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애들 보는 시간이랑 겹쳐서 수영장 가기가 아주 어렵다. 그나마 코로나 거리두기로 9시에 문을 닫게 되어서 아주 급하다. 사실 거의 못 간다. 어제 갔었는데, 오늘은 이래저래 할 일도 밀렸고, 안 갈까 했다. 요번 주에는 영화 시사회 가기로 한 것도 있고, 다음 주에는 저녁 시간에 일정이 몇 개 있다. 그 다음 주에는 지방 출장도 있다. 사실 갈 수 있는 날이 별로 없다. 일주일에 두 번이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하는 건데, 그것도 쉽지 않다. 

오늘도 습관처럼 그냥 쉴까 하다가 계속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억지로 갔다. 수영장은 집에서 꽤 멀다. 문정동 살던 시절에는 걸어가는 거리에 구청에서 만들어준 수영장이 있었는데, 이 동네는 그 정도 조건은 아니다. 

수영 끝나자마자 운전해서 청운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는데, 땀이 났다. 영하 3도인데, 더워서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아니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순간 매우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초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지난 달 두 달 전 쓰러지셨다. 어머니는 지난 주부터 아무 것도 드시지 않고 계셔서 급하게 일단 집으로 모셔왔다. 갑갑한 상황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하루 종일 인상만 쓰고 그렇게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람이란 참 단순하다. 수영하고 바로 나오는데, 땀이 막 흘렀다. 별로 하지도 않았는데, 몇 달만에 하는 거라서 풀어진 근육들이 놀랐다. 연초에 이것저것 검사를 했는데, 대부분 다 안 좋은데, 근육량만 좋게 나왔던 게 기억이 났다. 몇 달 수영장 다니다가 다시 검사를 했는데, 30대 이후로는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모든 수치들이 다 정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코로나 이후로 2년 동안 신경 써서 걷기를 많이 했는데, 내 경우에는 관절만 안 좋아지고, 별로 특별히 건강상 지표로는 변한 게 없었다. 몇 달 수영을 하고 먹는 걸 아주 약간 줄였는데, 10킬로 가까이 체중이 줄었다. 수영을 해서 나아진 건지, 살이 좀 빠지니까 나아진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어쨌든 대학 졸업할 때 체중이랑 비슷하게 되었다. 조금만 더 해서 유학 시절 체중으로 돌아가는 창대한 계획을 세웠었는데, 아버지 쓰러지신 이후로 모든 것은 일단 스톱. 그리고 죽어라고 먹기만 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 

내일 오전에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할 발표 준비도 오후에 끝냈고, 교육방송의 자료들도 검토 다 해서 보내줬다. 아주 잠깐이지만, 해야 할 일도 없고, 모든 것을 잠시 잊어도 좋은 순간이 왔다. 아주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2초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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