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afe.daum.net/sasakyu 

 

 

 

 

장미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여전히 비 예보가 있는 날, 양평에 있는 선대인집을 찾았다. 방송 20년 동안 한 번도 촬영 중 비가 내린 적이 없다는 김유식 부장의 신공이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지난 번 황토길편에서도 촬영 끝나고 장비 철수 막 끝나자마자 장대 비가 내린 적이 있다.

 

꿀벌이 마침 눈에 띄었다. 망원이나 접사렌즈 가지고 있지 않을 때에만 꼭 꿀벌이 눈에 띈다.

 

 

 

 

 

 

이게 백합인가? 하여간 만개한 백합 너머로 선대인이 사는 집이 보인다. 꽃이 워낙 화려해서인지, 그냥 번들렌즈로 찍었는데도 화사하게 나온다.

 

요즘 우리 사는 게 너무 팍팍하다. 그야말로 숨쉴 공간이 하나도 없지만, 그래서인지 더더욱 나는 꽃이나 풀벌레 같은 것들에 눈을 많이 주려고 한다. 너무 어렵고 힘든 것들만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리도 사람인지라, 너무너무 지치게 된다. 삶이라는 게 늘 그런 팍팍한 공간 옆에서 아름다운 것들이 깃드는 것 아닌가 싶다.

 

 

 

 

 

예전 내가 살던 집에도 장독대가 있었는데, 결국 한 번도 못썼다. 지금 집에는 아예 장독대가 없다. 선대인도 정신 없는 건 마찬가지인 걸로 알고 있는데, .

 

선대인편을 촬영할 수 있게 되는 데에도 우여곡절이 좀 있었다. '우석훈의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는 방송 자체가 정말 가지가지의 구연과 사연 끝에 생겨난 것이다. 답답한 사연도 있고, 가슴 아픈 얘기도 있고, 또 약간은 신나는 구절도 있고.

 

촬영 시작하기 전에 기획 기간이 딱 2주 밖에 없었다. 정말로 2주 밖에 기획을 못하고, 그 동안에 촬영진과 작가진 등 팀 꾸리고, 코너 구성은 물론이고 전체적인 틀도 제대로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조건 카메라부터 들고 갔던 것, 그렇게 첫 촬영을 했던 게 독다방편이었다. 이번 주 목요일에 나간 독다방편이 우리의 첫 작업이었다.

 

생각보다 금방 촬영 구조가 안정을 찾게 되었고, 저예산 구조에도 불구하고, 나름 팀웍이 조금씩 생겨나면서, 선대인편 촬영을 할 수 있게 된... 지난 한 달을 돌아보면 정말로 기적 같은 일이다.

 

 

 

 

 

선대인 작업실. 우와 듀얼 모니터, 싶었는데 정말로 컴이 두 대다.

 

하여간 수많은 책들과 보고서들이 여기에서 만들어진다. 문정동 살 때, 여름이면 정말 선풍기 하나 놓고 땀으로 범벅이 되면서 글 쓰던 시절이 생각난다.

 

 

 

 

 

우리가 촬영 때 쓰는 카메라는 다섯 대이다. 세 대가 메인으로 자리를 잡고, 광각 촬영이 가능한 고프로 한 대, 그리고 이번부터 캐논 오두막 등으로 불리는 오디가 한 대. 오디 한 대가 들어온 건, 피디 한 분이 자원(?)으로 지원을 해주셔서. 좀 더 많이 쓰고 싶은데, 아직 그럴 형편은 아니다.

 

야외에서 찍을까 싶었는데, 비가 언제 올지도 모르고, 선대인경제연구소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할 사람들도 좀 있을 듯 싶어서, 선대인 경제연구소 안에서...

 

 

 

 

선대인편 아이템 선정이 어려웠던 것은, 경제 휴머니즘이라는 주제 앞에서, 경제 현장을 가는 게 맞느냐, 경제 현안에 대한 얘기를 하느냐, 이런 방향 설정에서 아직은 좀 합의가 부족해서. 거기에다가, 괜히 현안 얘기 한다고 경제 이론만 노털스럽게 얘기해서 누가 보겠느냐, 그런 경영진들의 우려도 있었고.

 

다행히 앞의 두 번의 방송이 무사히 나오면서, 좀 더 어려운 얘기도 소화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번 주말에는 앉아서, 내가 초청할 수 있는 분들 리스트를 한 번 만들어보려고 한다.

 

심상정, 노회찬, 내가 움직이면 당연히 같이 하는 사람들도 모시고 싶고, 청년 유니온이나 알바 연대, 좀 더 현장에서 움직이는 친구들 얘기도 하고 싶고.

 

그러나 포맷 등 방송이 좀 안정되어야 이런 복잡한 얘기들에 대한 의사결정을 받아낼 수 있다.

 

나꼽살 때는, 멤버들끼리만 합의되면, 혹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합의하면 바로 아이템 선정하고 섭외들어가기 시작했는데... 방송국에서는 의사결정이 그것보다는 복잡하다.

 

시청률이 어느 정도 확보되면 제작진이 좀 더 자율성을 가질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걱정 반 우려 반, 초조하게 지켜보는 눈들이, 좀 있다.

 

 

 

 

 

전체적으로 선대인과 나눈 얘기는 나꼽살 때 부동산에 관한 기저에 해당하는 얘기들이었는데, 그걸 2013년 여름 버전으로 상황을 업데이트하고, 내가 최근에 솔로에 대해서 한 연구들을 좀 추가해서.

 

나야 선대인에게 지겹도록 듣던 얘기이고, 이 얘기만 가지고 1년 넘게 방송을 했던 거지만, 막상 카메라 앞에서 얘기를 하려니 새롭기도 하다.

 

얘기는 재밌었고, 이런 얘기를 한 번도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충격적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충격적으로 들었다.

 

마침 구경차 찾아온 에디터는 이 얘기만 가지고 대담 형식으로 책을 내보면 어떻겠냐고... 아직은 박근혜 경제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여러 가지가 불투명해서, 조금 더 추이를 봐야 한다고 답을 했다.

 

이번 촬영분은 두 편으로 나누어서 - 정말 오후 내내, 해질무렵까지 찍고 또 찍고 - 8월 첫 주 한 주일 동안 나간다. 그 주는 선대인편으로 sbs cnbc 채널을 덮게 된다.

 

정말로 만들고 싶은 것은, tv판 나꼽살...

 

다행히 '사람이 사는 경제'가 반응이 좋아서, 특별편성 형식으로 시험판 방송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들었다.

 

나꼽살 막방하고, 사람들이 많이 울었었다.

 

그 때 어떤 식으로든, 공중파 내에서 tv 버전 나꼽살을 만들어보겠다고, 나는 이를 악물었었다. 그리고 7개월, 그 동안 3부리그, 방송 생태계로 치면 정말 3부리그에 해당하는 500번대 채널에서 기고 또 기었다.

 

어쨌든 인간 선대인의 고뇌와 행복을 주제로, 그가 수 년 동안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그대로 카메라 다섯 대에 담아서, 드디어 tv에서 방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눈 내리는 겨울 밤, 현관 문 앞에서 꼬그리고 앉아서 혼자 훌쩍거리고 울던 그 밤이 생각난다.

 

경제 휴머니즘, 그걸 내가 방송으로 만들어보겠다고 생각한지도 벌써 4년은 되는 듯 싶다.

 

재밌는 방송을 만들 자신은 없지만, 한 번도 없던 방송은 만들 수 있을 듯 싶다.

 

간만에 선대인과 긴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