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교재로나 읽히는 농업경제학을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을 책으로 바꿀 것인가, 10년도 더 된 나의 해묵은 과제다. 아직도 해법을 못찾고 있다...)

1.

많은 문화 창작은 누가 이것을 볼 것인가, 관객과 관련되어 있다. 당연한 얘기다. 몇 년 전 연극계에서는 아침 10시에 하는 연극 공연을 선보였다. 아침에 출근과 등교 준비를 끝낸 아줌마들을 좀 더 연극계로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였다. 신선했다. 이런 것을 전문 용어로 관객 개발이라고 불렀다. 연극을 보지 않는 사람들이 좀 더 연극을 보러 왔으면 좋겠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객 개발과 같은 문제는 한국의 문화 영역 전반에서 벌어지는 고민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연극이 더 치열했을 뿐이다.

 

책에서도 이 문제가 생겨난다. 사람들이 점점 더 책을 읽지 않으면서 독서 캠페인 같은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무의미한 얘기는 아니다. 개별적으로 이 문제에 소극적으로 접근하면 타킷 독자에 대한 마케팅 강화 같은 형식이 된다. 누가 읽을 것인가, 그걸 좁혀서 더 그 독자에 맞추자는 방식이다.

 

이러한 마케팅 접근이 나쁜 것은 아닌데, 나는 그렇게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늘상 이 문제로 출판사와 갈등한다. 연령별, 성별로 읽을 사람을 정하고 거기에 맞추는 시도가 나쁘지는 않지만, 그러면 저자 자신이 얄팍해진다. 나는 여전히 최소한 한 나라 안에서는 보편적이고, 관심만 있으면 누구나 볼 수 있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꾸 얄팍해지면, 나중에는 쓸 내용 자체가 말라버린다. 그런 점에서는 나는 여전히 고전적이다. 그렇지만 누가 읽을 것인가, 이런 걸 고민하지는 않을 수 없다.

 

2.

<88만원 세대>를 처음 준비할 때, 몇 개 출판사와 얘기가 있었었다. 그 때는 결론을 놓고 이견이 있었다. 출판 쪽 사람들은 이 책이 대학생에 대한 권면과 같은, 이러면 안된다, 그런 기성세대의 관점으로 마무리가 되기를 바랬다. 무슨 엄청난 철학적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에도 대학생은 책을 안 본다는 게 거의 정설이었다. 어차피 책을 살 사람들은 기성세대니까 그 사람들의 관점에서 책을 마무리해야 나머지 내용이라도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거다. 대학생들이 책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큰 전제 하에서 생겨난 일이다. 나는 내 양심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독자들이나 국민들을 힐난하거나 욕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하기 위해서 지난한 분석 작업을 하거나 원고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나중에 문제적 요소가 된 바리케이드와 짱돌에 관한 장 하나를 더 추가했다. 원래의 원고는 정책 대안들을 얘기하고 끝나는 형태였다. 출판사 사람들하고 얘기하고, 차라리 내가 원고를 다 버리면 버리지 그렇게는 절대로 안하겠다고 오히려 더 청년들의 사회적 활동 쪽을 추가했다. 그거 보면, 나도 어지간히 똘아이다. 누가 뭐라고 하면 방향을 돌리는 게 아니라, 그 방향으로 더 나가버리는 반항적 성격! 내가 생각해도 나도 참 지랄맞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게, 소위 딜리버리 문제라고 하는, 책이 필요한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이 질문과 관련되어 있다. 복지 분야에서 딜리버리 문제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송파 세 모녀 사건 같은 것에 대한 논쟁의 핵심이다. 선별적 복지를 할 때 어떻게 꼭 필요한 사람에게 복지를 배달할 것인가, 이 설계가 쉽지 않다.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받아가는 동안, 꼭 필요한 사람에게는 행정적 절차나 규정 미비 등 여러가지로 배달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

 

일반적으로 한국 출판계에서 주요하게 책 안 읽는 3대 집단은 다음과 같다.

 

1. 대학생

2. 농민

3. 민주당 당원

 

대학생은 원래는 사회과학의 주력 독자였는데, IMF 경제 위기 이후로 책 안 읽는 집단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이 경향성은 점점 더 강화된다. 최근에는 거의 대학생 독서 절벽이라고 할 정도로 안 읽는다. 여기에서부터 청년들의 문제는 물론이고, 전문적 서적의 고사 같은 일들이 시작된다. “대학교 교제 같다”, 이 얘기는 자발적으로는 아무도 안 읽을 것 같다는 표현이다.

 

농민은, 사실 당연한 일이기는 한데, 이게 딜레마다. 농민들이 책을 안 읽으니까 농업에 관한 책은 정말로 큰 맘 먹고 쓰거나, 음식 책처럼 달달하게 가는 수밖에 없다. 농업의 위기 원인 중의 하나가 농민들이 책을 안 읽는 것과 관련되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농민들에게 책 좀 읽으세요,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당 당원은 왜 책을 안 읽을까? 계량적으로 수치를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예전의 민주노동당 당원 지금의 정의당 당원들이 민주당 당원 보다는 책을 많이 읽는다는 판단들은 일부 있다. 물론 민주당 당원들도 가끔 응원과 지지의 성격으로 특정 책을 많이 사주기는 하는데, 다양한 층위의 독서와는 좀 차이가 있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당 당원, 이 집단은 책을 가장 많이 읽고, 가장 많이 사는 집단으로 분류된다. 이건 독자 성별 조사 같은 것으로는 잘 안 잡힌다. 최근에는 좀 변했겠지만 한국의 주요 사무실의 부장이나 이사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 박근혜 지지하는 보수층인 시절이 있었다. 이들은 자기 돈으로 사는 것 보다는 훨씬 더 많이, 자기 사무실이나 자료실을 통해서 책을 산다. 월간조선류 시장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누가 샀는지 정확하게는 집계 못해도 사기는 샀고, 읽기는 읽는. 몇 년 전 출판 분석 많이 하던 사람이 나에게 해준 말이, 내 책도 아마도 보수 쪽에서 더 많이 읽었을 것이라고사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다. 이건 팬과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구매 패턴이다. 저놈의 자식이 뭐라고 하는지 좀 보자

 

출판사에서 이런 것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 당원은 심정적으로는 가까운데 책은 안 보고, 보수는 심정적으로 너무 먼데 그래도 거기는 책을 좀 사보고.

 

프랑스는 사회당 당원들이 정말 책을 많이 본다. 그래서 그 쪽 책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그런 것들이 세계적 빅 히트를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그런 정치적 성향과 독서가 좀 반대 방향으로 가서, 좀 더 진지하게 주제를 다루고 싶은 민주당 계열 학자들이 결국 펜을 꺾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가설만 있지, 아무도 진짜 이유는 모른다. 어쨌든 민주당 당원들은 팬덤 패턴 분석이 조금 더 정확하지 독자 패턴 분석으로 뭔가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3.

배달 문제는 크게 집단으로 분류해볼 수도 있지만, 좀 더 섬세하게 접근할 수도 있다. , 누군가 불법 다단계에 심하게 빠져 있는 사람들에 대한 본격적인 진단을 한다고 해보자. 이 책이 출간될 수 있을까? 근본적인 딜레마가 발생한다. 다단계 중독인 사람이 과연 책을 읽을 정신이 있을까? 그리고 그런 중독 상황에서 책 좀 본다고 자신의 생각이나 행위가 바뀔까? 여기까지 배달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경제 다루는 사람들도 다단계 문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공익적 가치는 충분히 있는데, 배달이 거의 불가능하다. 알고는 있지만 다루기는 쉽지 않다.

 

배달의 문제는 출판사는 물론이고 저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다. 물론 부정적 영향이다. 주로 뭔가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방향보다는, 뭘 하지 말아야겠다, 뭘 못하겠다, 이런 형태로 나타난다. 책이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특징이 결국 배달, 딜리버리의 문제로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교적 초기에 쓰기로 마음을 먹고도 아직도 미적미적거리고 있는 주제가 농업경제학이다. 이것도 근본적으로는 배달 문제를 넘어서기가 어려워서 그렇다. ‘농업경제학 2019’라는 제목으로, 무조건 내년에는 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배달과 판매 생각하면 안 하는 게 맞는데, 그러면 사람이 얄팍해진다. 다루기 어렵고 팔기 어려운 주제들, 꺼내기 쉽지 않은 문제들을 다루는 편이 그래도 좀 더 오래 가기에는 도움이 된다. 그렇게 하면, 결국에는 실력이 는다.

 

(배달의 문제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유료 독자의 문제라는 것도 있다. 이건 다음 번 주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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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석훈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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