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노회찬과 같이 토크쇼하던 사진을 드디어 찾아냈다..)

 

포위 당해서 섬멸의 위기에 놓였을 때에는 내용은 물론이고 형식에 대한 모든 것들을 고민해봐야 한다. 지금 한국의 지성은, 전멸 위기다. 지성과 지식, 모두 다 전멸 직전.

일부는 청와대 가서 폼 잡는 것은 좋은데, 아, 열심히 공부해서 저거 하려고 하셨구나, 그 회의감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다. 일부는 대중들의 삶과 아주 멀리, 그냥 안드로메다로. 그리고 또 다른 일부는 월급만 많이 주면, 땡큐, 열라 땡큐.

이러다 책이 문제가 아니라 지성 자체가 전멸한다. 분서갱유가 아니라 그냥 상업적인 이유로 고립되어 분서폭망. 욕만 하고, 쟤네들 다 나빠요, 이렇게 풀 문제가 아닌 것 같다.

70년대에는 박정희랑 목숨줄 내걸고 싸운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지지해줬다. 80년대, 90년대, 마찬가지다. 지금은 뭐랑 싸우냐? 지지할 이유도 없고, 뒤에서 폼잡고 있을 거면. 지성이 존재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걸 보여줘야 한다. 지금이 그래도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순간 아닌가 싶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둘째가 폐렴으로 입원하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특별한 스터디팀 없이 지냈다. 그렇지만 이건 내 인생에 아주 예외적인 순간이다.

 

대학교 1학년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는 늘 스터디를 만들거나 했고, 지금은 젊은 여성학 하는 박사들과 새로운 스터디팀을 만들기 위한 구상을 하는 중이다.

 

그 중에 가장 화려했던 것은 지금은 대통령이 된 문재인과 했던 스터디팀. 매주 했는데, 문재인, 정세균, 추미애 심지어는 김한실까지 고정 멤버였다. 여성부 장관이 된 진선미, 벤처기업부 장관이 된 홍종학도 멤버였다. 야당 시절,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스터디팀을 하나 만들었었다. 거기서 대통령, 국회의장이 나왔고, 장관은 겁나게 많이 나왔다. 그 때 장하성 선생과 김상조 선배도 강사로 왔고, 전번들을 서로 나누었다. 정성인 선생도 강의를 했는데, 그 때는 문 대표가 불참. 아쉬운 순간이었다. 보수 신문들은 이거 그만 하라고 난리들을 쳤었는데, 나는 못 들은 척, 그냥 1년 정도 강행했다. 결국 안철수의 탈당으로 아사리판이 나서 더 이상 끌고 나갈 수가 없어서 접었다. 나중에 문대표 양산 집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 때 했던 내용들 꼭 책으로 내면 좋겠다고 하셨던.. 한다고 대답은 했는데, 둘째 입원하면서 나도 모르겠다, 내 코가 석자다..

 

(당시 스터디 관련 기사.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23&oid=305&aid=0000017219)

 

그 시절에 딱 한 시간 포맷으로 했다. 30분 발표, 30분 토론. 좀 극단적으로 짧기는 했지만, 그게 매주 그 사람들에게 내가 받아낼 수 있는 시간이 극대치였다.

 

보통 내가 하는 스터디팀은 두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책을 같이 읽을 것인가, 읽지 않을 것인가, 이게 큰 기준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모여서 책을 읽는 형식의 스터디팀을 만든 적은 없다. 책 정도는 혼자서 읽고, 그 뒤의 얘기들을 하는 것을 훨씬 선호한다. 그래서 이게 대학원 박사 과정의 스터디랑 형식이 같은 것이다. 모여서 책을 읽기 시작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하다. 그러면 책 읽고, 진짜 할 얘기는 뒷풀이 가서.. 그렇게 해놓고 술 처먹다가 한 쪽에서는 싸우고, 한 쪽에서는 연애하고, 뭔 짓인가 싶었다.

 

내가 준비하는 강연은 2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예전에는 딱 한 시간 발표하고, 한 시간 토론이었는데, 이제 점점 더 토론의 강도가 약해져서, 그냥 한 시간 반 정도 얘기한다. 책을 읽고 오면 발표는 사실 필요 없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제일 싫은 것은 기업 연수교육에서 하는 강연이다. 아마 돈은 충분히 받았을 테니까, 한 번 씨부려봐, 품평회 하듯이 배 내밀고 앉아 있는 대기업 직원들 앞에서.. 딱 맘 먹었다. 배 내밀고 앉아 있는 사람들 앞에서 강연하는 건 안 한다. 지금도 사장이 어떻게든 꼭 해달라고 부탁한 예외적인 경우 아니면 기업 교육은 안 한다. 피차 서로 곤욕스러운 자리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전경련에서 부탁 왔을 때. 그야말로 회장급들 교육을 좀 시켜달라고 했다. 일본에서 한다고 했다. 간다고 했다. 그랬더니 나중에 보니까 골프 라운딩을 하면서 거기서 강의를 해달라는. 그래서 골프 못 친다고 했다. 그냥 골프채 들고서 치는 척만 해도 된다고 했다. 싫다고 했다. 돈 많이 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싫다고 했다. 이것들이 사람을 뭘로 보고 (사실은 나도 전경련의 환경 분야 주포 역할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서로 전혀 모르는 관계는 아니다.)

 

요즘에 내가 새로운 양식 실험을 해보는 것은 티타임이다. 10명에서 20명 안팎의 사람과 모여서 차 한 잔 마시면서, 나는 30분 이내로 배경에 관한 얘기를 하고.

 

돌아가면서 서로 얘기를 하게 하고, 중간중간 내가 진행성 개입을 하는.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읽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효과는 강연보다 티타임이 훨씬 좋다. 좀 더 비공식적인 얘기의 핵심에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최근에 독자 티타임하면서 나도 안 해본 새로운 포맷을 실험해보는 중이다.

 

티타임 형식이 성공하려면 얘기를 주도하는 사람이 확실하게 출발점과 목표점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건 내가 하는 거니까 아무 문제 없고.

 

기존의 강연과는 다른 20명 내외의 티타임 형식을 좀 더 많이 만들어볼 생각이 있다. 물론 강연으로 돈을 벌고, 책을 팔 생각이면, 무조건 다다익선이다. 그렇게 보이기는 하는데.. 나는 사실 그런 목적은 별로 없다. 진짜로 사회를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하고 싶은. 그럴 때에는 티타임 형식이 좀 더 나을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을 사고, 변화를 만들기 위한 것, 진심이 최고다.

 

후배들하고 하는 스터디에 대해서 내가 약간의 자부심이 있는 게.. 석사 시절에 나와 공부했던 친구들이 대부분 박사가 되었다. 타율로 치면 9할이 넘는다. 셋째 아이를 낳으면서 박사과정 진학을 포기한 드문 경우 일부 아니면 대부분 최종 터치다운까지.

 

나는 그들에게 지식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목적을 주로 가르치고, 공부하는 법을 가르쳤던 것 같다 (내 손을 거쳐간 박사들만 모아도 학과 몇 개는 거뜬히 만들 수 있을 듯한.)

 

이런 유사한 효과를 상식적인 시민들과 나누기 위한 포맷이 현재로서는 티타임이다. 강연보다는 나은 것 같다.

 

내년에는, 어차피 사람 많지 않은 것은 미리 주최측과 얘기해서 티타임 형식의 실험을 좀 더 많이 해보려고 한다. 내가 우스워 보여도 박사 22년차다. 가르치고 지도하고, 이골이 나도록 잔뼈가 굵었다. 좀 더 쉽고, 좀 더 표준화할 수 있는 양식에 대한 실험이 내년의 목표다.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