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ck comedy라는 단어가 있다. 헐리우드식 용어다. 나는 이걸 '소품 코메디'라고도 부른다. 한 블록 내의 거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얘기할 때 이렇게 부른다. 코미디는 아니지만 제임스 완의 기념비적인 공포 영화 컨저링이 이런 구분에 들어갈 수 있다. 정확히 한 블록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건이 건물 하나와 정원 사이에서 벌어진다. 제대로 된 공포영화들이 이렇게 한 블록 안의 일로 집어넣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공포의 원조격인 '어셔가의 몰락'은 아예 집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다.

그에 비하면 또 다른 원형인 '드라큘라 백작'은 동선이 크다. 첫 장면부터 루마니아의 백작성에 도착하기까지, 마차 장면이 초반에 길게 펼쳐진다. 그리고 루마니아 성에서 런던에 이르는 항해 장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그걸 거슬러가서 루마니아까지의 추격적, 역시 귀족의 상징인 드라큘라답게 동선이 크고 시원시원하다.

얘기를 한 블록 안에서 마무리지을 것인가, 기왕에 블록을 벗어난 것, 시원시원하게 움직여볼 것인가.. 얘기를 시작하기 전, 동선 스케일에 대한 설계가 필요하고, 공간의 이동 경로도 어느 정도는 설계를 해야 한다.

<장미의 이름>이 대표적으로, 얘기를 만들기도 전에 대부분의 얘기가 벌어진 수도원에 대한 설계부터. 이건 얘기가 장소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가 얘기를 자연스럽게 인도해 낸 경우.

그렇지만 여전히 block comedy는 많은 사람의 로망이다. 한 블록 내에서 모든 것을 마무리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도 밀도 있는 얘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영화 <그래버티>가 우주 공간이라는 무한한 공간을 설정하고 있지만, 사실은 인공위성 몇 개 내에서 벌어지는.. 이것도 block comedy의 쟝르에 넣을 수 있다. 지구 괘도가 한 블록이라고 하면, 좀 큰 블록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지도가 있고, 주소가 있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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