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亂)

영화 이야기 2010. 4. 27. 03:14

나도 꽤 영화를 많이 본 편이고, 아마 남들 안 본 영화도 적지 않게 본 것 같다. 상업 영화 아닌 영화도 많이 봤고, 기획 중인 영화, 그래서 결코 개봉되지 못한 슬픈 영화들도 꽤 본 것 같다.

 

그 중에서 정말 원형에 해당하는 영화가 뭘까, 잠깐 생각을 해봤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까지, 나도 내 주변 사람들보다 영화를 덜 본 편은 아니지만, 목숨 걸고 전문적으로 영화를 본 것은 아니다. 영화사 공부는 대학 2학년 때, 약간 집중적으로 한 것 같지만, 그 교과서 안에 있는 영화들을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몰래 숨어서 봤던 <전함 포템킨호> 정도가 학부 시절까지 내가 봤던 영화의 거의 마지막 정도일 것 같다.

 

아키라 구로자와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그가 군국주의 찬송자였다는 평이 늘 따라 붙는다.

 

하여간 그 시절에는 펠리니와 구로자와, 그렇게 두 사람을 표현주의 혹은 기타 등등의 사조에 대한 이름을 붙이면서 맨 앞의 사람으로 칭송하던 그런 시절이었던 것 같다.

 

<난>을 본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난>을 보고 난 다음의 감상을 얘기하자면, 아마 그 때 내 나이가 스물 둘인가 했던 것 같은데, 세상에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었다. 얘기는 너무도 익숙한 '리어왕'의 일본 버전이라고 하지만, 스토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걸 표현할 수 있는 그런 방식이 있었나... 정말 촌놈이, 까박 넘어갔다.

 

지금까지도, 왕의 군대가 전멸하던 그 공성전의 충격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약간 맥락은 다르지만, 혁명과도 또 다르고, 민란과도 또 다른, 바로 구로자와 영화에 있는 '난'의 느낌을 가슴 속에 가지고 살아간다.

 

<거미의 성>은 맥베드 , <난>은 리어왕이었다. 세익스피어의 5대 비극을 일본 버전으로 만든 것인데, 여기에서는 리메이크라는 느낌 보다는, 구로자와라는 사람을 바로 맞대어 보는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된다.

 

구로자와의 영화로 영화사에 남는 것은 <7인의 사무라이> 그리고 내가 종종 책에서 인용하는 <카케무샤> 같은 것들이 있고, 거의 마지막 영화이자 유일하다시피한 구로자와의 반전 영화인 <꿈> 같은 것들이 있다.

 

다 재밌다만...

 

<난>은 딱 그 나이 때 나의 감성을 팍 건드렸다.

 

간만에 다시 <난>을 틀어놓고, 스물 두 살의, 처음으로 일본식 스펙타클을 보면서 감탄하던, 그 시절의 촌놈으로 돌아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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