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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2.14 [초고] 창고 대방출 그리고 "변희재가..." 4

 

 

창고 대방출 그리고 "변희재가..."

 

1.

지난 대선에서 아내는 심상정에게 투표하였다. 나는 아내에게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아내의 결정이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내도 나에게 별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87년에 나는 대학교 2학년이기는 했지만 투표권이 없었다. 한 살 먼저 들어갔다. 니는 투표를 거른 적은 없다. 백기완에게 투표했고, 권영길에게 투표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투표한 것은 노무현, 문재인, 딱 두 번이다. 앞으로의 선거에서는 누구에게 투표할까? 아직은 모른다. 아마도 안철수에게 투표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것도 100%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가 어느 날 노회찬과 단일화하고, 진보 통합후보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10년 후에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확률은 희박하다. 그러나 박원순과 안철수가 서울 시장 선거에서 단일 후보를 만들어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정치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과는 다른 것 같다.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가 깃발을 들고 "이래라, 저래라", 돌 잔치를 진두지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쟌다르크가 그랬다. 그래도 그 때는 신의 계시라는 상징이라도 있었다. 이화학당 고등부의 유관순 누님이 3.1절 만세운동을 이끌 때, 17세였다. 신생정당의 돌풍, 막 데뷔한 정치지도자의 약진, 돌도 지나지 않은 어린아이가 모세처럼 사람들을 이끌고 홍해를 가르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10년 후 대선, 정치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 알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은 녹색당이다. 2011년 창당한 이후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 사이에 다른 정당들이 다 재창당을 했고, 하다못해 정의당도 그 이후에 생겨났다. 10년 후, 어쩌면 녹색당 말고는 다른 정당은 다시 신생정당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우리의 역사는 그랬다.

 

이제 50, 그렇지만 내가 10년 후 대선에 대해서 나에게 질문하는 이유는, 앞으로 내 일생을 뒤흔들 가장 큰 외부 변수가 이 요소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내 삶을 가장 크게 뒤흔든 사건은 2007년 겨울, 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된 사건이다. 술만 죽어라고 먹고, 안 죽은 게 다행이다. 이재영을 비롯해서 진짜 내 영혼의 친구와 같았던 사람들은 그 기간을 못 버텼다. 나는 왜 살아남았을까? 내가 좀 더 이기적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속상하면 술 마신 것은 똑 같았는데, 나는 그냥 자버렸다. 다른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너는 이기주의적으로 살았어, 누군가 그렇게 얘기하면 나도 할 답변은 없다. 상징이 아니라 액면가 그대로, 진짜로 지난 10년 동안 죽을 뻔 했다. 실연의 충격도 이렇게 10년씩 가지는 않는다. 실업의 충격이나 어지간한 경제적 교란 효과도 사라지고 남을 시간이다. 코리안 시리즈에서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패배했다고 하더라도, 그 아픔이 10년씩 가지는 않는다.

 

수많은 친구들의 아픔을 뒤로 하고 50이 된 후, 진짜로 나는 꿈이나 희망 같은 게 사라졌다. 원래도 없었는데, 이루어야 하는 것, 그런 게 아무 것도 없다. 그 동안에 한국의 청년들은 과거 우리가 '조국'이라고 불렀던 그 나라를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드디어 우리가 이겼나? 이기긴 뭘 이겼나. 순실이가 먹다 남긴 '찌그레기'를 국가라고 부여 쥐고 있을 뿐이다. 정치인으로서 권영길은 진짜 허당이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에게 한 마디는 남겼다.

 

"그래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이 땅에서 이제 막 사회적 삶을 시작하는 20대들이 5년 후에 묻고, 10년 후에 또 물어볼 것이다,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느냐고요. 그래도 물어보면 좀 다행일 것이다. 지금처럼 대충대충 하면, 10년 후에 그들은 물어보지도 않을 것이다. 파도는 흘러간다. 오늘의 파도와 10년 후의 파도가 같을 것인가?

 

2.

10년 후면 나는 60이 된다. 지금 50대는 60대가 된다. 산수다. 과거의 흐름에 의하면, 그 때쯤 정권이 바뀔 확률이 높다. 10년 동안 한국의 보수들이 절치부심해서, 이제는 집권해도 사기 치지 않거나 멍하고 있지 않아질 가능성이 있을까?

 

10년쯤 되는 장기적 변화가 발생할 때에는 먼저 반성 같은 게 생긴다. 물론 세상에 진심으로 반성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겉모습은 반성처럼 생겼어도, 1) 나 진짜 힘들어, 2) 가만두지 않겠어, 요런 두 개의 메시지로 구성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어차피 형식적이다. 그래도 그거라도 하는 집단과, 그나마도 귀찮다고 안 하는 경우는 좀 다르다. 한국의 보수에, 아직까지는 형식적인 메시지라도 반성하는 사람은 보지 못한 것 같다. 복수심만으로 변화가 생기지는 않는다. 많은 경우, 자기가 뭔가 잘 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실수를 기다리는 전략을 많이 쓰게 된다. 지난 대선 이후, 한국의 보수가 취한 자세는 이 '웨이팅 전략'이다. 당분간 큰 변화가 생겨나지는 않을 것 같다. 말은 멋있게 썼지만, 지금 자유한국당의 당대표인 홍준표나 그런 급의 사람이 반성에 관한 얘기다. 아직 안 벌어졌다. 그래서 다음 대선에 큰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10년 후는?

 

경제학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개념 중의 하나가 시간 개념이다. 물론 물리학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엄청나게 정밀하고, 비가역적인 흐름 혹은 공간과 연동되는 아인슈타인급 시간에 관한 얘기는 아니다. 짧은 시간과 긴 시간에 대해서 배운다. 단기는 1년 미만의 기간이다. 가격, 주가, 집값, 이런 금융과 관련된 지표들만 변한다. 장기는 10년 정도다. 기술 수준이 변한다. 생산함수에서 기술수준이 상수에서 변수로 바뀐다. 이보다 더 긴 시간이 있다. 10년 이상, 보통은 30년 정도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인구 구조가 변한다. 노동함수에서 인구를 변수로 바꾼다. 10년은 그런 시간이다. 인구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고, 기술 조건은 바뀌는 시간이다.

 

디케이드(decade)라는 별도의 이름이 있을 정도로 10년은 긴 기간이다. 한 집단이 부패하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고, 실패를 사람들이 인지하기에 너무너무 넉넉한 시간이다. 그래서 "지겹다, 지겨워", 이 말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꺼내게 될 때까지, 지겨울 정도로 긴 시간이다. 아버지 부시를 이기고 미국의 대통령이 된 빌 클린턴의 시대는 경제적 호황의 시기였다. 뉴 이코노미라는 말이 나왔고, 거시경제는 연일 기록을 갱신했다. 주기적으로 경기 순환이 오게 된다는 경제학 교과서를 바꿔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눈으로 보는 경제는 좋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삶도 좋아지지는 않을 것 같다. 다시 아들 부시의 시대가 왔다. 그도 연임했다. 도대체 사람들의 삶은 언제 나아지는겨? 백인 노동자 중산층 등 미국 민주당을 굳건히 지지하던 사람들이 트럼프에게 몰표를 주었다. 미국은 8, 한국은 10, 실망하고 반대하기에는 너무너무 충분히 긴 시간이다.

 

우리가 60살이 되었을 때, 광화문에서 또 촛불을 들게 될 것인가? 아니면 우리끼리 청계천 광장 어느 한 구석에서 "솔아 솔아", 이러면서 80년대에, 그 때는 내가, 이런 궁상맞은 짓을 또 해야 하겠는가? 실패는 정치인이 하지만, 시대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고 간다. 나는 60이 되어서 명박 같은 사람이 다시 대통령이 되는 시대를 맞고 싶지 않다. 이미 벌써 여러 놈 갔다. 60대에 명박급 혹은 트럼프급의 정권이 오면, 진짜로 이제는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이승을 많이 하직할 것 같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우리는 정멸적으로 살았다. 희망이 큰 만큼 실망도 크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잘 통제하고 제어하는 법을, 우리가 살았던 그 20세기에는 배우지 못했다.

 

지금부터의 10, 이제는 진짜로 우리가 사회의 맨 상위층에서 치루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싸움이다. 정치를 위해서 뭔가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게 더 나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좋다. 조금 양보하고, 조금 내려놓고, 조금 실천하고, 전혀 무리한 얘기는 아니지 않은가?

 

3.

한국인은 정치인을 싫어하고 국회의원을 싫어한다, 그리고 정당을 싫어한다. 국회의원 의석수 늘리는 것에 대한 여론조사는 80% 정도가 싫다고 단호하게 답변한다. 이 정도로 높게 혐오를 받고 있는 또 다른 집단은 공무원 정도다. 공무원 증원에 대한 답변도 80% 정도가 아니라고 답한다. 홍준표가 이끄는 자유한국당은? 이 정도로 혐오 수치가 높지는 않다. 물론 혐오의 깊이가 더 깊을 수는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체계에서 싫어도 한 표, 아주 싫어도 한 표, 죽도록 싫어도 한 표, 정도의 차이를 살피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이라서, 정당, 바로 그 당이 한국에서는 아주 취약하다. 집권당일 때에는 공무원들과 국책연구원들이 붙어 있어서 좀 나은 것 같지만, 야당이 되면 정말 별 볼 일 없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정책을 만들어내는 힘이 약하다. 그러다 보니까 선거를 억지로라도 치르기 위해서 대선 캠프가 커지고, 캠프 중심으로 정권이 움직여나가게 된다. 정책 능력만 놓고 보면 여전히 정의당이 가장 낳고, 민주당과 한국당은 매우 낮은 상황이다. 분야별로 약간의 우위가 있기는 한데, 어차피 도토리 키재기다. 한국에서 정책은 정의당과 시민단체가 주로 만든다. 그럼 그걸 진보든 보수든, 거대 정당에서 받아간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한국의 정당은 정책 측면에서 호치키스와 빨간펜만 들고 있는 것과 같다. 받아다가 빨간펜으로 찍찍, 넣고 빼고, 이게 큰 선거에서 한국 정당들이 처해진 현상이다.

 

어떻 때에는 이 빨간펜마저도 통째로 외부에서 사온다. 종범실록으로 유명해진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바로 이 케이스다. 삼성의 이재용이 집행유예로 집에 가는 동안, 안종범은 1심에서 징역 6년이 나왔다. 안종범은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미국식 중도좌파 정도 되는 아주 잘 나가던 학자였다. 기재부 장관했던 최경환 따위와는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로 괜찮은 학자다. 안종범, 완전히 망했다. 냉정히 얘기하면, 박근혜 정부 마지막 순간에 경제수석을 했던 강석훈과도 비교불가, 몇 줄 상급의 학자다. 그렇지만 그는 무리하지 않았고, 감옥에는 안 갔다. 공무원들은 사실 다 빠져나갔고, 청와대 경제수석 안종범, 연금관리공단 문형표, 이런 학자들이 주로 감옥에 갔고, 실형도 세게 나왔다. 공무원들 얘기다. 학자들은 갔다 쓰기가 쉽다는 것이다. 공무원만큼 민첩하지 못한 학자들만 감옥 갔다. "피할 재주도 없고, 뺄 돈도 없는 병신 같은 학자들", 이게 공무원들 입에서 나온 안종범 사건에 대한 평이었다. 오죽 하면 패로디 시가 다 나왔겠나 싶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그렇게 뜨거운 사람이었더냐?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안종범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그렇게 뜨거운 수첩이었더냐?

(페이스북, 안종범 패로디 시)

 

선거 때마다 수많은 빨간펜과 호치키스들이 캠프로 영입되었다. 국제적 명성과 학문적 수준으로만 놓고 보면, 안종범이 역대 최강이었을 것이다. 아마 안종범이 이런 외부영입이 아니라 그래도 새누리당에서 같이 한솥밥 먹는 시절을 좀 길게 지냈다면 지금처럼 6년형이 덜커덕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종범이 빨간펜 하던 그 선거에서 박근혜는 2% 차이로 이겼다. 사람들은 국정원 불법댓글로 그 차이가 났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정책이 눈으로 보면, 2%는 안종범이 만든 2%일 수도 있다. 위의 2%와 아래 2%, 어느 게 진짜 스모킹 건이었을까? 모를 일이다.

 

촛불집회 이후 열린 대선까지 가는 과정은, 정책의 눈으로 보면 시민단체 등 각종 단체들의 창고대방출이었다. 10년 혹은 그 이상 지난한 현장 싸움에서 만들어진 공약들이 거의 대부분 문재인 진영으로 넘어갔다. 진짜로, 탈탈 털어서 더 넘겨주었다.

 

대표적인 것이 알바연대의 일부 활동가들이 주장하던 '최저임금 1만원'이다. 나도 최저임금 만원을 주장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을 딱 한 명이 받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계산을 했었다. 그게 그 시절에는 얼추 만원이었다. 알바연대는 좀 다른 방식으로 만원이라는 상징을 뽑았는데, 그 실무자가 만나자고  했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수요일 직전의 주말, 알바연대 대변인이었던 권문석은 과로로 잠자다 사망하였다. MB 집권 초기의 일이다. 그 사연이 너무 안타까워 활동그룹 밑에서부터 권문석을 생각하며 '최저임금 만원'이 퍼져나갔다. 민주당은 그걸 받았다. 물론 그들도 빨간펜만 한 것은 아니다. 과반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반대했지만 결국은 공약으로 채택했다. 지금은 민주당 대표 정책으로 알려져 있지만, 학교급식 정책도 유사한 경로로 대표적 진보 정책이 되었다.

 

각 분야별로, 진짜로 '문캠'에 공약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세게 받은 것, 약하게 받은 것, 진짜로 받은 것, 하나마나하게 받은 것,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보수정부 10년 동안 축적한 공약들이 그 때 다 넘어갔다. 완판인지는 모르겠지만, 창고대방출인 것은 맞다. 그 중의 일부 단체 인사는 청와대나 고위직으로 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단체들은 그냥 공약만 주고 말았다. 촛불집회, 그 충격과 안타까움 속에서 운동권 단체들은 자신들이 줄 수 있는 공약들을 엄선해서 문캠으로 보냈다. 분야별로 있는 장애인 단체나 자영업자 단체 등 직능단체들도 그 때는 좀 달랐다. 보통 이런 직능단체는 외부의 이미지와는 달리 선거 때에는 주로 한국당 쪽으로 줄을 서는데 촛불집회 이후의 대선에는 문캠에도 자신들의 공약을 많이 보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었다. 대통령도 만들었다.

 

이제 시민단체들이 빈곤하게 되었다. 원래는 정부나 정당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우수한 정책과 대안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 털어주고 나니까 남은 게 별로 없다. 물론 아직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제도의 대부분도 아직 법률로 전환되지는 않았다. 지금은 "하기로 한 걸 제대로 해라" 혹은 "이 정도로는 안 된다, 더 세게 해라", 그런 얘기 외에 별로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대표적인 것이 탈핵 운동이다. 하기로 했는데, 왜 이렇게 밖에 못하냐? 냉정하게 따지면, 더 할 얘기가 별로 없다. 더 깊게, 그런 고민은 할 수 있지만, 패러다임아 바뀌거나 근간이 바뀔 정도로 획기적인 얘기는 나오기 어렵다. , 이제 10년간 뭐하지? 하던 거 더 잘?

 

한국의 보수가 지난 10년간, 딱 이렇게 하다가 망했다. 노무현 시절, 보수들이 뉴라이트 만들고, 분야별로 이런저런 의제들을 막 던질 때, 나름 신선했다. 그리고 집권하자마자, 원래 하기로 한 걸 제대로 하자,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하기로 한 걸 제대로 하자, 기본에 충실하자, 이런 얘기로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 좋든 싫든, 새로운 것을 만들고, 안 가본 길을 제시하고, 사람들과 같이 하기 위해서 더 넓게 노력할 때, 그 때야 세상은 제 자리에서도 서 있는다. 지금 하는 거 문제 없잖아, 이런 마음으로 지내면 정권 망하고 나라 망하는 데 10년이면 충분하다.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집권당이 뭔가 새로운 것들을 막 제시하고, 진짜 세상 바뀌나 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근데 이건 어렵다. 청와대도 그렇고 민주당 본진들도 이래저래, 좀 바쁘시다. 시민단체들이 지난 10년 동안 배 골아가면서 했던 것처럼 앞으로의 10년을 '빡시게', 목숨 걸고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가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우린 이제 그렇게 하기에는 나이를 먹었다.

 

공교롭다. 한 때 한국 최대의 회원조직이라는 환경운동연합의 회원 평균 나이가 딱 내 나이와 같다. 엄청나게 회원탈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들어오는 젊은 회원도 별로 없다. 내가 나이를 먹어가듯이, 한국의 많은 시민단체들도 같이 나이를 먹어간다. 그리고 회원들도 나이를 먹어간다. 그들은 그들이고, 우리는 우리고, 그런 게 아니다. 한 때 40대 파릇파릇한 느낌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던 최열, 박원순, 그들도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내 나이는 그들이 대표하던 시절을 넘었다. 우리는 같이 나이 먹고 있다. 지난 10, 그래도 억지로 죽어라고 버텼다. 4대강 같은 데에서 현장 싸움하고, 그 와중에 정책 대안 법률을 제시하고, 그게 좋아서 한 것은 아니다. 시대가 너무너무 어려워서 마지막 힘을 쥐어짠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회비가 많이 줄어서, 없는 회비를 줄여가면서 버텼다. 이 임금으로, 더 이상 젊은 활동가들 충원하기가 쉽지 않다.

 

태극기 집회에 할아버지들이 많았고, 변희재가 있었다. 어머니 몰래 아버지가 태극기 집회에 나섰다가, 그 해 설날 어머니가 며느리들에게 일러주었다.

 

"할아버지들만 있는 그런 데를 뭐 하러 가셨어요, 시아버님?"

 

제수씨가 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한 얘기였다.

 

"변희재가..."

 

아버지가 한 얘기는, 할아버지만 있는 게 아니라 변희재도 있었다는 말이었다. 아버지 입에서 변희재라는 이름이 나올 줄은 나도 정말 몰랐다. 심각한 상황이라서 웃으면 안 되는데, 안 웃을 수가 없었다. 상황은 그렇게 얼버무려졌다. 아버지는 우리들 앞에서 어머니에게 다시는 태극기 집회를 안 나가시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리고도 몇 번 더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는 내가 TV 토론에 나오는 걸 늘 보는 건 아니시지만, 변희재 나오는 건 별의별 것까지 다 찾아보신다.

 

창고대방출 후, 한국의 시민단체를 포함해서 지역의 맣은 풀뿌리 조직들이 걸어가는 외형적 미래가 바로 그 태극기다. 10년 후면, 우리는 지치고 늙어간다. 그리고 "이건 나의 정권이야, 내가 너무너무 사랑하는 정권이야", 이렇게 자부심과 애정만을 가지고 이 시간을 보내면 어떻게 될까?

 

"변희재가..."

 

20대를 시작으로, 50대 패악질과 곤때스러움 못 참겠다고 등 돌리고 떠나가기에 10년은 너무너무 충분한 시간이다. 10년 후, 갤럽의 문화 조사 같은 항목에 "50386"에 대한 여론조사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가 사는 것처럼 20세기 스타일로 산다면, 한국 역대 최고의 혐오집단인 국회의원과 공무원을 제치고, 80% 이상의 국민의 "싫어요"라고 대답할 확률은 거의 100%. 우리가 우리를 돌아보자. 지금 우리 모습에, 어디 하나 다른 사람들이 존경은 커녕, 연민을 가질 모습이 있나? 우린 더 이상 젊지 않고, 매력적이지도 않다. 그리고 많은 습관은 20세기에 형성되었다. 그런데 실질적 힘까지 생기면? 나는 무섭다.

 

한국의 보수, 다른 건 몰라도 돈은 월등히 많다. 언제 안종범 보다 두 배는 강력한 '슈퍼 안종범'이 등장해서 투표율 2%가 아니라 4% 정도는 가뿐히 좌지우지 할지 모른다. 영국 보수당에서 데이비드 케머런이 당대표로 갑자기 등장하면서 노동당을 제치고 수상이 되었을 때가 44세였다. 한국의 보수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끝까지 몰리는 곳, 그곳에서 젊은 영웅이 나온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를 나를 위해서 투표해달라고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10년 후, 우리는 우리 자식들에게 부모를 위해서 투표해달라고 설득할 수 있을까? 설득하면 안 된다. 그런 세상을 지금부터 만들어나가야 한다. 만약 설득하면? 그게 태극기다. 좌파 태극기, 진보 태극기, 그 모습을 우리가 10년 후에 만나게 된다. 아직 길은 열려 있다. 창고 대방출, 그 텅 빈 창고 앞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에서 우리를 대표해서 뭔 가 해줄 거야? 20년 이상 지켜온 그 창고에, 지금 신상은 없다. 너무 오래 되었거나, 안 팔릴 물건이거나...

 

나는 아버지처럼, "변희재가...",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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