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경제학 에필로그 끝냈다. 그리고 칼럼 두 개를 쓰고, 잠시 숨 좀 돌리려고 하는데, 주말에 씨네21 칼럼 마감이라고 문자왔다. 돌아삐리. 

점심 먹으려고 보니까, 아내가 김치찌게 어마어마하게 맛있게 해놓았다. 신나게 처먹었더니, 저녁도 애들하고 먹으라고 해놓은 거란다. 아내가 오늘 늦게 온다. 눈치도 없이 나 먹으라고 해놓은 건줄 알고 거진 다 처묵었다. 돌아삐리. 애들하고 저녁은 뭘 해서 먹나. 돌아삐리.

하루하루 어떻게 어떻게 보내기는 하는데, 대체 애들 보면서 사는 삶이 왜 이렇게 정신이 없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내일은 예정에도 없이 광주에 가게 되었는데, 아내는 내일도 늦게 온다. 결국 장모님이 하루 출동.

살다 보면 안 좋은 것들이 하나로 모여서, 예기치 않게 버티고 버텨야 하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지금이 그렇다. 피의 3월달. 지난 겨울을 슬렁슬렁 보낸 댓가가 이렇게 가혹하게. 그냥 머리 박고 버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강연 부탁이 두 개가 왔는데, 네 어렵습니다, 죄송. 추천사 부탁도 왔는데, 지금 뭐 열어볼 형편이 안 됩니다, 죄송.. 그 와중에 신세진 지인이 또 비슷한 부탁. 모른 척 하기 어렵다. 네, 영광입니다.. 인간 간사하다. 

내가 읽어야 할 책 읽는 것도 벅찬데, 다른 책까지 읽을 형편이 도저히 안 된다. 

요즘 내가 쓰는 문장들은 사막에서 아무 것도 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이 메마른 문장들이다. 기능적이고, 단문 위주고, 최단 속도로 원하는 목표에 바로 도달하는. 준비 작업과 예열도 없다. 바로 훅훅 타격지점으로 들어가버리는, 아무 무미건조한 문장이다. 나도 수식어도 많고, 몇 단계를 거쳐서 목표점까지 가는 글을 쓰던 시점이 있었다. 요즘은 최소한의 논리만 두고, 바로 메마른 문장들로 직진. 

그래도 우리 편이냐, 아니냐, 그런 하나마나한 소리들은 가급적 줄인다. 삶은 그렇지 않은데, 문장만큼은 점점 더 미너멀리즘에 가까워진다. 친한 친구들끼리 하는 얘기와 비슷하다. 갑자기 "너 나빴어!" 그리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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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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