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송은 가능하면 안 할려고 한다. 별로 잘 하는 것 같지도 않고, 또 별로 즐기는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둘째 아픈 다음부터는 시간 약속도 해봐야 잘 지키기도 어렵다.


그래도 다큐 같은 거는 가능하면 도울 수 있는 한 도울려고 한다. 동업자에 대한 최소한의 의리라고나 할까? 아니면 내가 할 수 있는 정말 최소치의 기여라고 할지도.




지난 몇 년 동안, 공중파를 포함해서 교양 방송이나 경제 방송의 상황은 정말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해졌다. 이 이상 나빠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게 꼭 방송장악, 그런 정치적 이유 때문만도 아니다. 제작비 구조 자체가 진짜 안 좋다.


다큐 만들 때 며칠씩 같이 움직이기도 하는데, 출연료가 없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럼 돈도 안 받고 뭐하러 가? 내 맘이다. 돈 때문에 움직이는 건 더 기분 나쁘다. 의미가 있으면 어떻게든 도와주고, 아니면 그만이다.


최근에 kbs에서 좀 큰 방송을 했고, cbs tv랑 하나 했다. 그리고 요즘 sbs 스페셜 팀하고, 2부작 다큐하는 중이다.


오늘 일단은 마지막 촬영하는 날이다. 세 군데 촬영을 했다. 헥헥.



2.


이래저래, 작년에 하던 일들을 많이 정리했다. 칼럼도 다 없앴다. 없어진 것도 있고.


하다 보니까, 또 다시 조금씩 얹히기 시작한다.


한겨레21에 3주 간격으로 육아 칼럼을 쓴다. 주간지 연재는 예전 시사인에 두 면씩, 매주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때야 내가 힘이 좋던 시절이고.


원래는 흐름대로 하면, 계란 파동 다룰 타임이다.


쓸 얘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대한 얘기가 좀 있고, defra 얘기가 있다. 그리고 최근에, 책에 쓰기 위해서 defra 조사해놓은 것도 좀 있다.


근본적으로는 주간지의 스케쥴 한계가 있다. 지면에 나가는 것은 다음 주,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기사를 보게 되는 것은 또 그 다음 주. 2주 동안 이슈가 버틸 수 있어야 하고, 그래도 여전히 힘이 있어야 한다.


계란파동은 매일 뉴스가 나온다. 지금은 딱 정타 같아도, 실제 현실에서는 슬로우 커브에 맥 없는 포수 파울플라이 같은 볼이 될 위험이 높다. 그냥 맥락만 안 맞는 게 아니라, 진짜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이럴 위험도.


그래서 급선회...



우리 집 아이들은 가끔 잘 때 보면 손 잡고 잘 때가 있다. 세게 잡을 때도 있고, 살살 잡을 때도 있고.


요 얘기를 쓰기로 했다. 왜 이런 걸 쓰는지 전달하기는 쉽지 않지만, 영 의미없는 포수 파울 플라이보다는 나을 수도 있다.


아니, 지금이라도 고민해서 더 쌈박한 걸?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면, 나는 과로로 바로 죽는다.


3.

이렇게 해야지 생각하고 돌아서니, 네이버에서 연애 칼럼 마감 날짜를 알려온다. 벌써?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미리 좀 원고를 모아놓고 오픈 하려는 거?


연애 칼럼은 2주 간격이다. 쉽게 생각하고 쓴다고 했는데, 주기가 너무 빠르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얘기까지 다룰 수 있을지, 아직 가늠이 안된다. 자리 잡을 때까지는 부드럽고 유순하고, 별 탈 없는... 하나마나한 글 쓰는 걸 제일 싫어하는데, 그래도 한동안은 하나마나한 얘기를.


돌겠다.


4.

방송은 안 한다고 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아침에 애들 어린이집 데려다 주고 오는 시간 맞춰서 정봉주랑 sbs 라디오 하는 게 있다.


헉헉. 아침에 아무 것도 안 하는데, 전례를 깨고. 예전 정봉주 감옥 갔을 때 면회 간 적이 있다. 하여간 정봉주와도 약간 복잡한 사연과 안스러움이 있다. 그 때의 안스러움 때문에, 덜컥 해준다고 했다가... 한 번 가는 정도였는데, 당분간 계속.


생방송이라서 쉬운 방송은 아니다. 게다가 아직은 팀웍 등 여러가지로 애로사항이 좀 있어서.


5.

요렇게 다 하면 한 달에 50만원 정도 받는 것 같다. 차비도 안 나온다.


그냥 백만원 다시 주고, 안 한다고 하고 싶은 게 속 마음이지만, 약속한 거라서 꾸역꾸역 한다. 혹시라도 지나다니면서 밥이라도 한 그릇 사먹고 나면 밑지는 건데. 그래도 밥 때 걸리면 꼬박꼬박 밥 사 먹는다, 그것도 맛있는 걸로.


그럼 왜 해?


낮에는 애들 어린이집 가 있으니까, 달리 할 일이 없으니까. 그리고 또 나도 별 인기도 없고.


6.

그럼 바뻐?


몇 년 전부터, 바쁘다고 말 하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다. 나는 바쁘지 않다, 게으를 뿐이지.


절대로 바쁘지 않다, 제 시간에 일을 끝내지 못하는, 무능함이 문제일 뿐이지.


죽을 때까지, 정말로 하고 싶지 않은 말이, 바쁘다는 말이다.


신문 등 외부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게 10년이 넘는다. 아마 7~8년 전인가? 한겨레에서 억지로라도 외부 기고 원고료를 올려야 한다는 흐름이 있었던 적이 있다. 그 때 딱 한 번 원고료가 조금 오른 기억이 있다.


최근에 글 쓰면서 원고료 보니까, 안 오른 게 아니라, 내려갔다. 이유야 100개쯤 있을텐데, 원고료 책정한 거 보면, 글 쓰고 싶은 마음이 싹 없어진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돈을 바라보는 시건 때문에 그렇다.


너 말고 여기에 글 쓰고 싶은 사람들 많아...


카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그렇다고 이러면 안된다고 나서서 뭐라고 할 정도로 내가 권위가 있거나, 인기가 있는 건 아니고, 또 그럴 실력도 안되니까, 그냥 꾹 참. 나는 전혀 바쁘지 않으니까.)


7.

바쁘다고 하면 지는 거다, 진짜로 그렇다. 내가 못나서 일을 못하거나, 아는 게 없어서 못하는 거지, 바빠서 못하는 일이 벌어지면 안된다.


바쁘지 않다.


(그렇지만 영화 <불한당> 보고 금요일까지 분석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보지도 않은 영화인데, 이건 또 언제 보고, 언제 또 분석하나. 그래도 나는 바쁘지 않다.)

 

바쁘다는 얘기는, 정말로 죽을 때까지 안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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