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살 살아가기

 

20대 때에는 뭘 하는 줄도 모르고 그냥 방황하느라고 시간이 지나갔던 것 같다. 늘 불만이 많았는데, 그 불만을 해결하는 방법을 몰랐다. 30대에는 늘 불안감을 안고 살았던 것 같다. 뭘 해도 불안했고, 만족하는 걸 잘 몰랐다.

 

이제 40대 중반, 늙은 아빠로 아기를 낳아 키우면서 모든 일이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기를 보면서 노트북으로 글을 써야지, 그런 야무진 생각을 했었다. 택도 없는 일이다. 아기는 TV는 물론이고, 핸펀, 노트북, 이런 거 너무 좋아한다. 사실 핸펀이라는 게 어른이 봐도 너무 재미있는 물건 아니냐? 아기가 기어다닐 수 있게 되자마자, 이런 모든 문명의 이기와는 당분간 안녕!

 

그럼 책은 읽을 수 있나? 그것도 힘들다. 자기랑 놓아주지 않고 책을 붙잡고 읽을 수 있게 해주지 않는다.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동화책이다. 그것도 한 두번이지, 같은 책을 수십번씩 읽어주고 있으면 나중에 지겨워서 진물이 난다. 덕분에 국내 동화책과 번역된 동화책의 미묘한 차이와 동화 시장의 생산 구조와 유통 구조 같은 것은 좀 이해하게 되었다.

 

한전 사보를 아기에게 재밌게 읽어주었다. 중간중간에 사진과 그림이 많아서 얘기를 만들어주면서 읽어주면 아기가 좋아한다. 내가 태어나서 한전 사보를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도 여러 번에 걸쳐서 본 적은 없다. 예전에 박수근이 표지를 그린 한전 사보들을 미술관에서 아주 감명깊게 본 이후로, 정말이지 한전 사보를 이렇게 공들여서 본 적은 없었다.

 

처음에는 뭔가 정해놓은 일정이 자꾸 깨어지면서 짜증이 전혀 안 난 것은 아니다. 아예 작업실을 구해서 집밖으로 나가서 작업하는 것도 생각해봤다. 소설가 김탁환의 목동 작업실이 천에 100만원이라는 얘기가 귀에 쏙쏙 들어온 것은, 이런 식으로는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가면 아기는 누가 봐 줘? 게다가 10월이면 둘째 아이가 태어난다. 안 그래도 대충 살던 인생에, 그래도 유일하게 의미 있는 일 아닌가 싶다.

 

아기가 만 두 살에 가까워지면서 내 삶도 많이 바뀌었다. 살살 살아가기, 좋든 싫든 이 방식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아직도 완벽하게 익숙해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대충 던져놓고, 에라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점점 익숙해져 간다.

 

아내는 출근하고 나는 아기보고나쁘지는 않은 삶이다. 그러나 가끔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길 때, 풀 수 없는 외통수에 처박힌 것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점점 더 익숙해져가기는 한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서운 자연의 법칙이다. 그렇게 새로운 조건에 적응하게 된다.

 

이것저것 뭔가 하자고 내 주변에서 사람들이 얘기하는 게 줄어들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애기 아빠 택두 없슈, 그렇게 어렵다고 말하는 것에 익숙해질 뿐이다. 어딘가 근무하면서 일하는 제안이 몇 번 있었고, 정치와 관련된 얘기들도 일부 있기는 하지만, 아기 아빠가 애 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 대신 빵을 만들기 위해서 조금씩 뒤져보면서 빵 만드는 준비를 하게 된다. 2~3일에 한 번씩 빵을 사오는데, 이젠 그 돈도 아깝고, 무엇보다도 믿을만한 빵이 그렇게 많지가 않다.

 

살살 살기, 아직까지도 완전히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해보고 싶은 게 더 많이 생각나기는 한다. 새로운 영화도 더 기획해보고 싶고, 방송 포맷도 실험해보고 싶기도 하고그러나 너무 많은 일을 할 수는 없다.

 

이 와중에 영화 기획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몇 년째 손발을 맞추고 같이 일하던 파트너 같은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한 것은 아니고 처음에 제안만 해놓고 손을 놓은 작업이 있었다. 다행히 몇 주 전에 투자도 결정되고, 주연 배우도 어느 정도 캐스팅이 끝나는 모양이다. 덕분에 사무실 돌아갈 형편은 된 것 같다.

 

준비하다가 만 영화 몇 편에 대한 기획은 계속 진행 중이다. 그래도 정말로 몸이 움직여야 하는 순간도 있다. 몇 주 후에 사람들 모아서 23일 정도로 합숙 기획회의를 하려고 한다. 얘기의 기본 틀이라도 그렇게 정리가 되면 혼자 앉아서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야무진 생각도.

 

아기를 낳으면 더 많은 욕심을 내면서 더 열심히 살게 된다고 하던데, 내 경우에는 정말 살살 살아가게 된다. 아마도 많은 여성들이 육아와 함께 이런 삶을 선택했을 것 같다.

 

혼자서 모든 일을 마무리 지을 수가 없기 때문에 동료들의 도움이 더 많이 필요해졌다. 내가 움직이기 위해서 같이 손을 맞추는 동료들이 몇 명이나 있나 몇 달 전에 세어본 적이 있다. 간단한 셈법으로도 열 명은 넘어가는 것 같다. 우라질! 나도 벌려놓은 일이 많기도 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거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나도 모르겠다. 아마 이렇게 점점 하는 일들을 줄여나가다가 은퇴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퇴물 소리 듣는 것 보다는 적당한 때에 내려놓는 편을 선택할 것 같다.

 

하는 일이 줄면 집착도 줄어들고 고통도 줄어든다.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을 줄이지 못하고 잔뜩 껴안고만 있던 나에게, 아들이 준 것은 강제로 많은 것을 내려놓게 한 진공상태이다. 그게 상당한 평온을 준다. 내려놓는 것, 어지간한 사람은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덕목이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알아서 내려놓고, 뭐 그런 정도로 심성이 고운 사람은 아니었다.

 

살살 살아가기, 삶을 대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겠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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