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이재영, 1주기

 

 

 

 

오늘이 이재영 1주기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내가 이재영과 보냈던 시간을 생각하면 밤을 새워 술을 먹고, 새벽까지 그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도 모자라지만, 12시가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요즘 아기 보는 중이다.

 

이재영과 만난 게 2003년이었으니까, 이래저래 딱 10년이 된 셈이다. 민주노동당을 만든 바로 그 이재영, 사실 나는 한 것도 별로 없이 그와 과도하게 우정을 나눈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간 지난 10년간, 정말로 신나게 놀았다.

 

개인의 사적인 삶도 결의하느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재영과 나는 많은 것을 술자리에서 결의했고, 결의한대로 살았다.

 

우리가 이렇게 살 게 아니라,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자

 

, 진짜로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아기는, 이재영이 두 명, 나는 한 명, 그렇게 낳았다.

 

살다 보니, 이재영과는 사는 동네도 한 동네였다. 문정동 살던 시절, 우리가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시내로 가자! 여의도에서도 멀고, 다 먼데서 이럴 필요가 있냐

 

이사도 같이 했다.

 

그렇게 우리는 송파구를 떠나서 지금 사는 동네로 같이 이사도 했다.

 

개인의 사적인 삶도 다 같이 했다, 이재영과 나는.

 

나는 여전히 이재영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이 있었지만, 이재영은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었다.

 

그런 친구가 죽었다….

 

이재영이 남겨놓고 간 두 명의 아기들과 그의 미망인에 대해서는, 나는 걱정을 안 했다. 정말로 어려워지면, 내가 챙기면 되니까.

 

친 피붙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식구와 같은 존재인데, 뭐가 문제인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이재영의 1주기 행사

 

참 좋았다.

 

노회찬, 조승수 등등, 이재영 살았을 때, 많은 것들을 같이 한 아저씨들, 간만에 봐서 좋았다. 이재영이 있었으면 더 재밌고 즐거웠겠지만, 그가 없으니 새벽이 되기 전에 집에 올 수 있게 되었다.

 

하여간 이재영이 없어진 다음에 생긴 제일 큰 변화는, 내가 무엇을 하고 뭘 하고 싶어하는지, 그 전체를 아는 친구가 없어졌다는 점이다.

 

나도 많은 친구들이 있고 많은 지인들이 있지만

 

그들은 나의 일부만 안다. 나의 전체를 아는 사람은 이재영과 아내 밖에 없다.

 

아내는 늘 같이 있고, 이재영도늘 같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진짜로 고민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상의할 사람이 없어졌다.

 

이재영이 있을 땐 몰랐는데, 그가 없어지니내가 그에게 얼마나 의존하면서 살아왔던지.

 

하여간 농담같이 살면서 그와 했던 많은 얘기들이, 이제 다시 하나하나 되살아나는 밤이다.

 

이젠, 이재영이 없다.

 

나 혼자, 판단해야 한다.

 

그랬던 적이 없어서, 더욱 그가 보고 싶다.

 

끔찍하게도 보고싶다.

 

 

(길거리에서 잠깐, 이재영 추모를 위한 연설회가 열렸다. 노회찬 대표가 이재영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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