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친한 친구랑 간만에 술 한 잔 진하게. 공무원이랑 일하다가 만나서, 이렇게 평생 친구로 지내게 될 줄은 몰랐다. 서로 워낙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가식 같은 건 없다.

몇 년간 진짜 외국에 같이 많이 돌아다니던 사이이기는 했는데, 같이 여행을 갔던 적은 없었다. 다음 주에 짧은 국내 여행을 가기로 했다. 뭐 꼭 가야 할 일은 없지만, 여행이 언제 목적이 있어서 가나? 아무 이유 없이 가는 게 진짜 여행인지도 모른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는다. 아직 은퇴한 친구는 없지만, 회사 다니는 친구들은 슬슬 은퇴를 준비한다. 대기업에 상무하는 친구가 있는데, 아무래도 자기 자리에 오래 있기가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을 조금씩은 하는가 보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이고, 중학교 때도 친구였다. 저렇게 똑똑한 애가 있나 싶었다. 야구도 잘 했다. 그렇게 친했는데도, 자주 보지는 못했다. 최근에야 가끔 본다. 멀리 살아서, 툭하면 불러내기가 쉽지 않다.

둘째가 아픈 다음부터, 내 삶에는 이정표나 그런 게 없다. 그냥 되는 대로 산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꼭 하고 싶은 거, 그런 건 더더욱 없다.

당연히 목표 의식 같은 건 없다. 아직 약간의 열정이 남아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한참 불태우던 시절 같은 그런 열정은 이미 아니다. 벽에 부딪히면 벽을 넘어가거나 벽을 부수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돌아간다. 너무 많이 돌아가야 하면? 그냥, 가다 만다.

어차피 애 보면서 하는 거라서, 멀리 가지도 못 한다.

둘째 초등학교 2학년 될 때까지는, 어차피 어영부영 사는 수밖에 없다. 되면 되고, 말면 말고, 그런 안이한 자세로 살 생각이다.

4년을 한도로 시작했는데, 벌써 큰 애 초등학교 방학이다. 그 사이 반 년이 지나갔다. 이제 삼 년 반 남았다. 그 뒤에는 뭘 하지?

얼마 전 예능 방송에서 뭘 같이 하자고 하는데, 힘들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시간 많이 내고, 규칙적으로 뭘 하는 일은 당분간 하기 어렵다.

4년 뒤에도 나에게 정열이 남아있을지, 자신이 별로 없다. 지금도 귀찮은 일은 못 한다. 하고 싶어도 여건이 안 되는 일도 못 한다.

어렴풋한 생각으로는 경제 다큐 같은 거 만드는 일을 삶의 마지막 일로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국 상황에서는 후원자 같은 거 있기 전에는 본격적으로 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쉽게 계획을 짜거나, 결심 같은 것을 하기가 어렵다. 기회 되면..

딱 백만 명 정도 볼 수 있는 경제 다큐를 몇 개 만들면 좋을 거라는 생각은 하는데. 이게 내 능력 범위를 넘어선다. 그래서 '기회 되면'이라는 딱지를 달아서 마음 한 켠에 밀어넣는다.

폼도 안 나고, 실속도 없지만, 의미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의미만으로 뭔가 하기에는, 그 정도의 정열은 이제 나에게는 없다.

그래서 가끔 한 번 생각해보는 일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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