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여름 방학이 오늘로 끝이다. 올 겨울 방학은 내년 1월에 시작해서 봄방학까지 붙여서 그냥 두 달간 계속 가는 모양이다.

어쨌든 방학이 끝나고, 내일부터는 좀 사정이 나아질 것 같다.

지금 쓰는 방은 야옹구 방에 내가 무단으로 들어와서 쓰는 중이다. 원래 내 방은 진작에 애들이 침실로 쓰는 중이고.

2012년에 이사를 왔는데, 그뒤로 나는 대충대충 지냈다. 드디어 큰 맘 먹고, 이 방에 오디오를 놓기로 했다. 고양이 털로 엉켜 있던 앰프들부터 일단 수리 맡기기로.

뮤지컬 피델러티 인티 앰프는 거의 초창기에 샀던 앰프인데, 볼륨 노브가 그 사이 맛탱이가 갔다. 리모컨도 사라져서 그냥 폐기할까 했는데, 연초 극적으로 리모컨이 케이블 사이에서 나왔다. 다시 살리기로. 사실 용산에 가지고 가서 손 봐달라고 하면 간단한 일인데, 워낙 무거워서 들고 나가기가 영 엄두가 나지가 않았던.

한동안 잘 쓰던 진공관 앰프도 하나 있는데, 이것도 진공관 쪽에 메롱이라.. 이것도 가지고 오면 손 봐줄 데가 있다. 그것도 10몇 년만에 여기저기 먼지 닦으면서, 진짜 지나간 내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턴테이블 다시 운용하기에는 장소가 비좁다. 이건 공간 만드는 차원에서 책장들 위로 올라갔다. 그대신 블루투스 리시버에 dac 달린 걸 하나 주문했다.

거의 10년만에 방에 다시 음악 들을 준비를 하는 건, 나도 뭔가 심기일전하는 계기가 필요해서 그렇다. 결혼하기 전에 한참 헤매고 있던 시절, 대인기피증도 점점 더 심해지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던 시절이 있었드랬다.

그때 음악을 열심히 들었다. 스피커를 좀 모았고, 앰프도 거기 맞춰서 약간은 구색을 맞추어놓았던.

아이들 태어나면서, 이건 뭐.. 사운드바에 cd 달린 소형 기기로 애들 동요 틀어주면서 그렇게 살았다.

내년도 출간 일정을 전면적으로 조정하면서 도서관 경제학을 맨 앞으로 놓았다. 젠더 경제학은 대선 이후로.. 그 대신 원래는 거기 넣을려고 생각했던 핵심들을 좌파 에세이에 끌어다 썼다.

이제 애들 개학도 하겠다, 나도 곧 개학이다. 도서관 경제학에 대한 준비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방에서 음악 들을 수 있는 장치부터..

나도 내 인생의 마지막 카드를 던질 순간이 온 것 같다. 오래 전부터 도서관 경제학의 첫 페이지는 필라델피아에서 쓰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사실 이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첫 모티브 등 대부분이 필라델피아 얘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꼭 그렇게 하지는 않아도 되지만, 많은 일에는 제식과 같은 일들이 있다. 이건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우리는 도서관이 뭔지 모른다."

이게 오래 전부터 생각한 도서관 경제학의 첫 문장이다. 나도 뭔지 몰랐었다.

그 얘기를 하기 위해서 앰프부터 고치러 나갈 준비를 하는 게, 뭔가 앞뒤가 맞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뭐든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서..

예전에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오페라 dvd를 산 적이 있다. 앞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보는 시도를 몇 번을 했는데,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중간중간에 아는 데들 보고, 넘겨 보고.. 이러지 말고, 처음부터 진짜 한 번 보자고 했는데, 늘 밤 늦게 시작하니까 결국 중간에 자버린.

최근에 해금살롱이라는 밴드의 음악을 우연히 들었다. 아, 진짜 인생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던.

사회니 경제니, 이런 복잡한 얘기들에 대해서 더 이상 내가 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오면..

최근의 국악하는 사람들 만나서 그런 얘기들 정리하면서 나머지 여생을 보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파 보다도 더 한 구석에 처박혀 있는 듯한..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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