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많은 한국인의 기대 수명이 오늘 좀 늘어났을 것 같다. 스트레스가 줄어도 기대수명이 늘고, 기쁜 감정을 느껴도 기대수명이 늘어날 것 같다. 지난 주부터 나는 술 마시는 횟수를 확 줄였다. 별로 열 받는 게 없다. 오랫동안 한국인의 삶에 상수처럼 있던 북한 위협이 확 줄어든 날. 그래도 역시 많은 사람들은 이런 날 술 한 잔 안할 수 없다고, 또 엄청 마실 것이다 (결국은 기대 수명의 균형을 맞추고야 마는, 무지막지한 5할 본능.) 내가 아는 영화감독은 오늘 오전에 TV 본다고 출근도 안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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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극은 어렵다. 위아래 편차가 너무 크다. 적당히 영점 맞추기가 어렵다. 잘 된 영화와 잘 안 된 영화 사이의 격차가, 하늘과 땅 차이다. 거기다 돈은 많이 든다. 적당히 작게, 이런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그걸 감안하고 봐주느냐, 그런 건 또 아니다.

 

영화 <흥부>는 여러 가지로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주었던 영화다. 매우 김주혁에게는 이게 유작이 되었다. 이래저래 쉽게 말하기가 어렵다.

 

원래의 얘기와는 상관없지만 글이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하게 된 영화로 <대장 김창수>를 생각할 수 있다. 이게 김구 얘기인 것은 마지막 엔딩에서나 사람들이 알게 된다. 그리고 그걸 끌어가는 큰 얘기는 인천 감옥에서 김구가 수감자들에게 한글과 한문 등 글을 가르치는 과정이다.

 

영화 <흥부>는 기본적으로는 작가에 대한 영화다. 여의도에만도 수만 명의 이무기가 있다고 하는 드라마 작가로 치환하고 보면 좀 더 편할 것 같다. 1류와 2류 사이에서 고민하는 많은 드라마 작가들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고, 뭘 꿈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영화 각본을 맡은 백미경 자신의 삶이 상당 부분 영화에 투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끔 각본의 세계관이 영화의 중심을 구성하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형식적으로나 본질적으로나, <흥부>도 그런 영화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흥부 얘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상해본 사람 역시 없을 것 같다. 글을 쓰는 작가, 흥부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시대상은 헌종, 조선조 후기의 최고 인기스타 효명세자의 아들이다. 효명은 그냥 아우라로만 나올 줄 알았는데, 후반부의 마당놀이 장면에서 탈을 쓰고 소환된다. 아 효명… (나도 효명세자에 대한 책을 쓰는 게 영원한 로망이다.)

 

그리고 수렴청정을 하는 대비, 어 누구지? , 깜딱야, 김완선이다. “피에로는 나를 보고 웃지”,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웃을 부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김완선의 등장에 , 이건 영화지”, 그런 느낌을 받았다. 역시 망한 영화인데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선조로 김창완 아저씨가 나온 적이 있다. 그 때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영화 끝날 때까지도 잔상만 남지, 김창완인 줄 몰랐다.

 

이후로는 장면 장면 넘어갈 때 개연성들이 좀 안 맞는다. 정치적 라이벌인 김씨가 사약을 받게 되는 장면은 딱 컷트 두 개로 처리된다. 물론 그 전에 눈치챌 정황들이 아주 없지는 않은데, 갑자기 , 이 배신자 새끼”, 요 대사 하나를 남기고 사약 마시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팽팽할 수도 있던 라이벌 구도의 형성이 무너지고 난 뒤에 영화는 다시 긴장을 끌어올리지는 못한 것 같다.

 

나중에 <심청전>의 저자로 설정된 천우희가 독박 옴팡 뒤집어쓰고 그냥 죽음을 맞는 것도 조금은 어색하다. 뭐야, 여자라서 저렇게 수동적으로 스승 사랑을 하라는 거야? <곡성>에서 소름 이빠이 오르게 했던 천우희가 갑자기 1차원적 인간으로 내려온 느낌이다.

 

원래 마당극이 이렇게 점프가 많잖아? 그럴 수도 있기는 한데, 원래 마당극의 인물들보다도 더 평면적인 인물들의 연속이다.

 

3.

결국 영화가 달려간 곳은 백성이다. 그리고 그 백성들은 임금에게 충성을 다짐하고 조가네의 역모를 막아낸다

 

이게 근본적인 딜레마이기도 하다. 너무 외국 것만 좋은 거시여, 그런 것도 좀 문제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마리 앙뚜와네뜨에게 달려가고 도망가려는 루이 16세를 막아서서, 결국에는 단두대에 올리는 그 기세등등한 프랑스 여인들의 얘기와는 좀 거리가 멀다. 굳이 이렇게 기능적으로만 작동할 백성 얘기를 보자고 앞에서부터 머리에 스팀을 올렸나, 생각하면 좀 뒤가 허무하다. 그게 백성 패러다임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는 왕과 귀족 그리고 외세인 일본의 한계를 넘어선 동학의 어린이개념은 더 모던하다. <흥부>에서 보여준 백성은 좀 올드하다. 왕이 나쁜 게 아니라, 조가나 김가에 휘둘리지 말고 제대로 좀 하라고 말이여옴머머머, 이거 뭔 말이여?

 

현실과 이런 백성들의 인식이 아주 다르다고 하기는 어렵다. 비운의 세자인 효명세자가 끊임없이 이 시대에 소명되는 것과 같은 이해다. 고종 역시 서류상으로는 효명의 핏줄. 효명이 왕이 되었더라면, 이 아쉬움을 떨쳐내는 것과 백성에 대한 끊임없는 호명이 올드해 보이는 것이 어느 정도는 같은 맥락일 것이다. <흥부>는 구조적으로 요 틀에 갇혔다. 그래서 익숙하고 때로는 진부해보이기도 하는, 흔히 하는 조선 말기의 역사 그대로다.

 

그래도 새로운 시도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 효명에서 철종에 이르는 기간을 우리는 맨날 비극의 역사라고만 하는데, 음악 등 예술의 눈으로 보면 가장 멋지게 예술이 피어난 기간이기도 하다. 왕실을 틀어쥔 세도가들 얘기만 이 시대에 있던 것 아닌 듯싶다. 그래서 이 시기에 집중한 얘기들이 좀 더 나왔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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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통 새 책을 쓰기 시작할 때 부담을 느끼거나 긴장하는 일은 거의 없다. 첫 파일을 만들 때, 그냥 여느 일상과 똑 같은 기분으로 그렇게 시작한다. 이번에는 좀 다르다. 이게, 뭔가 엄청 단단한 벽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시작할 때면 블로그 같은 데에 얘기를 시작하고, 사람들 반응을 좀 살핀다. 물론 그런 반응이 꼭 유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상관 관계가 있다. 직장 민주주의의 경우는, 진짜 벽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바닥을 모르는 심연. 구멍 밑의 깊이를 살피기 위해서 돌을 던져봤는데, 바닥에 닫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느낌? , 이건 뭐지? 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 old-fashioned love song… 요 느낌이다. 출간 기준으로도 나도 벌써 13년차다. 이런 식의 터엉, 요런 느낌은 처음이다. 반응의 감도는 알겠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쩌지? 방법 없다. 그냥 하는 수밖에.

 

2.

이 책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줄넘기를 다시 시작했다. 전에는 책 쓰는 중에는 수영을 주로 했었다. 잘 하는 건 아니다. 그냥 다른 건 할 줄 몰라서. 수영장 안 간지 1년쯤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전에도 한동안 못 갔고. 저녁 시간에 가야 하는데, 애 보다 보면 슁하고 나가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그 시간이면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규칙적으로 수영장 가기가 어렵다.

 

왜 줄넘기를 갑자기 시작했을까? 큰 애가 줄넘기를 막 배우려고 하면서 집에 줄넘기가 생겼다. 애들 것 뺏어서 줄넘기를.

 

설경구를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그냥 건너 들은 얘기다. 힘들 때 죽어라고 줄넘기를 했다고 한다. 설경구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은 격렬하다. 하여간 그가 힘든 시기를 겼었고, 아직도 겪고 있다고는 알고 있다. 그가 줄넘기를 하던 그 시절, 나는 그냥 술만 마셨다. 사실 나도 그 시절, 그만큼 삶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난 그냥 술만 마셨다.

 

설경구의 고난이 이제는 끝이 났을까? 아직은 잘 모른다. 영화 <불한당>에서의 연기는 꽤 산뜻했다. 그 시절에 그가 줄넘기를 하루에 만 개씩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냥 술만 마셨다.

 

술 마시고 책 쓰는 사람도 있다고 알고 있다. 좋고 나쁘고는 아니고, 스타일 문제다. 나는 한 잔이라도 마시면 그 날 일은 마감이다. 사진도 안 찍는다. 그렇기는 한데, 책 쓸 때 술을 자주 마시기는 한다. 이유는 많은데, 하여간 평소보다 자주 마신다.

 

3.

다음 주부터는 직장 민주주의 책 쓰기 시작한다. 이번 책 쓰는 동안에는 줄넘기를 하기로 했다. 안 그러면 내가 못 버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아예 안 마시겠다, 그러면 좋겠지만, 그런 건 좀 어려울 것 같고. 책과 관련해서 술을 마시지는 않기로.

 

이 정도면 내가 책과 관해서 가지고 있는 루틴을 거의 다 깨는 셈이다.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다. 직장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그만큼 벽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이제 나는 더 이상 분노로 움직이지도 않고, 경제적 필요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럼 절실함으로 움직이는가? 절실함, 그딴 것도 없다. 절실한 마음으로 내가 했던 것은, 사회적으로는 유의미했던 것 같기는 한데. 대체적으로 나에게는 아픔만 주었다. 나의 절실함은 나를 위한 절실함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재미가 있으면 딱 좋겠지만, 직장 민주주의는 재미와는 좀 거리가 먼 주제다. 특히 나에게는 이제 더욱 더 그렇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재미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 같다.

 

명분은 있다. 이게 중요하다는, 그런 명분은 있다. 그러나 명분만으로 사람이 전력투구하게 되지는 않는다. 명분을 향해서 움직일 때, 자기도 모르게 몸이 좀 굼뜨게 된다. 움직이기는 하는데, 머리 꽁지가 서면서 피가 팍 몰리는, 그런 느낌까지 오게 되지는 않는다. 그게 명분의 한계다.

 

그럼 이번 책은 무슨 힘으로?

 

나는 줄넘기의 힘으로 하려고 한다.

 

설경구는 하루에 만 개를 했다고 한다. 된장난 해보니까 천 개도 못한다. 천 개는 커녕, 하도 간만에 하니까 500개도 할까 말까. 그게 나의 줄넘기의 힘이다. 그래도 그 힘으로 직장 민주주의라는 큰 벽을 한 번 올라가보려고 한다. 에게? 그래도 술의 힘이 아닌 게 어디냐. 잘 와닿지도 않는 당위와 명분의 힘 보다는 그게 나을 것 같다.

 

그래도 이 힘든 일을 하는데, 나한테 보상이 좀 있어야 할 것 아니냐? (하루에 줄넘기 천 개 하고 무슨 보상!!)

 

내가 제일 하기 싫은 게 강연이다. 이번 책 무사히 마무리하고 나면, 책 나오고 하는 강연을 제외한 나머지 강연은 이제 내 인생에서 포에버 굿바이. 장소, 주체,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이제 더 이상 강연은 안하는

 

그리하여 나는 하기 싫은 줄넘기를 나에게 강요하고, 그 대신 무사히 마무리하면 따로 부탁받아서 하는 강연은 다시는 안 하는 것으로 내 안의 거래를 마쳤다 (나도 뭔가 남는 게 있어야…)

 

이렇게 나는 새로운 책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를 마치게 되었다.

 

나도 진짜 몸부림을 치는 중이다.

 

(간만에 애기똥풀 접사를 찍다 얻어걸린 벌. 조리개를 조금 더 조이고 싶었는데, 꿈지락거리면 벌은 그냥 날라가버린다. 그냥 사정 되는대로... 이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다음 주부터 쓰기 시작할 새 책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 긴장된 상황에서도 걱정이 내려가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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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달의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1981년 강연을 정리한 책이다. 레이건이 막 등장하고, 프랑스의 미테랑이 대통령 되는 그 즈음의 얘기다. 그 후로 흔히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돌풍이 불었고, 현실 사회주의도 붕괴했다. 그리고 21세기가 되었다. 이 케케묵은 책을 지금 와서 다시 읽을 필요가 있을까? 물론 읽어서 손해볼 책은 없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나는 경제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게 좀, 모호하다. 많은 경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되는 경우가 많다. 한동안 다들 이 표현을 앞에 걸기는 했는데, 하고 싶은 얘기가 저마다 다르다. connotation이라고 부르는 문제가 좀 생긴다. 다들 이해하는 함의가 달라서 서로 얘기가 잘 안 된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경우 아니면 아주 제한적으로만 이 단어를 쓴다.

 

또 한 가지는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간단하게 목적과 수단에 대해서, 민주주의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수단과 목적이 뒤집히기도 한다. 어떤 상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민주주의이지만, 많은 경우 민주주의가 그 자체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결핍으로부터 발생하는 수단과 목적의 도치 현상 같은 것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경제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나는 잘 쓰지 않는다. 경제가 원래도 좀 애매한데, 가급적이면 애매한 표현들을 나는 좀 줄이고 싶어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로버트 달의 경제 민주주의라는 오래된 표현을 다시 집어든 것은, 대한항공 조씨 일가 등의 희한한 행태로 기업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 좀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게, 좀 해도 너무하다 싶었다.

 

“1915년 연방대법원은 종업원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을 금지한 계약을 불법으로 본 캔자스 주법을 위헌으로 판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75페이지,

 

20세기 초반, 미국의 분위기도 좀 살벌했던 것 같다. 캔자스에서 노조가입 안된다고 하면 안되요, 이랬더니 바로 위헌 때려버린.

 

책 전체는 기업의 소유권, 즉 이건 기업이 내 꺼니까 내 맘대로 할래요 하는 기업 우선주의와, 사회의 일반적인 정의에 대한 규율이 있다, 이 두 가지의 충돌에 관해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뒷부분으로 가면서 자치기업(self-governing enterprise)의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노동자들이 회사를 소유하거나 혹은 의사결정에 중요하게 참여할 수 있는가, 있다면 그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그런 얘기다. 요즘의 눈으로 보면 협동조합이나 종업원 지주제 정도의 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상당히 이론적이고, 개념적인 측면도 있다.

 

사회주의권과 자본주의권이 한참 경쟁하던 시절의 얘기니까, 기업이라는 것의 운영방식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 모르지만, 내가 경영학에 대한 내 입장에 대해서 한참 고민하던 시절이 생각나서, 나는 나름 감회를 가지고 읽었다.

 

프랑스에 갔더니, 하지 않아도 되는 고민을 괜히 내가 학부 시절에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학이 좋아요, 경영학이 좋아요, 우린 이런 질문에 종종 부딪혔었다. 된장프랑스에는 경영학이 학부에 없쟎아! 대학원부터 시작된다. 별 필요도 없는 고민을

 

나는 조직론을 대학원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기업이라는 생산의 단위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 안에서 어떻게 결정하는가? 실제로는 완전히 다를 것 같지만, 생산과 유통을 결정하는 조직론적 구성에서 많이 다를까? 원론적으로는 엄청나게 다르다고 배웠는데, 막상 기술적 결정을 하는 데에서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버트 달이 자치기업을 보는 눈이 그렇다. 그래서 후반부로 가면서 좀 더 익숙했던, 20대의 내가 많이 생각했던 질문들을 만나게 되었다. 뒷부분의 얘기는 우리 식으로 하면 협동조합의 운영원리에 관한 얘기들이다. 사회적 경제를 생각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고.

 

가슴에 남는 구절들이 좀 있다.

 

왜냐하면, 공정이나 정의를 믿고 있기 때문에, 정치 질서는 공정한 데 반해 경제 질서는 지독히도 불공정하면 이것은 불행한 모순이기 때문이다.”

 

이게 요즘 우리 얘기랑 상당히 비슷했다. 정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정치에만 많은 사람들이 눈을 돌리면 지독할 정도로 불공정한 지금의 경제 구조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안 갖게 될 수도 있다. 유행하는 용어로는 격차 사회. 뜨끔했다.

 

촛불 이후의 민주주의라고 간판을 달아도 좋을 듯 싶다. 한 때 최장집 선생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로 빅히트가 나온 적이 있다. 그 출발점으로, 옛날 애기 보듯이 속 편하게 읽으면 좋을 책일 것 같다 (토크빌 얘기가 전반에 길게 나오는데, 토크빌이 익숙치 않으면 대충 무시하고 넘어가고 읽는데 큰 지장은 없을 것 같다. 어쨌든 미국 민주주의에 관한 토크빌이 미국인들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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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차가 혁신경제의 핵심이라... 이거야 원. 에너지 관련 국제 기구들 보고서라도 보는 넘이 이 중에 한넘이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컨센서스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충의 방향은 최근에 거의 합의로 가는 단계다. 곡성의 대사가... 뭣이 중헌디! 영화 곡성의 엔딩은 아직도 의미를 모르겠다. 하지만 이 지랄의 엔딩은 알겠다. 귀곡성... 수소차 등 포함해서 차에 관한 얘기 좀 해달라는 부탁을 가끔 받는다. 이게, 초장에 얽힌 스텝, 2012년 대선에 얽힌 스텝, 지난번 광주 시장과 얽힌 얘기들, 여기엔 이번 인수위까지... 고구마 줄기다. 적당히 좀 하자. 퓨얼 셀이 뭔지, 기본도 다시 한 번 좀 보고. 이걸로 책 쓰고 싶지 않다. 비밀 얘기 너무 많이 꺼내게 된다...

수소차 가격 5천만원으로 낮추고 충전소 대폭 늘린다(종합)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3&sid2=239&oid=001&aid=0010136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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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 표지 디자인. 교정 보면서 표현 바꾼 것들 외에는 아무 별 변화 없이 나갈 듯 싶다. 디자이너들이 나를 생각하면, 이제는 얄짤 없이 소주와 소주병인가 보다. 10년 전 디자이너들이 별 편견없이 나를 생각하면, 방독면, 화염병, 몽둥이, 러버계통 물품들, 이런 거였는데... 사실 요즘은 가능하면 소주는 덜 마시려고 하는데. 나는 크게 의견 준 건 없고, 싫다는 소리만 안 했다 (다른 대안은, 소주병을 쳐다보고 있는. 뭐, 별반 다르지는 않은...) 내가 살아온 생이 이런가 보다. 소주병이 제일 잘 설명해주는 인생.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30대 초반에는 '포도주 박사'라고 나를 부르던 교수들도 많았다. 이제 포도주 이미지는 떼었다... 일년에 몇 번, 포도주를 마시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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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이다. 아내는 해외출장 중이다. 어린이집은 논다. 결국 친가에 애들을 맡기기로 했다. 아침에 갔다 저녁 때 오는 건데, 왔다갔다 두 시간, 다 해서 네 시간은 운전만 한다. 그래도 이게 낫나? 물론 낫다. 하루 종일 애들 둘 보고 있으면, 죽는다. 잠시라도 쉴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양희은을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듣는데, ‘아침이슬이 나왔다. 어릴 때 살던 동네를 지나와서 그런지, 문득 초등학교 6학년 때 생각이 났다.

 

이유는 모른다. 그 때도 6월쯤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담임 선생님이 풍금을 치면서 아침이슬을 가르쳐주었다. 의미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지만, 노래는 재밌었다. 우리는 골목골목 다니면서 이 노래를 틈틈이 불렀다.

 

한 달쯤 지났을까? 선생님이아침이슬은 길에서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다. 6학년이지만 우리들 때문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길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다. 다시 이 노래를 부르게 된 건, 대학교 들어가서 소주 집에서. 그 시절에는 이미 집회에서 아침이슬 같은 노래는 부르지 않았다.

 

아마 그 시절에 고분고분하던 모범생 모드가 내 인생에서 없어지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굳이 아침이슬을 그 때 배우지 않았어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1 때 담임은 상대적으로 가장 나았다. 그는 학교에 별 관심이 없었다. 적당히만 해주면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그 때가 청년기로 치면, 나의 전성시대였던지도 모른다. 책도 가장 많이 읽었고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평생 먹고 살게 된 많은 상상력의 기반이 중3 때부터 고1 때까지 읽었던 무지막지한 소설책들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2 겨울방학에 얼마나 책을 많이 읽었냐면, 맨날 누워서 방학 내내 책을 읽었더니 척추가 휘었다. 한동안 고생했다. 집은 춥고, 책은 읽어야 하고, 이불 속에서 누워서 보느라.

 

2 때 담임은, 나와는 상극이었다. 물론 대학에 들어가서 더 황당한 교수 아니 교수 새끼들 을 보면서 고2 담임은 역대급에 들어가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하여간 상극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좋은 선생님이다. 그건 별로 부정하고 싶지는 않디. 교육에 열성이 아주 높은 것도 사실이다. 나는 그를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는데, 그는 나를 싫어했던 것 같다. 아마 당신 교사 기간에 가장 냉소적인 학생으로 기억하는 것 같다. , 어떻게 보든 상관 없는데, 너무 많이 때렸다. 그 때까지는 대학은 그냥 국문과 간다고 적당히 생각하고 살았는데, 최종적으로 국문과를 안 가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내가 겪은 국문과 출신 선생님들은 애들을 너무 많이 때렸다. 그리고 애정이라고 했다. 내가 꿈에라도 사람을 때리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은 것은, 그 시절의 국어 선생님들 때문이다. 나는 문학도를 꿈꿨는데, 저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때리는 거야 교련 선생님들이 왕이고, 체육 선생님들이 제왕이기는 한데, 그 사람들은 애당초 개차반으로 나선 거라서 신경도 안 썼다. 실제로는 교련 선생님이나 체육 선생님들에게는 거의 맞은 적이 없다.

 

3 때 담임 선생님은 드물게 식크한 사람이다. 물론 생긴 것은 전혀 식크와는 무관한 사람이었는데, 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역대급으로 식크하다. 세계사 선생님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는 내 인생에 결국 감옥에서 끝나거나, 헤매다가 잘 하면 공무원이나 되거나, 뭐 그럴 거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같은 학교에 또 다른 세계사 선생님은 전교조 이전에 학교 운동의 대부 같은 양반이었다. 결국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미국으로 이민 간다. 담임은 나에게 아무 기대나 아무 간섭이 없었다. 나도 크게 사고 치지는 않고. 되는 대로 살았다. 뭐 하라는 것도 없었고, 특별히 어디 가라는 것도 없었다.

 

세 명의 담임 중 나는 누가 되고 싶을까? 사실 아무도 되고 싶지 않지만, 굳이 고르라면 3학년 때 담임 같은 사람을 고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애들한테 아빠는 고3 담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뭐 하라는 것도 크게 없고, 뭐 되라는 것도 별로 없고, 노는 것도 누구 때리는 것만 아니면 이래도 잘 했어, 저래도 잘 했어.

 

이래서 우여곡절 끝에 경제학과에 들어갔는데, 나를 가르치게 된 누님 두 분을 만나고 완전 놀라게 되었다. 세상에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 있었나, 진짜 깜짝 놀랐다. 한 양반은 나보다 좀 늦게 유학을 와서 뒤늦게 박사가 되었다. 여전히 현장에서 눈부신(?) 활약 중. 그리고 또 한 명이 나중에 대장금의 작가가 된 김영현 선배, 하여간 어지간히 드라마 많이 쓰게 된 양반이다. 그 때 놀랐다. 우와, 똑똑한 게 이렇게 멋진 거구나. 집에서는 재수하기로 하고, 재수 하기 전에 잠깐 놀려고 아니 술 처마시려고 갔던 대학인데, 결국 이 양반들하고 노느라고 그냥 눌러앉았다. 재수는 뭔 재수. 살면서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을 다시 볼 것 같지는 않았다. 지내고 보니까 그 때 내 생각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 엄청난 사람들을 만난 거였다.

 

그리고 아침이슬을 다시 부르게 되었다.

 

박정희 시절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전두환 시절에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초반을 보냈다. 지금도 어린 시절이나 학교 다니던 시절을 회상하면 어두워진다. 사람들이 특히 선생님들이 아주 개차반 같았다. 신해철이 그 선생님들 욕을 신랄하게 했다. 대부분 동의한다. 그렇지만 가끔 생각해보면 그 때 선생들이 개차반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회 평균 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학교 밖의 험악한 세상에는 그보다 더 형편무인지경인 사람들이 있지 않았을까?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친구들과 가끔 만나시는 것 같다. 가고는 싶은데, 애 보느라 자주 가기는 어렵다.

 

이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아직도 답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좀 아닌 것은 더 명확해지는 것 같다. 악다구리 하는 삶은 살고 싶지 않다. 그것만은 명확해지는 것 같다. 남한테 소리 지르고 싶지 않다. 다른 건?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고 싶은 건 잘 모르겠는데, 되고 싶지 않은 것만 자꾸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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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분야는 모르겠는데, 한국에서 사회과학은 세 개의 허들을 넘는 것과 같다.

 

1번 허들. 이게 당신 문제예요

 

쉽게 애기하면 배달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책이 필요한 사람에게 배달하기가 어렵다. 더 쉽게 배달할 수 있는 양식을 찾으면 안돼? 현재로서는 책 밖에 없다. 방송도 경제분야에는 심층취재나 다큐 같은 게 거의 없다. 사회 운동으로 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것도 여러 사람이 움직여야 하니까 깊이 들어가기가 어렵다.

 

2번 허들. 아냐 아냐 난 알고 싶지 않아.

 

이 문제는 짜장면의 칼로리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 것과 같다. 미세먼지 문제도 초기에는 같았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 알아봐야 일상이 더 피곤해지기만 한다.

 

3번 허들. 난 모를 것이니까 너도 알 필요 없어.

 

좀 더 적극적인 거부다. 그냥 자기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필요 없으니까 주변에서 아는 것도 거부하는. 이런 골 아픈 일을 뭐 하러 해? 그게 딜레마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1999년 벨기에에서 <로제타>라는 영화가 나온 적이 있었다. 비정규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다. 그래서 로제타 법안이 나오고, 청년 의무할당제가 시행되었다.

 

 

이런 영화가 한국에 없는 것인지, 한국이 이런 사회가 아닌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어쨌든 다른 매체는 이런 고민을 해주지 않으니, 아직까지는 위태로운 3단 허들 뛰기를 하는 수밖에 없다.

 

2.

직장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잡을 때 좀 고심을 했다. 비슷한 표현으로, 산업 민주주의가 있고, 작업장 민주주의가 있다. 그리고 한국 버전에서 직장 민주화라는 표현도 있다. 이런 걸 전체적으로 살펴봤는데, 우리 맥락에서는 직장 민주주의가 가장 나은 것 같았다.

 

그리고 금방 깨닫게 되었다

 

, 이게 배달의 문제1번 과제인 주제구나. 그리고 여기에 2번과 3, 나는 별로 알고 싶지 않아, 너도 그런 데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런 벽에 부딪혀 있다는.

 

이유는 여러 가지를 찾아볼 수 있는데된장, 확실한 것은 팬시와는 정반대, 문화적 트렌드와도 정반대에 서 있는 주제를 잡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직장 민주주의에 대한 기이한 침묵이 우리나라에 있었던 것 같다.

 

한 가지, 흔히 말하면 잠재성즉 중요성은 높다.

 

중요하기는 한 건데, 별로 인기는 없을이론이론.

 

3.

사실 한 달 전에는 이미 쓰기 시작했어야 했는데, 그래도 주변 상황 좀 살펴보느라고 시간을 좀 더 썼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은, 직장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인기가 없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너무나 기이할 정도로 침묵이 오래 있었다는. 왜 그런지, 알 듯 모를 듯.

 

잠시 눈을 들어보면 허들이 세 개, 그것도 아주 높게 서 있다.

 

솔직한 마음이라면, 그냥 이거 안 하고 싶다. 좀 더 편안하게 지낼 수도 있는데

 

, 벌써 한다고 했는데. 주저주저.

 

사명감만 가지고 책을 쓸 수는 없다. 그렇게는 써지지 않기 때문이다. 뭔가 좀 다른 동력이 더 필요할 것 같기는 한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누군가 벨기에의 <로제타> 같은 영화를 만들어주거나, 아니면 거기에 비견할 만한 경제다큐 같은 거 만들어주면 좋겠다. 나는 그냥 좀 계속 쉬게

 

하여간 경제 얘기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고, 경제 영웅들이 그렇게도 많은데 아직까지도 직장 민주주의가 사회적으로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는 이 기이한 상황을 아직도 잘 모르겠다.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다. “경제는 나한테 물어봐”,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이렇게나 많은데그냥 그런 데서 이 문제는 우리 거야, 남의 나와바리에 들어오지 마”, 요런 얘기 해주면 좋겠다.

 

토깔 때에도 명분이 있어야

 

그런데 있을 것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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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바쁜 시절과 아주 안 바쁜 시절 두 개를 아주 짧은 기간 내에 극단적으로 경험해본 것 같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고, 위기도 양 쪽에 다 있는 것 같다. 바쁠 때 생기는 문제점이야,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겪어보는 것이고. 높은 자리에 있든 그렇지 않든, 우리가 만든 현대는 무조건 바빠야 한다는…

바쁘지 않을 때, 이 때는 사실 마음을 처리하는 게 제일 힘든 것 같다. 자꾸 누군가 원망스럽고, 뭔가 싫고, 이런 마음이 든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무 일도 아닌데, 바쁘지 않을 때에는 그런 것만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생긴다. 그래서 자꾸 바보 같은 생각만 더 하게 되는 위험이 있다. 그럴 바에야, 그냥 바쁘게 지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바쁘지 않은 게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정말로 마음을 차분하게 갖는 연습이 좀 필요할 것 같다. 뒤집어도 마찬가지인 명제다. 마음을 차분하게 할 수 있으면, 바쁘지 않은 것이 더 의미가 있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기도 하다. 바쁘지 않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 그게 더 멀리 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렇지만 멀리 가서 뭐 하게? 어디 뭐 맡겨놓은 거 있남? 멀리, 실력, 효율적, 이런 말들도 다 털어버리면 바쁘지 않은 시간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 때 뭔가 진짜를 배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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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잘 모른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야구가 축구 등 다른 어느 스포츠보다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나도 평생 스포츠 시합장에 간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야구장에 더 많이 갔다. 하여간 좋아하는 것 같다.

야구와 정치,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르다. 경합을 해야 하고, 승부가 갈린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렇지만 조금은 다르다.

야구는 자기 팀 경기만 보지는 않는다. 자기 게임 없으면 남의 게임도 보고, 게임 보는 틈틈히 다른 구장도 본다.

그리고 자기 팀 선수만 응원하지는 않는다. 잘 하거나 뭔가 감동받을 요소가 있으면 다른 팀 선수도 응원한다. 정치는 좀 다른 것 같다. 다른 팀 선수 응원하면, 난리난다.

야구는 시즌 중에는 이동일 월요일 빼고 1년 내내 한다.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건, 4년에 한 번 혹은 5년에 한 번 정도일 것 같다. 야구보다는 우리 일생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정치이지만, 대체적으로는 좀 관심 없다.

몇 년 전이다. 부산에서 삼겹살 집에 간 적이 있었다. 꽤 큰 집이었다. lg랑 롯데랑 했는데, lg가 역전승을 했다. 큰 tv를 갔다놓고 같이 보게 해놓았는데, 나는 야구 얘기는 한 마디도 안 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광주도 이 정도는 아니다. 부산에 가서 야구 얘기를 하느니,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지.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나보다 야구를 더 열심히 보는 경제학자는 딱 한 명이 있었다. 정운찬... "어제 어떻게 됐나, 마저 못봐서." 그럼 경기 역전 상황 같은 브리핑을 쭉 해줘야 한다. 우리끼리 만나면 경제 얘기 이런 거, 사실 별로 안 하고 야구 얘기만. 드디어 그는 KBO 총재가 되었다. 그는 야구 책도 냈다. 나는 야구 책 몇 번 검토는 했는데, 시장성이 너무 없다고 다들 반대해서...

대기업 구단이라서, 응원하면서 찜찜한 것은 사실이다. 히로시마 토요카프가 시민구단이라고는 하는데, 완전 시민주주만 있는 것은 아니고. 그런 얘기들 가끔 하면서 시민구단에 대한 꿈을 여전히...

대기업과 큰 정당이 정치를 전부 쥐고 있는 것은 야구랑 정치랑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말이 좋아 참여지, 그냥 응원만...

지방선거 앞두고, 사실 잘 모르겠다는. 난 언제나 지방선거에 야구보다 더 많은 공을 들였었는데, 이번 선거는 난 잘 모르겠네, 배 내밀고 야구만 보는 중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되라, 이기는 편 우리 편, 그런 건 아니고. 공약집 몇 개 들쳐보다가 내려놓았다. 무슨 공약이 이래...

세상 좋아지면 좋겠다는 꿈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정치와 관련된 글들은 절반은 추측, 절반은 독설인 것 같다. 야구도 그렇기는 하다. 야구팬들도 말 어지간히 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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