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책 원고를 끝내고 나서

 

‘FTA 한 스푼을 끝내고 나서 다시는 이렇게 사회적인 일에 급작스럽게 책을 쓰는 일은 안하겠다고 굳게 결심을 했었다. 이게 너무 힘든 일이다. 짧은 시간에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어렵지만, 온 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전선과 같은 곳이라서, 그 긴장감을 견뎌내는 것은 더 힘들다. 한 번 그렇게 끝내고 나면, 그야말로 파김치가 된다. 결혼 초기에는 그래도 나도 어느 정도는 건강이 있어서 버텨내고는 했는데, 이제 나도 40대 후반을 향해 가는 나이, 아기 키우면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세월호 사건 초기에, 이걸 한 번 정리해달라는 요청이 그렇게 많았었다. 그래도 못한다고, 이해해달라고 했었다.

 

그 긴장감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내 일정도 있고, 10월이면 둘째 아이도 태어난다. 그냥 안 하고 싶었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그래도 결국 하게 되었다. 너무 이상한 일이 많았다. 진짜 이 사건은 이상한 사건이다.

 

하여간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바로 시작한 것도 아니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 조금씩 자료를 모으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 때까지만 좀 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내려 놓을 생각이었다.

 

결정적으로 이걸 꼭 해야겠다고 생각을 먹고, 속도를 부쩍  높인 것은, 대통령의 사과를 보고 나서이다. 원래도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이상한지는 몰랐다. 황당

 

그 때가 내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하여간 그 사건을 계기로 나도 속도를 냈고, 본문은 이제 1교가 끝났고, 나도 남겨놓았던 에필로그와 서문을 오늘 마쳤다.

 

책 제목은 원래 부제로 달아놓았던 내릴 수 없는 배가 되었다. 처음에 생각한 제목은 사고가 난 4 16일이라는 의미에서 4.16으로 일단 달아놓고 시작했었다. 공교롭게도 책의 도입부로 사용한 까뮈의 페스트에서 쥐들의 시체가 나타나면서 사람들이 페스트가 발병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그날도 4 16일이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사과에서 이 날을 기념하겠다는 얘기를 하면서, 제목에서 자동 탈락.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본 한국은, 진짜로 이상한 곳이었다. 그거야 두 말하면 잔소리겠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분석을 해보니까 정말로 이상한 곳이다.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나니, 배 사건은 100% 또 발생한다. 안 나면 그게 이상한 것이고, 확률의 법칙을 넘어서는 일이다.

 

우리 편은 좀 나은가?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 황당한 건 마찬가지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93년 서해페리호 사건이 나고 4년 후에 국가부도 직전까지 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세월호 이후에는? 대통령 하시는 양상으로 봐서 4년보다는 줄어들 것 같다. 기가 막힐 정도로 서해페리호 사건과 세월호의 전개과정은 복사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인데, 그 때보다 뭐든지 조금 더 나쁘다고 보면 딱 세월호 사건이 된다. IMF에 대해서 나도 참 많은 언급을 하고 분석도 많이 했었는데, 서해페리호 사건과 연관지어서 생각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여간 뭔가 덥기 위해서 YS가 이것저것 삽질하던 끝에 국가부도 사태가 있었다. 아마 이번에도 4년 혹은 그보다 약간 더 빠른 시기에 국가부도급 위기를 맞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검토하다 보니까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형 사고가 벌어져서 그것이 계기가 되어 시스템이 좋아진 경우가 별로 없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아주 심하고.

 

사건이 벌어지면 수습한다고 하면서 원래 그냥 자기들 하고 싶은 거 더 쎄게 하는 거, 그게 일반적인 패턴이다. 과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은데, 실제로 그렇게 가는 게 일반적 패턴이다. 나도 놀랐다.

 

최경환이 세월호 거론하면서 LTV 풀겠다고 하는데…. MB도 그건 안 풀었다.

 

솔로 경제학까지, 큰 책 두 권을 연달아 작업을 하고 났더니 내 정신 세계가 완전 망신창이 되었다. 아무 것도 안하고 싶어요, 이 말이 절로 나온다.

 

특히 지금처럼 사회적 문제에 단기적으로 대응하는 책은, 정말 다시는 안 할 생각이다. 내가 무슨 조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거들어줄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맨몸으로 다 때우는데, 이제는 정말이지 체력이 안 된다.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본격적으로 책 작업을 시작한 게 2005년부터니까, 이래저래 올해가 10년째 이러고 있는 셈이다. 10년을 이러고 살았으니, 진짜 사회적 논쟁의 최전선에 10년 동안 서 있었던 거다. 이제는 슬슬 그만할 때도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올 겨울에 가장 먼저 나왔던, 그래서 일종의 데뷔작이 되었던 아픈 아이들의 세대개정판이 나온다. 벌써 한 바퀴를 돌아서, 이미 절판된 책을 다시 내고 싶어하는 출판사가 생겨났다. 그렇다고 모든 절판된 모든 책을 다 개정판을 낼 건 아니고, 이번 한 번 정도 예외적으로

 

하여간 세월호 얘기가 드디어 내 손을 떠나간다. 그 동안 참 많이 울었다. 울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안 울려고 하는데, 이거야 원

 

당장 좀 쉬고 싶은데, 일정상 작년에 방송했던 인터뷰들 정리하는 작업이 하나 더 남아있다. 이것까지는 마무리 지어야 좀 쉴 수 있을 것 같다. 연이나그러고 나면 둘짜 아기 태어나서, 다시 꽝.

 

교육에 대한 것도 좀 더 써보고 싶고, 아직 해보고 싶은 연구들이 남아있기는 한데그럴 여력이 될지는 정말로 모르겠다.

 

교육부 장관 하겠다는 어떤 할아버지는 평생 책 한 권도 안 썼다는데, 매년 2~3권씩 쓰는 나는 도대체 뭐 하느라고 이렇게 바보 같이 살고 있느냐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별로 효율적이지도 않고, 힘만 많이 빠지고, 불필요하게 긴장감을 높여야 하는 삶이다. 이게 좋은 건 아니다. 나도 안다.

 

그나마, 내고자 계획한 책을 낼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하여간 언제부턴가 책이 손에서 떠나가는 순간이면 왠지 모를 허무함 같은 게 생겼다. 처음에 좀 체계적으로 접근할 때에는 책을 떠나 보내고 나면 외국에 갔었다. 그러면 지나간 책을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는 좋은 장점이 있다. 그것도 좀 열심히 살 때 얘기고, 요즘은 귀찮아서 그런 것도 잘 못한다.

 

어느덧 나도 아기 키우는 부모가 되었다. 세월호 사건은, 정말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로 책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어딘가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요즘은 조금씩 해보기 시작한다.

 

세월호 사건이라는 게, 근본적으로 뭔가 성취감이나 해방감이 생기는 구조가 아니다. 모르면 모르는대로 찝찝하고, 알면 아는 대로 더 슬프고. 글을 마치고 나서 잠깐의 해방감을 느끼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게 기본 구조이다.

 

하여간 이제 내 손을 떠나간다. 허망에서 허무로 떠나는 여행이라고나 할까. 끝내고 보니 안 썼으면 후회할 것 같은데, 쓰고 나서도 후회하는 그런 구조 안에 들어와 있다. 이 고통스러운 뫼비우스, 이 사건이 갖는 본질적 특징인 것 같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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