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가 누구야? 영화 <여배우들>의 바로 그 재수 왕뽕, 보그 기자가 김지수다. 느낌 한 번 지대루다.

 

나는 보그 쪽 보다는 바자 쪽과 좀 일을 했었다. 한번은 진짜 연재 글을 쓸 뻔했었는데, 마침 제일 모직의 브랜드 철수와 관련된 글을 썼다. 고심 끝에.. 광고주 눈치 많이 봐야 하는 곳이라서, 결국 싣지는 못했다. 그래도 자문도 좀 하고, 가끔은 감사 파티 같은 거 할 때 가보기도 하고.

 

피쳐라고 흔히 부르는, 패션지의 인물면을 담당하는 기자들은 팔방미인인 경우가 많다. 글도, 기똥차게 쓴다. 진짜, 지갑 풀고 싶은 마음 들고 싶을 정도로 잘 쓴다. 그런데 패션지의 특성상, 더 상층부로 승진하기가 어렵다. 그들만의 애환이 있다.

 

글.. 국가를 따지지 않고 전세계 잡지에서 글을 제일 잘 쓴다고 생각했던 것은, 프랑스의 권총 등 무기류 잡지들이다. 사진이라고 해봐야 0점 사격한 표적판이 전부인데, 그거 하나 들고도 이걸 왜 사야 하는지 기깔나게 뽑아낸다. 문화 다양성 훈련을 위해서 권총 잡지 3~4종을 6개월 정도 읽었다. 정말 총 사고 싶어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 잡지는 요트 등 소위 동력선에 대한 잡지들. 외국으로 나갈 수 있는 일정 규모의 동력선을 운항하기 위한 라이센스는 꽤 긴 시간을 준비해야 딸 수 있다. 잡지의 글들은 너무너무 매혹적이었다. 그래서 실제 서울 해양경찰청에서 운영하는 시설들도 가보았다. 물론 내가 배를 사고, 운행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러기에는 이미 노안이 너무 심해졌다. 그렇지만 정말 사지는 않더라도 그 라이센스를 관리하는 사람들과 정박장에는 가보고 싶어졌다. 여의도의 서울 해양경찰청을 가 본 다음, 인천의 마리나에도.. 글의 힘만으로 그 잡지들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정말 사고 싶어졌다. 물론 현실은 넘사벽이다.

 

보그의 김지수, 그가 패션지에서 보이지 않게 된 다음,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했다. 영화 <여배우들>의 그 기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두 개의 선을 이어주는 것은 윤여정이다.

 

 

 

따져보면 윤여정과 이래저래 좀 가까운 사이다. 90년대에 식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유명한 연애인과 차 마시고 밥 먹고, 그런 자리를 피한다. 일부러 그런 자리를 많이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일부러 피하는 편이다. 지금도 그렇다. 90년대에는 더 했다.

 

윤여정.. 어쨌든 정말 힘들던 시절, 여배우들에 나온 윤여정의 대사 한 마디 가지고 나도 그 시기를 버텨냈다.

 

"배우 개런티 깎자고 하면 열불이 나다가도, 참 내가 피부가 좀 안 좋지, 그러고 참아."

 

이 한 마디는 안 나가는 사회과학 한 귀퉁이에서 10년 넘게, 별의별 꼴을 다 보면서도 꾹 참게 해준 한 마디였다. 정말로 그 한 마디로 숱한 무시와 불이익들을 꿈 참았다.

 

그리고 먹고 사는데 크게 불편함이 없어진 이후, 내가 제일 처음 한 게 방송은 이제 안 한다.. 그리고 강연도 최소한으로.

 

아, 윤여정을 실제로 만난 적이 있기는 하다. 부산영화제에서 아내와 엘리베이터 안에서 뙇.. 아내도 윤여정을 엄청 좋아한다. 목 인사만 했다. 그리고 밥 먹으면서 몇 번 더, 그냥 인사만.

 

시간이 흘렀다. 윤여정과 김지수에게는 겹치는 이미자가 좀 있다. 아마 많은 시간이 흘러, 윤여정과 가장 닮은 사람이 누구냐고 하면 나는 김지수라고 할 것 같다.

 

참고, 버티고, 그러면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재능이 낡고 삮지 않는..

 

보그를 대표했던 기자, 그건 한국 패션잡지 아니 패션계를 대표한다는 말이다. 보그가 패션만 선도하는 것은 아니다. 마케팅의 언어 자체를 끌고 나간다. 오죽하면 시인 김수영이 다 시로 남겼겠느냐. 한동안 '보그체'라는 말도 유행했었다. 문체도 선도했다.

 

그 한 가운데 김지수가 있었다.

 

인터스텔라 연재 중에, 당연히 윤여정편을 재밌게 읽었고, 송승환의 얘기도 아주 재밌었다.

 

인터뷰 중에는 기념비적인 인터뷰가 하나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인터뷰를 안 하기로 유명한데, 말년에 젊은 여기자가 인터뷰를 했나보다. 꼬깃꼬깃, 깃 넓은 넥타이가 문제가 되었다. 결국 아시모프가 한 마디를 했다.

 

"내가 멋지고 감각적인 넥타이를 매고 살았다면, 여러분이 아는 그 아시모프는 지금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 한 마디가 모든 작가 지망생의 가슴을 불을 당겼다. 당연히 내 가슴에도 불을 당겼다. 아, 천하의 아시모프도 우리처럼 꼬질꼬질하게 하고 다녔겠구나. 20세기를 살았던 작가 중에 누가 감히 아시모프의 반열에 올라갔겠는가? 심지어 그는 영화 판권도 안 판다. 그래서 '아이로봇'으로 영화는 결국 유가족들의 재단의 라이센스를 못 받아서 제목을 못 썼다. <파운데이션>은 영화를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의 가슴을 불을 당긴다. 이걸 한 번..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텍스트는 텍스트로..

 

도발을 하든, 지랄을 하든, 아니면 발광을 하든, 저런 감각적인 문장을 받아내는 게 사실은 인터뷰다. 저 한 마디가 아시모프의 생활관은 물론 문학관을 모두 보여준다. 기교 없이, 복잡한 구조 없이, 그러나 몇 천 년에 걸쳐진 얘기를 담백하게 써내려가는 게 아시모프의 문학이다. 그와 라이벌이라고 사람들이 얘기하는 프랑크 허버트의 다채롭고 이색적이며, 에그조틱한 문장과는 완전히 반대편의 문학.

 

김지수의 인터뷰를 계속 보고 싶다.

 

이번 시즌,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은 한국 텍스트계의 '잇' 아이템, 그야말로 머스트다. 이거 안 보고 인터뷰 얘기하기가 이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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