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애는 오늘도 나한테 혼났다. 누워서 책 보다가. 습관이란다. 앞으로 한 번만 더 누워서 책 보면 다 치우고, 책 안 보기로 약속했다.

사실 내가 책 보는 거 혼낼 형편은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스탠드도 없었고, 조명이 너무 안 좋았다. 큰 애 나이 때에는 이미 안경을 꼈다. 다섯 살 때부터 책 너무 많이 읽었다.

원래 하고 싶었던 직업은 공군 조종사였다. 공사가고 싶었는데, 시력이 택도 없었다. 지금도 해보고 싶었던 유일한 일은 전투기 조종사. 근처에도 못 가봤다.

나중에 나이를 먹고 헬기 조종을 배울 기회가 생겼다. 진짜로 하고 싶었는데, 교정 전 시력이 택도 없었다. 큰 애랑 알고 지내던 일본 아동이 있었는데, 작은 아빠가 일본 자위대 헬기 조종사였다. 나중에 퇴역해서 그냥 상업 헬기 운전한다. 누군가에게 부럽다는 생각을 거의 해본 적이 없는데, 그건 부러웠다.

헬기 조정하는 기장 몇 명을 살짝 안다.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비행기도 안 돼, 헬기도 안 돼.. 배 항해사를 하고 싶었던 것은 몇 년 전의 일이다. 방황하던 아내가 배 타는 일로 완전히 전업을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같이 준비해서 항해사 자격증을 딸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진짜로 해경 사무실에 가서 필요한 절차 같은 거 알아보기도 했다.

<내릴 수 없는 배>에는, 항해사 자격증과 해양사 공부하던 시절의 경험이 조금 관련이 있던.

돌아보면 유일하게 직업으로서 하고 싶었던 것이 공군 조정사였던 것 같다. 그걸 포기하고 난 다음..

난 한 번도 내가 하는 것을 직업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고, 이게 천직이다, 이런 생각도 잘 안 들었다. 그냥 되는 대로 하고, 밥이나 먹고 살면 된다.. 요런 생각으로 평생 산 것 같다.

다섯 살, 여섯 살, 나는 책을 너무 많이 읽었다. 어른들은 그 때 좋아했지만, 나는 정말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그 바람에 평생 못하게 되었던..

아들에게 말했다. 책은 나이 먹고 봐도 괜찮아, 나중에 봐도 되고.

내가 일곱 살 때,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알아서 책을 좀 그만보고, 시력을 관리하기에는, 나는 너무 아무 것도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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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에서 찍은 큰 애 뒷모습. 요즘 두 번째 사춘기를 지내는 중이다. 첫 번째 사춘기는 작년. 어린이집에서 애들하고 물고, 할키고. 며칠에 한 번씩 투닥투닥. 사실 그 때 불만이 있었다. 그리고 요즘. 어린이집 안 가고 싶어한다. 요즘은 이사가자고 한다. 예전 어린이집 근처로...

그래도 어린 시절의 나보다 예민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장난 아니었다. 한 번은 친척집에서 자고 왔는데, 소변에 피가 섞여나왔다고.

나는 어른이 되면서 최선을 다해서, 나의 민감한 성격을 민감하지 않게. 아내는, 돼지소굴을 만들어놓고도 잠이 오느냐고. 그건 둔한 게 아니라, 돼지라고...

이제 나는 민감하지는 않다. 두 번째 사춘기를 겪는 큰 애를 보면서, 해줄 수 있는 게 그렇게 많지가 않은. 야구 같이 열심히 하는 중이다. 그래도 몸을 좀 쓰면서 노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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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애들한테 이것저것 가르치는 건 잘 한다고 생각했었다. 어제부터 큰 애한테 줄넘기 가르치기 시작하는데, 와... 어렵다. 줄 돌리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줄 처음 알았다. 나는 어떻게 줄넘기를 배웠지? 생각도 안 난다. 큰 애 줄넘기 가르치면서 옆에서 줄넘기 하다가 나만 캑캑캑. 아고고, 힘들다. 이걸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답이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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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홉 살

아이들 메모 2018. 5. 14. 14:22

 

마당 고양이 강북. 낯에 이렇게 본 건 몇 달만인 것 같다. 이전에 살던 집 마당에서 태어났고, 아직도 쌩쌩하다. 태어날 때, 어렸을 때, 유달리 몸집이 작아서 이게 얼마나 버티겠나 싶었다. 이제 아홉살인가? 모진 겨울들 많이 버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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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큰 애 어린이집 데려다주는데, 문 앞에서 돌아나오는데 울기 시작했다. 큰 애는 요즘 두 번째 맞는 사춘기인 것 같다. 게다가 주말에 아주 잘 놀아서 월요병도 있는 것 같고. 나도 그렇게 학교 다니기를 아주 싫어했다. 큰 애 보다 한 살 어린 시절, 집에서 미술학원을 보냈는데, 그게 그렇게 싫어서 도망다니면서 땡땡이쳤었다. 큰 애 어린이집 교실 문앞에서 우는 거 보는데, 딱 그 시절의 내 생각 났다. 학위 받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그렇게 학교 가는 게 싫었다. 공부 좋아서 한다는 사람도 가끔 있던데, 나는 느무느무 싫은 걸 참고 억지로 한 거다. 책 읽기가 재밌다는 사람도 아직 이해 못하겠다. 읽기 싫은데, 죽기 싫어서 참고 읽는 게 책이다. 가기 싫은데 방법 없으니까 참고 가는 게 학교였고. 다행인 건... 집에 있고 싶지 않은데 참고 버티는 게 아니라는 점. 나갈 데도 많고, 나오라는 사람도 많은데, 집에 있는 것만은 느무느무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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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일이다. 강변북로에서 운전할 때였다.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이 흘러나왔다. 원래 팝송 들을 때 가사 잘 안 듣는다. 그 날따라 가사를 좀 신경 써서 들었다.

Man, what are you doing, here?

이 가사가 확 가슴을 후벼팠다. 와... 눈물이 핑 돌았다. 운전하다 눈물 났던 건, 이상훈이 코리안 시리즈에서 삼성에게 연타석 홈런을 맞은 이후로 처음. 목적지가 멀지 않았다. 나중에 차를 세워놓고 혼자서 10분 넘게 울었던 것 같다.

나중에 찾아보니까 이 얘기는 실화였다. 젊은 빌리 조엘이 첫 앨범 내고 실패하고, 스튜디오 근처에서 알바하던 시절에 자기가 겪은 얘기. 그리고 웨이트리스 걸과 결혼도 하고 (나중에 이혼.)

어쩌면 이 노래 가사 한 구절이 내 삶을 크게 바꾸게 된 결정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때부터 아주 곰곰이, man, what are you doing, her... 나에게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

그리고 결국 결정을 내렸다.

애나 보자...

사람들은 지금도 가끔 왜 애를 보기로 그렇게 갑자기 결정을 했느냐고 물어본다. 둘째가 두 번째로 폐렴으로 입원할 때쯤, 나는 여수행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다.

그 비행기에서 내린 후, 다음 날 광주에서 서울 오는 ktx를 탈 때까지, 내내 man, what are you doing here, 이 생각만 했다. 그 ktx 안에서 최종적으로 결심했다.

애나 보자...

그리고 그 아이가 올해 처음으로 미세먼지 가득 찬 4월에 폐렴 없이 넘어갔다. 오늘 이 아이 손을 잡고 5킬로미터 가량 같이 걸었다.

Man, what are you doing, here?

어쩌면 내 인생을 바꾼 한 마디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오늘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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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애가 그린 인체 해부도. 아이들의 상상력이란... 가끔 놀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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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아이들 메모 2018. 5. 5. 21:56

애들 둘 목욕시키고 나니 이제야 어린이날이 끝난 것 같다. 큰 애는 오늘 처음으로 샴프 모자 안 쓰고 머리를 감았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혼자서도 목욕할 수 있을 것 같다.

작년까지는 어린이날 선물로 좀 비싼 걸 사줬는데, 이제 고가의 로봇 장난감은 안 사주기로. 적당히 있으면 모르겠는데, 너무 많이 갖고 싶어하는데, 실제로 사는 데 도움은 전혀 안 되는 것 같다. 큰 애는 조립식 소형 글라이더, 둘째는 옥토넛, 바나클 손목 시계.

맨날 서로 소리지르고 싸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루에 5분에서 10분 정도. 그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천국에 있는 것처럼 즐겁고 행복하다. 그 행복감은 글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실제로 촬영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전달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닌 것 같다.

연휴가 길다. 월요일까지 버텨야 한다. 내일은 근처 계곡에 놀러 가기로 했다. 월요일은 다큐 촬영이 있어서, 내가 몇 시간 빼야 한다. 직접 다큐를 만드는 건 당분간 손을 놨는데, 뭔 놈의 인생인지, 인터뷰도 해야 하고, 미니 나레이션도 해달란다. 그리고 나레이션 원고도 써달란다. 좋은 일이니까 도와주기는 하는데, 어쨌든 지난 몇 년간 다큐를 만들거나 관여하거나, 무관하게 지나간 시간이 거의 없는 듯하다. 하다 못해 라디오 다큐도 같이 하자고 해서, 오 플리즈, 전 애봐야 해요.

여유가 생기면 노년에는 경제 다큐 만들면서 지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는 한다. 박근혜 시절, 방송이 꽉 막혀 있을 때에도 하다보니 다큐는 계속 만들거나 관여했었다. 돈 되는 일은 아니지만, 보람은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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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배려가 뭔지 물어봤다. 막 가르쳐줬다. 그러자 질서가 뭔지 물어봤다. 애들 어린이집 벽에 붙어있는 말들이다. 또 가르쳐줬다. 그럼 줄 서는? 질서와 줄 서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줘야 하는데, 웃느라고 설명이 안 된다... 애들 귀에 질서와 줄 서가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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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어떻게 하면 덜 마실까, 6개월 전부터 고민하던 일이다. 별 뾰족한 답이 없다. 일단 제일 간단한 것부터. 책과 관련한 일로는 술 안 마시고 차만 마시기로. 그럼 전체 술 마시는 수요의 절반이 준다. 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술 마시지 않고 결정하는 법, 이걸 잘 못 배웠다. 책에 관해서는, 부탁할 일도 없고, 내키지 않는데 결정할 일도 없을 것 같다. 굳이 술을 마시면서 해야 할 경우는? 잠깐 따져봤는데, 최소한 책에 대해서는 없는 것 같다... 차만 마시고 결정하는 게 좀 얄미워 보이기는 할텐데, 약간 얄밉고 야박해보이는 것이 불편하다고 계속 살 찌는 삶을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40대 때에는 죽어라고 돌아다니고 이것저것, 쓰러질 때까지 뭔가 했다. 아무리 처먹고, 아무리 처마셔도 살찌는 법이 없었다. 나도 이제 50이다. 처마시는 대로 다 살로 간다. 하는 일도 딱히 없고. 끈 흔들어줘도 이제는 목운동, 아니 눈운동만 하는 야옹구와 내가 딱히 다르게 살지는 않는다. 이런 거 해야 하지 않느냐, 누가 말해도 눈운동만... 술이라도 덜 마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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