수작이셔, 속으로 그냥 웃어버린다.

"이런 건 니가 꼭 해야 해", 이렇게 엄청난 제안이 들어와도, "애 보는 아빠가 할 수 있는 게 뻔해서요, 외국에도 맘대로 못 가고", 퉁 쳐버린다.

좀 나쁘게 얘기하면, 내 위주로 시장을 재편.. 하고 안 하고는 내가 정해, 내가. 물론 그러면 소득도 줄고, 멋진 일을 할 기회도 줄지만, 괜찮아요, 워낙 조금 먹으니까요. 저, 차도 샀어요. 큰 돈 들어갈 일도 없구요.

나중에 후회할지는 몰라도, 아직은 속 편하다. 그리고 남는 시간 있으면, 이미 써놓은 글이라도 좀 맘에 안 드는 걸 다시 쓴다. 직장 민주주의 서문도 다시 쓴다고 했다. 톤 조절도 할겸, 씬삥으로 다시 한 번 시도해보려고 한다. 괜찮아요, 저 시간 많아요.

이렇게 내가 편해진 이유는..

내가 하면 잘 할 수 있다, 이 생각을 버린 다음부터다. 내가 하면 잘 하긴 뭘 잘 해, 똑같지. 논리적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건 쉬운데, 그걸 몸에 붙이기가 어렵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내가 해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몸에 찰싹 붙은 건.. 거봐, 나도 배 나오쟎아. 철철이 맞지 않는 슈트와 쟈켓을 몇 개씩 내다 버리면서, 봐, 똑같쟎아.

누가 살쪘다고 약 올리면, "그래도 이게 요즘 좀 뺀 거예요", 소심하게 되받아친다.

한국에서 남자가 서른이 넘어가면, "니가 하니까 확실히 다르다"는 되도 않는 말로 겁나게 그리고 무리하게 많은 일을 시킨다. 그리고 누가 그렇게 시키지 않는 상황이 되도, 지가 지에게 시킨다. 그리고 그걸 자기 관리라고 한다.

빙신들의 행진곡이다.

된장. 이걸 50이 되어서야 알았다. 마흔살부터 더 개기고 살았어도 됐던 건데.

Posted by retired
,

낮에 후배들 식구들이 와서 밥 먹고 놀다가 갔다. 한동안 둘째가 아파서 집에 누가 올 형편이 아니었다.

유학 시절에도 사람들 밥 엄청 해 먹였던 것 같다. 음식 하는 것도 좋아하고, 먹이는 것도 좋아하고. 우리 집에는 늘 손님들이 많았다.

요즘은 다시 집에 사람들이 온다. 어쩌면 살면서 요즘이 가장 편안하고 무탈한 시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 봄에 둘째가 폐렴에 걸리지 않고 난 후, 별 걱정이 없다. 물론 소소하게 속상하거나 맘 상하는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데, 애 아픈 거랑 비교하면 그런 건 걱정 축에도 못 끼는 일이다.

70년대 경제인류학에서 'want not, lack not!'이라는 표현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원하지 않으면 궁핍하지도 않다.. 요즘 내가 그런 want not인 상태인 것 같다. 뭐 특별히 원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올해 프로야구에는 '간절함'이 키워드였다. 누가 더 간절한가? 야구 하는 건 똑같은데, 그냥 해설의 트렌드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경제 불황이 오래 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간절함을 키워드로 많은 것을 해설하려고 한 것?

want not은 간절함과는 정반대의 상태다. 그냥 되는 대로. 되면 되고, 말면 말고.

자본주의는 자꾸 원하게 만들고, 그래서 더더욱 간절하게 만든다. 그리고 늘 궁핍해진다. 하이엔드 상품이 딱 그렇다. 최고급 제품을 구매하고 돌아오는 순간, 그보다 더 상급의 기기를 사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 찬다.

특별히 뭘 더 하고 싶지도 않고, 간절하게 가지고 싶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뭘 엄청난 걸 기대하지도 않는. 2018년 나의 가을은 이렇게 사람들 밥 먹이는 사이에 그 절정으로 달리고 있다.

Posted by retired
,

서울시 토론문 하나 쓰는데, 3일이. 물론 저녁 때 애들 어린이집 데리고 오는 일들이 계속 있었고, 중간에 지방에도 하루 갔다왔고. 토론문이라는 게, 특별한 형식이 있는 건 아니다. 어쨌든 내 입장에서는 a4 다섯 장, 내용만큼은 공들여서 꼼꼼하게 썼다. 보거나 말거나.

문화 분야의 기본소득에 관한 발제자료도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별 내용이 없는 거라. 이런 것까지 다 파워포인트로 만들어야 하나 싶은. 하여간 정부기관들 하는 일이, 뭐 좀.

요즘 내가 하는 일들이 엄청나게, 뭐 그런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순탄하게 잘 굴러간다. 일부러 짜증날 생각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짜증내거나 심통낼 일도 거의 없다. 늘 살면서 돈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그런 아쉬움이 없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요즘은 그런 아쉬움도 거의 없다. 돈이 엄청나게 많아져서가 아니라, 노는 것도 힘들다.. 애들 데리고 놀러갔다 오려면 차라리 그냥 집에서 개기는 게 더 편한. 그러다보니 크게 돈 들어갈 일도 별로 없고, 그냥 소소한 생활의 비용들.

문득문득 나만 혼자 이렇게 편하게 살아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모르겠다.. 이러다 또 힘든 순간이 내게도 또 오겠지.

경제 인류학이 60~70년대 한참 유행하던 시절 같이 유행했던 표현이다.

want not, lack not.

뭐 특별히 원하는 게 없으면, 특별히 부족한 것도 없다는. 힘들고 어려운 일은 내년,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후년으로 다 미루어놓았다. 그러니 당장 조바심 내서 뭔가 해야할 것도 별로 없다.

명분은... 큰 애 학교 들어가고 나면.

그리고 그 다음에는, 둘째 애 학교 들어가면, 그렇게 또 미룰 생각이다.

나는 내가 하던 일들을 대부분 내려놓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없앤 게 "꼭", "기필코", "반드시", 요런 표현들. 되면 되고, 말면 말고. 어렵다 싶으면 미리 포기한다. 병신아냐? 병신 맞을 줄 모른다. 그러나 내 수준과 내 여건에 맞는 일만 한다. 시간을 많이 써야 하고, 겁나게 열심히 해야 하는 일, 아예 시작을 안 한다.

그러니까 하는 모든 일은 잘 된다. 아주 크게는 아니더라도, 그냥 물 흘러가듯이, 이렇게 저렇게, 큰 질곡 없이 잘 된다. 처음부터 그렇게 될 일만 한다. 아닌 것은?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다.

박민규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칠 수 있는 볼만 치고, 잡을 수 있는 볼만 잡고.. 내가 딱 그렇게 산다.

그래서 누가 병신 아니냐고 하면, 그냥 병신 맞다고 한다. 속도 없냐고 하면, 속도 없다고 한다. 뭐 별의별 말들을 다 한다. 죽 쒀서 개준다는 둥, 남 좋은 일만 시킨다는 둥.

다 듣고 한 마디 한다. "나중에 천국 가고 싶다... 아마 갈겨."

그래도 뭔가 안 되서 아둥바둥거리는 것보다, 이것도 잘 돼, 저것도 잘 돼, 이러고 있는 게 낫다.

조금 하고, 살살 하면, 진짜로 물 흐르듯이 일을 하게 된다. 시간 안 모자르냐고 사람들이 물어본다. 시간은 남는다. 요즘은 마당 고양이들 돌보는 시간도 조금 더 늘어났다. 못 보던 고양이들이 많아졌다. 천국 갈겨...

Posted by retired
,

50대 에세이, 오늘 2쇄 찍는답니다. 책 잘 파는 사람들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일이지만, 저는 그래도 많은 분들에게 고맙습니다. 계속 책을 쓸 수 있고, 새로운 주제를 계속 찾을 수 있게 해준 많은 분들에게 이 기회를 들어 다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저는 '3부 리그 등판기'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한국에서 사회과학 저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3부 리그에서 계속 등판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현역으로 계속 뭔가 만들고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맙기만 합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들에게 거듭 감사...

Posted by retired
,

(블루베리, 색이 들어가는 중이다. 내 삶에도 요렇게 고운 색이 들어가면 좋겠다.)

 

요즘 나는 늘 감사하며 산다

 

50대 에세이는 나에게는 오래 기억될 책일 것 같다. 책을 쓰기 시작한 처음과 마무리지었을 때, 내 생각도 변했고, 나도 변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책으로 먹고 살고 싶어 하겠는가? 실제로는 전세계적으로 10 만명 될까 말까 할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추정은 쉽지 않다. 100 명이 넘는다는 설이 있고, 그렇게까지는 안된다는 설이 있다. 많이 잡아도 2~3백 명 내외일 것 같다.

 

그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고, 감사한 일이다. 더군다나 사회과학에서는그저 감사할 뿐이다. 동토의 왕국 같은 척박한 한국의 사회과학에서 책으로 먹고 살기에, 정말로 너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저 감사드릴 뿐이다.

 

<국가의 사기> 쓰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제 나는 좀 더 멀고 긴 시간에 걸친 이야기들 그리고 남들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 그런 얘기들을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나에게는 보람이기도 하고, 또 고마움에 대한 표시일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시대의 과제는 무엇일까? 사실 지난 10, 내가 쓴 많은 책들은 당장 눈 앞에 있던 문제들을 드러내고, 이건 좀 아니다, 그런 얘기들에 관한 것이었다. 세상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내가 있었다.

 

지금은 좀 더 넓게 보면서, 정말로 필요한 것, “이거 아니다보다는 이 쪽으로 가자”, 그런 얘기를 좀 더 해보려고 한다.

 

탈토건에 관한 얘기가 대표적이다. 민주당의 압승 이후 이 문제가 풀릴 것인가? 여전히 누군가는 다른 대안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같은 이유로, 기본소득에 관한 얘기도 조금 더 해보려고 한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50대 에세이가 급해서 글을 쓰던 시절에서, 좀 더 편안하고 긴 생각으로 글을 쓰던 시절로 나누게 되는 분기점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조급하게 한다고 해서 덜 하는 것은 아니고, 폼 나는 일을 안 한다고 해서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나는 좀 더 드러나지 않는 생산자의 위치로 가려고 한다. 중계, , 이런 것보다는 이론이든 방향이든 혹은 모델이든, 이런 것을 만드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생산자, 프로듀서, 이런 세상으로 조금 더 가려고 한다. 화려하지는 않다. 그러나 결과물이 생겨나기는 한다.

 

50대 에세이를 마무리 짓고 나서, 확실히 내가 조금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살면서 또 몇 번 더 바뀌게 될 것 같다. 그건 그 때 일이고지금은 이렇다.

Posted by retired
,

여러분들이 신경 써 주신 덕분에 50대 에세이가 무사히 나왔습니다.

매번 책 나오면 조그맣게 독자 티타임 한 번씩 합니다.

저자로서, 최소한의 고마움을...

장소는 출판사에서 대관을 해주셨는데, 마시는 건 현장에서 알아서 ^^. 15분 정도 예상.

6월 30일 (토) 오후 3시

빨간 책방 3층, 서울 마포구 독막로 27

 

 https://map.naver.com/local/siteview.nhn?code=35215243

Posted by retired
,

책 나오면 늘 하던 독자 티타임, 요번에도 할까 합니다.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6월 30일이나 그 다음 주 토요일 오후 정도 생각하는데. 시간 어떠실까요?

 

Posted by retired
,

 

50대 에세이 표지 디자인. 교정 보면서 표현 바꾼 것들 외에는 아무 별 변화 없이 나갈 듯 싶다. 디자이너들이 나를 생각하면, 이제는 얄짤 없이 소주와 소주병인가 보다. 10년 전 디자이너들이 별 편견없이 나를 생각하면, 방독면, 화염병, 몽둥이, 러버계통 물품들, 이런 거였는데... 사실 요즘은 가능하면 소주는 덜 마시려고 하는데. 나는 크게 의견 준 건 없고, 싫다는 소리만 안 했다 (다른 대안은, 소주병을 쳐다보고 있는. 뭐, 별반 다르지는 않은...) 내가 살아온 생이 이런가 보다. 소주병이 제일 잘 설명해주는 인생.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30대 초반에는 '포도주 박사'라고 나를 부르던 교수들도 많았다. 이제 포도주 이미지는 떼었다... 일년에 몇 번, 포도주를 마시기는 한다.)

Posted by retired
,

 

현충일이다. 아내는 해외출장 중이다. 어린이집은 논다. 결국 친가에 애들을 맡기기로 했다. 아침에 갔다 저녁 때 오는 건데, 왔다갔다 두 시간, 다 해서 네 시간은 운전만 한다. 그래도 이게 낫나? 물론 낫다. 하루 종일 애들 둘 보고 있으면, 죽는다. 잠시라도 쉴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양희은을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듣는데, ‘아침이슬이 나왔다. 어릴 때 살던 동네를 지나와서 그런지, 문득 초등학교 6학년 때 생각이 났다.

 

이유는 모른다. 그 때도 6월쯤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담임 선생님이 풍금을 치면서 아침이슬을 가르쳐주었다. 의미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지만, 노래는 재밌었다. 우리는 골목골목 다니면서 이 노래를 틈틈이 불렀다.

 

한 달쯤 지났을까? 선생님이아침이슬은 길에서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다. 6학년이지만 우리들 때문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길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다. 다시 이 노래를 부르게 된 건, 대학교 들어가서 소주 집에서. 그 시절에는 이미 집회에서 아침이슬 같은 노래는 부르지 않았다.

 

아마 그 시절에 고분고분하던 모범생 모드가 내 인생에서 없어지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굳이 아침이슬을 그 때 배우지 않았어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1 때 담임은 상대적으로 가장 나았다. 그는 학교에 별 관심이 없었다. 적당히만 해주면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그 때가 청년기로 치면, 나의 전성시대였던지도 모른다. 책도 가장 많이 읽었고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평생 먹고 살게 된 많은 상상력의 기반이 중3 때부터 고1 때까지 읽었던 무지막지한 소설책들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2 겨울방학에 얼마나 책을 많이 읽었냐면, 맨날 누워서 방학 내내 책을 읽었더니 척추가 휘었다. 한동안 고생했다. 집은 춥고, 책은 읽어야 하고, 이불 속에서 누워서 보느라.

 

2 때 담임은, 나와는 상극이었다. 물론 대학에 들어가서 더 황당한 교수 아니 교수 새끼들 을 보면서 고2 담임은 역대급에 들어가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하여간 상극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좋은 선생님이다. 그건 별로 부정하고 싶지는 않디. 교육에 열성이 아주 높은 것도 사실이다. 나는 그를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는데, 그는 나를 싫어했던 것 같다. 아마 당신 교사 기간에 가장 냉소적인 학생으로 기억하는 것 같다. , 어떻게 보든 상관 없는데, 너무 많이 때렸다. 그 때까지는 대학은 그냥 국문과 간다고 적당히 생각하고 살았는데, 최종적으로 국문과를 안 가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내가 겪은 국문과 출신 선생님들은 애들을 너무 많이 때렸다. 그리고 애정이라고 했다. 내가 꿈에라도 사람을 때리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은 것은, 그 시절의 국어 선생님들 때문이다. 나는 문학도를 꿈꿨는데, 저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때리는 거야 교련 선생님들이 왕이고, 체육 선생님들이 제왕이기는 한데, 그 사람들은 애당초 개차반으로 나선 거라서 신경도 안 썼다. 실제로는 교련 선생님이나 체육 선생님들에게는 거의 맞은 적이 없다.

 

3 때 담임 선생님은 드물게 식크한 사람이다. 물론 생긴 것은 전혀 식크와는 무관한 사람이었는데, 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역대급으로 식크하다. 세계사 선생님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는 내 인생에 결국 감옥에서 끝나거나, 헤매다가 잘 하면 공무원이나 되거나, 뭐 그럴 거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같은 학교에 또 다른 세계사 선생님은 전교조 이전에 학교 운동의 대부 같은 양반이었다. 결국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미국으로 이민 간다. 담임은 나에게 아무 기대나 아무 간섭이 없었다. 나도 크게 사고 치지는 않고. 되는 대로 살았다. 뭐 하라는 것도 없었고, 특별히 어디 가라는 것도 없었다.

 

세 명의 담임 중 나는 누가 되고 싶을까? 사실 아무도 되고 싶지 않지만, 굳이 고르라면 3학년 때 담임 같은 사람을 고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애들한테 아빠는 고3 담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뭐 하라는 것도 크게 없고, 뭐 되라는 것도 별로 없고, 노는 것도 누구 때리는 것만 아니면 이래도 잘 했어, 저래도 잘 했어.

 

이래서 우여곡절 끝에 경제학과에 들어갔는데, 나를 가르치게 된 누님 두 분을 만나고 완전 놀라게 되었다. 세상에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 있었나, 진짜 깜짝 놀랐다. 한 양반은 나보다 좀 늦게 유학을 와서 뒤늦게 박사가 되었다. 여전히 현장에서 눈부신(?) 활약 중. 그리고 또 한 명이 나중에 대장금의 작가가 된 김영현 선배, 하여간 어지간히 드라마 많이 쓰게 된 양반이다. 그 때 놀랐다. 우와, 똑똑한 게 이렇게 멋진 거구나. 집에서는 재수하기로 하고, 재수 하기 전에 잠깐 놀려고 아니 술 처마시려고 갔던 대학인데, 결국 이 양반들하고 노느라고 그냥 눌러앉았다. 재수는 뭔 재수. 살면서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을 다시 볼 것 같지는 않았다. 지내고 보니까 그 때 내 생각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 엄청난 사람들을 만난 거였다.

 

그리고 아침이슬을 다시 부르게 되었다.

 

박정희 시절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전두환 시절에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초반을 보냈다. 지금도 어린 시절이나 학교 다니던 시절을 회상하면 어두워진다. 사람들이 특히 선생님들이 아주 개차반 같았다. 신해철이 그 선생님들 욕을 신랄하게 했다. 대부분 동의한다. 그렇지만 가끔 생각해보면 그 때 선생들이 개차반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회 평균 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학교 밖의 험악한 세상에는 그보다 더 형편무인지경인 사람들이 있지 않았을까?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친구들과 가끔 만나시는 것 같다. 가고는 싶은데, 애 보느라 자주 가기는 어렵다.

 

이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아직도 답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좀 아닌 것은 더 명확해지는 것 같다. 악다구리 하는 삶은 살고 싶지 않다. 그것만은 명확해지는 것 같다. 남한테 소리 지르고 싶지 않다. 다른 건?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고 싶은 건 잘 모르겠는데, 되고 싶지 않은 것만 자꾸 명확해진다.

Posted by retired
,

아주 바쁜 시절과 아주 안 바쁜 시절 두 개를 아주 짧은 기간 내에 극단적으로 경험해본 것 같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고, 위기도 양 쪽에 다 있는 것 같다. 바쁠 때 생기는 문제점이야,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겪어보는 것이고. 높은 자리에 있든 그렇지 않든, 우리가 만든 현대는 무조건 바빠야 한다는…

바쁘지 않을 때, 이 때는 사실 마음을 처리하는 게 제일 힘든 것 같다. 자꾸 누군가 원망스럽고, 뭔가 싫고, 이런 마음이 든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무 일도 아닌데, 바쁘지 않을 때에는 그런 것만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생긴다. 그래서 자꾸 바보 같은 생각만 더 하게 되는 위험이 있다. 그럴 바에야, 그냥 바쁘게 지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바쁘지 않은 게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정말로 마음을 차분하게 갖는 연습이 좀 필요할 것 같다. 뒤집어도 마찬가지인 명제다. 마음을 차분하게 할 수 있으면, 바쁘지 않은 것이 더 의미가 있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기도 하다. 바쁘지 않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 그게 더 멀리 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렇지만 멀리 가서 뭐 하게? 어디 뭐 맡겨놓은 거 있남? 멀리, 실력, 효율적, 이런 말들도 다 털어버리면 바쁘지 않은 시간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 때 뭔가 진짜를 배울 것 같다.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