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와 유전학

 

아기를 옆에 놓고 노트북으로 글을 쓴다는 생각은, 뭐 멋지기는 했는데, 불가능했다. 아기는 은색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노트북으로 명렬하게 달려왔고, 노트북에 마우스 대신 달린 터치 패드에 손가락을 바로 올려놓았다. 뭐 하는 건지는 몰라도, 어떻게 노는지는 바로 알아차렸다. 하긴, 컴 옆에서 같이 놀자고 자판 위로 올라서는 건 야옹구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래서 아기와 함께 있으면서 할 수 있는 게 독서 외에는 별 게 없을 듯싶다. 포기했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기는 하지만, 오랫동안 계통 없이 읽었다.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시간 보내는 방식으로 읽었다. 아무 것도 안 읽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뭐 대단한 것을 책에서 기대하는 게 없던 몇 년 간이라서, 혹시라도 뭐라도 건지면 다행이고, 아니면 말고그렇게라도 읽는 게 낫기는 하지만, 진짜 성실한 독서는 아니었다. 내가 공부하던 시절에, 지금처럼 책을 읽지는 않았었다.

 

좀 고민을 하다가, 사르트르를 다시 읽기로 마음을 먹었다. , 그렇다고 새삼스래 불어 원전을 다시 구해서 예전처럼 정색을 하고 책을 읽기는 이제 눈이 침침해서 어렵고, 그냥 한국에 나온 책들 중심으로 볼 생각이다. ‘존재와 무같은 것은 예전에 읽었지만, 워낙 건성건성 읽어서 별로 기억나는 것도 없고. 차분하게 다시 보면 이제는 재밌을 것 같다.

 

사르트르가, 나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이유 없이 좋았다. 결국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된 선택의 배경에는 사르트르가 전혀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그렇게 동경했던 것 치고는 죽어라고 사르트르를 읽지는 않았다. 프로이드는 아주 열심히 읽었다. 니체는 전작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나름 재밌게 읽었다.

 

실존이라는 용어를 아직도 쓰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Etre etant 같은 개념을 비교하고,  neant은 뭐냐 혹은 neant absoulu는 뭘까, 헤겔에서 아도르노까지, 아주 재밌게 읽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거에 비하면, 정색을 하고 사르트르를 읽지는 않았다는 것을 40대 중반을 넘기면서 문득 느끼게 되었다.

 

철학 사조라는 게, 결국은 돌고 돌까? 그건 잘 모르겠다. 내가 한참 공부를 할 때, 사르트르는 벌써 한 물 갔고, 알뛰세도 한 물 가던 시절이었다. DEA라고 부르는, 우리 말로는 전기 박사라고 번역되는 그런 과정의 졸업 논문에서 알뛰세를 별 큰 생각 없이 한 줄 인용했다가, 논문 심사 때 아주 애먹은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내가 그렇게 크게 잘못 쓴 것 같지는 않지만, 나는 10년 전 유행을 맥락 없이 꺼낸 격이 되었다.

 

그래도 생각해보니, 실존이라는 용어를 나는 지금까지 좋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유는, 그야말로 없다.

 

, 얄팍하게 다음 소설 작업에서 실존이라는 용어를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쓸 생각이 있고, 겸사겸사 다시 한 번 읽어두자, 그런 생각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런 생각을 내가 지금 다시 하게 된 게, 결국은 사르트르 영향 아니겠는가? 까뮈는,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와 함께 또 한 가지 생각을 한 게, 대학에서 청강 형식으로 다시 수업을 듣기로 한 것이다. 이번 학기부터 될지, 다음 학기부터 될지, 유전학 수업을 들으려고 한다. 나에게 사르트르나, 최근의 유전학 이론이나, 사실 마찬가지 의미를 갖는다. 어차피 내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알려고 하는 것이다. , 특별히 나에게 당장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기 돌보면서 해볼 수 있는 작은 휴식? 아니면 일탈?

 

어쨌든 그냥 수업을 듣자고 하기는 좀 어려운 거라서, 다음 학기에는 대학원 수업을 하나 해주기로 했고, 이번 학기에는 학부생 특강 같은 걸 좀 하기로 했다. 당분간은 생물학과 근처에서 논다. 최고로 좋은 건, 이대 어린이집에 아기를 보낼 수 있게 되는 것. 어차피 한 살 이전에는 불가능하고.

 

어린이집에 아기 맡기고, 도서관에도 좀 가고, 청강도 좀 하고, 그럴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쮜리히 연방공과 대학에 갔을 때, 제일 놀랐던 게 학교 초입에 있는, 아주 정갈하게 생긴 작은 건물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교직원이나 학생들이 학교에 들어서면서 아기를 맡길 수 있게 되어있던 것. 통유리로 된 건물이었는데, 밖에서 봐도 정말 잘 만들어졌었다. 내가 보육에 대해서 처음 진지하게 고민했던 게 바로 그 순간이었다. 뭐야 이거!

 

요즘 같아서는 하루에 한 시간 컴을 만지기도 어렵다. 게다가 워낙 힘이 좋은 남자아이랑 하루종일 버티다 보면, 밤이 되기 전에 아내랑 나는 떡이 되어서, 도저히 아무 것도 못하겠다, 그런 상태가 된다.

 

목표를 버리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지내보려고 한다.

 

전복을 꿈꾸지 못하는 삶, 그렇게 노예처럼 내 의식을 가두고 싶지는 않다. 가장 강렬하게 전복을 바랬던 사람,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게 사르트르이다. 그리고 지금 전복 따위는 없다, 그런 얘기를 가장 강하게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뒷배로 삼는 이론적 배경이 유전학이다. 묘하게, 그렇게 되었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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