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만에 아이들과 쇼핑몰에 가서 장난감도 사고, 만두도 먹고 왔다. 정말 손바닥만한 튀김만두에 아이들이 열광했다. 팬데믹 한 가운데라서 외출도 많지 않고, 마스크 쓰고 생활하느라고 아이들도 나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간만에 장난감 가게 가는 외출을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벌써 몇 주 전에 약속한 일인데, 급하게 아버지 병실에 가게 되면서 미루고 미루던 일이다. 막내 동생과 교대하고 집에 와서 제일 처음 한 일이 아이들하고 외출하는 일이었다. 더 미루면 또 몇 주 지나갈 것 같다. 

신년이 되어 좀 한가해지면, 그 동안 미루고 있던 장기기증과 신체기증을 처리하려고 한다. 이것도 미루고 미루어서 몇 해가 훌쩍 지났다. 생각났을 때 후딱 처리하려고 한다. 

장기기증은 나중에 내 몸에서 나중에 뭐가 쓸만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뭐라도 있지 않겠나 싶다. 신체기증은 막연하게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제네바에 파견 근무나간 공무원하는 친구가 먼저 하면서 절차를 알게 되었다. 의대에서 해부 연습하는데 쓴다고 하는 것 같다. 한 평생 잘 지냈는데, 뭐라도 사회에 도움이 된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부터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자문을 하고 있다. 그냥 하는 정도가 아니라 분기에 한 번 정도는 내가 생각한 것들을 정리해서 발표도 한다. 자살과 우울증을 다루는 전문가들과 계속 작업을 한다. 이것도 시간이 좀 지나다보니까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들이 현실에서 어떤 시스템에서 다루고, 우리나라는 뭐가 문제인지 조금은 이해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자살율 1위 대한민국, 다 이유가 있는 일이다. 

이래저래 요즘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아내와는 나의 장례식은 치루지 않기로 진작에 얘기를 마쳤다. 내가 장례식만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생일도 안 한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생일이라고 부선떠는 게 싫어서 생일을 안 했다. 결혼하고도 나는 안 한다. 그게 더 편하다. 

장례식 안 하기로 얘기한 건 좀 되는데, 구체적인 형식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는 않았었다. 내가 글 쓰던 신문에 조그맣게 “얘 뒤졌다”, 그렇게 부고내는 걸로 모든 걸 가름하려고 한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2.
원혜영이 웰다잉 운동을 시작하던 즈음에는 그를 자주 만났었다. 나한테도 같이 하자고 했었는데, 그게 그렇게 원혜영쯤 되는 사람이 크게 의미를 두고 해야 할 우선순위의 일인가 싶었다. 그래도 워낙 자기가 보람 있게 시작한 일이라서,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웰빙이든 웰다잉이든, 내 감성에는 잘 안 맞는다. 때 되면 가는 거다, 그 정도 생각으로 살아간다. 

이번에 아버지가 누우신 후, 아내랑 새로 약속을 한 게 있다. 아내보다 오래 살기로 약속을 했다. 방법은 모른다. 아내랑 있으면 주로 내가 떠드는데, 내가 없으면 너무 심심할 것 같다고 한다. 

사는 것은 늘 교차로에 서 있는 것과 같다. 한쪽에서는 지나가고, 다른 쪽에서는 새로 오고. 

클라이넨버그의 ‘고잉솔로’ 읽으면서 제일 생각을 많이 하게 된 데가 혼자 살다가 병원에 가거나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

병원에서는 많은 것을 결정하게 되는데, 그걸 보호자가 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병원 가기도 쉽지 않고, 죽어가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솔로들의 경우, 결국 친척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솔로 정신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래저래 죽음에 관한 얘기들을 모아서 에세이집을 한 권 준비해보기로 했다. 한 번은 죽음에 관한 얘기들과 죽음을 둘러싼 비즈니스 같은 것을 다룰 생각이 있었다. 이래저래 요즘 하는 작업들에 죽음, 수명, 고득, 그런 얘기들이 많다. 언제 여유가 되면 죽음을 다루려고 했었는데, 그게 지금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50대 중반, 이제는 산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적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한 번은 생각해야 하는 순간이 이맘때쯤 아닐까 싶다. 

3.
죽음은 별로 인기 있는 주제는 아니지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주제이기는 하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사는 삶, 이렇게 두 개를 나눌 수 있다고 하면 헤겔식 사유가 아닐까 한다. 자본주의는 죽음을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 더 열심히 노동하고, 더 열심히 소비하게 된다. 죽음을 생각하면, 오늘의 삶이 변한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사유하고 생활하게 되지만, 그런 삶은 없다. 아무리 노화를 연기하더라도 죽음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100세 시대가 120세 시대가 되면 더 행복할까? 그건 관념적인 생각이지, 과정을 염두에 두면 생각이 좀 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가끔 과정의 중요성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자본주의의 삶은 결과 중심주의가 되는 경우가 많다. 입으로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해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그래도 결과지”, 그런 사람이 대부분이다. 

죽음은 거의 유일하게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계기다. 죽음은 누구도 피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죽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없다. 결과는 같다. 태어난 모든 인간은 결국은 죽는다. 그렇다고 해서 삶도 같은 아니다. 많은 유산을 남기는 사람의 죽음은 존귀하고,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빈 손으로 가는 사람의 삶은 허무한 것이냐? 죽음은 다 같다. 교회나 절에서 많은 사람의 애도 속에서 죽는 사람을 신이 더 사랑하고, 아주 조용히 혼자 맞은 죽음은 덜 축복을 받을까? 그렇지 않다. 신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신의 기준으로 사람의 죽음을 평가할 때에는 그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으로 평가할 것이다. 

죽음은 많은 사람들이 피하거나 외면하고 싶은 주제이지만, 자본주의와 노동자의 삶을 주제로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피해갈 수 없는 주제다. 자본주의가 노동을 처리하는 방식에는 죽음도 하나의 양식으로 포함되어 있다. 

4.
요즘 내 삶이 개판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일정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많고, 팬데믹 이후로 일정 관리도 아주 어렵다. 

내년에는 코로나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까? 어렵다고 본다. 올 겨울에는 짧게라도 미국에 갔다오고 내년 봄에 도서관 경제학 작업을 할까 했는데, 역시 어렵다. 출판사랑 상의를 좀 했는데, 결국 도서관 경제학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 이제 그만 뒤로 미루고 싶은데, 역시 코로나가 문제다. 내년 봄에는 어느 정도 완화되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택도 없다. 최소한 실내에서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 시점까지는 미루어야 할 것 같다. 

그 대신에 연말에 있던 젠더 경제학을 상반기로 가지고 오기로 했다. 젠더 경제학에 들어갈 내용의 일부가 직장 민주주의 쓰면서 이미 나왔다. 그리고 이번에 좌파 에세이 쓰면서 ‘메일 쇼비니즘’ 같이 거기서 하려고 하던 개념과 메커니즘 일부도 썼다. 이래저래 미리 당겨 쓰면서 전면적인 재구성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올 겨울에는 금융분야의 여성 등 여성 경제학자 인터뷰들을 좀 해보려고 한다. 이상하게 경제학에는 여성들이 없다. 예전부터 몇 번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에도 그런 일들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 일단은 금융 쪽에 집중을 하고, 몇 군데 더 살펴볼까 한다. 직업군별로 몇 군데 샘플링해서 인터뷰 작업들을 해서, 분야별로 차이점들을 좀 살펴보려고 한다. 전면적인 마초 지수까지 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직업에 따른 차이점들을 드러내는 작업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젠더 경제학은 2000년대 초반에 한 번 틀을 잡은 적이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그 틀에서 크게 바꿀 것은 없을 것 같다. 크게 안 변했다. 특히 경제와 관련해서는 더 그렇다. 이 시점쯤 되면 학부 경제학과에 그래도 여성들이 좀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분야별로 공기업과 정부기관 케이스 스터디도 좀 하려고 한다. 어디가 젠더 장벽이 높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손이 조금 더 있으면 전면적으로 해보면 좋겠지만, 이래저래 많은 도움을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젠더 경제학은 데이터를 가지고 실증적인 작업들을 좀 더 하려고 한다. 내가 궁금해서 그런다. 도대체 뭐가 문제라서 여성들에게 경제학은 그렇게 인기가 없는 학문인 상황이 계속되는지, 금융분야의 중간간부부터는 왜 이렇게 여성들이 없는 것인지. 

중간에 새롭게 하게 된 작업들이 몇 개 더 있는데, 그런 건 기능적인 일에 좀 더 가깝고. 간만에 대학생들하고 책 준비하는 작업을 하나 하려고 한다. 몇 년간 학생들하고 이것저것 하면서 틈틈이 하던 일이 이제는 좀 커졌다. 이제는 마무리를 해도 되는 시점이라는 판단이 얼마 전에 들었다. 경제인류학 공부하던 시절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뭐라도 좀 살피고, 분야별로 비교를 좀 해봐야 나는 할 말이 생긴다. 내년에는 그렇게 몇 년간 하던 일이 마무리를 한 번 지을 생각이다. 

죽음 에세이는 대체적으로 올해 했던 좌파 에세이랑 비슷한 시기와 비슷한 경로를 생각하고 있다. 다만 톤은 가능하면 명랑를 유지하려고 한다. 죽는다는 게 무슨 대단한 일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에게만 벌어지는 일도 아니고. 카프카의 <변신>을 고2 때 너무 재밌게 읽었던 게 생각난다. 책 보면서 밤 새는 거의 첫 번째 일이 아니었나 싶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만든 상처로 인해서 아들은 결국 죽고, 마지막 장면이 식구들이 피크닉 가는 걸로 흥겨워하는 거였던 걸로 기억난다. (생각난 김에 틈 나는 대로 카프카 소설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려고 한다.) 그때는 굉장히 충격받았는데, 나도 이제는 어지간한 일로는 충격받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10대 시리즈가 준비된 게 있었는데, 그 일환으로 독서 얘기와 10대들 경제학이 있다. 내 책이 워낙 안 팔리니까, 어쩌면 10대 시리즈는 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워낙 10대들이 책을 안 읽고, 이 몇 년 사이에 서점에서도 10대용 분류가 거의 없어지고, 홍보는 물론이고 소개할 방법 조차도 없다는 거다. 처음 생각했을 때에는 그런 책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는 관계자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10대들 위한’, 이런 책 얘기하면 다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한다. 일단 소나기는 피해가라고 했다고.. 잠시 나도 피해가는. 연말에 ‘10대를 위한 경제학’ 얘기를 임시로 자리를 잡아놨었는데, 아마 내년에는 어려울 것 같다. 누울 자리 보고 누우라고 했다는 말이.. 

일단은 내년에 나오는 책은 이 정도로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는 해봐야 알고. 이래저래 밀린 일들이나 그런 걸 생각하면 보장은 없다. 

처음에 책 쓰면서 세상에 없던 책이나 내가 아니면 쓰지 못 할 책 아니면 쓰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직까지는 대체로 그렇다. 틀에 박힌 얘기들 하거나, 뻔한 얘기 할 거면 아예 펜을 들지도 않겠다던 패기가 나에게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매번 생경한 책을 내게 된다. 익숙하지 않은 얘기를 꺼내게 된다. 그래서 물어볼 데가 별로 없다. 사실 내가 궁금하고, 내가 알고 싶은 얘기들 아니라면 굳이 무거운 몸을 움직여서 뭔가 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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