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정의 새 책을 읽었다. 일단 책은 읽기에 편하다.

노안이 꽤 심해지면서 점점 책을 읽기가 어려워졌고, 그러다보니 책에다 줄을 그어가며서 읽는 습관이 새로 생겼는데... 이 책은 펜을 준비하고 정색을 읽지 않아도 되는, 간만에 편한 책이다.

(그러나 출판사에서 해제를 써 달라고 같이 보내준 원고는, 골 아플 생각을 하니까 차마 손이 가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는데, 같이 온 목수정 책을 먼저 집었다. 집자 마자 읽어내려갔고, 다음 커피가 마시고 싶어지기 전에 책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저자로서의 목수정에 대해서, 나는 문화복지와 문화행정과 같은, 그가 전공이었던 그런 분야에 대해서 분석하는 그런 사회과학풍의 책을 더 많이 써주기를 바랬지만.

일단은 에세이부터 먼저 시작하기로 했나보다. 그런 선택을 한 것 같다.

책은 최근 한국에서 진행된 연애에 대한 담론 실종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학자들이 이런 문제에 들어갈 때 일단 통계부터 현황을 살펴보고, 관련 논문들이나 저작에 나오는 얘기들을 죽 풀어놓고, 그리고 끝날 때쯤 되어서 자신의 생각을 아주 약간 보여주는 것과 달리...

목수정의 책은 솔직하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지금 한국의 연애 현상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 총체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작년에 이대 대학원에서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자본주의와 여성, 그런 주제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했는데, 공동수업이었던 이유인지, 아니면 뭔가 삼투압 현상을 일으키는데 실패한 것인지, 생각만큼 그렇게 성공한 수업은 아닌 것 같다만. 나는 개인적으로 꽤 많은 것들을 배웠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여성들이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그 속에서 불안감 그런 것들과 함께 그 또래 여성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실증적인 자료들을 접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아무래도 남성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들이 상상하면서 생각해보는 그런 세상, 그런 것은 없다. 그 솔직함을 목수정이라는, 매우 세밀하면서도 민감한 센서를 따라서, 혹은 잔잔하면서도 순간 폭발의 문체를 가지고 있는 가이드를 따라서.

내가 이해하고 있는 1~2년 사이의 한국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에 걸친 여성들의 생각의 한 부분과 목수정이 묘사해준 한국의 모습은, 상당 부분이 일치하는 것 같다.

목수정한테 새롭게 배운 것 중 하나가, '헌팅'이라고 하는, 아마 불어로는 draguer라는 속어로 표현하는 것 같은, 그런 행위가 한국에서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뭐, 아주 없어진 것 같지는 않다. 길거리에서 "아가씨 차나 한 잔 합시다, 장미 빛깔 그 입술", 그런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들이, 이제는 웨이터를 매개로 한 나이트 클럽으로 전환되거나. 아니면 홍대 앞에서 예술을 매개로 한 상업 공간으로 숨어들어갔거나.

비슷한 얘기를 나도 몇 번 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연애편지를 가슴 절이며 쓰는 대학생을, 연구를 위해서 수소문을 해봤는데 결국 못 찾은 적이 있었다.

신자유주의의 광풍과 함께 토건이 한국을 휩쓸면서 경제 근본주의가 클라이막스로 갔다.

길거리에서 모르는 여성한테 말을 거는 것, 절절하게 연애편지를 쓰는 것, 이런 것들은 사라졌다. 그 빈 공간을 이벤트가 채웠고, 럭셔리 선물이 채운다. 물론 감성은 상업성으로 치환되었고, 사랑은 경제성이라는 저울에 놓고 잴 수 있는 것과 동치되어 버린 것 같다.

성경에 나왔던가,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아마 예수가 "너희는 서로 거래하라", 그렇게 하지 않은 것 같기는 하다.

목수정의 책을 읽으며, 간만에 나도 연애와 연애 실종, 그런 것들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볼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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