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가려고 한 것은 아닌데, 강화도 전등사에 갔다가 정족산사고를 들르게 되었다. 뭔가, 잠시 느껴지는 게 있었다...)

 

1.

5, 7, 두 아이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을 옮기고 나서, 적응을 잘 못한다. 새로 옮긴 어린이집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 전에 있던 어린이집이 워낙 좋았다. 아침마다 몇 시에 데리러 올 건지, 더 일찍 올 수는 없는지, 아이의 관심은 오로지 하원 시간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늦을 것 같으면, 아침에 어린이집 안 간다고 운다. 방법이 없다. 오후에 길이 막혀서 약간이라도 늦으면 아이는 울고 있다. 담임 선생님이 나한테 막 뭐라 뭐라 한다. 내가 이렇게 혼이 날 정도로 큰 잘못을 저질른 건가, 가끔 황망하기도 하다. 어쨌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더 많이 놀아주고, 더 많이 여행 다니고. 마침 봄도 오고 해서,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더 많이 여행을 갈 생각이다.

 

집에서 가깝고, 익숙한 강화도 전등사에 갔다. 일부러 가려고 한 것은 아닌데, 전등사가 지켜온 정족산사고를 보게 되었다. 작년 11월에 애달 데리고 갔다가 전주사고를 본 적이 있다. 아련한 생각들이 난다. 여기 오기 전 들렀던 강화문학관에서 팔만대장경 경판이 머리 속에서 겹쳐진다. 책이란 게 뭘까?

 

2.

한국에서 책은 위기다. 사회과학도 위기고, 그림책도 위기고, 심지어는 아이들 보는 동화책도 위기다. 386들이 부모가 되면서 한동안 동화책의 전성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도 다 옛날 얘기이거나, 기대가 너무 많아서 생겨난 신화 같은 얘기다.

 

하루걸러 들려오는 얘기들이, 누가 누가 책을 더 이상 안 쓰기로 했다, 누가 그냥 취직했다. 그런 얘기들이다. 이러다가 정말 작가 중에서 굶어 죽는 사람 나오겠다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전업작가들이 맞게 된 최대의 위기 국면이다.

 

사실 나도 책을 계속 써야하는지, 2년 전부터 고민을 했다. 내가 처음 나왔을 때, 출판사 MD들이 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사회과학 전업작가라는 얘기를 하고는 했다. 여전히 사회과학 전업작가라는 이름을 들을 정도이기는 한데, ‘가난한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주어야 한다. 수식어 하나를 더 단다면 강연 안하는정도 될 것 같다. 강연을 아예 안하지는 않는데, 고등학교나 시민단체 같은 데에서 부탁 오는 것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해주는 정도다. 게다가 나는 돈 받고 강연 듣는, 소위 유료강연은 안 한다. 책을 사면서 돈을 낸 건데, 무슨 돈을 또 받아, 그런 생각이 강하다.

 

작년 말에, 언제까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계속 책을 쓰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이 있었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다 반대했다. 반대의 의미는 명확했다. 이게 돈이 안된다, 애들 둘을 어떻게 키우려고 하냐? 무책임하게

 

솔직히 애들 키울 생활비까지 걱정하면서 살아야하는, 그런 정도는 아니다. 그냥 먹고 살만은 하다. 벤츠나 그런 거 사야겠다고 갑자기 정신이 해까닥하는 경우만 아니면, 별 걱정은 없다. 지금처럼 아내의 모닝 가끔 얻어 타면서 살면, 별 걱정은 없다. 어쨌든 계속해서 책을 잘 쓰면 좋겠다, 이렇게 얘기해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친구 한 명은, 당장 벤츠를 사라고 했다. 그래야 정신을 차릴 거라고. 벤츠도 사고, 골프도 치고, 에 또 뭐 그런 그런 것도 다 하면 지금처럼 벌어서는 택도 없다. 그래서 좀 남자로서, 어른으로서, 욕망이라는 것을 가지라고 한다. 그게 성공이라고. 그래서 벤츠를 사면 결국 벤츠만큼 돈을 벌게된다는, 별 말도 안되는 경제 강의를 내 앞에서친구야, 미안한데, 내가 경제학 박사 20년차다. 나는 머리에 총맞았냐고 그랬다. 내가 총맞았냐, 벤츠를 타게. 지금 행복한데, 불확실한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의 행복을 포기할 것인가! 총 맞았거나, 미친 사람이 하는 행동이다. 부모가 돈 벼락을 주거나, 하늘이 돈 벼락을 내려도 나는 그렇게는 안 살 것 같다. 그 돈이면 세상을 위해서 얼마나 할 수 있는 좋은 일이 많은데

 

어쨌든 나는 계속해서 책을 쓰기로 작년 말에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목표는 딱 우리 집 생활비만큼. 목표는 그런데, 좀 안 맞아도 별 상관 없다. 내 마음이 그렇다. 한국에 처음 등장한 사회과학 전업작가로서, 그렇게 살아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걸로 족하다. 이 얘기도 크게 하지 어려운 게, 주변의 저자나 작가들의 삶이 진짜로 너무너무 힘들다. 최선을 다 하지만 안 되는 걸 어떻게 해, 그런 얘기를 들을 때, 힘들고 미안하다. 세상이 원래 그래, 배울 만큼 배우고 할 만큼 한 40, 50줄의 작가들이 이런 얘기를 서로 위로라고 하는 게 정상적으로 보이는가? 뭔가 이상한 것이다. 꼭 대학 입시 앞두고 점수가 잘 안 나올 때, 대학 졸업하고 취업 잘 안될 때 청소년과 청년들이 하는 것 같은 얘기를, 나름 스타급 작가들이 지금 서로 위로라고 하고 있다. 다른 얘기를 하기는, 너무 서로 미안하다. 세상이 원래 그래, 그런 얘기가 참 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다르게 할 수 있는 얘기가 별로 없다.

 

3.

책은 한 사람이 모을 수 있는 지식을 최대한도로 담아내는 최고의 매체다. 물론 누구나 그 정도는 인정한다. 그래서 책이 많아질수록 그 사회가 힘 있는 사회다. 19세기에 전성기를 맞은 나라들 대부분, 그 시절에 자신들의 출판문화도 전성기였다. 좀 더 다양한 종류의 지식이나 경험이 책으로 나올 수 있는 나라, 그 나라가 잘 사는 나라다. 잘 살아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그렇게 책이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지식을 모아 나가다 보니까 잘 사는 나라가 된 것 아닐까 싶다.

 

책은 전세계적으로 약해지는 흐름에 놓여있기는 하다. 그렇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이건 비정상적이다. 원래 그래, 그게 아니라, 우리만 그래그게 좀 더 정확한 진단일 것 같다.

 

4.

태풍이라는 은유를 요즘 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태풍의 눈이라는 얘기를 참 좋아했다. 영화 <퍼펙트 스톰>에 가장 슬픈 태풍의 눈 얘기가 나온다. 즐거운 버전의 얘기도 있다. 진짜로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정작 그걸 만드는 사람들만 잘 모르는 경우. 태풍의 눈이라서 그렇다고들 한다.

 

요즘은 태풍의 씨앗 혹은 태풍이 만들어지는 순간, 그런 얘기를 가끔 생각한다. 북태평양 어느 한적한 섬 앞바다, 그곳에서 태풍의 씨앗이 만들어진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피어 오르는 물기운 중의 하나가 결국 태풍이 된다. 어느 씨앗이 태풍이 되었는지, 언제 되었는지, 사실 아무도 모른다. 태풍이 태풍으로서 형성이 되고 자리를 잡아야 그 때부터 위성 관측이 시작된다. 친구 중에 태풍이 오는 경로를 확인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취미인 사람이 있다. 작은 태풍이 거대한 태풍으로 자라날 때 즐거워한다. 태풍의 피해자들이 보면 미친 놈이기는 할텐데, 위성으로 태풍 관찰하는 게 거의 유일한 취미다. 그런 사람도 태풍의 씨앗은 모른다.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모르는 것이지, 없는 것은 아니다.

 

방송과 책을 비교해보자. 방송은 태풍을 쫓아다니는 것이다. 태풍이나 태풍급, 그 정도가 된 것들 것 쫓아다니는 행위를 우리는 방송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방송 하는 사람들의 머리는 이미 다 된 것들 혹은 터지기 직전의 마지막 몽우리, 이런 것을 찾는데 특화되어 있다. 태풍이 아닌 것은 손도 대지 않는다. 그걸 옆에서 보면, 좀 웃기기는 하다. 자기는 태풍이 아닌데, 태풍들만 만나다 보니, 자기가 태풍급이라고 즐거워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좀 험하게 말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우리가 방송에서 보는 것들은, 그 세계에서는 태풍이 된 사람들을 본다. 그래서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노래가 되는 것이다.

 

책은 방송과는 다르다.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책을 쓰고, 출간하는 과정, 이것들은 북태평양 어느 곳에서 태풍의 싹을 만드는 일과 같다. 너절하고, 전혀 멋진 일이 아니다. 다만 그 후에 생겨날 태풍을 생각하면서 고단하고 지난한 과정을 참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태풍의 싹이 전부 태풍으로 자라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상상 없이는, 춥고 배고프고 고단한 과정을 견뎌내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태풍의 싹의 일부가, 당대 혹은 후대에라도 태풍이 된다. 보람 있는 일이다.

 

태풍을 보는 눈과 태풍의 싹을 만드는 눈은 다르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다. 방송은 트렌드를 쫓아간다. 책은 트렌드를 만든다. 그래서 선진국들이 여전히 책을 중요한 매체로 생각하고,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 아닌가?

 

5.

지역의 소소한 이야기, 지역색과 향토색 가득한 이야기, 이런 건 요즘 책이 안된다. 로컬의 문제,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평생을 사진만 찍은 사진 전문가가 알게 된 세상에 대한 지혜, 이런 것도 책이 안된다. 책으로서의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보려고 하는 사람이 적어서 그렇다. 쉽게 버리기 어려운 얘기들이 요즘에는 책이 안된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모두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게 된 사회, 그 사회가 진짜로 강한 사회다. 우리에게는 더 소소하고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한데, 지금 한국 사회는 그런 지식들이 사회화되기에는 너무 체질이 허약해져 버렸다. 그러면 잘 될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구한말에 한국에 온 선교사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한국에 관한 책을 쓰고 그런 것들이 발간되었다. 우리는 소중한 자료라고 한다.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한국인이 외국에 와서 보고 느낀 것, 그런 것이 지금 우리에게서 출간될 수 있을까? 꼭 하멜 표류기 같인 희귀성이 있는 것 아니더라도 나름 그 나라에서 발간이 되고, 우리에게 소중한 자료로 남아있다. 지금 우리는?

 

우리는 지금 태풍만 찾아 헤맨다. 그러다 길을 잃는다. 다들 미래학만 하려고 한다. 정부나 민간이나. 현재를 잃어버린 나라가 미래만 찾는다. 앞길이 어두울 때 종교만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책을 계속해서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뭔가 만드는 것, 얘기든 내용이든 논리든, 그런 일을 좋아했다. 태풍이 되든 태풍이 되지 않든, 태풍의 씨앗을 설계하고 만드는 일은 내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다. 그것이 태풍이 되든 되지 않든, 그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태풍의 씨앗을 만드는 일, 그건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하고 보람된 일 중의 하나다. 그걸로 먹고 살 수 있으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최근에 느낀 게 있다.

 

책은 정직해야 하고, 내용도 정직해야 한다. 그래야 태풍이 되지 않더라도 미풍이라도 된다. 그리고 그 미풍이라도 필요했던 사람의 눈에 전달될 수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책 만들 때 사용하는 기법 같은 것들을 될 수 있으면 빼고, 담백하게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태풍이 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나는 태풍의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내 일을 한다.

 

우리는 세계사에서 드물게 실록을 만들고, 그것을 죽어라고 보존했던 사람들의 후손이다. 그게 뭐 팔리겠냐, 우리의 선조들이 순실이나 근혜처럼 국가를 가볍게 생각했다면 우리는 벌써 망했을 것이다. 나라가 망하지 않기 위해 목숨 걸고 팔만대장경을 찍었던 사람들의 후손이다. 그게 우리의 DNA 안에 흐를 것 같다.

 

사람들이 책을 더 많이 읽고, 삶을 바꾸는 일은 아직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태풍이 여러 개 필요하다. 그 태풍의 눈을 만드는 사람들의 삶은 순결하고, 정직하다. 지금 이 시대에 아직도 책을 쓴다고 마음을 먹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존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매체로서의 책이 망하는 속도가 한국에서는 너무 빠르다. 벌써. 나의 경험담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일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요즘 내 책들이 예전 책보다 훨씬 공도 많이 들어가고, 품도 많이 들어간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정성 들여 책 내용을 구상하고, 고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보다 훨씬 잘 팔렸고, 영향력도 높았다. 지금은, 예전의 3~4권 만들었을 힘을 책 하나에 쏟는다. 그래도 버티기 힘들다. 할 수 없다. 시대가 변했다.

 

예전에는 책의 의미에 대해서 지금처럼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요즘 생각해보니까, 지금 책을 만드는 것은 태풍의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 예전에는 태풍의 눈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인, 이제 태풍은 아니다. 그래서 책을 만드는 행위가 태풍의 눈 같은 것은 아니다. 조용하고, 계속 조용하고, 앞으로도 조용할 것이다. 전혀 다른 시선과 전혀 다른 각오로, 태풍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책 만드는 행위에 더욱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 일은 혼자 하면 의미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자신의 최선을 담아서 책을 내기 시작하는 것, 그렇게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는 변화에서 의미가 생긴다. 나는 아직도 거대한 태풍을 기다린다. 태풍이 지나고 나면, 미세먼지가 사라지고, 푸른 하늘이 나타난다. 나는 아직도 그런 맑은 하늘에 대한 꿈을 거두지 않았다.

 

 

(강화문학관에 갔다가 팔만대장경 장판 하나가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팔만대장경이 강화도에서 만들어졌다고, 그냥 잠시 스쳐지나갔듯이 보기만 했었다. 진짜로 만져볼 수도 있고, 먹물로 종이에 찍을 수도 있다.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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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석훈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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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4.09 17: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2018.04.11 0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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