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파주에 갔다가 운전하고 집으로 왔다. 내가 하는 일들이 뭐 특별히 잘 되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기분 나쁠 일들도 조금씩은 있다. 그래도 집에 오는 길에 간만에 기분이 좋았다. , 별 일은 없다.

 

그냥 동료들과, 지금 하는 일을 좀 천천히 하자고 얘기했을 뿐이다. 좋다고 한다. 그럼 된 거다.

 

좀 빨리 하자, 좀 열심히 하자, 이런 말을 안 한지 좀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빨리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특히나 뭔가 만드는 일은, 제 시간에만 해도 잘 하는 것인 경우가 많다. 너무 늦지만 않아도 다행이지, 빨리 한다고 될 일은 별로 없다.

 

열심히 하자, 마찬가지다.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나? 열심히 하자고 해봐야, 아무 일도 안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괜히 입만 아프다. 그리고 서로 갈구는 느낌 들어서, 기분 안 좋다.

 

50대 에세이를 끝내고 나면서, 내 생각도 좀 바뀌고, 성격도 좀 바뀐 것 같다.

 

지공어지간하면 천천히. 물론 괜히 시간을 끌지는 않지만, 조급해서 빨리 하려고 하는 것은 이젠 가급적이면 안 하려고 한다.

 

엄청난 전략이나 전술 같은 것을 가지고 이렇게 지공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내 속도대로, 내 호흡대로 움직이는 것, 그리고 더 늦어져도 문제가 없게 설계를 하는 것, 나는 그런 게 즐겁다. Slow but sure.. 한 때 윈도의 캐치프레이스였던 이 표현이 요즘 내 생각과 비슷하다.

 

시간은 가급적 천천히, 무리하지 않게 잡고, 동료들을 믿는 것, 이게 요즘 내가 일하는 방식이다. 2년 전인가, 두산이 엄청 잘 했다. 김태형 감독에게 사람들이 이것저것 물어봤다. 뭐라뭐라, 막 그랬다. 그러면 공격은요?

 

칭찬 많이 해주는 수 밖에요.”

 

공격은 워낙 변수가 많아서, 그냥 칭찬해주는 수밖에 없다는. 그게 그 해 우승한 감독의 비법이었다.

 

뭔가 만드는 일이, 야구로 치면 공격과 같다. 별 뾰족한 방법이 없다. 공정 돌리듯이 그냥 돌린다고 해서 뭔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제일 애매한 게, 뭔가 나오기는 나오는데 불량품과 표준품 사이에 애매하게 걸려 있을 때. 버리기도 그렇고, 고쳐서 뭔가 하기도 그렇고.

 

요즘 가끔 사람들이, 왜 그러구 사느냐고 얘기를 한다. 뭔가 좀 폼 나는 것을 기대한 사람들이 하는 얘기다. 그럴 때 이렇게 대답을 한다.

 

제가 이제 겨우 50입니다.”

 

그렇다. 난 아직 쉰 밖에 안 되었다. 한두 턴, 뭔가 엄청나게 더 재밌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걸 그냥 폼 잡는 데 쓰고 싶지는 않다. 다른 사람들 기준으로 하면, 난 아직 10년의 여유가 더 있다. 천천히, 정말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는데 내 시간을 쓰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빨간 모닝 타고 파주에서 집에 오는데,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하고 싶지만 여건이 안 되서 결국 포기한 일들이 있다. 경제 다큐..

 

사세 미약하여. 하면 좋은 일이기는 한데, 나나 내 주변 동료들이나, 아직은 그런 걸 할 준비가 덜 되어 있다. 어주 먼 미래의 일로.

 

마시따 밴드의 돌멩이, 요즘 가사가 가슴 속에 팍팍 박힌다.

 

구르고 또 굴러서 멍 투성이가 되도

세상끝에 홀로서 당당히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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