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가 부도의 날', 나는 재밌게 봤다. 사실 경제를 다룬다고 하면서 옆문으로 들어가, 뒷문으로 새버린 영화들이 많다. 그렇다고 '빅쇼트'처럼 정색을 하면서 만들기에는 아직 관객들을 못 믿는 분위기도 있고. 그런 점에서는 미덕을 어느 정도는 갖춘 영화다. 나는 시작하고 조금 뒤부터 울기 시작해서, 영화 끝날 때까지 내내 울었던 것 같다. 내 삶이 자꾸 생각나서.

IMF 금융구제 발표가 났을 때 경남도청에 있었다. 비행기 타기 직전에 들었는데.. 그 때 비행기 같이 탔던 세 사람 중의 한 명이 나중에 파주 시장이 된 이준원이었다. 진짜 친형처럼 살갑게 지냈었다. IMF 구조조정 한 가운데에서 그가 현대자동차로 같이 가자고 했는데, 나는 그냥 현대를 그만두고 에너지관리공단으로 옮겼다. 여기까지야 그냥 다들 겪었을 지극히 평범한 IMF 에피소드인데, 파주 시장이 된 이준원은 나중에 강물에 뛰어들어가 투신자살하게 된다. 참.. 내가 마음을 붙인 사람들, 너무 많이 죽었다. 그 시절의 복잡다난하던 생각이 나서, 영화 보는 내내 울었다.. 울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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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정훈과 여의도에 있던 포장마차에서 밤늦게 소주 잔을 기울이던 시절이 있었다. 나주 시장이던 신정훈이 막 초선의원이던 시절이었다. 지난 총선의 농업 공약의 마지막 조율을 그와 하게 되었다. 그의 동료였던 이재수와 민주당 정책위 농업담당, 그렇게 마지막 테이블 위에서 소위 넣고 빼기를 하였다. 아무도 농업에 관심이 없었는데, 내가 직권으로 테이블을 열었다. 그 때 나는 민주당 정책공약단 부단장이었다. 단장은 광주 시장 된 김용섭이었고.

 

그게 내가 신정훈과 이재수를 본 마지막 날이었다. 신정훈은 신정부 들어가서 농업비서관이 되었다. 이재수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춘천 시장이 되었다. 지난 총선이 농업에 관한 문제에서 내가 공식적으로 관여한 마지막 순간이다. 이제 아마도 더는 내가 농업 문제에 관여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2003년부터니까, 농업연구모임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농업 관련된 문제에 관여허게 된지 15년 정도 지난 것 같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정책 파트너로 잠시 논의를 같이 했던 박창길 박사는 농촌경제연구원장이 되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시절이었다. 많은 것을 같이 한 윤석원 교수는 결국 은퇴하고, 귀농하여 진짜 농사군이 되었다. 한 때 등 대고 지옥의 불길을 같이 걸어가던 사이인 송기호 변호사는 아직도 어두운 밤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이 둘 돌보는 아빠가 되었다.

 

애초의 경제 대장정 시리즈의 10 번째 책이 농업경제학이었다. 나는 대장정을 끝까지 마무리하지는 못했고, 문화 경제학 이후로 시리즈를 세워놓았다. 그렇게 뒤로 밀린 농업경제학을 이제는 마무리하려고 한다.

 

2.

아마 순서대로 하면 38번째 책이 될 것 같다. 37번은 당인리다. 39번은 아직 유동적이다. 39, 40번의 순서가 바뀔지도 모른다.

 

형식은 아빠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하려고 한다. 농업을 공부한 아빠가 별 생각없이 고 1이 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원래 이 형식으로 책을 한 권 준비해둔 게 있는데, 그건 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딸은 태어나지 않았고, 망했으요..

 

편지 사이의 에피소드를 통한 바깥 얘기도 어느 정도는 만들어볼 생각인데, 꼭 그런 형식에 얽매일 생각은 없다. 우리 큰 애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보여줄 편지를 쓴다는 마음으로.. 당연히 1, 2년 사이에 변하게 될 정책은 그냥 실루엣만. 기본에 해당하는 얘기를 고1이 알아먹을 수 있을 수준으로 쉽고 간략하게.

 

시간 나는 대로 편지 한 통씩. 편지를 잘 쓰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편지를 많이 쓴 것은 사실이다. 정말 많이 썼다. 말로 하기 어려운 것을 편지로 쓰는, 나의 오래된 습관이다. 나만큼 편지 많이 쓰는 사람으로는 조한혜정 교수 정도 생각난다. 이 양반도 정말 편지 많이 쓴다. 10년 넘게 중요한 일들은 거의 다 서로 편지로 오고 갔던.

 

3.

이 작업은 좀 더 개방적으로 해보려고 한다. 대략 50장의 편지를 쓰면 책 작업은 끝난다. 아직은 좀 생소한 푸드플랜에 편지 한 통, 농업혁명이라고 했던 화학농의 도입에 편지 한 통, 새마을운동의 21세기적 해석에 편지 한 통, ‘핸드폰 팔아 쌀 사 먹으면 된다고 했던 경제관료들 얘기로 편지 한 통, 이런 식으로 할 생각이다.

 

결국 작업은 50개의 주제를 추리는 일과, 편지를 잘 쓰는 일, 이렇게 두 단계로 구성될 것이다. 작업이 성공하면, 50개의 편지를 읽은 후에 농업경제학 교과서 한 권을 숙독한 효과가 나올 수 있도록. 편지의 형식상 표, 공식, 그래프, 이런 건 안 들어간다. 아들에게 편지 쓰면서 그래프 그리는 똘아이가 있을까 싶다.

 

하여 1차 작업은 50개의 주제를 고르고, 그 안에서 스토리가 발생할 수 있도록 스토리 보드를 만드는 일.

 

제일 큰 관건은, 내가 알거나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니라, 이 시기에 필요한 얘기로 주제를 업데이트하는 일이다.

 

하여..

 

주제 50개를 고르는 일은 좀 더 공개적으로 블로그를 통해서.

 

꼭 선정되지 않더라도 뭔가 생각에 도움이 되신 분들은, 출간되면 책에 짧은 편지라도 적은 편지본으로 후사 (비밀댓글로 주소, 전번, 연락처 남겨주셔야 나중에 발송 가능합니다..)

 

출판사는 반비, 에디터는 '문화로 먹고 살기' 같이 했던 김희진씨..

 

(호박꽃, 어느 빛 좋은 9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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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온다

낸책, 낼책 2018. 11. 22. 16:00

월요일날 직장 민주주의 인쇄 들어간댄다. 올해는 4권을 내고 싶었는데, 결국 3권으로 마감한다. 각 책마다 크고 작은 일들이 예상치 않게 생겨나면서 조금씩 늦어졌다. 직장 민주주의는 인터뷰 7개를 중간에 하게 되면서 일정을 한참 뒤로 미루었다. 그리고 전체적인 구성도 새로 하게 되었고.. 미리 꽤 준비된 내용이라도, 이제 예전처럼 빠르게 하기는 어렵다.

내년부터는 이제 출간 속도를 확 늦추려고 한다. 두 권 반 정도 하면 좀 널널하게 할 것 같다. 앞으로는 두 권 내외에서 한 해 작업 분량을 맞추려고 한다. 그것도 힘들면 더 늦추고.

나머지 일들은 예전과 같고, 방송, 강연, 이런 거 다 없애고 하는 거라서 딱히 부담될 것 같지는 않다. 기고는 내년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들이 있기는 하고.

정말 특별한 경우 아니면 급하게 쓰는 책은 이제는 안 하려고 한다. '내릴 수 없는 배' 하면서 다시는 사회적 문제에 맞추어서 급하게 발간하는 건 안 하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이젠 나도 나이를 먹었다. 내 속도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당의 뻘짓 시리즈들 모아서 '놀부의 경제학' 같은 거로 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현재의 내 여력으로는 가당치도 않은 생각이다. 킬. 기왕 몇 년간 세종 들여다 본 거, 세종 평전 같은 거 써보라는 얘기도 있는데, 지금 내 코가 석자라서 세종의 이런 측면을 좀 보세요, 그렇게 분야를 넓히기에는 부담. 킬. 문화경제학 다음 버전으로, 진보 쪽에서는 문화 정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리 좀.. 필요는 한데, 애들 보는 입장에서 애들 업고 인터뷰 다닐 수도 없고. 킬.

이런 책 저런 책, 엄청 많은 제안들이 있지만, 여력이 안 되는 관계로, 일단은 그냥 하던 거나 제 날짜에 마감할 수 있게.

이렇게 12월이 온다. 겨울이 온다. 이번 겨울은 아주 긴 겨울이 될 것 같다. 내년 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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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두 권을 읽기로 했다. 가슴이 차가와지는 책, 가슴이 뜨거워지는 책. 보들레르, 내가 참 차가운 가슴으로 살았던 시절에 읽은 책들. 슈트 스토리, 이 책의 한국편이 언젠가 써보고 싶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책. 패션지에 정기 기고할 일이 생겼는데, 광고주들 너무 불편하게 할 것 같다고 결국 스톱. 나이 먹고 좀 한가해지면 나도 슈트 책 한 권 쓸 생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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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다페스트였다. 도나우강에 일본 정부 후원을 받아서 UN에서 배를 띄웠다. 막 사회주의에서 전환된 부다페스트는 딱 한국 70년대 모습 같았다. 공항에서는 서독 마르크를 받았고. 해질 무렵부터 진짜 호화판으로 먹고 마시고. 그 때 도나우강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내 인생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시절 외교부에서 파견 근무를 나왔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있었고, 청와대 외곽 조직 한 군데에서도 파견 희망을 했었다. .. 눈 딱 감았으면 UN 기구에 좀 높은 자리로 가는 순번이었다.

 

IEA, International Energy Agency, 국제에너지기구, 파리에 본부가 있다. 우리는 그걸 International Excursion Agency, 국제소풍기구라고 불렀다. 절경마다 찾아다녔고, 툭하면 칵테일 파티였다. 그 시절 나는 개혁파 young chair, 진짜 젊은 의장이었다. 몇 년 지나면 개혁파 지지로 서브스타 의장 정도는 할 거라고 사람들이 생각했나 보다. 하여간 혼자 차 한 잔 마시기가 어려웠다. 화려함으로 치면 극강의 화려함을 추구할 수 있는 자리였는데..

 

부다페스트에서 이렇게 사는 건 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2.

‘88만원 세대의 출발 버전이 여러 개가 있다. 세 번째 버전인가가 LG 투수 이상훈 얘기로 시작하는 버전이 하나 있었다. 그걸 갈아 엎으면서 어깨에 힘 빼고 던지기라고 메모를 적었다. 그 앞의 얘기들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었다. ‘첫 섹스의 경제학이라고 이름 붙인 장은 그 한참 뒤의 버전이었다. 결국 그걸로 출발점을 삼았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사는 게 좀 힘들기는 했다. ‘악으로 깡으로’, 사실은 이런 말을 더 좋아했던 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악도 없고, 깡도 없다. 남은 건 늘어난 배 밖에 없다. 배가 나오고 살이 붙이 시작하면서, 존심도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악과 깡으로, 그런 말이 정말 몹쓸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천민 자본주의가 해줄 거 제대로 안 해주면서 그냥 쥐어짜기만 하려다 보니까 이런 이상한 말들을 만들어낸 거 아닌가 싶다.

 

악과 깡을 권하는 시대, 정말 거지 같은 시대를 우리가 살았다. 요즘은 좀 낫나? 올해 프로야구의 키워드는 절실함이었다. 절실함이 있는 선수와 절실함이 없는 선수, 악과 깡의 21세기 버전일 뿐이다. 지랄맞다.

 

3.

나라고 가슴 아픈 순간이 없겠나? 더럽게 안 팔리는 책들, 가슴 한 켠에 묻을 때는 솔직히 눈물 찔끔 나려고 한다. 그래도 순간이다. 요즘은 훨씬 쉽게 그런 걸 잊는다. 남 탓도 이젠 잘 안 한다. 그냥, 재수 없는 것에 불과하다. 잘 되든, 못 되든, 과도한 의미부여 같은 것도 잘 안 하려고 한다. 그냥, 재수가 없는 것이다. “내 탓이요”, 요 딴 것도 싫다. 남들은 뭔데? 거적데기여?

 

요 몇 년 사이, 남들한테 화 내는 일도 거의 없다. 유일하게 화 내는 건 우리 애들. 좀 정리 좀 하시고 사세요들.

 

그냥 기능적으로, 한다, 안 한다, 이렇게는 안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무감각하고 무심하게 조건만 얘기할 뿐이다.

 

그래도 가끔 어깨에 더 힘을 빼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기도 하다. 진짜 이상하게 끼어드는 벤츠 보고, 저 놈의 벤츠 새끼가.. 그리고 금방 후회한다. 왜 욕을 해, 어차피 듣지도 못할 건데, 비겁하게 숨어서.

 

4.

뭔가 정부기관 기관장들 모아놓고 석학 발표 같은 것을 해달라고 한다. 뭔지도 모르고 추천한 사람 얼굴 보고 그냥 한다고 그랬더니, 발제문이 필요하단다. 젠장. 그냥 생각 자유롭게 얘기하면 된다고 하더니, 뭔 발표문이야.

 

가만히 돌아서서 생각해보니까, 근데 내가 석학인가? 나는 그냥 애 둘 키우는 아빠일 뿐. 뭔가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한다는, 바로 그 생각을 안 한지 벌써 몇 년 된다.

 

나이만 처먹으면 그냥 대우가 높아지는 것은, 전형적인 개발도상국의 장유유서 분위기. .

 

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에 도달한지 몇 년 된다. 2년 조금 넘는 것 같다. 광주의 모 공기업 사장 자리 안 간다고 한 뒤로, 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에 드디어 도달한 것 같다.

 

남들은 불쌍하게 보는데, 나는 이 편안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몇 년간 내 속을 몇 번씩 다 뒤집어가며 남은 허세들 탈탈 털었다.

 

그래도 아직은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젠장, 나오기 시작한 배에 신경 쓰여서 배에 힘을 주다 보니, 온 몸에 다시 힘이 들어가는. 이거 아닌데.

 

5.

어떤 데에서 올해의 책 선정 해달라는 부탁이 왔다. 지방 여행 중이라, 바로 답변을 못했다.

 

잠시 생각을 했다. 올해의 책 선정을 전혀 안 한 건 아닌데, 나는 무슨 심사위원 이런 거 안 한다. 내일은 그 얘기를 하고, “저는 빼주세요”, 통화를 해야겠다.

 

그런데 이런 마음에는 약간의 심통도 있다. 지 책도 제대로 못 파는데, 무슨 심사는 심사. 한 물간 노털 느낌 드는 것도 좀 편치는 않다. 써야 할 글도 잔뜩 밀렸구만, 책 선정이나 하는 건, 약간 가슴이 서늘한 느낌도.

 

좀 더 넓게 마음을 먹고, 이것도 예, 저것도 예, 그냥 그렇게 대충 살아야 하는데, 지켜야하는 원칙이 아직은 너무 많다. 이것도 안 해, 저것도 안 해, 이건, 그냥 기분 나빠서 안 해..

 

애 보는 아빠가 이 정도는 좀 가려도 되지 않나, 나에게만 넓고 관대한.

 

teleology라는, 목적론이라는 개념이 있다. , 별로 안 좋아한다. 그래서 생태학 공부를 시작하게 되기도 하였다. 인생에 도달할 목표, 그딴 거 없다. 하면 뭐하게? 하면 더 행복해질까?

 

개인이 집을 사는 게 목표가 아니라, 국민들이 집 같은 거 고민하지 않게 해주는 게 북구 스타일이다. 아직은 전환기다. 국가의 목표가 하나하나씩 개인에게 전이되어, 개인들이 결국 악과 깡으로 살게 만드는 개떡 같은 나라 흔적을 아직도 못 버렸다.

 

목표는 국가가 고민해야 하는 거지, 개인은 목표 같은 거 필요 없다. 그게 선진국이다.

 

꿈이라는 것은 로보트 태권브이를 만들고 싶다, 달나라에 가보고 싶다, 그런 것을 꿈이라고 부른다. ‘해저 2만리같은 것이 꿈이다 (그리고 쥘베른은 해저2만리에서 제국주의가 진짜 꼬진 것이라고 끊임없이 외친다..)

 

그래도 어쩌겠냐, 국민들 소득수준은 선진국인데, 개도국 수준도 채 못 마치는 청와대 행정을 보면서 살아야 하니, 자꾸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그래서 어깨에 힘을 빼고 또 빼야 한다. 그러면 정말 좋은 볼을 던질 수 있게 된다. 언젠가는.

 

(국립 제주박물관에서 다섯 살 둘째가 난리를 치면서 찍어준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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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표지 확정되면 인쇄 들어간다는 것 같다. 어쨌든 이 책을 경계로, 나도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 같다. 느낌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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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의 단장 빌리 빈은 머니볼 이론으로 2002년 20연승을 이루었다. 그해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한 보스턴 레드삭스가 거액의 연봉을 빌리 빈에게 제시한다.

가장 낮은 비용으로 가장 높은 승률을 추구하던 빌리 빈은 보스톤으로 이적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여기 이 낡은 구장에서 우승하고 싶다, 바로 여기", 이런 얘기를 한다. 의미 있는 얘기다. 머니볼의 단장도 돈에 의해서 움직이면, 팀 형성이 안 된다.

영화 <머니볼>은 40대 이후의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나는 계산 먼저 하는 게 하는 일의 거의 전부다. 이게 될까, 안 될까, 얼마가 들까, 얼마나 남을까, 그 계산만 한다. 그렇게 계산은 하지만, 나는 돈으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빌리 빈은 아직도 우승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젠 승진도 해서 팀의 부사장이 된.

행복은 우승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우승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행복이 아닐까 싶다. 10년 전에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우승을 못하는데.. 그렇게 생각했다. 요즘은 과정에 모든 게 있다는 생각을 나도 한다.

목표가 큰 의미가 있지는 않다. 목표를 달성한다고 해서 엄청나게 기쁜 것도 아니다. 그 과정이 아름답거나 의미가 있거나, 하다못해 작은 즐거움이라도 있어야 한다. 요즘 나도 생각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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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애들 자는데 옆에서 그냥 잤다. 늦게 자거나 일찍 자거나, 일어나는 시간은 어린이집 가는 시간으로 똑같아졌다. 내년에는 큰 애가 학교 들어가서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 이게 내 삶의 거의 유일한 고민인 것 같다. 하는 일이 없으니, 고민도 없다.

점심 때 최운열 의원과 밥 먹기로 했다. 참 복잡하게 얽힌 인연인데, 짧은 몇 달간을 뜨겁게 보냈던 것은 맞다. 복잡한 상황은 결국 간단하게 해소가 되었다 - 해결이 아니라. 둘째가 거푸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방법 없이 내가 애들 돌보는 수밖에 없었다.

오후에는 당인리 발전소와 서울에너지공사 견학가기로 되어 있다. 현대에 입사한 것은 96년이었다. 과장 특채라서 별도의 교육 과정은 없었는데, 그 대신 그 사람들이 공장 견학 프로그램을 짜주었다. 몇 주에 걸쳐서 공장 시설들을 돌아보았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달 공장 등 시설들에 들어가면서 살았다. 같이 가기도 하고, 혼자 가기도 하고.

20년이 넘게 그렇게 살다보니, 그게 생각의 원천이 되었다. 처음 인천의 전기로 보러 갔을 때 그게 내 삶의 일부가 될 줄은 몰랐었다. 공장도 가고, 유기농 현장도 가고.. 그렇게 살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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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애가 박스 위에 스타워즈 그림 그렸다. 정말 혼자 보기 아깝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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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연습장'이라고 부르는 블로그는 이래저래 사연이 참 많은 블로그가 되었다. <아픈 아이들의 세대> 첫 책 내고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이리저리 옮겨다니다 결국 티스토리에 정착.

요즘 눈으로 보면 진짜 불편하다. 기사 같은 거 다 손으로 긁어야 하고, 그것도 양식 뻑나고.. 귀찮아서 이제 그런 건 안 한다.

그래도 그런 와중에 <88만원 세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처음 여기서 벌어졌다. 그보다 더한 일들도 많이 벌어졌다.

나중에는 약간의 도장깨기 비슷하게 되서, "계백이 나오라카이", 좀 이런 피곤한 일들도 벌어지기는 했다. 그것도 시간이 흘러가니까 다 옛날 얘기가.

아이들 태어나고 아프고, 정신 없었다. 그리고 민주당 도와줄 때, 내가 가진 인맥 등 모든 걸 다 개방했는데, 블로그는 개방 안 했다. 뭐, 별로 그런 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고.

하여간 그 후에 황망하게 썰렁한 곳이 되었다.

그래도 여기에서 그 때 그 때 단상을 적으면서 36권의 책을 내게 되었다. 진짜 말 그대로 임시 연습장, 아직 정리되지 않은 초기 감성이나 톤 혹은 전체적인 얼개 같은 것을 여기에 적는다.

블로그는..

아주 까칠한 내 성격 그대로다. 볼려면 보고 말면 마..

나도 참 내 성격을 싫어하는 게, 이게 진짜 지랄맞다. 맺고 끊는 게, 너무 불같다. 좀 적당히 해도 될 것 같은데, 그게 아직도 안 된다.

좀 블러핑도 하고, 적당히 숨기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면서 포장도 해야 하는데.. 그냥 스트레이트 기사 쓰는 것처럼.

그래도 내가 만드는 시제품들은 사정이 있어서 공개할 수 없는 아주 일부를 제외하면 일단은 여기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연습장이면서 동시에 공방 성격을 좀 갖는다.

물론 내가 하는 모든 게 다 여기로 가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하여, "오늘도 걷는다"가 아니라 "오늘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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