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푸시킨)

 

솔직히 요즘 내가 행복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10달된 아기 아프지 않고 잘 크는 것, 이젠 슬슬 노묘급으로 나이먹어가는 야옹구가 여전히 발랄하게 잘 노는 것, 함께 이사온 마당 고양이들 특히 새끼를 세 번이나 낳았던 엄마 고양이와 하루에 2~3번은 꼬박꼬박 만날 수 있는 것, 한 마디로 아기와 고양이들 빼면 내가 하는 일은 다 잘 안 된다.

 

나만 잘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내 동료들은 다 힘들어하거나, 잠수 탔거나, 심지어 핸펀 번호를 바꾸어버리기도.

 

이게 다 박근혜 때문이야, 그렇게 치부할까 싶지만, 그러면 또 내 삶이 너무 구질구질해 보인다. 어쨌든 나는 최선을 다하는 것 같지만, 뭔가 잘 안되고, 사람들도 구심점을 잃고. 한 마디로 그냥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중인 듯싶다. 모든 일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고, 반전의 계기는 보이지 않고.

 

하다못해, 올봄에 달았던 모기장이 부실하게 달려서 몸통에 세 줄이 있어서 아디다스 모기 혹은 타이거 모기라고 불리는 녀석들에게 온통 뜯기면서 글을 쓴다거나. 아니면 멀쩡하던 아이폰 단자가 맛탱이가 가서, 정말 하기 싫었던 핸펀 바꾸기를 해야 한다거나. 뭐가 이렇게 되는 일이 없어!

 

동료들이 고통 받고 있는 것을 옆에서 보고 있기는 정말 힘들다. 게다가 뭐 딱히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는 일도 잘 안되고, 친구들이 하는 일도 잘 안되고, 모기들은 신나게 달려들고. 이게 이번 여름을 맞은 내 형국이다.

 

솔직히 대선 끝나고 그냥 일본 어딘가에 자리 잡고 조용히 연구한다고 처박히면 될 일을, 왜 그 때 꼬질꼬질한 5년을 버티겠다, 그렇게 호언장담했던가! 이런 후회가 가끔 드는 것도 사실이다.

 

푸시킨이 썼던 싯구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말라.”

 

이걸 국정원으로 바꾸어서, 국정원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말라, 워매, 이런 얘기 입에서 툭툭 튀어나올 지경이다.

 

그래도 국정원 탓만 하고 있으면, 이건 꼬질꼬질한 것을 넘어서 너무 남루해질 것 같다. 하여간 문제는 있다는 것을 누구나 생각하지만, 막는 쪽이나 공격하는 쪽이나 정말 너무너무 남루해진 것이 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류현진 야구경기만 죽어라고 보면서 현진 오빠 최고”, 이러는 것도 영 모양새 안 빠지고, LG 10연속 위닝 시리즈를 했다고, “나가자 LG, 싸우자 LG”, 이러고 있는 것도 내 나이에는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이게 원래 사람이 맛탱이가 가는 게, 뭔가 엄청난 사건이 생겨서가 아니라 긍지와 보람을 무너뜨리는 자근자근하면서도 소소한 일들의 연속으로 그렇게 되는 것 아닌가?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방송을 하나 맡아서 MC 자리에 앉게 되기는 했다. 근데 이게 또 제약조건이 엄청 많은 데다, 전형적인 3부 리그 모양새다. 경제 채널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고 알고는 있지만, 막상 그 안에 몇 달 들어와보니, , 그야말로 악전고투의 연속이다.

 

그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말라, 이 말이 절로 입에서 나온다.

 

슬프하거나 노여워하거나, 이게 아니라 그냥 서글퍼지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 나이 46, 박사 18년차, 과도하게 많은 영광을 누리기도 했고, 삶도 행복한 편이다. 결혼이 늦고, 아이가 늦었지만, 그 덕에 할 일 없이 버텨야 하는 시간에 육아라는 하늘이 내려준 아주 훌륭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지 않았던가! 뒤집어서 보면, 삶은 늘 행복하다.

 

살다 보면 나도 결정적인 위기와 구사일생으로 살아온 순간이 있기는 했다.

 

술 마시다 나도 한 때 엄청 힘들었어”, 이런 얘기 했다가 , 이 개새야, 지금 어디서 자랑질이야”, 친구들한테 술 얼굴에 뒤집어 쓸 뻔 했다. 힘들었었다니까, 이런 말이 친구들 사이에서는 통하지가 않는다.

 

지금도 좀 그렇기는 하다. 나는 힘들고, 구색 안 나고, 보람만으로 움직여야 하는 땡볕 방송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10명 넘게 내가 하는 일을 같이 하는 스탭들이 있고, 김영사에서는 이 내용으로 책을 만들겠다고 대기 중이다. 게다가 담당 에디터는 모피아때부터 호흡을 맞춰왔던 친구. 게다가 2주 전에 즉흥적으로, 카페라도 만들자, 그렇게 나왔던 얘기를 실제로 도와주는 또 다른 동료들이 몇 명.

 

게다가 1년 넘게 방송으로 호흡을 맞춰왔던 사랑하는 아우, 선대인이 여전히 내 곁에 있다.

 

결정적으로 내가 카페라도 만들고 굽신굽신하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선대인과 TV판 나꼽살을 만들어볼 수 있는 가느다란 가능성이 아직 열려있기 때문이다.

 

나꼽살이 평균 다운로드 400만 정도 되었고, 기분 좋을 때는 700만까지 갔는데, 지금 내가 시청률 0.25%라는 현실에 서 있다는 게, 참 망연자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그 냉정한 현실 앞에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말라, 푸시킨 선생 말씀.

 

진짜 대선 이기면 공중파에서 한 번도 없던 경제방송 기획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쩔거냐, 밑에서라도 박박 기고, 방송 스킬과 포맷에 대해서 맨 몸으로 배워나가는 수밖에.

 

선대인이 그런 걸 좀 하고, 형님 여기서 이런 거 하시죠, 이렇게 불러주면 딱 좋겠구만. 그렇게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면 그건 선대인이 아니지. 약간씩 나사가 풀리고, 조금씩 핀트가 안 맞아도, 열정과 정의감 하나로 물불 안 가리는 하버더선대인, 그래 그게 선대인이지.

 

하여간 이런저런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나는 또 내가 하기로 한 것에 최선을 다하면서, 그렇게 7월을 맞는다.

 

본인에게 직접 얘기한 것은 아니지만, 강수연과 하는 방송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얼마 전에 했었다.

 

강수연과 만나서 소주도 한 잔 한 적이 있기는 하는데, 그녀는 나를 ‘88만원 세대의 저자로 알고 있고, 그리하여 상대적으로 젊은 경제학자

 

아주 어린 시절의 일이지만, 윗동네랑 눈싸움 하다가 키 큰 강수연한테 엄청 눈으로 많이 맞아 터진 기억이

 

어린 시절, 나는 키도 작았고, 또래보다 많이 왜소했다. 생각보다 많이 맞고 다녔다.

 

다른 건 몰라도 경제방송에 관한 기획은 앞으로도 좀 더 해보고 싶다. 내가 나꼽살의 기획자 아니었더냐! 매주 기획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선대인한테 좀 넘길려고 했더니, 안철수 캠프에 들어간다고 한 주 하고 도로 나한테 넘긴. 에고고고

 

경제 휴머니즘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낸 것은 이명박 정권 초기였는데, KBS 정연주 사장 날아가면서 동료 PD들도 같이그것도 에고고고. 그렇게 묶혀두고 있던 것을 이번에 꺼내들은 게, ‘우석훈의 사람이 사는 경제이다.

 

상황은 말할 나위 없이 열악하다. 이보다 나쁠 수 없을 조건 같아 보이지만, 그래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고.

 

김유식 PD가 이번에 자신의 삶을 나한테 걸었다. 내 어깨 위에 올라탄 사나이들이, 특히 중년 아기 아빠들이 한 명씩 늘어난다.

 

어쩔 수가 없어서, 나도 이 번에 이것저것 막 날린다. 카페 운영은 여러 번 했지만, 내가 직접 만든 것은 처음이다. ,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도 아니고, 누군가 대신 해 줄 그런 한가한 상황도 아니다.

 

이번에는 걸린 게 많다. 그래서 무조건 성공시키는 것 외에는 외통수다.

 

그래서 굽신굽신, 좀 도와줍쇼!

 

경제방송으로 다양한 시도도 해보고 싶고, TV 버전 나꼽살도 만들어보고 싶고, 그것도 각 지역 버전으로 풍성하게 해보고 싶다.

 

그럴려면, 무조건 굽신굽신, 좀 도와줍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말고,

카메라를 매고 땡볕으로 가려고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경제 휴머니즘이라는 말 한 마디라도 남기고 싶다.

경제가 그대를 속일지라도.

 

 

 

 

 

(황토길편, 간만에 버찌의 검붉은 색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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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sasakyu

 

원래 카페 만드는 건 직접 안 하는데, 수가 없어서 직접 팔 걷어 부치고 나섰다. 여러 가지로 열악한 상황이다. 이런 것까지 내가 직접 해야 하나 싶지만, 어쨌든 수가 없다.

 

시청자들 모임도 만들고, 그 안에서 이것저것 좀 재밌는 일들을 해보고 싶다.

 

블로그와 어떻게 차별화시킬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일단은 카페에서 기본적인 작업들을 할 생각이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삶이라, 그렇게 더 가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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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집편과 황토길편

 

 

 

촉박한 일정과 여러 가지 형편상, 2주에 3편을 만드는 걸로, 약간의 조정을 했다. 매주 두 편씩 만든다고 강행군하면, 한두달 지나지 않아 전부 초죽음이 될 듯 싶다. 하여간 약간 숨통이 틔였다.

 

 

 

첫방으로는 결국 땅콩집편이 결정되었다. 아파트 단지와 땅콩집 단지,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전세 사는 사람들의 대안으로 땅콩집을 제시해도 좋은가, 나도 정말 고민 많이 했다.

 

이런이런 좋은 점이 있어요, 이렇게 예뻐요, 그런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격계산을 포함해서, 이것저것 정말 이현욱 소장과 많이 따져보았다.

 

 

 

우리 스탭들, 참 표정이 밝아서 좋다. , 저 나이 때 나도 저렇게 밝게 웃었던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이다.

 

 

 

 

땅콩집의 설계자, 이현욱 소장. 막상 만나서 한참 얘기를 해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었다. 간만에 말이 통하는 건축가와 만나서 내 기분까지 좋아졌다.

 

 

 

 

당분간은, 한 주에 두 개씩은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서, 지난 주에 두번째 찾은 곳은 계양산의 황토길. 그야말로 진짜 희한한 싸장님을 만났다. 대전 지역의 선양소주 싸장님. 회사에서 돈을 대서 100리에 걸친 황토길을 조성하고, 그걸 유지관리하고 있는뭐야, 이건 또.

 

 

 

 

 

 

성공한 사람에 대한 성공 스토리보다,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 위주로 많이 끌고 갔는데, 듣다 보면 울컥하는 순간들이 몇 번 있다. 예전 700-5425인가, 삐삐 컬러링 사업하던, 그야말로 벤처 1세대였는데, 어느새 낙향하여 소주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일반적인 잣대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강직하지만 즐거운, 그리고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업종을 전향한 대표적 사례이다.

 

, 소주라도 한 박스 주고 가실까 싶어 내심 기대를 했지만

 

다음 주에도 두 군데 뛴다. 드디어 선대인네 집에 간다. 좀 더 방송 안정화되면 하려고 했던 건데, 에라 모르겠다, 이것저것 막 던진다.

 

TV판 나꼽살 기획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잘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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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 인터뷰로 갈지

 

그냥 간단한 인터뷰 방송 만들어본다고 시작한 게 일이 좀 커졌다. 어쨌든 경제 휴머니즘을 기치로 내걸고 7 1일부터 첫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자유롭고 내 운신의 폭도 넓은 편이다. 좀 더 래디컬한 얘기들을 담아도 좋을 듯 싶고.

 

인터뷰라는 게 어쨌든 시청자들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기본이기는 한데, 이렇게 했던 인터뷰 방송들이 그간 성과가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 조금 더 새로운 주제와 현장을 발굴하면서 가도 좋지 않을까그런 욕심도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하여간 어디에도 없던 방송, 그런 걸 만들겠다는 욕심만은 유효하다.

 

그렇다고 채널 여건상, 물량 투입을 엄청나게 하기는 어려워서, 소규모 제작진으로 가니까, 긴 시간 리뷰를 하면서 아이템을 찾고, 그걸 다시 다듬는 작업을 하기는 좀 곤란하다. 첫 방 나가기 2주 전에 미리 촬영을 시작해서, 그날 그날 찍어서 바로 내보내야 하는 상황보다는 좀 여유가 있다는 게 위로일까?

 

어쨌든 당분간은 크게 다루지 않은 숨은 이슈와 숨은 인물들을 찾아보는 데 조금 신경 쓰려고 한다.

 

그리고 해석’… 어디에서도 하지 않은 새로운 해석을 해보려고 한다.

 

방송에 나오고 싶은 사람이나 아니면 꼭 다루었으면 하는 얘기들 혹은 방송 후기들을 다룰 수 있는 게시판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sbs cnbc가 워낙 열악한 편이라서, 그렇게 게시판 열 공간이 없다.

 

다움 카페라도 열어볼까 생각했는데, 이걸 관리해줄 사람도 없어서그야말로 이 블로그에 댓글 다는 것 외에는 별 방법이 없다.

 

하여간 기왕에 시작했는데, 경제를 보는 좀 다른 시각들을 한 번 정리해보고 싶다. 같은 아이템이라도 시선을 바꾸고, 해석을 달리하면 어떤 얘기가 되는지. 그런 욕심은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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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CNBC 보도자료

 

SBS CNBC 홍보담당 :  김혜림  | 02-6938-1619  |  hrk@sbs.co.kr

 

[우석훈의 사람이사는 경제, 71일 첫방송]

 

 

 

 

 

 

 

 

 

▲독수리 다방 손영득 사장편 (진제공: SBS CNBC)

 

[세상 어디에도 없던 휴머니즘 경제 대담 프로그램]

 

구두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만년필이 아닌 카메라를 들고

책상이 아닌 현장을 누비며

경제학자 우석훈이 직접 발굴해낸

사람냄새 나는 경제이야기들~

 

절망의 시대를 사는 20대의 이야기를 다룬 책,

88만원 세대」로 우리 시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던

자칭 C급 경제학자 우석훈이 이번에는 휴머니즘 경제에 눈을 돌렸다.

치열한 경쟁속에 각박해져만 가는 현대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는 인물!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경제 현장을 찾아, 우석훈 박사만의 독특한 시선과

솔직 담백한 화법으로 풀어내는 황금같은 30!

 

세상 어디에도 없던 경제대담 프로그램,

「우석훈의 사람이 사는 경제」가  7 1일 첫 방송된다.

 

 

 

▲자칭C급 경제학자 우석훈의 눈과 입담으로 풀어낸 휴머니즘 경제대담(진제공: SBS CNBC)

 

 프로그램 :  SBS CNBC 우석훈의 사람이 사는 경제

  방송시간 :  ~금 매일 오전 10 (30분 방송)

  진 행    :  우석훈 박사 (경제학자)

  방송내용 :

- 땅콩집 건축가, 이현욱 소장

책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휴머니즘 경제학을 전해줄 첫 번째 만남은 바로, 아파트 중심의 현대 주거문화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땅콩집’ 건축가 이현욱 소장!

2011년 땅콩집 1호를 지은후, 그야말로 폭발적 관심과 집짓기 열풍이 불어왔는데... 우석훈 박사가 이현욱 소장을 직접 만나 어디서도 공개하지 않았던 땅콩집 열풍 그후의 이야기들을

들어보고,,,,가치있는 주거공간과 행복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땅콩집 건축가 이현욱 소장 편 (진제공: SBS CNBC)

 

- 신촌명소 독수리 다방을 부활시킨 2대 사장, 손영득

7,80년대 청춘의 낭만과 고민을 함께한 신촌 최대의 만남의 장소 독수리다방,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시대가 도래하면서 2005년 폐업할 수 밖에 없었는데...

독수리 다방과 사라진 청년들의 문화공간 복원에 청춘을 건 청년이 있다.

2013년 독수리다방 다시 살리기에 인생을 건 금융맨 출신 손영득 사장의

사람냄새나는 경제 이야기를 우석훈 박사와 함께 들어본다.

 

- 역사체험 벤처 대표, 여대생 김송이

88 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이 당찬 88만 세대를 만나다. 역사체험 벤처회사를 설립한 20대 여대생의 파란만장 벤처 사업기를 통해, 청년 창업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담는다.

 

 

 

▲여대생 역사 벤처 창업 김송이 대표 편 (진제공: SBS CN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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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휴머니즘 촬영 시작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경제 채널에서 경제 방송을 하나 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우여곡절 끝에 경제 휴머니즘이라는, 내가 생각한 목표 하나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게 쉽지가 않다.

 

많은 돈을 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획 기간도 워낙 짧고, 기타 등등, 말로 하기 어려운 제약 조건이 많다.

 

경제 방송이라는 게 원래 경제적으로 하는 방송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도 잘해보고 싶다. 첫 번째 촬영은 연세대학교 앞에 최근 다시 문을 연 독수리다방으로 나가게 되었다.

 

 

할머니 잘 만난 어느 손자의 이야기, 게다가 아내는 약사라니그렇게 금수저에 관한 얘기가 아닐까, 걱정을 많이 하고 갔었다.

 

결론적으로, 경제학 전공자가 자신이 다니던 금융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자 사장이 된 드롭아웃이야기

 

인간이 이렇게 맑은 모습을 가져도 되는가 싶게, 정말 고운 인간이다. 프랜차이즈 상권 네트워크 앞에서, 아마 태어나서 처음이다 쉽게 좌절 속에서 버티고 있는 중이다.

 

드롭아웃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아오던 공간을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그런 얘기가 될 듯 싶다.

 

8년간 다니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사직서를 내던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제작 감독들의 난감한 표정. 나도 참 난감했다.

 

땡볕 아래에서, 결국 인터뷰를 두 번 진행했다. 수원성 아래에서, 날은 덥지, 내용은 잘 안 나오지, 게스트는 카메라에서 당황, 얼음 모드.

 

 

 

 

좀 더 잘 나온 사진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나는 이 사진을 집어들었다.

 

27, 대학교 휴직 중, 대학생 벤처 아주누리의 대표, 그리고 역사학도.

 

, 어쩐지 안될 것 같은 상황 속에서 이렇게 밝게 웃을 수 있다니. 내가 27세에 저렇게 밝게 웃을 수 있었나, 아니 어른이 된 후 저렇게 밝은 웃음을 가져본 적이 있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7 1일 아침 10, 첫방이 시작된다.

 

일단은 청년들 얘기로 두 회분을 준비하고, 어른들 얘기로 두 회분을 준비한다.

 

땅콩집 얘기와 성공한 사장 이야기가 어른들 얘기이다.

 

뭐가 첫 방이 될지는 아직 결정이 안되었다. 어쨌든 가장 풋풋하고 기운이 넘치는 인터뷰가 첫 방이 될 것이다.

 

경제 휴머니즘, 말은 던져놨는데, 솔직히 뭐가 경제 휴머니즘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몇 달간 스튜디오 촬영만 했었는데, 간만에 현장 촬영으로다음 주 수요일 촬영은 새벽 다섯 시 반부터 일정이 시작이다. 우와, 죽겠네.

 

꼭 해보고 싶은 주제들이 있는데, 이게 시청률이 좀 나와야 촬영 결정을 받을 수 있는 거라서. 아직은 여러 가지 면에서 궁핍하고, 옹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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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팅!

 

동료들을 잃는 것, 그것만큼 마음 아픈 일도 별로 없을 듯싶다.

 

슬럼프나 위기라고 생각하기에는 내 주변 동료들이 요즘 다 힘들다. 미화 선배는, 이제 집 좀 정리가 되었으니 한 번 놀러 오라고 하시는데, 그 시간도 못 낸다. 그냥 마음 속으로 송구스럽기만. 1년 넘게 같이 방송을 했으니, 목소리만 들어도 심경 같은 게 전해진다.

 

매일 아침마다 몇 시간씩 얼굴 보면서 방송했던 김학도 등 동료들이 떠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 이것도 참 못할 짓이다. 개편이 워낙 예정에 없던 것들이라, 다들 섭섭함이 더 컸다. 요즘도 김학도와 가끔 통화한다. 그는 경제방송을 정말로 해보고 싶었다. 언젠가 같이 할 수 있는 뭔가를 한 번 만들어보자고아침 방송이라는 게, 이상하게 삶 그 자체와도 같은 성격이 있는 듯싶다.

 

Take 후속 방송은 우석훈의 사람이 사는 경제로 타이틀이 잡혔다. 기본으로는 인터뷰 방송이고, 여기에 다큐 형식을 가미해서.

 

하여간 사람과 사건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간다, 그리고 그 속의 경제적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 정도.

 

스튜디오 방송에서 야외 방송으로 바뀌면서, 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고, 그렇게 좀 바뀌었다.

 

주당 2편씩 만들고, 화목이 본방, 나머지는 재방.

 

50명 가량이 붙어서 하던 팀에서 10명 정도로 팀이 단촐해졌다. 급하게 기획 작업이 진행되다 보니, 아직 팀회식도 한 번 못했다.

 

어쨌든 카메라를 쥐었으니, 우리들의 오랜 동료, 심상정, 노회찬, 이런 양반들 만나러 가야할텐데, 그렇게 정치적인 색채가 강한 아이템은 일단 방송 틀 잡히고 안정된 다음에

 

어떻게 내용이 나올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일단 나는 경제 휴머니즘을 내걸었다. 화려하게는 내가 원래 화려하지 않으니 그건 좀 어렵지만,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경제 얘기를 해보겠다, 그 정도 다짐은 있다.

 

7월에 첫 방이 나가는데, 제작은 이번 주부터, 그러니까 내일부터 첫 촬영이 시작이다. 2주분을 먼저 만들어놓고 그렇게 시작하는 계획인데, 아이템에 한 회 분 여유가 있어서, 한국일보 문제를 다루어볼까, 그런 고민하는 중이다.

 

파업현장이나 아픔이 있는 곳에도 힘 닿는 데까지는 가보려고 한다. 세상에 경제가 개입되지 않은 문제가 얼마나 있겠나?

 

인터뷰 작업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나는 늘 하는 작업이다. ‘88만원 세대준비하면서도 인터뷰 상당히 많이 했었다. 요즘도 경향신문 기사 쓰면서 좋든 싫든, 1주일에 2~3회씩 인터뷰를 한다. 그렇게 책 작업하면서 하는 인터뷰를 좀 더 공개적으로 하는 것,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방송 개편하면서 새로 생기는 방송이라, 마음이 이래저래 편하지가 않았다.

 

인터뷰 방송한다고 하니까 제일 좋아한 건, 선대인이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선대인이 좀 웃기는 편이다. 자기가 나가고 싶단다

 

푸하하, 예상치 못한 답변에 간만에 크게 웃었다.

 

그러세요

 

양평에 있다는 선대인 집에는 아직 한 번도 못 가봤다. 핑계 대고 선대인 경제연구소 한 번 가볼 수 있겠다.

 

어쨌든 유명한 사람이나 성공한 사람 그리고 행복한 사람만 만날 생각은 아니다. 지금 한참 고민 중인 사람, 위기의 인간, 그리고 내 맘을 짠하게 만드는 청년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좀 더 부각시키고 싶다는 게 약간의 욕심이다.

 

재밌는 방송에 대한 자신은 없다. 그렇지만 어디에도 없는 방송은 만들어볼 수 있을 듯싶다.

 

지난 번 방송에 코너로 있던 색다른 시선이 아예 덩치가 커진 것, 제작진들은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 내 생각과 많이 다르지는 않다.

 

요즘 되는 일도 별로 없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별로 없다. 내 주변 사람들이 다 힘들어하거나 잠적 중 혹은 전번 바꾸고 진짜로 행방불명, 이러고 있는 와중에 나 혼자 힘을 내는 게, 가능치도 않고, 편치도 않다.

 

그래도 내일, 새로운 방송의 첫 촬영이 시작된다.

 

내 뒤에 같이 움직이는 사람이 열 명이다. 편하게 생각하면, 그들과 그들 가족의 삶이 나한테 달려 있는 셈이다.

 

어떻게든, 힘을 내야하지 않겠나?

 

, 파이팅!

 

그리고 명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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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고양이들

 

비 오는 밤, 맘이 편치 않아 잠시 길가 산책을 나섰다.

 

집 담벼락에 노란 고양이들이 줄줄이 걸어가는 게 보였다

 

우리 집 마당에 사는 노랑이들

 

이 모든 어려움을 겪어내고 자기들끼리 산책을 즐기는 녀석들을 보면서,

 

브라보, 내 삶의 큰 기쁨이구나, 녀석들

 

몇 달만에 혈관이 터지듯, 기쁨이 터졌다

 

녀석들의 삶이 잠시의 해피 엔딩이듯, 나도 작은 해피엔딩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 오는 날, 고양이들을 보면서 잠시 행복했다

 

왜 나는 사람에게는 행복을 못 주는가,

 

, 어쩔 수 없지 않느냐, 그런 약간의 패배감도 맛보았다.

 

그러나 모든 걸 지는 것 보다는, 이 편이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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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명랑

 

하여간, 하는 일마다 안 되는 시기가 있다. 요즘 내가 그렇다.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나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내가 그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도 별로 없다.

 

동료들을 지켜줄 수 없다는 것, 그게 내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괴로움이다.

 

운동권으로 살아온, 그야말로 전형적인 80년대 인생으로서, 서로를 지켜줄 수 없다는 과거를 환기하는 것이, 이 나이에도 여전히 힘들다.

 

500번대 채널에서 집중분석 take라는, 그야말로 아무도 보지 않을 듯 싶은 방송을 같이 만든 것은 3월 중순부터이다. 연초부터 시작한 방송인데, 나는 좀 뒤늦게 결합했다. 믿거나 말거나, 하여간 처음부터 내가 하는 역할이 있던 그런 방송이라고 하는데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이다.

 

나름대로 정도 들고, 동료들에 믿음도 생겨나게 될 순간, 방송 개편이 되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1년 정도는 하지 않을까, 그렇게들 50여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정성으로 붙어 앉아서 만들었던 방송이다.

 

100회부터는 새로운 전기를 맞을까, 그렇게들 생각했는데, 현실은… 100회 기념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이 정도 구조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듯이, 기분 참 더러울 구조이다.

 

, 살다 보면 이런 일 한 두 번 겪는 것은 기본이니까,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 일인데

 

그 방송을 작게 쪼갠 방송 중에 하나를 내가 맡게 된다는 걸 알게 된 후에

 

뭐 데쓰까

 

이거 뭐지?

 

업친데 덮친 격으로, 몇 년째 같이 일하던 에디터가 최근 책의 판매 부진으로 출판사를 옮기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 내가 잠시 헤매고 있는 동안, 내 주변에서는 그야말로 난리 뽀가리가 나고 있던 거라.

 

지난 주말, 아주 약식으로 동료의 환송회를 해주었다가, 늦게 들어왔다고 아내한테, 정말 더럽도록 심하게 깨졌다.

 

그날 따라 아기는 아주 사람 염장하게 한 난리 친 날이었다. 아기 기분 돋는 날, 정말 사람 기분 돋게 만든다

 

아내한테 엄청 터지고, 그냥 또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니가 애기 아빠야?

 

, 사실, 할 말은 없다.

 

사는 게 뭐, 그런 거지.

 

하여간 더 나아갈 수도,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도 없는 그런 그런 몇 주를 지냈다.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았던 45년 인생, 지거나 이길 수는 있어도, 이렇게 진 것도 아니고 이긴 것도 아니고, 그냥 덤덤하게 버틴 것은정말 내 기억에는 없는 일이었다.

 

명랑을 모토로 살았던 내가, 아주 깊은 상처를 받았다.

 

이거, 인상 쓰면 지는 거고, 웃으면 위선이고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몇 주를 보냈다.

 

그 동안에 글이라도 잘 써지면, 그래, 나는 또 내가 할 일이 있어, 그러겠는데

 

이 심정에 글이 써지겠는가? 그리고 설령 혹시 써진다고 하더라도 그게 내 글이겠는가?

 

당연하다 싶게, 글도 안 써지고, 이렇게 쓰고 버리고, 저렇게 쓰고 버리고.

 

그 동안에 되는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그리고 써 질 글이 뭐가 있었겠는가?

 

나는 최선을 다한다고 했더라도, 그게 무슨 최선이었겠는가? 그야말로 민폐 아니면 다행이지

 

하여간 그리그리하여, 내가 하던 거의 대부분의 것들을, 가장 가까운 시간에 내려놓기로 하였다. , 내가 그렇게 즐겁지 않은데, 억지로 뭔가 한다고 해서, 내가 누군가를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게 맞는 방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탈탈 털고, 그만둘 것은 그만두고,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이게 지난 몇 주 동안 내가 한 일이다. 뭔가 찾고 만들고, 시도하기 위해서 시간을 쓴 게 아니라, 내가 하던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엄청 노력하는

 

그래, 참 열심히 살았다!

 

그래도 재미없고 신나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하면서, 어떻게 명랑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 어쨌든 이래도 의미가 있고, 저래도 의미가 있고, 이건 이래서 중요하고, 저건 저래서 중요하고

 

썰레발

 

을 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거..이다. 그렇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명랑할 수 있을까. 그게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부딪힌 고민과 질문이다.

 

하여간 이렇게 계속 고민을 하다가, 오늘 오후에 스쳐가듯이 잠시 결심을 했다.

 

어쨌거나 명랑

 

원래도 나는 명랑이 모토였는데, 지금 갑자기 인상 쓰고, 뭔가 힘들어한다고 해서, 그게 더 좋을 이유도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나는 명랑하고자 할 때, 내 삶이 제일 재밌었었다.

 

그게 남들에게도 명랑이거나 재밌었었는가,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거나 명랑, 그거 외에 이 삶이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후로, 같이 일하던 동료작가들에게 술 한 잔 사겠다고 전화를 했다.

 

술이 뭐 중요하겠는가, 그냥 마음이 함께라는 얘기 한 마디라도, 이 정도의 결심을 하고 나서야 겨우 할 수 있었던 것을.

 

새로 시작하는 방송, 목요일 날 첫 녹화가 시작된다.

 

take라는 이름으로, 보는 사람은 없어도 자랑스럽게 얘기했던 방송 대신, 하는지 안하는지, 정작 진행자인 내가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모르겠다

 

어쨌거나 명랑,

 

다시 한 번 명랑을 모토로 세우려고 한다.

 

웃어야지, 어쩌겠냐.

 

아주 예전에, 내가 힘들었을 때 했던 생각이다.

 

전쟁은 이길 수 없어도, 전투는 이길 수 있지 않느냐

 

아주 작은 전투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사람이, 명랑을 모토로 작은 전투라도 의미 있게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지는 건 괜찮다. 그러나 정말 무의미하게 밀리고, 그 사이에서 웃음마저도 잃는 건 너무 싫다.

 

그리하여, 별 볼 일 없는 삶을 마이너 리그에서 보낼지라도,

어쨌거나 명랑!

 

그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게 내가 생각한 어쨌거나 명랑의 의미이다.

 

나의 동료들과 이 작은 결심을 나눌 수 없는 것은, 여전히 마음 아프다.

 

그러나 이 정도로라도 내가 마음을 먹어야, 그들과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나는 다시 한 번 명랑, 어쨌거나 명랑.

 

 

지난 대선을 코 앞에 두고 영안실의 고혼이 된 이재영이 늘 말했었다.

 

나는 지는 법이 없어…”

 

그 이재영의 웃음을 다시 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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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Q를 보고 나서

 

아기 때문에 요즘 영화를 거의 못 본다. 가끔씩 밤에 케이블에서 해주는 영화를 짧게 보는 것이 전부일 정도. 그렇다고 책을 많이 읽느냐, 아기가 달려들기를 피하면서 잠시 읽는 정도. 하루에 한 권 읽기도 정신 없다.

 

에바 얘기를 처음 보기 시작한 건, 서른 살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살기가 힘들었고, 뭘 해야할지도 잘 몰랐고,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대체적으로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 때는 특히 더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게다가 그 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30대 초반이 지나면서 대인기피증이 아주 심해졌다.

 

다른 우울증은 그 이후로 많이 없어지고, 이젠 왜 그랬는지도 별로 생각이 나지도 않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대인기피증은 여전한 것 같다. 여전히 혼자 있는 게 편하고, 혼자 생각하는 게 좋다.

 

아마 일본 80년대와 9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나와 비슷하게, 꽉 짜여진 사회 속에서 그렇게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서, 좀 더 다른 공간과 시간을 상상했던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헐리우드의 작법을 따라 편하게 만들어진 4시퀀스 구조를 따라, 혹은 13579로 나가는 플롯을 따라 얘기를 만드는 방법은, 별로 그렇게 재밌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많은 돈과 전문적 시스템을 통해서 뭔가 만들 가능성은 아예 없다는 현실적 절망이, 다른 방식의 얘기 전개에 더 매력을 느끼게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에바 시리즈에는 서로 다른 엔딩이 몇 가지가 있다. 도대체 이게 뭐냐, 그런 혹평을 받았던 극장판의, 그야말로 집단 심리상담 같던 그 엔딩도 좋았다. 나는 누구인가, 전혀 질문은 생략한 채로 지구 평화를 위해서 죽어라고 날아다녔던 아톰에서 수많은 자이언트 로봇들의 얘기, 그런 데에는 존재의 질문은 생략되어 있었다. 사랑과 욕망 혹은 의무감, 그런 것들이 사람을 움직이는 데에 충분했다.

 

에바에서 던져진 그 질문이 좋았다. 에바 초호기를 타면서 느끼게 되는 신지의 불안과 공포, 도대체 동기는 무엇인가, 그렇게 계속 던져지는 질문이 좋았었다.

 

극장편에는 조금 다른 결론들이 있었고, 더 전격적이며 더 현실적인 엔딩들이 있었다. 그런 것들 것 나름대로는 좋았다. 도대체 왜 그렇게 수많은 다른 엔딩들이 필요할 것인가,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일관되게 얘기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열린 결론들로 계속해서 끌어나가는 수 많은 다른 엔딩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에반게리온 Q는 앞에 나온 서, 파와는 달리 그 후의 얘기를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TV판이 처음 공개된 후, 처음으로 서드 임팩트 이후의 얘기를 한 것이다. 그 이후로 14년이 흘렀는데, 그냥 구경만 하던 내 삶도 그새 15년이나 흘러갔다. 그 사이에 나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나도 질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신지가 14년 동안 잠들어있으면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나도 과연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뭔가 본질적인 변화가 생겼는가?

 

글쎄, 그런 복잡한 건 잘 모르겠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여전히 잘 모르겠고, 뭔가 꼭 하고 싶다는 욕망 같은 것도 여전히 없는 듯 싶다. 만약 차이가 있다면, 그 때는 민중들을 위해서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은 좀 있었던 듯 싶은데, 아주 솔직히, 요즘은 그런 의무감도 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때도 아침에 일어나면 뭘 해야할지 잘 몰랐는데, 요즘도 잘 모른다는 것. 해야할 일들의 리스트는 있지만, 그걸 꼭 오늘 해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 해야 하는지, 그런 것도 잘 모르겠다는 게 여전히 같은 듯싶다.

 

사는 집은 좀 바뀌기는 했는데, 어쨌든 그 때도 집이 있었고, 지금도 집이 있었고당시는 내 방에서 편하게 담배를 피웠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것, 억지로 찾으면 그 정도 차이가 아닐까 싶다.

 

그럼 도대체 지난 15년 동안, 도대체 난 뭐를 한 거야? 신지처럼 잠자고 있었던 거야?

 

그 때도 내가 지켜줄 수 없는 사람들 생각하면서 괴로웠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좌파로 살다 보면, 동료들을 지킬 수 없는 순간들이 종종 오게 된다. 평생 초등학교 동창회부터 다 챙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좀 다르게. 같이 일하던 팀이 깨지고, 동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그걸 무기력하게 보고 있어야 하는 순간들이 종종 온다.

 

그런 일을 다시는 겪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결심을 했지만,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며 마지 데쟈뷰처럼 그런 일을 겪게 된다. 그러면 다시 무기력한 생각에 치를 떨면서, 다시 방안에 틀어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지내는

 

그러면 팍 그만두거나 팍 떠나버리면 될 거 아냐예전처럼 그냥 외국으로 나가버릴 만한 그런 힘도 용기도 없다는 데에 사태의 어려움이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이를 먹으면 늘어난 뱃살만큼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같이 많아진다. 좋게 해석하면 안정감이지만, , 의욕상실과 용기 감소, 그런 것 아니겠나 싶다.

 

하여간 이런 불안감 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6월을 보냈다. , 6월이 다간 건 아니다. 이제 막 절반이 지났을 뿐이니

 

어쨌든 좋든 싫든, 이번 주부터는 새로운 방송의 촬영이 시작되고, 성과가 있든 없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움직여나가게 될 것이다.

 

에반게리온 파는 2편으로 나누어져, 이번에 본 것은 전편이다. 에바의 세계에서는 진작에 나온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나는 그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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