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이 정의당의 새로운 대표가 되었다. 

더럽게 고생 많이 한 인간이고, 가슴 속에 늘 안스러움으로 남은 막내 동생 같은 인간이다. 

집 밖에서 위스키 마시는 날이 1년에 몇 번 없다. 아주 오랫동안 못 보던 친구를 만났을 때, 반가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위스키 한 병씩 산다. 결혼 하고 9시면 술 자리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잽싸게 2차로 옮겨서 위스키 한 병을 사고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친구들은 술 자리의 길이로 우정의 깊이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오래 있지는 못 하니까 술이나 한 병 사는 걸로 그 시간의 깊이를..

안스러움을 가지고 기회 될 때마다 위스키를 사고 싶은 사람이 김종철이다. 뭐, 그래봐야 실제로 산 적은 몇 번 없다. 그는 늘 무슨무슨 선거에서 졌고, 선거에서 질 때마다 삶은 더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그를 가장 안스럽게 만났던 것은, 2012년 이재영 상가 집에서 만났을 때였던 것 같다. 

가장 즐거운 만남은? 용산역 CGV에서 낮에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우연히 옆자리에서 만났다. 영화 보러 같이 가는 사이는 아니지만, 어쨌든 극장 옆자리에서 만났던 게 꽤 오래 기억에 갔다. 

이제 김종철의 시대가 열린다. 

이 시대가 얼마나 갈지, 얼마나 큰 파장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전환점 하나가 생긴 것 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지난 몇 년간의 한국은 어떤 사회였을까? 나머지는 다 그냥 기분학상으로 돌아가는 얘기이고, 돈으로만 보자면.. 정부 예산 심의과정에서 보건복지고용 예산 증가율은 지난 3년 동안 2%였는데, 사회간접자본 예산은 연간 13% 늘었다. 

"사람이 먼저다", 이건 그냥 입으로만 한 얘기이고, 실제로는 여전히 시멘트가 먼저인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나마 이헌재 때에는, 이렇게 하겠다고 얘기라도 하고 했지, 지금은 말은 국민을 위해서, 복지를 위해서, 엄청나게 하는데, 나중에 결과를 보면.. 엥? 똑같잖아? 

그러니 결국 누가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고, 기분학상 변화만 가지고 좋아진 거다, 아니다, 그렇게 서로 싸움박질만 하고 살았던 거 아닌가 싶다. 

코로나 이후, 국가가 다시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방역의 주체가 국가이다 보니, "아무나 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정치 허무주의의 시대가 끝나고, 국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당연한 논리적 결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다. 당장 내일 집 밖으로 나가도 되는지, 셧다운 되는 건지 관심이 첨예한데, 누가 국가를 움직일 것인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정치도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아마 이런 흐름이 아니라면 김종철이 정의당 당대표가 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지금 누가 민주당 다음 대권 주자가 될 것인지 같은 핫하고 긴박한 것 외에 관심을 가지겠느냐? 정의당의 당대표야 누가 되거나 말거나, 어차피 모르는 사람인데, 누군가 되겠지, 그런 거 아니겠나 싶다. 

국가가 돌아오고, 정치가 돌아오고, 마지막으로 로컬이 돌아온다. 로컬의 시대, 중앙을 상징했던 김종철이 어떤 모습을 가지고 돌아올지가 관심거리다. 다른 건 어떻게 할지 좀 알겠는데, 로컬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르겠다. 

민주당의 로컬은 새만금이라는 말이 상징한다. 참 슬픈 일인데, 결국 그렇게 되었다. "뭘 원해, 나도 그걸 줄께", 자치라는 관점에서 토호들이 승리하는 역사는 바뀐 적이 없다. 그런데 동네로 들어가면, 그나마 중앙에서 곁불이라도 쬐던 정의당은 흔적도 없다. 

한국 경제도 이제 덩치가 커졌다.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가던 탄성이 너무 강해져서 방향을 틀기가 어렵다. 조금이라도 방향을 바꾸려면 아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김종철, 그래도 그가 뭔가 많은 방향을 바꿀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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