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자 배구 VNL, 발리볼 내이션스 리그가 한참이다. 러시아전은 아직 못 봤고, 독일전과 이탈리아전은 아주 재밌게 봤다. 물론 다 망빵으로 여자 대표팀이 깨졌다.

초반 태국한테 한 번 이기고, 다 졌다. 9패고, 태국전 이후로 8연패다. 여자 배구는 현대 다니던 시절, 현대건설 배구부 선수 출신 여직원들에게 배구 얘기를 너무 재밌게 들어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참 안 보다가 이번에 봤다.

맨날 깨지지만, 결과는 그래도 이기는 셋트도 많다. 독일전에서는 기가 막히게 서브 넣는 독일 선수들이 있었다. 하나마나였는데, 그래도 한 셋트 잡을 때, 나름 재미가 있었다. 져도 보는 재미가 있다.

8연패 중인 여자 배구 보면서 나도 내 인생을 좀 돌아보게 되었다.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터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너무너무 재밌는, 그런 삼미스러운 삶을 산 것 같다. 그런데도 최선을 다 해서 마지막은 영광? 그딴 거랑도 별로 상관 없다. 아주 짧은 몇 번 말고는 별로 최선을 다 한 적도 없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은 10번은 넘게 본 것 같다. 회사에 얌전히 다니다가 깜짝 선수 생활을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감사용, 그런 얘기가 너무너무 재밌었다.

나는 연승하는 얘기보다 연패하는 얘기가 더 재밌게 느껴지는 스타일인 것 같다. 감성이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거의 유일한 야구 영화인 <머니볼>이 거의 유일한 연승에 관한 얘기다. 가난한 야구팀 애슬레틱스가 20연승을 하는 게 주요 모티브이지만, 어쨌든 인상적으로 패한 마지막 게임에 대한 얘기가 <머니볼>의 결론이다. 그래서 딸이 부른 엔카의 “the show”를 차에서 들으면서 브래드 피트가 운전하다가 우는 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좌파로 살면 맨날 진다. 물론 맨날 지는 팀이 좌파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연패 중인 팀에 마음을 주면서 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김연경의 팀이 8연패를 하다니!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여자배구 대표팀의 경기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은, 나는 8연패를 하면서도 당당하게 생각하는 삶을 살았다는 기억이.. 좌파로 살면 지는 게 일이다. 아주 가끔만 그것도 극적으로 하늘이 도와서, 겨우 한 번 이긴다. 그리고는 맨날 진다. 맨날 지는 데도 아직도 세 끼 밥 먹고 사는 게 불편하지 않는다는 것에 감사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맨날 지고, 별의별 욕을 먹으면서도 아직도 빨갱이로 살아가는 내 삶에 대해서도 감사한다.

이준석이 국민의 힘 당대표가 되는 걸 보면서, 지금까지도 맨날 졌는데, 이제는 한 급 차원이 다른 본격 패배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잠시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래도 여자 배구 한 게임 보고 금방 마음을 고쳐 잡는다. 김연경도 지는데, 뭐 내가 지는 거야 당연하지 않은가? 두산 단장이 양석환에게 그랬단다. “부탁 하나만 하자. 못 쳐도 되는데, 고개만 숙이지 말아달라.”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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