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연하게 '마음의 에너지'라는 말을 한 번 써보게 되었다. 초창기 정신분석학에서 dynamic이라는 개념으로 많이 쓰던 말이기는 한데.. 초기 열역학적인 상상력을 사람의 삶에 적용하가 위해서 쓰던 개념 중의 하나다. 

뭐, 이런 골 아픈 얘기를 21세기에, 그것도 코로나 한 가운데에서 다시 꺼내려고 하는 건 아니다. 

좋든 싫든, 우울증과 자살 얘기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정부 기관에 자문을 하게 되는 처지가 되었다. 별로 그렇게 내키는 주제는 아니지만, 어쨌든 한국 사회에 왜 이렇게 자살이 많은가, 직장 민주주의를 하면서 한 번은 다루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된 주제다. 

무슨 깨달은 사람처럼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진짜 딱 질색이다. 나이를 처 먹고 나니까. 누가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것도 좀 꼴불견처럼 보인다. 누구한테도 별로 그렇게 얘기하고 싶지 않다. 내 삶을 나도 잘 모르고, 당장 내년에 무엇을 하고 있을지, 그것도 잘 모르는데.. 남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영 질색이다. 

그래도 '마음의 에너지'라는 단어는 뭔가 풋풋하게, 마음 속에서 생각할 거리를 만드는 것 같은 묘한 매력이 있기는 한 것 같다. 마음이 가는 거야 어떻게 마음대로 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만약 그런 에너지가 있다면.. 그 크기가 삶에서 늘 균일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냥 내 삶을 돌아봐도, 마음의 에너지가 좀 높았던 때가 있고, 뭐 그닥..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때가 있었던 것 같다. 

'열정' 같은 얘기를 별로 안 좋아 한다. 허버트 허슈만의 "열정과 이익"이라는 책이, 아마도 20대 초반 내 운명을 바꾼 책 중의 하나였는데.. 자본주의와 함께 어떻게 열정이 새로운 시스템의 모터와 같이 사용되었는가, 그런 얘기를 너무 일찍 읽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열정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내 머리 속에서는 자동적으로 '자본의 음모'로 치환되어서 들린다. 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 마음이 평생 그렇다. 누군가에게 열정을 가지라고 얘기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고, 나도 열정을 가지려고 해본 적이 없다. 인간은 기계와 같이 그렇게 열정이라는 에너지로 폼뿌질해서 막 살아지고,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올해는 책이 코로나 때문에 '당인리' 한 권만 나오는 해가 되었고, 그나마도 작년에는 데뷔한 이후로 처음으로 책이 한 권도 안 나온 해가 되었다. 되는 대로 살아간다. 그래서 책들이 다 내년으로 넘어갔다. 일정이 어마무시하게 빡빡하다. 

일정표를 보니까 에세이집 하나 쑤셔넣을 공간이 없기는 한데.. 

'마음의 에너지' 정도의 주제로 에세이집을 한 번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촛불이 꺼지듯, 마음의 에너지가 사라지면 사람은 자살을 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여전히 증오든 미움이든, 에너지가 넘치니까 자살을 하게 되는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양 쪽 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죽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뭔가 하고자 하는 생각이 정말로 없으면, 죽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 같기는 하다. 

어쨌든 이런 질문들 찬찬히 던져보면서 글들을 좀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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