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우리 엄마가 딱 그래. 나이 많은 엄마들은 다 아무 것도 안 한다고 그래. 우리 엄마가 내 환자였으면 확!”

결국 간호사 하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 하는 후배 엄마도 치매가 있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아무 데도 안 간다고 하신단다. 

금요일부터 우리 집에 와 계신 어머니는 죽 조금 드는 듯 하시고, 계속 방에서 잠만 주무신다. 아버지가 병실에서 저러고 계신 걸 한 달 동안 봤던 게 지난 달의 일이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더니, 진짜 그런 건가? 

마지막 건강검진 받으신 게 언제인지 물어봤는데, 아무 대답도 없고 눈만 감으신다. 돌아삐리. 금요일날 간 동네 병원에서는 장염 증상이 조금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다음 날부터는 죽 대신 밥 드셔도 될 것 같다고 했다. 그건 물리적인 증상이고. 

오전에 병원에 모시고 가서 다시 링겔 주사도 맞고, 큰 병원 가기 위한 소견서도 받을 생각이었는데, 아무 데도 안 간다고 그냥 버티신다. 

“그만둬, 그만둬.”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의 대부분은 이 애기랑 같다. 싫다, 안 한다, 그리고 오늘 하나 추가된 것은 “집에 가겠다.” 

“어머니가 혼자서 식사도 준비하시고, 시장도 보셔야 하잖아요. 지금 그러실 수가 없잖아요.” 

오전 내내 고민을 하다가 간호사 하는 후배랑 상의를 해서, 약식 검진받는 것, 요양 등급판정 받는 것. 다 어머니가 펄펄 뛰실 일인데, 큰 병이 있는지 없는 건지, 알아야 치료를 한다, 집에 도와줄 사람을 보내더라도 등급이 있어야 정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설명은 드렸다. 

“우리나라 모든 엄마들이 다 똑같이 하는 레파토리야, 오빠.”

후배 얘기 듣고 잠시 웃었다. 치매 시작되면 병원에 가는 거, 누군가의 도움 받는 거, 협조적인 엄마는 아무도 없다는 거다. 우리의 노년은 이렇게 되고, 죽음은 이렇게 시작이 된다. 아마 우리 집에 오시지 않으셨으면 어머니는 그렇게 곡기를 끊고, 내가 사정을 알았을 것은 며칠 후일텐데, 그때는 시간을 잠시 세워놓을 수도 없을 것 같은 후회를 했을 것 같다. 

어머니는 싫다고 하셔도 어떻게든 병원에 예약해서 진단도 받고, 등급도 받는 일을 이번 주에 처리하려고 한다. 다음 주에는 나도 바쁘고, 그 다음 주에는 더 바쁘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이번 주가 마지막이다. 내일 모래 인하대에 강연이 있는데, 나도 처음 해보는 경제생활에 대한 강의다. 준비도 좀 해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아니다. 

막내 동생은 아버지 쓰러지신 다음에 두 달 동안을 매달려서 진이 다 빠진 데다가, 어머니 병원으로 모시려고 하다가 벌써 한바탕 해서, 이 일에는 끼지 않으려고 한다. 이해도 되는 이리다. 아내는 회사 일이 겁나게 바쁜 시즌이다. 아내에게 매달린 사람이 여럿이다. 

우리는 다 그렇게 산다. 달력을 보니까 나도 병원 예약해 놓은 게 며칠 뒤다. 이것도 한두 달 연기헤야 하는데, 오늘은 전화를 너무 많이 걸어서, 그 전화 할 힘도 없다. 이건 내일 처리하기로. 

오늘 저녁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수영장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몇 달 수영장 다녔더니 간을 비롯해서 많은 수치들이 다 정상 범위 안으로 들어갔다. 2년 동안 걷는 걸 해봤는데, 내 경우에는 몇 킬로를 걷든, 걷는 건 거의 수치에는 반영이 안 되고, 몸의 변화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정서상 그런 건지, 체질상 그런 건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수영은 직빵이다. 몇 주만 해도 많은 수치들이 급격히 움직이고, 몇 달 하면 거의 다 제 자리에 가 있는다. 아내는 내가 워낙 몸에 열이 많아서, 그럴 것 같다고 한다. 하여간 이유는 모르지만, 인생의 위기 때마다 수영을 하면서 힘든 것들을 참고 넘어간 기억이 있다. 

몇 달 꾸준히 했었는데, 팬데믹 높아지면서 수영장이 다시 문을 닫았고, 다시 수영장 가려고 할 때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그렇게 후딱 몇 달이 갔다. 오늘 저녁에는 꼭 수영장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실 것 같아.”

간호사 하는 후배에게 그런 얘기를 했더니, 그런 경우도 많이 봤다고 한다. 사람이 생명이 몸에 붙어 있는 것은 불안한 균형 같은 것 같다. 병원에 가면 어떤 경우라도 쉽게 죽도록 방치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매끼 드시거나 말거나 식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이것저것 드실 수 있는 것을 들이미는 것 외에는 없다. 하루 종일 누워서 잠만 주무시는데, 금방 근육량이 떨어지고, 거동이 어려워지고, 그렇게 생명이 붙어있는 작은 줄들이 점점 더 가늘어진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일이다. 

아버지는 지금 있는 병원에서 조금 더 집 가까운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서 병실을 기다리며 대기를 걸어놓은 상태다. 어머니와 아버지, 양 쪽을 모두 다 케어하기는 어렵다. 아버지 병원은 옮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지금 나를 도울 수 있는 건,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어쨌든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야옹구, 고양이 한 마리다. 

어머니가 나에게 한 마지막 명령조의 언어는 “저 고양이 가져다 버려랴”였다. 어머니는 고양이와 집 안에서 같이 사는 걸 이해하시지 못 한다. 내가 초등학교 때 방에서 고양이를 잠시 길렀던 적이 있었다. 겨울이라서 가능했다. 봄이 되고 고양이는 다시 현관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물론 나는 고양이를 나가게 할 생각도 없고, 그럴 마음도 먹어본 적이 없다. (고양이가 방문 열라고 난리다 ㅠㅠ.)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라면,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계시고, 어머니도 언제 병원으로 가게 되실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내 통장이 그래도 비교적 여유로운 때라는 점이다. 살다 보면 돈이 꽤 많았을 때도 있고, 달랑달랑 할 때도 있다. 지금은 비교적 넉넉한 때인데, 별 이유가 아니라 코로나 때문에 그렇다. 인세 등 들어오는 돈은 평균적으로 비슷한데, 팬데믹 이후로 나가는 돈이 확 줄어서 통장이 조금 넉넉하다. 사람들 만나서 밥 사고 그런 게 확 없어지니까, 나가는 돈이 아예 없다. 아마 지금 같은 상황에서 통장도 달랑달랑 했으면 훨씬 더 시껍했을 것 같다. 다행히 그런 상황은 아니다. 

미국의 대법관이었던 루이 긴즈버그의 초창기 사건 중에서 아이를 기르게 된 아빠가 국가에게 양육수당을 지급해달라고 신청한 건이 있다. 엄마는 되는데, 아빠는 안 된다는 게 소송의 핵심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아빠들도 전업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게 제도 정비가 되었다. 

나같이 아버지든 어머니든 돌보게 되는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 첫 번째 장벽들이 있을 것 같다. 전에는 왕진 같은 게 있었던 모양인데, 팬데믹 이후로 보건소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정지되었다. 그렇다고 사회복지사한테 대뜸 전화 걸어서 상의할 수 있는 상황인 것도 아니고. 

시청이나 구청에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원스탑 서비스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긴급 돌봄’ 정도의 이름으로, “아무 것도 안 할 거야”, 그렇게 얘기하기 시작하는 어머니들이 공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는 것들을 최소한 상담이라도 해줄 수 있는 곳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의사, 간호사, 시청에서 일하는 사람, 구청에서 일하는 사람, 경찰, 정말 전화 너무 많이 걸었다. 평소 자주 보지도 못하다가 급할 때만 연락하는 귀찮은 선배처럼 보일까 봐 정말 전화하기 싫었지만, 방법이 없다. 염치 불구하고 내 사정이 이런데, 어떻게 해야 되니, 그렇게 물어보는 수밖에. 누구나 간호사 후배가 있고, 의사 친구가 있지는 않다. 이런 것들을 모아서 한 번에 알려주거나 상의하는 그런 창구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 보면 ‘키다리 아저씨’ 사연이 나온다. 병원비를 처리할 수 없는 딱한 사연의 문제들을 다루다가, 뒤쪽에서는 병원 사이의 협진 문제 같은 걸로 처리 범위를 조금 더 넓힌다. 그런 걸 조금 더 공적 버전으로 만드는 것과 비슷한 얘기다. 

생의 후반기에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사연을 만난 것 같다. 병원들 홈페이지에 가보면 예약하려면 회원가입하란다. 좋아, 회원 가입, 딱 이렇게 맘 먹고 시작하면 밑에 조그만 글씨로 “당사자 예갸만 가능합니다”, 요렇게 적혀 있다. 어머니, 여기 대학병원 회원 가입하시구요, 여기 여기 클릭하시면 예약 가능합니다, 예약 좀 해주세요! 요게 가능하면, 그냥 “어머니 병원 가시지요, 이러고 바로 모시고 가지! 

“난 그냥 여기 있으련다”, 많은 것들을 본인 의사에 반하게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냥 검사 받는 것도 싫다고 하시는데, 정말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몇 달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가 똑같이 “그냥 내버려둬”라는 얘기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렇다고 정말로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으면 그게 딱 청개구리 얘기인 거고. 너무 많은 행정 절차가 본인이 일단 오고, 본인이 뭔가 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일상적인 때에는 아무 상관도 없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그렇게 자기가 가서 자기가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진다. 

아이고, 애들 올 시간이다. 잠시의 휴식도 이걸로 끝이다. 애들 학교에서 오면 “배고파요, 아빠”, 이게 제일 처음 하는 얘기다. 케익 조금 남은 게 있다. 오후 간식은 그런 대로 버틸 만하다. 오늘은 간만에 애들하고 빵을 구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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