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의 책을 선정하는 여러 단체들이 있다. 올해는 특히 고민이 많을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와 김예슬의 <김예슬 선언>, 이 두 가지를 놓고 고민 많이 하게 될 것이다. 아직 올해가 절반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아마 이 두 권의 책을 제외한 다른 책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다면, 판매량과 메시지와 상관 없이, 그 단체는 그것이 언론이든, 문화단체든, 이 시대를 우리와 같이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니 말이다.

 

미덕을 얘기해보자.

 

김용철 변호사의 책은 이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물론 이 사회를 그냥 내버려둔 나 자신도 돌아보게 하지만, 역시 세상을 돌아보게 하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김예슬의 책은,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물론 그의 책도 이 사회의 구조를 돌아보게 하지만, 멍 때리고 살아가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미덕을 가지게 하고 있다.

 

가장 나쁜 책은, 왜 샀는지, 광고지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 아니라,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그거야말로 악마의 목소리일테니 말이다.

 

악마가 뭐 별거냐?

 

너나 잘 하면 돼...

 

올해 상반기에 나온 이 두 권의 책은, 다른 잘 나가는 책을, 순식간에 악마의 목소리라는 것이 드러나게 한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이 '소돔과 고모라'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단 한 명만 제 정신이라도, 너희를 용서하겠다...

 

다행이다. 이 두 사람 덕에, 한국이 불바다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박해자이면서, 동시에 대속자이기도 하다.

 

우리의 죄를 대신 사하여주신.

 

법조인 김용철의 책이 다분히 경제학적이었다면, 경영학도 김예슬의 책은, 다분히 신학적이다.

 

대속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

 

2.

나는 두 번 그만둔 적이 있다.

 

한 번은, 에너지관리공단 3급 부장에서 2급 부장으로 승진을 생각하던 즈음에. 아마 1~2년 참고 버텼으면, 사업단장이나 작은 처의 처장 정도가 되었을텐데. 더 이상 공부를 안하면, 이제 공부는 더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그만 두었었다. 후회한 적은 없다.

 

또 한 번 그만둔 것은, 실제로는 연말이지만, 그만둘 것을 결심한 것은 작년 5월의 일이었다.

 

15년간, 보통은 겸임교수, 아니면 시간강사 신분으로 대학에서 계속해서 학생들을 가르쳤었다. 보통은 대학원 수업에서 박사과정들을 가르쳤는데, 어쨌든 계속해서 학생들을 가르쳤었다.

 

작년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여수 앞바다에서 마음을 먹은 일이다.

 

사람들에게는, 별 돈도 안되는 강사를 계속하는 게 힘들다고, 그렇게 말했다만.

 

대학에서 학생들을 대하는 게 너무 힘들어져서,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학생들이 변한 건가, 내가 변한 건가. 나는 학생들 쪽이 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건 모른다. 어쩌면 내가 변한 것인지도 모른다.

 

연말에, 15년간 몸 담았던 대학이라는 공간을 떠나면서 딱 한 마디를 신문에 남겼다. 별 얘기는 아니다.

 

상대평가 대신에 절대평가로 바꾸자, 그런 글 하나를 남기고 대학이라는 곳을 떠났다.

 

그 때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났다.

 

대학은, 크든 작든, 좋든 나쁘든, 지금은 '소돔과 고모라'이다.

 

뒤를 돌아보면, 소금기둥으로 변할 것 같이, 그런 곳이다.

 

그래도 나는 한 소리도 못했다.

 

대학의 부패를 내 위치에서 본다면, 기절초풍, 상상초월.

 

신문 보거나 TV 보면서 상상하는 그것과 궤와 질을 달리한다.

 

안 썩은 곳이, 사실상 단 한 곳도 없어보였다.

 

한국에서의 대학 개혁,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이건 내 얘기이다.

 

3.

김예슬의 책은,

 

한국이라는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지금 바로 여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대답을 하게 될 것이다.

 

김예슬의 책은,

 

결계와도 비슷하다. 마방진 구조라고나 할까...

 

일단 들어오면, 도무지 도망갈 구석을 주지 않는, 그러면서도 순환과 격자의 기하학적 문양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결계 구조이다.

 

도저히 답하지 않고 빠져나갈 틈이 없다.

 

답하지 않고 도망간다면,

 

그냥 '소돔과 고모라의 주민'이라는 점을 인정하게 된다.

 

나는 도망갈 틈을 찾지 못했다.

 

김용철 얘기는, 그래도 그건 삼성 얘기니까 혹은 잘 사는 사람들 얘기니까...

 

도망갈 틈이 있는데, 김예슬의 논리 구조는 도무지 틈이 보이지 않는다.

 

4.

책을 덮고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대로 망하고, 불타버리거나, 아니면 도망가다가 뒤를 돌아보며 소금 기둥이 되어버릴 것인가?

 

아니면, 가느다랗게, 살 길이 열릴 것인가?

 

그 어느 편이라도.

 

우리가 신의 저주를 받고 죽지 않는다면...

 

김예슬의 글은 결국 교과서에 실릴 것이다.

 

국사 교과서에 실리거나, 아니면 국어 교과서에 실리거나.

 

'올해의 책' 정도로 끝날 경미한 사건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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