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통장에 딱 5원이 있던 날이 있었다. 2년 전, 어느 황사 가득한 봄날이었다.) 

 

1.

내가 쓰기에는 통장에 너무 많아, 얼마가 있는지 신경도 안 쓰고 살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시민운동한다고 가진 돈을 한 번 다 털어 넣었고 통장에 마지막 5만 원이 남는 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문재인 당대표 시절에 방법이 없어서, 또 돈을 한 번 털어 넣은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5만원이 아니라, 바로 그 통장에 5원이 남아 있던.. 물론 그게 우리 집 돈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아내에게 할 말이 없게 된.

 

결국 아내가 돈 번다고 나섰고, 나는 그냥 애들이나 보게 된. 그리고 대충 2년 정도를 진짜 돈은 하나도 안 쓰고 그냥 버텼다. 물론 나만 돈을 안 썼다.

 

내가 너무 아무 것도 안 하고 집에만 처 박혀 있으니까, 올 가을에 아내가 차를 사줬다. 2천만 원. 차 없앤지 대충 2년만.

 

그래도 내가 독한 게, 돈 없으면 하고 싶어지는 방송이나 강연 같은 것에 손 벌리지 않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다. 물론 강연을 아예 안 한 건 아닌데, 정말 최소한으로.

 

그래도 그 기간이 그렇게 고생스럽거나 한이 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삶에 대해서 많이 배웠고, 인생에 대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이게 그 시절의 책이다. 나는 진짜로 많이 바뀌었고, 재밌는 생각도 많이 했다.

 

2.

오랫동안 법인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하나 내놓으라고 하면 공식적으로 쓸 수도 있는 상황이기는 한데.. 그딴 건 필요 없다, 내 인생에서 떼어버렸다.

 

접대 같은 건 안 한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신세졌거나, 위로라고 해야 하는 경우, 술은 산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내 돈으로 산다. 그리고 아내에게 빙신 짓 하고 다닌다고, 쫑코 먹는다.

 

그래도 좀 멋적은 소망 같은 것은 있다. 언젠가 이 직불 카드에 1억원은 넣어 놓고 살리라. 물론 현실은 백 만원 정도 들어가 있다. 그나마도 술 처먹고 나면, 아내가 돈을 다 빼 버린다. 얌전하게 살아야 그 정도 잔고라도 유지시켜 주는.

 

그게 무슨 궁상이냐 싶지만. 나는 두 차례에 걸쳐서 사회를 위해 일 한다고 집에 있는 돈을 다 쓴 적이 있다.

 

아내는 그런 내가 별로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차를 사거나, 스피커를 사거나, 카메라를 사는 데 돈을 쓰는 게 허망하게 쓰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구경도 해보지 못한 돈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몇 번을 경험한 아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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