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회식이 있어서, 급하게 애들 저녁 밥 먹였다. 둘째가 약간 편식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충 해줘도 잘 먹어서 밥 먹이는 게 어렵지는 않다. 게다가 얼마 전에 식기 세척기를 사서, 설거지 일도 대폭 줄어들었고.. 

UN에서 활동하던 시절, dish washer의 딜레마라는 짧은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캐나다 공무원들이 엄청 재밌게 들었다고 찾아와서, 엔알캔 공무원들하고 몇 년 동안 잘 지냈던 적이 있었다. 

dish washer를 집에 놓는 게 좀 그래서 안 사고 그냥 버텼는데.. 코로나 2년 차, 줄구장장 집밥에 쌓이는 그릇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어서 결국 샀다. 

밥 먹고 잠시 쉬는데, 요 며칠 들었던 생각들을 좀 정리해보려고.. 

'좌파'를 키워드로 하는 에세이집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는 도서관 경제학 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코로나 문제로 올 겨울에도 필라델피아에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뭔가 봄에 해볼 수 있는 게 필요하기는 한데.. 

이런저런 제목과 키워드들을 잠시 생각해보다가, 기왕 하는 거 화끈하게..

"나는 빨갱이다", 

요렇게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다니던 시절에도 하도 빨갱이라는 소리 많이 들어서, 그래 나는 빨갱이다, 어쩔래.. 이러고 다녔다. 

그래도 프랑스에서 공부했다고 사람들이 좀 봐주기는 했다. '구라파 좌파', 요런 별명이 있었다. 

레드 컴플렉스 가득하던 시절, 주사파 친구들은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기겁을 하고는 했다. 내 주변에 주사파들이 왜 그렇게 많았던지.. 하긴 그 시절에는 주사파 아니면 운동권 내에서도 소수파이던 시절이라. 

이래저래 평생을 소수파로 살았다. 

문재인 당대표 시절에 어떻게 하다 보니까 한반도 신경제 지도를 발표하는 데까지, 좀 뭔가 한 적이 있다. 주사파 친구들이 그때 나에게 열렬히 열광.. 쟤가 살다보니 저런 일을 하는 때도 있네. 그때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박근혜 시절, 목함 지뢰 막 나오고 그러던 시절이었다. 

한국에서 "나는 빨갱이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공직을 비롯한 일절의 정부와 관련된 일을 안 한다는 의미일 것 같다. 민간회사에서는 몰라도, 정부와 관련된 일은 평생 없다. 그 말이 그 말이지만, '진보'라고 슬쩍 묻어가는 쉬운 방법을 두고 굳이 멀리 돌아간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빨갱이'는 한국에서는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소수자이고, 나의 생애에서는 주류는 물론이고 비주류도 형성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시대적으로, "나는 빨갱이다", 그런 얘기 하는 사람 한 명쯤은 있어도 되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내가 살아서 무슨 영광을 더 보겠나. 이미 영광은 볼만큼 봤고, 더 가고 싶은 높은 자리도 없다. 

이번 생은 그냥 자랑스러운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마감을 해도 좋을 만큼, 이미 충분히 살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