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원고가 너무 많이 들어온다. 나는 카피 라이터 같은 비싼 원고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서, 어차피 나한테 오는 원고의 원고료는 살벌하게 박하다. 그래서 잘 안 쓰는데, 이렇게 알고 저렇게 알고, 모른 척하기가 좀 그런 원고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너무 많다. 밀리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털어내는 데도 와서 쌓이는 속도가 더 빠르다. 노회찬 책에 들어가는 원고, 안 써줄 수 없고. 386비판 책 해제, 안 써줄 수 없고. 경향신문에서 부탁하는 원고, 이것도 안 써줄 수 없고. 털어도 털어도 와서 쌓이는 속도가 더 빠르다.

물론 이런 글들 원고료가 좀 넉넉하면 편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쓸텐데, 전혀 그런 건 아니고. 속 마음으로는 내가 그냥 그 돈 드릴테니, 저한테 글 써달라고 하지 마세요 ㅠㅠ.

오늘부터 애들이 태권도장에 다니기 시작한다. 여름방학 때 큰 애를 데리고 있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깡자로 데리고 있는 건 너무 무리하다는 게 아내의 판단이다. 도장에서 차로 집근처까지 - 물론 그래도 꽤 멀다 - 오니까, 어린이집과 학교를 두 번씩 돌아다니는 부담은 좀 줄게 된다. 태권도 도장이 둘이 30만 원이다. 지금까지 구청에서 하는 발레 교실에 갔었는데, 거기는 한 달에 3만5천 원..

애 둘 태권도장 보내는 30만 원 근처에 가는 원고료는 없다. 내 노동의 가치가 태권도장 비용도 안 되나? 그런 생각하면 그냥 아무 것도 안 쓰고 싶다. 그래도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데는 좀 낫다. 너 말고도 글 쓰고 싶다고 하는 사람 줄 섰어.. 이런 마음인 데가 더 많은 것 같다. 내참. 그럼 뭐하러 부탁은 했슈? 그런 말이 입 끝까지 나오려다가, 아참, 나는 약자지.

이번 주말을 보내면서, 머리도 더 숙이고 몸도 더 낮추고, 그렇게 살기로 크게 마음을 먹었다. 이것저것 속상한 일이 좀 생기기는 하는데, 짜증 낸다고 풀릴 일도 아니고, 뭐라고 한다고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 그냥, 속 한 번 상할 때마다 머리를 더 한 번 숙이기로. 내가 잘 못했다, 내가 죽일 놈이다.. 그래, 내가 잘 못했네.

인상 쓰고, 성질 내봐야, 그래 나만 손해다.

확 열이 받으려고 하는 순간에 마음이 편해진 건, 예전에도 많이 얘기한 고장난 시계에 대한 비유다. 약간 틀리는 시계는, 사실 하루에 한 번도 맞는 일이 없다. 고장난 시계는, 하루에 한 번은 정확히 맞는다. 언제 맞는 줄 몰라서 그렇지.. 고장난 시계처럼 지내는 것,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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