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거 First!

잠시 생각을 2020. 10. 23. 17:07

요즘 연락 오는 게 정말이지, 더럽게 많다. 

거의 초반기에 내년 말까지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년 초에도 백신이 대량 보급되는 건 택도 없고, 그보다는 조금 일찍 치료제가 나올 수는 있지만, 타미플루급의 기적의 약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그리고 중요한 결정은 12월이 되기 전에는 내리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채로 두는 것이 맞을 때가 있다. 코로나의 경우는 그렇다. 

한 가지 영 아니게 된 것은 수능에 관한 것 같다. 수능은 보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죽어라고 수능은 봐야겠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수능을 안 보면 긴 파장은 몰라도, 단기 파장이 너무 클 거라서 그렇게 하는 상황은 이해가 가기는 한다. 

며칠 전에 홍대 앞을 산책할 일이 있었다. 킬링필드가 따로 없다. 

정치는 보통은 정무와 정책으로 구분된다. 우리 편 내 편을 나누는 일을 정무라고 하고, 홍보와 관련된 일까지도 이런 정무에 해당한다. 그리고 보통의 정치인들이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나머지 일들이 정책이다. 정책으로 분류는 되지만, 자기 동네 예산을 확보하거나 그 지역 숙원 사업에 관한 소위 민원사항이 정책이라는 이름 속에 숨어 있는 진짜 정치이기는 하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한국은 대체적으로 정무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나는 정무에는 별 관심은 없다. 대부분의 시간을 정책이라고 흔히 부르는 것에 관해서 생각하면서 지낸다. 별 특별한 이유는 없다. 정무는 나 말고도 하는 사람도 많고, 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정책에도 트렌드가 있다. 그 시기에 공무원들이 무슨 서류를 쓰든, 헤드 타이틀이나 서브 타이틀에 꼭 쓰는 메가 트렌드들이 있다. 박근혜 때 창조경제, 이번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최근의 ‘언택트’ 같은 게 그렇다. 그것보다 조금 서브로 ‘콘텐츠’ 같이 우리 말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것 혹은 ‘스토리 텔링’ 같은 게 유행을 했다. 뭐, 좀 그렇게 하다가 만다. 최근에는 뉴딜이 그런 서브 트렌드 정도 된다. 그린 뉴딜이라고 쓰고, 수소경제라고 읽는.. 한동안 우루루 몰려갔다가, 나중에 매몰비용 처리하고 손 털고 빠지는 그런 유행이 대부분이다. 

그런 유행을 조금만 벗어나면 갑자기 넓은 개활지가 펼쳐진다. 사실상 황무지다. 아무도 없고, 자료도 거의 없다. 참고할 만한 논문도 국내에서는 보기 어렵고. 나는 그런 동네에서 논다. 별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런 황무지라야 텃세가 없어서 편안하게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사회적 경제나 직장 민주주의 다룰 때에도 그랬다. 조금만 옆으로 벗어나면 갑자기 아무도 없어진다. 물론 현실에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에서 공모하는 주제를 약간만 벗어나면 뻥 뚫린 개활지가 나타난다. 거기서 혼자 공을 몰고 가든 말든, 슛을 하든 말든, 아무도 신경도 안 쓴다. 중요하지가 않아서가 아니다.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거기에 돈을 아직 넣지 않았거나, 아니면 그 쪽으로 돈 들어가는 것을 집권 세력이 싫어하는 분야들이 그렇다. 

떼돈 벌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유명해지는 공명심도 좀 버리면.. 한국은 탄자니아에서 봤던 밀림과 밀림 사이에 아주 넓게 펼쳐진 황량하다 싶은 그런 평원이 나타난다. 아주 가끔 바오밥 나무가 있다. 인기 있는 연구 주제는 그런 평원에 있는 바오밥 나무와 딱 같다. 그 근처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떼지어 몰려 있다. 그리고 약간만 벗어나면 아무 것도 없다. 

일본은 우리 보다는 상대적으로 좀 촘촘한 사회 같다. 우리처럼 그렇게 뻥 뚫린 개활지가 별로 없다. 

20대 여성의 자살에 관한 주제가 그렇다. 누가 좀 하면 좋겠는데, 이게 돈 도는 연구가 아니니까 텅 빈다. 상대적으로는 노인 자살은 고독사 같은 주제가 공무원들이 선호하는 주제라서 뭐가 좀 있는데, 다른 분야는 텅 빈다. 

그런 문제들이 내 책상 옆에 올라와 있는 게 몇 개 있다. 그래도 애 보다가 잠깐 남는 시간에 하는 건 한계가 있다. “저요”, 그렇게 손을 들기는커녕, 때려 죽여도 지금 하는 것 보다 더 늘리기가 어렵다고 손사레 치기가 바쁘다. 직접 하기가 어려우면, 그냥 지휘만 해달라고 하는데, 그게 그거다. 그럼 주제 제목이라도 정해 달라는데, 그것도 마찬가지다. 돌고 돌아 결국 나한테 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어떤 넘이 이런 골 아픈 주제를 밀어넣었댜고, 실무진들에게 욕 디지게 먹거나.. 

내일은 일단 다 내려놓고 식구들하고 강릉 여행하기로 했다. 나도 골 아프다. 

한참 4차 산업혁명이니 이런 거 유행할 때 “Digital First!”라는 구호가 돌았던 적이 있었다. “노는 거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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