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그 이후

작년부터 거시 경제에 관한 책을 한 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현실을 돌아보면 영 마땅치가 않다. 현 정부는, 제일 이상한 건 인사인 것 같다. 공직도 일종의 경쟁인데, 내용 보다는 사교를 잘 하는 사람들이 먼저 밀치고 들어가는 것 같다. 결국은 어깨 싸움이 창궐하게 되었다. 그걸 보수 쪽쪽에서는 그걸 일종의 주류 세력의 교체라고 보는 것 같다. 현실은 택도 없다. 경력이 진보였던 것과 진보적인 세상을 만드는 것은 좀 다른 얘기인데.. 막상 현실 정책으로 들어가면 변화는 그냥 마음 속에 혹은 ‘답안지’ 속에만 있는 것 같고, 그냥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경우를 더 많이 보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직장 민주주의 같은, 하나하나 조직의 운용 방식에 대한 변화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건 내 소망 속에만 있는 일이고. 

그래서 결국은 거시 경제에 대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만들어보는 건 접고, 10대들을 위한 경제학으로 방향을 돌렸다. 어차피 10대들에 책들을 계속 준비하는 중이라, 그 연장선 속에서 미래 세대와 미래에 대한 얘기를 해보는 걸로. 

코로나가 한국을 선진국 한 가운데로 밀어 넣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극우파의 전면화는 확실히 선진국 현상이다. 선진국식의 극우파는 한국에서 미분화된 형태로 보수를 전체적으로 극우 쪽으로 끌어가고 있었는데, 여기에서도 분화가 벌어지게 되었다. 전광훈이 황당한 인간이기는 한데, 아직 르뺑과 같은 정말로 유로 의회를 장악할 정도의 매력 있고 말 잘 하는 그런 선진국형 극우파와는 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종교 현상을 떼고 본격적으로 노선을 들고 나와야 선진국형 극우가 아닐까 싶다. 

전광훈의 매력은 제한적이고, 지나치게 음모론적이다. 그래서 외연 확장에 한계가 있다. 그래도 이 사건을 중요한 사건으로 보는 것은, 보수 내에서 분화 같은 게 빨라지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의 극우파 현상은 민족주의와 함께 납세 거부 같은 좀 더 현실주의 이슈 같은 것과 함께 생긴다. 그런 게 선진국 현상이다. 전광훈과 태극기의 극우화가 제한적인 것은, 성조기 심지어 일장기까지 8.15 집회에 들고나오는, 그런 제한적 민족주의로는 20대에게 확장성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워너비 이런 느낌 보다는 에비! 

스위스에서 극우파 정당이 형성될 때, 그 핵심 축 중의 하나가 과속 단속 카메라에 대한 거부운동이었다. 그냥 편안하게 운전 좀 할 수 있게 놔두시라.. 우스워보일지도 모르지만, 이게 전국적인 시민 운동 같은 것을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그들이 극우파 정당에 합류하면서 메인 스트림이 되었다. 엔지니어, 의사, 이런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다. 에비, 이런 느낌 보다는 워너비 느낌이 강하다. 강한 민족주의에 현실적인 공감대 그리고 개인적으로 갖춘 매력들.. 

이 정도 되면 중도좌, 중도우가 마음으로 연합해서, 우리 최소한 극우파의 집권은 막자, 이런 게 생겨난다. 내가 보는 심화된 민주주의의 미래는 그런 거다. 선진국이 되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높은 단계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과 평화에 대한 위기가 생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민주당 심지어 정의당이 제시하는 의제도 과거적 이제다. 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20년에 걸쳐서 누적된 사회적 의제는 여전히 불평등 가득한 한국의 입장에서는 현실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주제 자체로는 과거적 방식이다. 미래적 방식의 질문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질문을 해보자. 우리가 만들고 싶은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그걸 80년대에는 70년대 유신 시대의 눈으로 대답을 했다. 2000년대에는 80년대의 눈으로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 지금은? 

좁게 보면 전광훈 넓게 보면 여전히 MB에 대한 혐오에 대한 방식으로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런 질문들을 던지고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쁜 넘들 싹 다 몰아내고..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책을 쓴 적이 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방식은 여전히 세월호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천-제주 배편은 아직 없다. 화물선 한 대가 움직이고 있다. 세월호 정도 큰 사건을 거쳤으면 연안 여객 전체에 대한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를 하고, 뭔가 했을 것 같지만.. 마음만 그렇고, 그 자리에 다시 중고 배가 준비되는 중이다. 이것도 몇 번이나 문제가 있어서, 그래도 좀 덜 중고로 해야 할 거 아니냐, 이 정도도 충분히 안전하다, 이러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풀면 된다. 우리가 중진국 시대를 거치면서 생겨난 방식은, 문제는 풀지 않고, 문제가 된 사람만 혼내주는 방식이다. 그리고 맨날 ‘인재’라고 한다. 인재라고 하는 말처럼 과거적 방식의 단어가 또 없을 정도다. 분명히 어떤 놈이 졸거나 잘 못 했을 거야, 그 놈을 혼내주자! 

말만 많았지, 이런 과거적 방식이 ‘k방역’이라는 되도 않는 신조어를 가지고 국뽕으로 몰아가는 흐름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세월호처럼 큰 사건에서도 시스템을 정비하지 못하고, 그냥 내깔려두는 나라.. 불행히도 그게 우리의 현 상황이다. 정권이 바뀌면 뭐가 좀 바뀌었을까? “똑바로 하란 말이야”, 이런 소리친 것 말고는, 적어도 세월호에서는 무슨 변화가 있는지 알지 못하겠다. 

선진국이라고 문제가 생기지 않는 건 아니다. 사람 살아가는 건 다 거기서 거기다. 그렇지만 시스템을 정비해서 확률을 줄이는 것과, 왕창 화내고, 혼내주고, “또 그러면 죽어” 그렇게 협박하고 지나가는 것은 좀 다르다. 

혼내 주는 걸로 문제가 풀리면, 중국은 벌써 선진국이다. 장관이고 뭐고, 문제 생기면 사형이다. 중국이 덩치는 커졌지만, 그 시스템을 선진국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진국 그 이후, 그 질문은 다시 한 번 세월호에 던져진 질문과도 같다. 배에서 생긴 문제인데, 왜 배의 문제를 풀려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나? 많은 문제가 이렇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의 지독할 정도의 돌려막기 인사는 좀 그렇다.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을 배치해야지, 친한 사람만 배치한다고 일이 풀리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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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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