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먹고 사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 요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게, 책이라는 게 묘한 거다. 쓰면 쓸수록 쓸 얘기가 늘어난다.

 

나는 책 쓰는 것을 직업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하다 보니까 하고 싶은 얘기가 생겨서 책을 쓴 거지, 책 쓰는 게 직업은 아니다. 죽을 때까지 쓸 마음도 없다. 적당히 하다가 쓸 얘기 다 떨어지면 내려 놓아야지, 그런 마음으로 산다. 그게 10년이 넘었다.

 

10년 내내 2~3년 정도의 출간 예정을 늘 가지고 있었다. 가졌다기 보다는,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 시간이 그렇게 편치만은 않았다. 예정된 시간, 그거 재미없다. 그 시간을 지나면서 배운 게, 출간 일정을 미리 잡지는 말아야겠다..

 

그렇기는 한데, 내년에는 정말 바늘 하나 찔러넣을 틈이 없을 정도로 꽉 차 있다. 그 다음 해의 일정이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은, 절대로 장기계획을 세우지 않겠다는 신념 때문이다. 스스로 내 삶을 재미없는 일정이라는 틀 안에 가둘 이유가 전혀 없다.

 

책을 계약하면 계약금을 받는다. 돈으로서 큰 의미는 없다. 나는 그래도 좀 많이 받는 편이기는 한데, 어차피 받을 돈을 미리 당겨서 먼저 받을 뿐이다. 프로야구 같은 데에서 보는 사인 보너스, 그런 건 아니다. 둘째 아프고 돈이 빠듯할 때에는 나도 계약금 받기는 했는데, 보통은 안 받는다. 앞으로는 따로 받을 생각은 없다. 그러면 쓸지 안 쓸지도 불투명한데, 출판사하고 미리 먼저 뭘 약속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몇 년치 일정을 미리 가지고 있다는 것이, 사실 병신들이 하는 짓이다. 내가 그 병신 짓을 10 년 넘게 했다. 해보고 나니까, , 내가 병신짓을 한 거구나..

 

물론 계약금을 많이 받으면 출판사에서 좀 더 열심히 팔아주기는 하는데, 그건 외국 작가들 얘기다. 엄청나게 돈을 주고 외국 번역서 들여올 때에는 그렇게 하는데, 한국에 있는 대형 출판사 하시는 분들이 국내 작가들에게 투자하고 뭐 그런.. 그럴 생각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작가들 잘난 척 하는 거 눈꼴 셔서 일부로라도 안 하겠다는 입장이 99.99%.

 

독자들이 책 안 사줘서 출판이 요 모양 요 꼴이기는 한데, 그 얘기는 대형 출판사들이 할 얘기는 아니다. 당신들은 한국의 작가들을 어떻게 대하셨는데? 개차판 아니면 쪼다.. 지켜보는 마음이 아프다. 존경은 못 하더라도 존중은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감?

 

하여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책을 쓰면 점점 쓸 내용이 늘어난다. 이건 데뷔할 때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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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야구는 재밌게 봤다. 시즌을 마감하는 경기. 영화 머니볼에서 빌리빈은 마지막 경기에서 지면 꽝이라고 했다. 그 마지막 경기다.

영화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선의 8번 타자다." 원래 8번은 투수들이 들어가는 자리다. 지명타자가 있으면 그 팀에서 제일 못하는, 수비 전문 같은 사람들이 들어간다. 하여간 타격으로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그래도 게임에는 나오는.

남은 인생, 8번 타자로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뭔가 해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고, 또 그럴 실력도 안 되고. 그래도 8번에서 뭔가 나오면 게임 풀어가기가 훨씬 쉬워진다. 누가 나한테 인생을 대하는 태도 같은 거 물어보면, "나는 조선의 8번 타자다"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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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도, 애들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오면 꼭 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된장. 일정표를 보니까, 점심 약속, 커피 약속, 오매나야 줄줄줄. 강연과 방송 일정을 다 없애고나니까, 또 뭐 별로 우선순위에 넣지 않아도 되어도 좋은 일들이 줄줄줄. 내 입장에서는 집에서 나가게 만드는 일은 다 일이다. 그리고 책 추전 부탁이 엄청은 아닌데, 꽤 온다. 잠시 생각을 정리해본다.

책 추천이 귀찮은 일이다. 특히 나에게 추천 부탁이 오는 책들은 어렵거나 까다로운 책들이다. 전에 내가 지금처럼 요 모양 요꼬라지 아닐 때에는 추천사나 해제로 어마어마하게 팔아준 책들이 있기는 하다. 연이나... 그것은 힘 좋던 시절의 일이고. 지금은 그냥 밥 세 끼 입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생각하는 시절. 내 추천사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까다로운 책, 그것도 읽을 일정에 없던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요즘 애들 보면서 책 한 권 읽는게, 진짜 없는 시간을 쥐어짜는.

그래서 추천사는 가급적 안 쓴다. 예전부터 그랬다. 꼭 써야 할 거면 차라리 좀 더 공을 들여서 해제를 쓰고, 해제 쓸 정도로 여유가 없으면 아예 안 쓰고.

이 짓도 10년이 지나니까 약간의 이해가 생겼다. 추천사도 10년이 넘었는데, 아직 추천사로 고마워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저자나 출판사나.. 사람이 원래 그렇다. 잘 되면 자기가 잘 한 거고, 안 되면, 다른 넘들이 못한 거고. (88만원 세대 때 남재희 장관이 정말 공들여서 추천사를 써줬고, 그 이후로는 가급 술 받아들인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나도 한 가지 배웠다. 정말로 고맙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바로 그 때가 아니라 훨씬 늦게라도 꼭 고맙다고 전화라도 한다. 그게 어려우면 안부 인사라도 한다. 쑥스럽다고 고맙다는 말을 미적미적하면, 나중에 진짜 어색해진다. 고맙다는 말은, 고맙다고 생각드는 순간에.

출판사에서 부탁오는 경우는 거절이 쉽다. 내가 하루 단가로 생각하는 나의 일당은 50만원이다. 난 가끔만 일하니까. 물론 단가 안 맞거나, 돈 안 줘도 남들 돕거나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한다. 돈 내고도 한다. 그렇지만 상업적인 활동의 최소 단가는 50만원이다. 그 밑은.. 원칙적으로 안 한다. 애 둘 보면서 한 번 움직이기 위한 원가를 생각해보면, 그 이하로는 정말로 삶만 힘들어지고 고달픈 뿐이다. 추천사의 원가는.. 뭐, 택도 없다.

머리 아픈 경우는 저자가 직접 부탁하는 경우. 이 순간 참, 다양한 종류의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그걸 해봐서 좀 더 생각이 많아진다. 거절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편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내가 거절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사람은,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야.

냉정하게, 한다 안 한다, 이것만 결정한다. 안 하는 경우에는 최대한의 예절로, 하는 경우에는 아주 짧고 드라이하게 '예스까 노까', 이렇게만 대답한다. 나머지 얘기는 원고로.

추천사 하나를 오늘 내로 써야 하는데, 추천사는 안 쓰고, 추천사에 대한 글만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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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요타 센다이 공장에서 위기가 오면, 요넘으로부터 초기 기동이 시작된다..)

1.

<모피아>사 손에서 나온 건 큰 애 막 태어난 그 즈음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대선이 있었다. 드라마 판권은 팔렸는데, 박근혜 정권, 결국 편성되지는 않았다. 영화 판권은 막판에 서고. 하여간 그런가보다 했다.

 

처음에 <모피아>는 공무원의 부패와 관련해서 3부작처럼 디자인했었다. 두 번째는 교육 마피아, 세 번째는 건설 마피아.

 

두 번째 얘기는 이화여고 학생과 중앙고등학교 학생의 사랑 이야기로 구상을 했었는데, 얘기가 너무 슬펐다. 그래도 좀 덜 무겁고, 조금은 경쾌하게 하고 싶은데, 이 얘기를 너무 슬프고 칙칙하지 않게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 고민을 하다가 결국 모피아 시리즈는 손을 놓았다.

 

2.

2년 전 여름, 정권이 바뀔 거니까 <모피아>를 영화로 살려보자는 얘기들이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안 한다고 했다. 그 사이에 드라마 판권은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벌써 이미 몇 년 전에 지난 얘기를 또 붙잡고 있는 것보다는 새로운 얘기를 만드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해서 새로 잡은 라인이 결국 <당인리>가 되었다. 모피아 작업할 때 그 팀이 그대로다. 그 사이 꽤 많은 변화가 생기기는 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어쨌든 너무 돈 없어서 헤매던 그 시절보다는 조금은 나아졌다. 초근목피 수준은 넘어섰다.

 

그렇지만 내년 한 해만 더 고난의 행군을 하자고 했다. 아직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고, 돈을 넉넉하게 쓸 때는 아닌 것 같다. 한 해만 더 고생을 하자고 했다. 최소 비용으로,최소 조건으로.. 물론 그렇다고 해도 <모피아> 쓸 때처럼 그렇게 정말 아무 것도 없이 전전긍긍하는 상황은 아니다. 그 때는 이준익도 어려웠고, 우리들 모두 다 개인적으로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기를 지내고 있었다. 사회도 어두웠다. 명박 시대 막 끝나고, 다시 박근혜와 함께 5년을 지내게 된.

 

3.

<당인리>는 전기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소설을 표방한다. 겉만 그렇게 하려는 게 아니라, 진짜 얘기도 기술과 기술 사이에서 벌어지는 충돌과, 그 밑에 숨은 음모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음모를 벗어나서 이기게 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남자들에 치여서 후방 지원을 하는 자리, 그야말로 한직으로 현업에서 밀려난 세 명의 여성 엔지니어에 대한 얘기다. 그리고 역시 엔지니어인 처장급 남성이 한 명 나온다. 여성 스리톱에 남성 한 명,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장 최신의 전력 관련 기술들이 사건 클라이막스 즈음에 대거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 시퀀스는 실제로 센다이 대지진 이후 만들어진 토요타 센다이 공장에서 지역 위기 상황에 대비해서 설치, 운영 중인 바로 그 시스템을 모티브로 디자인했다. 기본적으로는 최신의 덴마크 연구와 일본의 연구들을 결합, 지금 우리가 뭔 짓들을 하고 있느냐, 이 개명천지에.. 고론 얘기들이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수소차 얘기하는 아저씨들이 지금 뭔 짓을 하고들 하고 계시는 것인지. 2년 전 최초의 구상에서 수소차는 아주 약하게 들어갔는데, 지금은 서브 라인 중에서는 메인 급으로. 어느 정권이나, 에너지는 별로였다. DJ 때가 그나마 좀 나았던 것 같기는 한데, 그 때도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기는 어려웠다.

 

4.

겸임교수는 두 번을 했다. 두 번 다 공대 대학원이었다. 그냥 숨 죽이고 잡 일 해주면서 기다리고 있으면 교수 되는 길이었는데, 30대의 내 나이에 숨 죽이고 기다리면서 살기가 싫었다. 성공회대와 연대에서 강의 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강의를 공대에서 했었다. 그런 이유로, 내 후배와 학생들의 대부분은 공대생들이었다. 내 주변에 공대생들 바글바글하다.

 

기술에도 드라마가 있다.”

 

얼만 동료에게 했던 얘기다.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도 드라마가 있다. 그렇지만 기술의 내면에도 드라마가 있다. 왜 우리는 220 볼트를 쓰는데, 미국과 일본은 아직도 110볼트를 쓸까? 한국이 선진국이라서? 그들이 우리보다 민주주의 국가라서 그런 건 아닐까? 그리도 구석구석에 수많은 사연들과 사연들 그리고 사회의 작동 방식이 숨어있다. 그런 얘기가 하고 싶어졌다.

 

5.

애들 보느라고 준비하고 구상해놓은 것들이 너무 내깔려져 있었다. 내년부터는 너무 묵히지 말고 좀 정리를 하나씩 해나가기로 했다.

 

급하게 밀린 게 SF가 하나 있고, 정치 코미디가 하나 있다. 정치 코미디는 기본 틀은 거의 다 잡았는데, 그야말로 일상에 치이고 치여서. 고양이 애니메이션도 미루어 둔 게 너무 미루다 보니.. 이제는 기억마저도 가물가물.

 

당장 뭘 급하게 할 생각도 없고,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몇 년 동안 여유생기면이라는 별 되도 않는 핑계로 미루어 둔 것들을 내년부터는 하나씩 정리해 나가려고 한다.

 

그리하야 내년은..

 

추수는 언제할지 모르지만, 씨를 뿌리는 한 해로. 가난은 하지만,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해서, 많은 씨를 뿌려두는 한 해로. <모피아> 이후 지난 6년을 돌아보면, 정리는 제대로 못했지만, 이것저것, 하기는 참 많이 해두었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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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출장 갔다왔더니 자판이 없어졌서 깜짝 놀랬드랬다. 애들이 컴퓨터 놀이한다고 자판을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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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의장이랑 몇 달만에 점심 식사. 이 양반도 몇 년 사이에 많이 늙었는데, 머리만큼은 아직도 염색 안 했다고 자랑을. 그렇게 오랜 기간을 같이 지냈는데,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없어서.. 국회의장 해보니까, 처음에는 2년이라서 좀 섭섭했는데, 막상.. 2년이면 충분한 것 같다. 웃겼다.

2년간을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었다. 이제는 하는 일도, 가는 길도 달라서, 시간 내서 그냥 얼굴이나 보는 사이가 되었다. 세상 사는 게 그렇다. 만났다가 또 헤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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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자문?

아이들 메모 2018. 11. 5. 09:32
엄마가 계속 슬퍼하기만 하면 누가 밥해줘?"

둘째가 말했다. "아빠가 밥해주면 되잖아."

"아빠가 자면?"

"아빠가 조금만 자고 일어나서 밥해주면 되잖아." 둘째가 또 말했다. 오늘은 큰 애가 야외 학습이라 8시 50분까지 가느라고 아침부터 생난리가 벌어졌다. 내년에 큰 애 학교 들어가면 진짜 어떡하나 싶다. 아내가 깨우면 난 잘 안 일어난다. 애들이 깨우면 잘 일어난다. 무지막지하게 깨우니까, 봐주는 거 없다. 아내도 아침 잠이 많은 편이다. 아침에 배고프다고 애들이 깨우면 방법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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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동안 핸펀 주소록을 거의 관리하지 않고, 그냥 더하기만 하고 살았다. 1700명.. 차 블루트스 핸펀 db에 1000명만 들어간다. 어지간하면 그 선에서 문제 없었을 것. 얼마나 내가 너저분하게 살았는지, 느낌이 팍 왔다.

별 다른 방법도 없어서 그냥 시간 날 때마다 손으로 하나씩 지우기로 했다. 김씨 동네 막 끝났다. 우와, 이렇게 많은 김씨들이 있었다니.

앞으로 차 한 잔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기준이다. 용민이 남고, 김어준? 그래도 술 한 잔 할 가능성이 높은. 남고. 그 사이에 장관된 사람이 몇 명 있는데, 아무래도 이 번호로 연락해서 차 한 잔 마실 일은 없을 것 같다. 방송할 때 알았던 사람도 많은데, 필요하면 지들이 알아서 연락하겠지. 문재인 태그로 18명이 있는데, 이것도 일괄 삭제. 김두관 번호는? 차 마실 일 진짜 없을 것 같다. 꼭 술 한 번 마시자고 돌아섰는데, 그리고 술 마실 일이 없었던.

한살림이나 ymca 간사들 번호 지울 때 좀 생각을 했다. 어렵던 시절, 같이 등을 대고 건너던 사이이기는 한데.. 필요하면 자기들이 알아서 연락하겠지.

여의도에서 무슨 일을 할 일은 없을 것 같고, 정부에 다시 들어갈 일도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방송을 다시 할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지난 시간의 일이다. 사실 2년 전에 일괄 정리를 한 번 했었어야 했는데, 그럴만한 틈이 없었던 것 같다. 마침 직장 민주주의, 최종 수정까지 탈탈 털고 나니 잠시 마음의 여유가.

특별히 유별난 일 하지 않는 이상, 나는 100명 정도의 전화번호면 충분할 것 같다. 어쩌다가 1,700명까지 늘어났을까? 너저분하게 살아서 그렇다. 잠시 반성.

늘 보고 일하는 동료는 다섯 명도 많다. 정신없어서 그렇게 많은 숫자가 같이 돌아다니기 어렵다. 1년에 한 번 차 마실 정도의 사람은 100명이 안 된다.

총리실에 있던 시절, 수첩 전화번호칸이면 깔끔하게 다 들어갔다. 그 수첩이 내 삶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준 수첩이 되었다.

어느 날 전화번호 옮겨적다 보니까, 된장.. 절반이 박사고, 나머지는 고위 공무원들이네. 뭔 인생을 이렇게 대충 산 거야? 그 고민이 커지고 커져서, 결국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내 삶이 생겨났다.

100개의 전화번호면 충분하게, 그렇게 단촐하게 살아야 한다, 나이를 처먹었으면. 치부책 만지듯이 핸펀번호 들여다보면서 넉넉함을 느끼면.. 지옥갈 것 같다. 100개로 넘치는 삶을 단촐하게 살 수 있으면, 천당갈 가능성이 높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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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칼럼 연재..

낸글 2018. 11. 1. 14:38

한동안 칼럼 쉬었는데, 내년부터 연재해달라는 부탁이 와서.. 그냥 먼저 오는 것. 한동안 정책에 관한 것들을 주로 썼는데, 한국 경제의 근본 체질에 관한 것 혹은 기본에 관한 것들을 써보려고 한다.

이런 말 하면 동료들한테 미안하기는 한데, 느무느무 양아치처럼 국민경제를 운용한다. 이게 청와대나 기재부 욕만 한다고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돈 생기자마자 포르쉐 사는 사람들을 봤다. 참 품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르쉐나 람보기니가 품위를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대가리에 똥만 들었다는 느끼만 주지..

나는 품위를 추구한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도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수 있고, 그런 게 보장받는 나라를 원한다. 좋은 경제는 어렵고 힘들게 살아도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산책하는 사람에게 품위가 느껴질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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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저자로 살면서 행복한 것은 내고 싶은 책을 내 맘대로 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다 잘 팔리는 건 아니지만,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준비된 때에 낼 수 있는 것도 큰 복이다. 팔릴 책이 아니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책을 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내 자존심인지도 모르겠다. 뭐가 팔릴지, 사실 나도 모른다.

 

경제 대장정 시리즈 쓰던 시절에 마지막 책으로 과학과 기술의 경제학을 배치했었다. 결국 이 책은 못 썼다. 복잡한 사정이 있기는 했는데, 결정적으로는 황우석 사건 때 확 질려서 그렇다. 황우석한테 속은 사람들은 아직도 잘 이해가 안 가기는 한다. 총리실 시절에 회의차 참석한 그를 잠시 본 적이 있다. “사기꾼 맞네…” 우리는 다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참여정부 때 죽여놨던 사업들을 다시 살려냈다. 다 속았는데, 명박만 안 속았다. “어떻게 된 사람이 정치인인 나보다 말을 잘 해.” 직관적으로 명박은 황우석이 사기꾼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황우석 사건 때 아이고 사람들 지랄들을 하시는데, 그 때 진짜 확 질렸다.

 

말로는 지식경제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지금 지식을 만들거나 담당하는 사람은 다 배곯아 죽기 직전이다. 연구하는 사람, 글 쓰는 사람, 책 쓰는 사람, 그야말로 지식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 “밤새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물어보게 생겼다. 잘 하면 된다는 개떡 같은 소리나 하고.

 

토건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대안으로 생각한 게 지식경제와 문화경제다. 지식도 힘들고, 문화도 힘들고.. 겨우 김동연이 살 길이라고 생각한 게 예비타당성 평가 줄여줘서 공사 좀 많이 하라는. 빠가..

 

경제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필요한 데 돈이 들어가게 하는 게 기본이다. 경제공무원들이 뭔가 아는 것 같은데, 너무 편하게들 사셔서 그런지, 그냥 자기 친구들이나 동창들에게 돈이 들어가게 하는 게 경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쨌든 지식경제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한 번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갈 길은 이거라고 생각하는데, 청와대에 있는 아저씨들은 아무래도 해저터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건 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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