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네이버에 쓰던 불로그 이름이 여기는 등대였다. 등대라는 단어가, 참 좋았다. 요즘은 GPS로 운항을 하니까 등대는 사실 있으나 마나 한 것 같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항해에서 등대는 굉장히 중요한 기능을 했다.

 

등대는 불을 밝히기는 하는데, 자기를 보라고 빛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자기를 통해서 길을 찾으라고 하는 것, 등대 그 자체는 별 존재는 아니다. 나는 그런 게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했다. 의미? 등대의 의미를 무시하는 항해사는 없다.

 

원래 나는 기동력 좋게 움직이거나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별로 부지런하지 않다. 그리고 같은 일을 계속하는 것, 반복적인 것을 죽도록 싫어한다. 익숙한 것을 싫어하고, 해봤던 것을 또 하는 것을 싫어한다. 어려운 것을 하는 것보다 쉬운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반복을 더 싫어한다. 너무 어려서 프로이드를 읽어서 그런지, 반복과 죽음의 본능이라는 생각이 마음 깊이 박혀 있나 보다. 뭔가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을 때, 나는 죽어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축적하는 방식으로 살지는 않았다. 새로운 것과 최고, 나는 최고의 길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버리고, 새로운 것의 길을 선택한 것 같다.

 

하는 일이나 쓰는 글의 범위 같은 게 계속 바뀌기는 하지만, 내 삶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다. 그냥 어디 한 구석에 짱 박혀서 어디다 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뭔가 새로운 혹은 새롭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 을 줄구장창 만들고 있는 일, 그 정도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먹고 사는 게 어느 정도 해결된 이후에 생각에 좀 변화가 왔다. 물론 해결이라고 해봐야 남들에게는 에게, 그 정도, 그 수준을 넘지는 못한다. 하여간 어느 날 미쳤다고 갑자기 나는 이제 벤츠 타야겠어”, 그런 황당한 생각만 하지 않으면 세 끼 밥 먹고 사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그러다 보니까 누가 큰 돈 번다고 얘기해봐야, “너나 열심히 버세요”, 면박 주기 일쑤다. “너는 돈 안 필요해?”, 이렇게 물으면 , 안 필요해요”, 요렇게 대답한다. 진짜 황당한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면, “너보다는 돈 많아요”, 요띠구로 면박을 주기도 한다.

 

돈을 엄청나게 더 버는 일에 매력을 느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성 아우구투스가 인간을 움직이는 세 가지 동기로, , 명예, 성욕 (libido libidinal)이라고 말했다. 나에게는 돈도 별로고, 명예도 별로다. 그렇다고 갑자기 사랑에 빠질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내가 사는 모습이, 내용은 몰라도 모양새는 크게 변동이 없다. 사는 집에 그냥 살고, 먹던 거 먹고, 입던 거 입고, 애들 보는 거 계속 보고. 40대까지는 중대한 커브틀기, 이런 게 가끔은 있었던 것 같은데 50이 되니까 그런 것도 없다.

 

속으로는 생각도 조금씩 바뀌고, 쓰는 글 스타일도 바뀌지만, 크게 보면 30대 중반에 저자로 데부한 이후로, 거기서 거기인 삶을 사는 중이다.

 

소소한 변화들은 있다. 신문에 칼럼 쓰는 일은 그만하기로 했고, 방송도 고정적으로 뭔가 해야 하는 일은 안 하기로 했다. 무의미해서가 아니라 아픈 아이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렇다. 그리고 일간 혹은 주간으로 변하는 그 사이클을 애 보면서 내가 따라갈 수가 없다. 나는 그보다는 긴 사이클, 2~3년 혹은 5년 이상 걸리는 일들을 주로 한다. 지금 막 내 손에 있는 것들은 빨라야 3년 후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렇게 시간을 비운 대신, 힘 닿는 대로 현장에 가보고, 실무자들 인터뷰 하는 일들을 조금 더 늘렸다. 나는 여전히 책과 자료만 보는 데스크일만 하는 것보다는 직접 현장에 가는 걸 더 선호한다.

 

이렇게 뻔하디 뻔한 삶을 살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고정점 같은 게 되었다. 세상은 변한다. 끊임없이 변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도 가끔 있어서 나쁠 것 같지는 않다. 작년부터 정부에서 학계까지 ‘4차 산업혁명이라고 난리들을 친다. 그래야 껍닥을 달아야 정부에서 돈을 준다. 나는 지랄 염병을 한다고 한 마디 한다. 포디즘도 제대로 이해못하는 아저씨들이, 어디서 어디로, 뭐가 변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진짜 염병들을 하신다. 이렇게 안 변하고 있는 사람도 필요할 것 같다.

 

30대 때 썼던 여기는 등대라는 표현이 얼마 전에 다시 생각이 났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변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 기준점 역할을 하기는 한다. 사명감으로 삶을 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나를 준거점으로 삼는 것 같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등대, 등대의 의미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요즘 너무 간단한 기준으로 세상이 좋아졌는지, 그렇지 않은지, 쉽게 판단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가끔은 되돌아보면서, 이게 맞는지 아닌지, 생각해보고 싶어질 때도 있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는 아니다.

 

거기에 그냥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존재, 우리는 과연 등대가 될 수 있을까? , 쾌속정이나 구축함 혹은 항공모함 같은 배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등대 같은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는 등대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굳이 배가 되어, 스스로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좋다. 삶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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