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일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연말 정도였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 그 해에 영화 <평양성>이 기록적으로 망했다. 나에게는 외형적으로 별 특별한 일이 있지는 않았는데, 그 해가 내가 책을 내지 않은 거의 유일한 해였다. 어쨌든 여러 경로로 삶의 마지막 구텅이 혹은 돌아나올 수 없는 코너에 몰린 사람들이 같이 일을 하기로 했다.

 

그 때 우리가 했던 약속은 딱 하나였다. 했던 걸 또 하지는 않는다...

 

이건 아주 불리한 조건이다. 같은 걸 또 하고 또 해야 실력이 늘 것 아닌가? 그래야 돈도 좀 벌고. 어쨌든 뭔가 새로운 걸 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칠 것 같은 똘아이들이 그렇게 동료가 되었다. 좀 있으면 10년이다.

 

아내는, 나를 '병신'이라고 불렀다. 하는 것도 없이 몰켜 다니면서 술만 마셨다. 침 좀 뱉었다는 표현이 싸움 좀 하는 건달을 의미했다. 가끔은 정말로 침만 뱉었던 건달도 있다고 한다. 진짜, 술만 마셨다. 아내는 올해 '비리비리'로 한 단계 올려주었다. 비리비리해서 뭘 못하는 거지, 아주 병신은 아니라는. 이 얘기를 듣는데, 10년 가까이 걸렸다.

 

한 걸 또 하지 않는다...

 

내가 나를 위해서 지키려고 했던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그게 바로 한 걸 또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걸 또 해야 하는데... 그렇지만 그러면 내가 너무 불쌍할 것 같다. 바로 돈 들어오고, 바로 승진하고, 에 또, 그런 그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단호하게 "싫어요"라고 했던 게, 나중에 너무 불쌍하고 비참하게 느껴질 것 같다.

 

그 때 하지 그랬어.

 

그 땐 잘 몰랐어요...

 

이렇게 대답해야 진실인 상황으로 몰리면, 내가 너무 불쌍할 것 같다. 그래서 여전히 한 걸 또 하지는 않는다는 자세를 지키려고 한다. 물론 생각만 그렇다. 지나와서 보면, 별 볼 일 없는 걸 이렇게 고치고, 저렇게 고치고, 또 크게 보면 거기서 거기인 일들을 했다. 그래서 비리비리했다.

 

한 걸 또 하지 않는다. 이건 어쩌면 나에게는 좀 쉬운 일이다. 잘 한다, 멋지게 한다, 근사하게 한다, 그럴 듯하게 한다, 이런 건 어렵다. 20대에는 나에게도 좀 재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할 줄 아는 게 너무 없다... 제빵 학교에 다닐까도 했고 와인 소몰리에 같은 것을 전문적으로 배워볼까 했더니, 담배 끊으란다... 바로 포기. 요리를 체계적으로 배울까 했더니, 이것도 담배 끊으란다. 바로 포기.

 

진짜로 나는 대충 살았다. 싱가포르의 대학에 교수로 갈 수 있었다. 어럅쇼, 가보니까 싱가포르는 도시 전체가 금연.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고 싶지는 않았다. 금연이야 할 수도 있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담배를 끊는다면, 나이 많이 먹은 어느 날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될 것 같았다.

 

별로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포기한 길들은 창피해서 일일이 말하지도 못한다. 하버드는 정말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안 갔고, 하다 못해 동경 대학 연구원은 정말로 더 소소한 이유로. 그래서 행복해졌을까? 밥은 먹고 살았다.

 

가지 않은 길을 회상하면서 사는 건 슬픈 일이기도 하고, 비참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싫은 게, 영광스러웠던 일들을 그리워하면서 사는 일이다. 그건 비참한 걸 넘어서, 병신 곱배기, 병신 삼승, 병신 사승, 그런 것 같다. 게다가 지난 일들에 뻥까지 보탠다면... 밥 숫갈 내려놓아야지, 그런 맘으로 지금도 하루하루를 산다.

 

했던 일을 다시 하지 않기, 반복하지 않기, 이런 건 제대로 되든 아니든, 설래임이 있다.

 

경제학자로서, 나는 여전히 C급이라고 생각한다. A, B, 내 앞에 나래비를 서 있다. 그래도 좋다. C급이라도, 아직도 재밌게 분석할 것들이 있고, 해보지 않은 시도들이 조금 더 남아있다. C급 경제학자가 좋은 점은, 몸이 가볍다. 사소한 이유라도 누군가 간절히 원한다면, 기꺼이 나는 분석한다. 단 한 명이라도... 그리고 어떻게든 뚫고 나갈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저자로서는, 같은 것을 반복하기 위한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아예 가질 필요가 없다. 나는 그렇게 성공적인 저자는 아니다. 영광이 있어야 뭘 반복하든지 말든지 할텐데, 그렇게 돌아가고 싶은 과거 같은 게 거의 없다. 그래도 아직 판돈 다 털려서 패 접어야 하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50대 에세이는 이런 삶의 한 흐름에 매듭을 한 번 지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된 것 같다. 위아래로도 평등하고, 주변으로도 평등하기 위해서 기를 썼던 50대가 나 말고도 또 있었을까? 하여간 나는 아무도 내 위에 두지 않으려고 하고, 아무도 내 밑에 있게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혼자 일하는 것도 아니다. 이제 10년 가까워지는 비리비리한 동료들이 있고, 매 번의 작업도 좋든 싫든, 같이 일한다. 불편하지 않을까? 여럿이 움직이면 불편하기는 하지만, 혼자 움직이면 사실 아무 것도 못한다. 어디엔가 처박히고 딱 좋다.

 

어영부영 50, 낯선 21세기라는 두 개의 제목으로 각각 다섯 개씩의 글을 썼다. 요렇게 두 뭉치가 전반부다. 내가 절치부심하면서 고민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이걸 이렇게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매 번의 글이 그러면 좋겠지만, 진짜로 내가 어영부영 사는 것처럼, 그렇게 시도하지만 결과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 쓰기 전에는 모른다. 써놓고도 잘 모를 때도 있다.

 

다른 분야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쓰는 것과 같이 뭔가를 만들 때, 제일 어려운 것은 감정이다. 출판사랑 계약을 하거나, 뭔가 투자를 받기 위해서 기획서를 쓸 때, 논리적인 것의 얼개는 어느 정도는 마무리되어 있는 상태다. 이거 말 되는데... 그 정도는 되어야 누군가의 지갑에서 돈이 나올 것 아닌가. 나는 대가가 아니니까, 사진 한 장 혹은 스팟 한 모습, 이렇게 누군가를 움직이지는 못한다. 최소한 논리적으로는 뭐가가 정리가 되어야, 나도 움직인다는 생각을 하고, 상대방도 나와 약속을 한다. 이게 되었으니까 다음 단계로 가는 건데...

 

감정은 어렵다. 매번 감정이 생기지는 않는다. 생활인들이, 당연한 것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감정을 일정 기간 동안 유지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뭔가 만드는 순간, 약간은 뽕 맞는 순간 같은 것을 일시적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게 너절한 싸구려가 아니기 위해서는, 같은 것을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것 같이, 무의식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 필요하다. 그건 생명과 같다. 이걸 버리느니, 내가 죽고 말겠다, 그 정도로 강렬하지 않으면, 무의식부터 흔들린다. 나머지는 다 장식품이 되어버린다.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50대 에세이는 절반을 지났다. 잠시 숨 고르기 중이다. 사실 시작하기 전에, 책과 장의 제목 정도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지, 어느 얘기들을 넣을 것인지는 어느 정도는 결정이 되어있다. 그리고 처음 펜을 들기 시작하면서, 뒷 쪽이 부지런히 재배치된다. 절반이 끝나면, 후반부는 배치는 물론이고 톤까지 거의 결정이 된다.

 

그렇게 해놓고, 내가 내 생각을 이기기 위한 진짜 작업이 시작된다. 원래는 이걸 쓰기로 했는데, 그걸 '쓰레기'로 느끼게 만들 정도로 더 기가 막힌 것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글이다. 원래 쓰기로 한 것을 쓰기로 한 그 자리에 맞춰서 쓰는 것, 그건 기계적인 일이다. 펜을 습관적으로 놀리는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내가 설정한 것을 내가 이겨내야, 그게 글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만 하고... 맨 번 나는 나한테 지고, 하나마나한 결과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내가 내 삶을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그냥 수없이 많은 저자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도 한 번쯤은, 내가 나를 이기고 싶다. 열 개의 글을 더 쓰려고 한다. 아직 열 번의 기회는 남았다. 아직 나는 시간이 많고, 숨도 길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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