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의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는 20대 중반에 울면서 읽었던 책이다. 논문 준비 막 하는 중인데, 선생이 이 책을 읽고 자기에게 설명해달라고 해서..

그 시절에도 이 책은 구하기가 어려웠다. 원본은 못 구하고 대빠시하게 전부 복사를 해서 읽는데.. 생시몽과의 논쟁 과정에 대한 얘기가 엄청 많이 나오는데, 이런. 생시몽을 아나? 그냥 공상적 사회주의, 그런 교과서적인 몇 구절만 아는데.

밀의 아버지인 제임스 밀과 맬더스 사이의 인생 후반에 걸친 거대한 논쟁도 어려운데, 밀과 생시몽의 논쟁 같은 것을 알 턱이..

생시몽의 얘기는 그냥 불어로 바로 써 있어서 원전은 영어와 불어를 교차로 오가는. 생시몽을 몰라서가 아니라 불어를 몰라서 더더욱 보기 힘든 책이었을 것 같다는.

겨우겨우 구해서 복사를 했는데, 이런.. 너무 두꺼운 거라. 진짜 울면서 읽었다.

이렇게 왕창 두꺼운 책들 욹면서 읽고 났더니, 그 다음에는 선생이 미방을 풀라고 했다. 너 살아가야 할 시대에는 자기 때랑 달라서 수학 못하면 살아가기가 어려울 거라고. 맨날 눈으로만 결과식을 봤던 성장 모델들, 그 때도 울면서 풀었다.

지나 보니까 그 때 읽은 원전들과 수학들이 살면서 두고두고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기는 한 것 같다.

책에 인용할 일이 있어서 밀이 정치경제학 원론은 도서관에서 몇 번 빌렸다. 절판이었다.

할 일이 없어서 그 책이나 다시 한 번 읽어볼까 했더니.. 4권으로 나누어져서 번역되어 있는데, 1권이 절판이다. 이런 된장.

존 스튜어트 밀의 책을 읽는 사람은 많은데, 정치경제학 원론을 읽는 사람은 몇 사람 못 봤다. 예전에 김수행 선생이 힘들게 읽었다는 얘기를 하셨던 기억 정도.

장 밥티스트 세이의 큰 책 두 권도 그 시절 읽었는데, 박사 논문 쓸 때 요기진 도움을 받았다.

세이 전공하면 정부 지원금 받게 해줄 수 있다는 말에 잠시 솔깃하기는 했었는데..

사실 세이 얘기가 너무너무 재밌어서, 평생 세이만 연구하면서 살아가라고 해도 할 자신은 있었다. 글이 엄청 유쾌한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욕 디지게 처먹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생각의 발상이, 기절초풍이다.

출간으로 처음은 아니지만, 책을 쓴 순서로 첫 책인 '음식국부론'의 모티브는 순전히 세이에게서 나왔다. 아일랜드와 감자 얘기를 엄청 재밌게 읽었었다. 그의 스승으로 알려진 아담 스미스는 음식 얘기는 거의 없지만, 세이는 이런 얘기들을 엄청 중요한 소재로 잘 써먹었다.

모르긴 몰라도 한국 사람 중에 세이 원전 읽은 건 나 말고는 없을 것 같다 (그걸 누가 읽어, 이 바쁜 세상에.)

혼자서 상상해보면..

아마 그 때 세이 전공한다고 나섰으면, 국적을 바꾸기는 했어야 할 것 같다. 그 대신 프랑스 정부의 따뜻한 지원을 받으면서 평생 잘 처먹고 살..

죽기 전에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이 좀 있기는 한데.. 이게 여전히 구하기가 어렵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내가 바라는 조국 대한민국은, 학설사 공부해도 굶어죽지 않는 나라..

그렇지만 아직은 요원하다.

어쨌든 20대 중반에 교과서에만 짧게 실리고 거의 아무도 읽지 않는 원전들을 1년 가까이 죽어라고 읽던 시절이 있었다. 원전에 따라 붙는 2차 텍스트들이 10권 가까이..

그 시절에는 정말 독서가 괴로웠다. 울면서 읽었다.

세상은 좋아졌다고 하는데, 공부하는 여건은 더 안 좋아졌다.

인터넷에 뭐가 다 있다고 하는데, 그 시절에도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은 인터넷 같은 데에는 없다. 도서관에도 거의 없고.

유튜브에 뭐가뭐가 다 있다는 데, 뭐 내가 보고 싶은 게 없는 건 여전하고.

하여간 그 시절에는 원전 많이 읽은 소장파로 소문이 나서, 그냥 프랑스에 눌러 앉았으면 밥은 먹고 살 것 같았다는.

존 스튜어트 밀, 다시 한 번 읽어보려고 찾다가..

자서전이나 봐야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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