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만에 카메라를 들었다. 하도 오랜만이라 내 카메라에 어떤 기능들이 있었는지도 희미하고, 게다가 노안이 와서 펑션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일일이 수동으로 촛점 잡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눈이 그렇게 따라가지 못해서 기계에 그냥 의존한다.

이제 나도 50이다. 내 감과 내 느낌을, 나도 잘 믿지 못하겠다.

딱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나 혼자 무작정 끌고 갈 수도 없어서 포기했다. 작가들 취향이나 일정상 맡기기가 어려워서, 검토 중인 작품 하나를 일단 펜딩시키는 결정을 한 것이 한 달 전의 일이다. 마음만 가지고 할 수는 없는 일이 많다.

그래도 40대와 비교해서 한 가지 변한 것은 있다. 이제 나는 시간이 많다. 안되면 될 때까지.

사진은 중학교 때 찍기 시작했다. 학교 사진반을 했다. 근데, 이걸 좀 열심히 했다. 너무 사진만 열심히 찍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열심히 사진 찍었다. 집에다 암실을 만들까 막 고민을 하다가, 사진 그만 찍기로 어느 날 결정을 했다. 대학 내내 카메라 한 번도 집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이를 먹고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내가 카메라를 두 번 사주었다. 지금 쓰는 카메라는 두 번째 히로시마 갈 때 공항에서 사 준 거다. 물론 그 뒤로 렌즈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기는 했는데, 렌즈도 전부 아내가 사주었다. 아내는 내가 찍는 사진을 좋아했다. 물론 나는 잘 나온 사진만 아내에게 보여준다. 가끔씩 삥 나간 사진 중에도 느낌 좋은 것들이 있기는 하다.

아내는 술 마실 때의 내 모습을 가장 싫어한다. 그리고 사진 찍을 때의 내 모습을 가장 좋아한다. 나는 카메라에 돈 쓰는 걸, 진짜로 죽기 보다 싫어한다. 기능적으로, 꼭 필요한 최소한의 바디와 그보다 더 최소한의 렌즈를 사용한다. 그리고 성실하게 설계한다. 렌즈 2개 이상 가지고 나가는 날은 없다. 그리고 찍기로 마음 먹은 것을 찍기로 미리 설정한 화각에서 딱 찍고, 되면 다해, 아니면 그만, 바로 포기한다. 과잉이 없고, 욕심도 없다. 아내가 가끔 좀 더 찍어보라고 해도, 생각한 빛과 각이 안 나오면 그냥 포기.

술 마실 때의 내 모습은 그와 정반대다. 최대한의 량을 마신다. 그리고 이유도 없다. 술 마실 때에도 미리 설계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보다 몇 곱을 더 마신다. 그리고 포기하는 법도 없다. 그 모습을 아내는 제일 싫어한다.

필름 시절에 사진을 배워서, 지금도 최소 분량만 찍는다. 한 때 최고 성능의 연사 기능을 가졌던 바디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한 장 한 장 숨죽여 누른다. 그리고 가끔 느낌이 왔다 싶을 때, 몇 장 정도 더 찍는다. 필카 시절에, 손 가는 대로 막 누르다가는, 정작 중요한 순간이 왔을 때 어쩔 수가 없을 수 있다.

내려놓았던 카메라를 오늘 다시 집어든 것은, 50대 에세이에 마지막으로 넣을 글과 뺄 글을 결정하기 위해서다. 짧은 열흘 사이에 넣다 뺐다 하니까, 마음 속에 맺힌 상이 다 흐트러져 버렸다. 심지어는, 이걸 내야 하는 건지, 왜 내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아마 친구가 연관되어 있지 않았다면, 안 냈을 것 같다. 삥이 딱 맞지 않은 것 같은 상태에서 책을 낸 적은 없다. 지금처럼 삥이 왔다갔다 하면, 이걸 지금 내야 하나, 그런 생각을 며칠 동안 했다.

사진은, 찍어놓고 보면 사실 별 거 아니지만, 그 과정까지 집중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집에서 나가기 전 렌즈 집어드는 순간, 빛이나 화각은 물론이고, 색감까지도 어느 정도는 결정을 하고 나가게 된다. 렌즈마다 약간씩 색감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설계치보다 덜 나온다. 얻어걸리는 날도 가끔 있지만, 그건 진짜 드물다.

오늘은 색감의 일관성,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나는 집중을 너무 많이 한다. 그 생각을 흐뜨러트리는 것이 내가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술 마시는 것과 사진 찍는 것과, 사실 나에게는 같은 효과다. 술 마시기 전 생각이 흐트러지는 것처럼, 사진을 찍고 나면 그 전에 했던 생각들이 흐트러진다.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지, 잠시 생각을 했다.

다른 글 여덟 개 정도를 버리고, 앞 부분에 있던, 그리고 맨 처음에 버렸던 '센치멘탈 블루스'를 다시 넣기로 했다. 제목은 중간에 썼던 '궁상주의 미학'으로. 초반에 설정치를 날려버리고 나니까, 중간에 다시 기둥을 세울 수가 없었다. 다른 기둥을 세우더라도, '센치'라는 아래 쪽 기반을 빼니까 위가 세워지지 않는다.

그 기둥을 세우고, 다른 얘기들을 흐트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음 카메라 견적을 이리저리 뽑아보니, 바디랑 몇 개 렌즈 합쳐서 800만원에서 천 만원 정도 들 것 같다. 아내에게 물어봤다. 벌써 몇 년 전에 사라고 한 건데, 내가 괜히 후달려서 아직 못사고 있었다. 사라고 한다. 8월에 사기로 했다. 이유는? 없다.

올 8월 전에는 중요한 결정은 하나도 안하겠다는 결정을 지난 달에 했다. 8월까지는 그냥 머리 박고, 조용히 살 생각이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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