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둘째가 어린이집 마지막 등원한 날이다. 3.1절 연휴가 끼어 있고, 화요일부터는 초등학생이다. 그리고 2016년부터 시작된 나의 어린이집 등원도 마지막 날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나 혼자 감개가 무량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3월이 되면 어린이집과 초등학교, 그렇게 두 군데로 행가레를 치면서 다닐 일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이집에 다시 올 일도 없다. 

정말로 아무도 신경 안 쓰지만, 오후가 되면서 이 날을 기념하고 싶어졌다. 아이들하고 슈퍼에 한우 사러 갔다. 작년 봄에 아이들 몫으로 재난지원금 나왔을 때, 재래시장에 가서 한우를 사다 먹고는 처음이다. 그래도 막상 집으려니까 손 떨려서, 결국 육우로 한 단계 낮추었다. 

어제는 생일이었다. 원래도 생일은 아무 것도 안 하고, 신경도 안 쓴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어린 시절에 나를 키워주셨는데, 마음 속에서는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난다. 할머니는 대보름에 낀 날이 생일이라서 평생 굶지는 않겠다고 좋아하셨던 기억이 어렴풋이. 생일 잔치 같은 건 따로 안 하지만, 언제가 생일인지는 알고는 지나갔는데, 둘째 폐렴으로 입원한 이후로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지나갔다. 고기 산다고 슈퍼 갔다가 대보름 나물 있는 거 보고, 참 어제가 생일이었지.. 그나마 올해는 지난 다음이라도 알고는 넘어가게 되었다. 작년까지는 그런 것도 다 까먹고 지냈다. 

2.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감정에 아무 동요도 없다면 거짓말인데, 그런다고 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글 하나 쓰는 걸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하기로 했다.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를, 그것도 나처럼 지속적으로 하면 모든 것을 열어놓고 개활지를 걸어가는 것과 같다. 넓은 길을 두고 좁은 길로, 안전한 길을 두고 위험한 길로 굳이 걸어가는 것인데, 그냥 천성이 그런가 보다 한다. 

일제 치하에서 태어났으면 독립군이 되었을 자신은 없지만, 아마도 적극적 친일파가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만주로 달려가서 뭔가 열심히 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 것 같은 자신은 없고. 그저 적극적 친일은 하지 않았음, 이 정도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다. 

잠시 내 인생을 돌아보니, 여전히 나는 까칠하다. 그냥 입 다물면 되는데, 그러면 속이 너무 부대낀다. 피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난 B형이다. 

3.
시대는 어느덧 토건의 시기로 다시 돌아간다. 4대강 이후로 몇 년 잠잠했다. MB 서울시장 할 때 뉴타운 시작으로 한바탕 난리가 났었고, MB 대통령 되고 4대강으로 클라이막스에 돌입했다 .그리고 몇 년 잠잠했는데, 서울은 모두가 다 ‘디벨로퍼’라고, 그야말로 디벨로포 전성시대에 들어갔다. 각 지역은 공항과 함께, 온갖 토건시대 청사진이 다시 내걸린다.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과는 몇 년간 정말 자주 보면서 지냈고, 지난 몇 년간은 좀 뜸했다. 나도 애들 보느라, 어디 돌아다닐 형편이 아니었고, 오늘은 김종철 선생의 미간 잔뜩 찌뿌리면서 코 아래만 웃는 그 웃음이 그리워졌다. 그 양반 계셨으면 뭐라고 한 마디 하셨을 것 같은데. 그 양반 안 계시니, 이제 지나가는 말이라도 뭐라도 한 마디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거 보면 그 양반이 좀 꼰대틱하기는 했어도, 강단만큼은 정말 조선 최고였던 것 같다. 문득 그리움에 쌓인다. 원로의 시대는 이제 정말 끝나가나 보다. 

4.
불금이다. 술이라도 때려 먹고 싶은데, 해야 할 일이 너무 밀렸다. 내가 잘 처리를 못해서 그런 것도 있고, 시대를 잘 못 만나서 그런 것도 있고, 이것저것 얘기치 않게 엉켜서 그런 것도 있고. 하여간 불금이라고 술 처 먹을 형편이 아니다. 

살다 보면 인생에 올라가는 길이 있고, 내려가는 길이 있고, 짧은 1년 사이에도 그런 흐름들이 있는 것 같다. 시방 나는 내려가는 길에, 최근에는 꼭두박질 하는 사이클이다. 확 미끄러져 코 박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속 상해도 속으로 삭이고, 힘들어도 혼자 술 처먹고 털어버리는 편이다. 

그래도 세상은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하루를 산다. 좋아지지 않으면, 술이라도 처 먹고 나 혼자 기쁘면 그만이다. 프로이드의 ‘문명의 비판’ 책 앞머리에 ‘소마’로는 행복해지지 않는다, 그런 얘기를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고기 굽기 전에 한 자 쓴다는 게 너무 길어졌다. 오늘 사온 고기 구우러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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