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었다. 아무 속도 모르는 열 살 큰 애는 어머니가 잠깐 마루 쇼파에 나오시자 넙죽 절을 했다. 그냥 웃었다. 원래 우리 집은 신정을 쇠기는 했다. 너무 많이 주는 것도 좀 그래서 내가 지갑에서 2만 원을 꺼내서 세뱃돈으로 주었다. 

어머니는 억지로 죽을 조금 드시기는 했는데, 표정은 영 안 좋으시다. 한 해가 이렇게 시작한다. 

오전에는 글은 쓰지 않고, 전체적으로 구조를 잡는 일을 했다. 원래 연말에 끝내려고 했던 일인데, 어머니 모셔오고, 뭐 그러다 보니까 해가 넘어갔다. 난 뭐 한다고 티 내는 일은 딱 질색이다. 하는 듯 안 하는 듯, 그렇게 하는 게 좋다. 

작업실을 구할까,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는데, 굳이 뭐 그런 게 필요할까 싶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무슨 조각 작업 같은 것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책상만 있으면 된다. 아이들이 조금씩 크면서 작업실 생각을 전혀 안 한 것은 아니지만,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럴 돈도 없고. 고양이가 주로 쓰던 서재에 아내가 안 쓰는 책상 갖다 놓고, 그냥 거기서 이것저것 한다. 지난 여름에는 몇십 년째 굴러다니는 앰프와 스피커들을 갖다 놓아서 요즘은 훨씬 낫다. 

구두쇠처럼 돈을 전혀 안 쓰는 삶을 사는 건 아니지만, 차에 쓰는 돈이 그렇게 아까웠다. 프라이드 웨건을 오래 탔었고, 지금은 아내 명의로 되어 있는 모닝을 탄다. 어차피 소모품인 차에 돈을 쓰는 게 예전부터 그렇게 아까웠다. 책이나 CD 혹은 DVD 같은 데에는 아낌 없이 돈을 썼다. 작업실도 차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데나 엉덩이 붙일 수 있으면 그만이지, 따로 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잘 안 했다. 

가끔은 나도 카페에 노트북 가지고 가서 글을 쓰던 적이 있었고, 책 마무리한다고 정말로 모텔에 가서 며칠 자판만 두드리다가 온 적도 있었다. 카페 가서 글을 쓴 책들이 대부분 망했다. 쫄딱 망했다. 폼 잡다가 망했다고 곱게 생각하기로 했다. 

얼마 전부터 에드가 알랜 포우의 소설이 당기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많이 봤었는데, 그런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얘기들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어셔가의 몰락>이 특히 기억이 많이 났다. 문 한 번 열고 들어가면 볼 수 있는 내면의 모습들, 그런 생각을 요즘 종종 한다. 

어제는 처칠에 관한 영화인 <다키스트 아워>를 봤다. 예전에 건성건성 봐서, 마음 먹고 집중해서 본 건데, 겁나게 재밌었다. 비슷한 시기를 다룬 조지 6세의 <킹스 스피치>를 아주 재밌게 봤었다. 일종의 친위 쿠데타에 관한 영화인데, 총이나 건달들은 하나도 나오지 않고도 처칠이 자신의 권력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과정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영화 다 보고 났더니, 개리 올드만이 나온다. 어, 개리 올드만은 누구였어? 아내가 한심하게 바라본다. 그 연기 잘 한다고 한 그 처칠 아니야? 이런! 

한 시간에 한 번씩 어머니를 보는데, 대부분 주무시고, 잠시 우리 식사 때 아내가 억지로 죽이라도 조금 드시게 한다. 힘겹다. 점점 어머니도 아버지랑 하는 얘기가 같아진다. 뇌 종양이 커진 아버지는 “그냥 내버려둬”, 이런 얘기만 계속 하셨다. 어머니도 “그냥 둬”, 그런 얘기가 하는 대화의 거의 대부분이다. 후기 프로이드가 반복과 죽음의 본능에 대해서 얘기한 게 기억이 난다. 

오후에는 큰 애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돼지갈비를 사왔다. 친구들이 괴롭힐 때 때리지 않고 참으면 맛있는 거 사준다고 약속을 했었다. 며칠 전에는 잘 참다가 결국 때렸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 남자 애들의 세계는 거칠다. 이번에는 참았다고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한다. 어머니가 계셔서 식당에 갈 형편은 아니고, 백화점 가서 돼지갈비랑 순대랑, 그렇게 먹고 싶다고 하는 거 사들고 왔다. 

그래도 1월 1일인데, 이렇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건 좀 그래서, 방의 스피커 배치를 좀 바꾸었다. 그래봐야 위에 있던 거 밑으로 내리고 그런 거지만, 요번에는 벽 한 구석에서 놀고 있던 스피커 스탠드를 다시 투입했다. 그래봐야 그게 그거지만, 그래도 뭐라고 하면 기분이 또 잠시 새로워진다. 

아내가 어머니가 집에 와 계셔서 좋은 점이 뭐가 있냐고 물어봤다. 

“내일은 화곡동에 안 가도 되잖아.”

식사를 안 하고 계시니까 요 며칠 매일 본가에 갔다. 두 번 간 날도 있다. 어머니가 집에 계시면, 당장 어디 뛰어가야 할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은 편한 일이다. 그래도 마음도 편한 건 아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사실지, 계획한 대로 병원을 한 번 더 옮겨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 있는 게 나은지, 아직 마음의 결정을 못 내렸다. 어머니는 노년을 어떻게 보내셔야 하는지, 이것도 마음이 복잡하다.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조금 더 편하게 기술적인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르지만,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뭐든 더 복잡해진다. 

1월 1일, 매년 오는 1월 1일이다. 다를 게 별로 없지만, 올해는 조금 다르다. 내년 1월 1일에 아버지는 아마 세상에 계시지 않을 것 같다. 병원에서는 3~4달 얘기를 했는데, 그새 벌써 한 달이 넘어갔다. 그것도 젊은 사람까지 계산한 평균치라고 의사가 말해주었다. 어머니는 내년 1월 1일에도 살아계실까? 그럴 확률이 높기는 한데, 그거야말로 하기 나름이다. 

평소 같으면 식구들이 다 모여서 어딘가 식당에 가서 밥 먹고, 아버지가 계산하고 그랬을 날이다. 올해는 조금은 색다른 신년을 맞는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수아드 마씨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알제리의 존 바에즈로 불리는 가수인데, 알제리 여성 인권에 대한 노래로 아주 유명했다. 이름만 대충 알았지, 실제로 앨범을 듣는 건 나도 처음이다. “Pour qui”라는 노래의 가사들이 가슴에 박힌다. 누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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