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책 초고 끝냈다. 언젠가 정세균 은퇴하면 평전 쓴다고는 했는데, 그걸 지금 써달라고 해서.. 고민을 하다가, 그와 거의 매일 같이 만나면서 지냈던 2년간 그리고 그에게 해 줄 잔소리들을 쓰기로 했다. 기왕에 정치에 대한 에세이를 쓰면서, 나중에 빨갱이 에세이 쓸 때 쓰려고 꼬불쳐두었던 것까지 탈탈 꺼내 쓰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없던 스타일의 원고가 되었다. 일단은 '다크 히어로의 탄생'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부제는 '오세훈을 꺾은 사나이'. 읽은 사람들은 엄청 웃기다고는 하는데, 내가 웃겨봤자지..

이걸 쓰면서 한 명이라도 사서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다. 정치인에 관한 책은 정말 잘 안 팔린다. 선거철에 팬덤이 있으면 몰라도, 정세균은 팬 별로 없다. 그에 관한 책까지 찾아다니면서 읽을 사람은? 글쎄올시다.

그래서 진짜로 한 명이라도 순수하게 책 내용 때문에 읽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썼고, 정말로 한 명이 그렇게 본다면 일단은 성공. 매우 솔직하고 내가 알고 있는, 무의식 속의 기억까지 탈탈 털어낼 정도로 공들여 썼다. 그리고 그 한 명이 이 책을 읽고, 뭔가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거나,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감을 잡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공들여서 썼다.

내 주변에서는 다들 반대했다. 안 팔릴 것도 안 팔릴 거지만, 정세균 책을 뭐하러 쓰느냐는 거다. 그 말들도 이해는 가는 말이지만, 나와 정세균이 지냈던 시간들을 알리는 기록하고 알리는 것이 책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특별하고 독특한 경험을 한 것은 맞다. 한국에서 정책 라인이 뭐고, 그런 게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런 얘기를 이 기회를 빌려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기도 했고, 아울러 이 기회를 빌어 내가 한국 경제에 대해서 기대하는 얘기를 좀 편안하게 해보기도 싶었다.

하여간 초고는 끝났고.. 이제 곧 내 손을 떠나갈 것이다. 진짜 한 명의 독자라도 책을 집어들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출판사 대표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웃는다. 겉은 웃어도 속은 쓰리겠지. 그래도 그 한 사람의 독자에게 저자로서 충분히 좋은 책을 읽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으면 나는 대만족이다. 책이라는 게 늘 편안한 상황에서 안전한 주제만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극한의 작업을 한 번 마친 느낌이다.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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