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인과 홍기빈을 생각하며

 

은퇴를 몇 년째 고민하다. 이제야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자연인으로서의 내 삶이 끝나지는 않겠지만, 경제학자로서 맨 앞에 서 있는 순간은 이제 내려놓으려고 한다.

보통은 한사경이라고 부르는, 1988, 한참 한국 사회가 격변기에 만들어진 학회가 하나 있다. 좌파 혹은 사민주의 학자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나의 기쁨과 즐거움을 모두 같이 한 곳이다. 그곳에서 대학 시절 나는 학자가 되고 싶었고, 여전히 기회만 되면 가는 곳이 한사경 학회이다.

 

한 가지 아픔은, 나와 동기인 최정규 교수, 우리가 여전히 이 학회의 막내라는 점이다. 후배가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학회가 그들의 삶에 거의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에, 취직할 때가 되면 학회를 떠난다. 그래서 여전히 나와 정규가 막내뻘이다. 우리가 86학번이다. 2013, 세상을 얘기하기에는 아주 곤란한 구조이다. 그래도 남 탓은 안한다. 난 내가 좌파인 것에 아무런 불만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세 끼 밥 먹고 사는 데 내가 어려움이 없다는 것, 이 이상으로 고마운 일은 없다.

 

그렇지만 평생을 이렇게 살기는 어렵다.

 

매일 싸우면서 살기는 어렵다. 그리고 누군가를 증오하면서, 그렇게만 살기도 어렵다.

 

그리하여 적당한 순간, 나는 내가 하던 역할과 기능을 누군가에 넘겨주고, 그렇게 은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은퇴라는 말, 이것도 웃기는 얘기다. 가진 게 별로 없는 데, 뭘 넘겨주겠나.그냥 내가 믿을 수 있다는 간략한 코멘트, 그게 다 아니겠는가?

 

하여간 경제학자로서 내가 생각했던 세계관을 나름대로 같이 공유했던 것은 선대인과 홍기빈이다.

 

기빈이나와는 동갑이다. 그리고 그는 노래를 아주 잘 부른다. 재능이 정말 많은 친구이다.

 

학위는 늦게 받았지만, 경제학에서 인류학 사이에서 많은 것을 같이 고민했던 친구가 기빈이다.

 

그리고 선대인

 

경제학 전공은 아니지만, 주택 가격의 흐름을 비롯해서, 많은 경제학자들이 입다물고 있던 주제에 대해서 거칠 것 없이 자기 얘기를 했던 친구이다.

 

누군가 관심을 가졌던, 관심을 갖지 않았던, 하여간 내가 한국 사회에서 했던 기능들이 있다.

 

이젠 그걸 내려놓고 그냥 자연인으로, 그냥 사회인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기능적으로 가능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대인이와 기빈이를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다음 시대를 기원하고 싶다.

 

선배로서 그리고 친구로서, 내가 가진 모든 애정을 그들에게 남겨주고 싶다.

 

진정으로, 그들이 있어 행복하다는 게, 나의 본심이다.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